양다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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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No.2
<color=#373a3c> 양다이강(요 다이칸)
(陽岱鋼, Dai-Kang Yang, よう だいかん)
생년월일
1987년 1월 17일(37세)
국적
[image] 대만
출신지
타이둥
출신 학교
후쿠오카 제일고등학교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 1라운드
소속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006~2016)
요미우리 자이언츠(2017~)
등장곡
Nelly ft. P. Diddy & Murphy Lee - Shake Ya Tailfeather
린킨 파크 - Numb/Encore[1]
응원가
자작곡[2]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2016'''
1. 소개
2. 선수 생활
3. 플레이 스타일
4. 역대 성적
5. 기타
6. 관련 문서


1. 소개


대만의 야구선수.
대만인이지만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 고등학교를 나왔기에 외국인 선수로 적용되지 않아 고교 드래프트를 거쳐 일본프로야구에 데뷔했다.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에도 여러 차례 선발된 주축 선수로서 WBC(2006, 2013)과 프리미어 12(2015), APBC(2017) 등 국제 대회에서도 한국과 여러번 상대한 적이 있다.

2. 선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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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적이지만 후쿠오카 소재 고등학교에서 3년을 재학하여 NPB 규정에 따라 일본인 선수로 인정받아, 2005년 드래프트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지명을 받았다. 데뷔 시절에는 5툴 플레이어 유격수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수비불안을 노출하면서 전준우나 일본 시절의 이종범과 비슷한 테크를 타 외야로 전향. 닛폰햄의 중견수로 활약하며 골든글러브를 4회(2012, 2013, 2014, 2016) 수상했다, 2013년에는 플라이어즈-파이터즈 프랜차이즈 사상 첫[3]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4] 이러한 활약과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로 신조 츠요시-모리모토 히초리에서 이어진 닛폰햄 중견수의 등번호 1번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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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시즌 종료 이후에는 FA 자격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했으며, 계약 기간은 5년. 연봉 총액은 추정 15억 엔이다. FA 계약에 집중하느라 2017 WBC에는 대만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았다. 계약에서 금액보다는 계약기간을 중시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고. 교진의 1번은 영구결번이기 때문에 등번호는 2번을 받았다. 다만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팀에는 심각한 리드오프 공백이 만들어졌고, 복귀한 뒤에는 그럭저럭 활약을 했지만 요미우리를 B클래스의 수렁에서 구원해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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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대만 국가대표의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었다.
2018년 시즌 종료 시점
요미우리 이적 후 2년동안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며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7시즌 87경기에 나와 9홈런 33타점 타-출-장-OPS .264-.356-.406-.762
2018시즌 87경기에 나와 10홈런 37타점 타-출-장-OPS .245-.297-.427-.724[5]
FA 직전 해 성적이 130경기 14홈런 61타점 타-출-장-OPS .293-.359-.430-.789 이었다는걸 감안하면...
당초 기대치대로라면 큰 부상없이 매년 2할후반대 타율, 15~20홈런, .800이상의 OPS는 찍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계약규모나 위상을 생각했을 때 다음시즌도 부상만 없다면 주전 중견수가 되는게 맞겠으나 문제는 이 선수의 소속팀이 요미우리라는 것이다.
2019년부터 이 팀의 주전 중견수는 리그 최고 외야수 중 한명인 마루가 맡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팀 여건상 코너 외야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풀시즌을 소화하는게 최우선 과제로 보인다.
2019시즌 개막 후 주로 5번타자 우익수로 출전하고 있다.
시즌 초반이라 섣부른 감이 없진 않지만 확실히 컨택 대비 출루와 파워가 아쉬운 모습을 보이는게 흠.
중견수로 뛴다면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으나 우익수라면 얘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미우리에선 중견수로 뛸 일이 거의 없다보니 앞으로 타격에 좀 더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20시즌 개막 2차전에서 시게노부 신노스케의 좌익수 투입으로 인한 타선 교체로 인해 프로 데뷔후 처음으로 1루수에 서게 됐다. 다만 2020시즌에도 백업, 플래툰으로 나오다가 시즌 중간부터 2군으로 사라졌고, 일본 언론에서 예측한 방출자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다만 이는 성적만 볼 때 얘기고 애초에 5년계약이라 방출하려면 2021년분 연봉 3억엔을 허공에 날리게 되는데, 요는 조국 대만에서 인기가 엄청나다보니 대만 방송사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중계권을 구입해주고 재일 대만인이나 대만에서 관광오는 팬들 덕에 상품도 쏠쏠히 팔리는 가외수입을 안겨주는 선수라서 데리고 있으면 중계권료로 연봉을 충당할 수 있어서 데리고 가는 쪽이 낫고 방출하면 이런 추가수입이 없어져서 오히려 큰 손해가 된다. 다만 연봉값에 못 미치는 성적인 것은 확실하기에 5년계약 마지막 해인 21년에 반등하지 못하면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라서 일본리그 선수생활 자체가 끝나버릴 수 있으니 반드시 반등이 필요하다.
아무튼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고 위와 같은 예측대로 21시즌에도 3억 엔을 받으며 그대로 요미우리와 동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

3. 플레이 스타일


타격에 있어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 삼진이 많은 편. 정규 타석을 넘긴 시즌에는 삼진이 100개 이상, 최고 142개의 삼진을 기록할 정도. BB/K는 2013년에 0.49까지 기록했다. 그래도 삿포로 돔에서 두자릿수 홈런을 꾸준히 날려주는 갭파워가 있다. 최전성기는 18홈런 47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을 차지한 2013년과 25홈런-20도루, OPS .862를 기록한 2014년. 닛폰햄의 전임 중견수 신조 츠요시와 유사한 스타일이지만 약간 파워가 떨어지고 도루가 많다고 보면 된다.
툴가이답게 잘 달리고 잘 던진다. 2012년~2014년 동안 3차례 연속, 그리고 2016년까지 총 4차례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만큼 중견수 수비도 수준급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2019 시즌부턴 마루에 밀려 중견수가 아닌 우익수로 나오고 있다.
본래 3번 타입으로 2할 후반대의 괜찮은 컨택에 홈런도 대충 10개 중반대를 까면서 도루는 10~20개 정도 하는, 1~3번을 다 소화할 수 있는 고루고루 다 잘 하는 괜찮은 툴 플레이어이고 실제로 타순이 고정되지 않고 리드오프로 쓰이기도 하고 3번으로 쓰이기도 하면서 팀 사정에 따른 타선의 약점을 메꿔주는 유틸성이 좋은 선수였다. 이런 한 분야만 특별히 뛰어나지 않고 모두 적당적당히 고루고루 잘하는 툴가이들의 치명적인 단점은 기량이 절정일 땐 공수주 뭐든지 다 되는 완벽한 선수지만 신체능력이 쇠퇴하기 시작하면 금새 공격도 수비도 아무것도 안되는 선수로 전락해 버리는데 요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고, 183cm에 89kg라는 다소 작고 호리호리한 신체사이즈와 맞물려 노쇠화가 좀 일찍 와 버려서 요미우리 이적 이후에는 완벽히 먹튀가 되었다. 비슷한 유형의 선수는 역시 다재다능한 툴플레이어 외야수로 활약했지만 언더사이즈 탓에 노쇠화가 비교적 일찍 와서 전성기가 빨리 진 추신수, 이종범 등.

4. 역대 성적



5. 기타


  • 자신의 조국 대만에서는 상당한 슈퍼스타이다. 현재 천웨인, 왕보룽과 함께 대만 야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갖고 있다.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SC 프리미어 12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할 뿐만 아니라, 연령별 아시아 지역대회인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까지 와일드 카드로 출전했다. 양다이강의 포지션인 중견수는 외야수비 전체를 지휘하는 사령관이라 매우 중요하며, 일본리그 선수라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달리 국대차출에 구단의 반대 같은 걸림돌이 특별히 없으며, 일본선수라 시차도 대만과 1시간밖에 없어서 시차적응 문제도 덜하다. 또한 대체자원이 있는 투수진과는 다르게 일본리그 주전급 수준의 중견수는 이 선수뿐이다. 2017 WBC 출전 요청은 개인적인 시즌 준비를 위해 거절하기도 했지만 그 밖에는 대부분의 국가대표 차출에 응하여 팀의 중요한 전력이 되고 있다.
  • 대만의 소수민족아미족(대만 원주민)의 유명 야구인 집안의 일원이다. CPBL을 호령했던 강타자 장타이산의 사촌이고, 큰형인 양야오쉰은 대만에서 대학을 나와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었다. 사촌동생 장이(張奕)도 일본으로 야구유학을 가 현재는 육성선수로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뛰고 있다.[6] 프로에 가지 못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둘째형도 일본에서 활동한 야구선수로,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해 독립 리그에서 좀 뛰다가 대만으로 돌아갔고, CPBL 드래프트에서도 지명되지 못하면서 야구를 접었다. 즉 막내가 형들보다 훨씬 대성한 것.
  • 일본에서의 등록명은 陽岱鋼. 가타카나 대신 한자로 등록명을 쓰지만 한자로 이름을 쓰고 요 다이칸이라고 읽는다.[7]
  • 고의는 아니었지만 이토 요시히로의 선수생활을 끝장내버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1년 9월 롯데와의 경기에서 이토를 상대할 때 플라이아웃을 당했는데 이때 스윙 도중 배트가 부러지면서 부러진 배트조각이 날아가서 이토의 정강이에 깊게 박혔다. 결국 이토는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에도 배트조각에 찔린 왼쪽 다리를 감싸는 버릇이 생겨서 투구폼이 망가져버렸고, 결국 2011년까지 시즌 30홀드도 기록하면서 주축 불펜투수로 활약하던 이토는 2012년부터 2군 지박령이 되었다가 2016년을 끝으로 은퇴한다.

6. 관련 문서



[1] 닛폰햄 시절 신조 츠요시의 등장곡으로 쓰였다.[2] '''遠く強く飛ばせ 振り抜け 走り出せ(オイ!)飛び込め つかみ取れ魅せる男 陽岱鋼 '''(멀리 강하게 날려라 힘껏 스윙해라 달려나가라 어이! 뛰어들어서 붙잡아라 매료시키는 남자 요 다이칸)[3] 도에이-닛타쿠홈-닛폰햄으로 이어지는 프랜차이즈 역사에도 장훈이나 시마다 마코토같은 준족의 선수들이 더러 있었지만 도루왕과는 인연이 없었다. [4] 양다이강 이후 닛폰햄은 니시카와 하루키(2014, 2017, 2018), 나카시마 타쿠야(2015) 등 도루왕을 연달아 배출한다.[5] 게다가 18시즌은 이전과 달리 타고투저였다는걸 감안해야 한다.[6] 지바 쇼크때 대만 국대의 선발투수로 등판했다.[7] 성은 일본식 한자음, 이름은 일본식 중국어 독음을 쓰는 희한한 독법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NPB 소속 팀의 유니폼에 붙는 이름도 YANG이 아니라 'YOH' 다. 초창기 일본 리그에서는 동양인 선수들의 이름을 일본식 한자음으로 표기했다. 초창기 일본프로야구의 대만계 선수들인 우창정(呉昌征)이나 왕정치(왕전즈)가 각각 고 쇼세이와 오 사다하루로 불린 케이스, 이후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일본에 진출한 백인천, 궈타이위안, 궈위안즈 등이 각각 일본식으로 하쿠 진텐, 가쿠 타이겐, 가쿠 겐지로 불린 경우들이 있다. 천타펑→타이호 야스아키처럼 아예 일본식 이름을 만들어 등록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이후 선동열이 최초로 한국식 발음으로 등록명을 등록한 이후엔 일본 진출 이후에는 동양계 선수들도 다른 외국인 선수들처럼 현지식 표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대만 선수들도 천관위천웨이인, 혹은 그의 형인 양야오쉰처럼 자국 발음으로 등록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다만 딱히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일본 선수생활 초창기에 '가쿠 슌린'이라는 일본식 발음을 사용했던 세이부의 궈쥔린 처럼 여전히 일본식 독음으로 등록명을 정하는 경우도 있고,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등록명이 '삼손 리'였던 이상훈처럼 아예 별명을 등록명으로 등록하는 경우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