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재연

 

1. 개요
2. 생애


1. 개요


魚在淵
1823(순조 23년)~1871(고종 8년)
조선 후기의 장군.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우(性于), 시호는 충장(忠壯).

2. 생애


1823년 경기도 이천에서 어용인(魚用仁)의 아들로 태어났다. 1841년(헌종 7년) 무과에 급제하여 1864년(고종 1년) 장단부사를 거쳐서 공충도(公忠道)[1] 병마 절도사가 되었다.
1866년 프랑스 해군의 피에르 구스타프 로즈(Roze) 제독이 이끄는 함대강화도를 침략한 병인양요가 발발하자 병사를 이끌고 광성진(廣城鎭)을 수비하였다. 이후 회령부사(會寧府使)로 부임하였다가 1871년(고종 8년) 2월 도총관·금위영 중군에 임명되어 북쪽 변경 지방의 비적을 토벌해서 치안을 확보한 동시에 장시(場市)를 개설하는 등 변경 무역을 활성화하였다.
1871년 삼군부(三軍府)에서 추천되어 순무중군(巡撫中軍)[2]으로 급파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는데 휘하 군사들 모두 강화도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자가 대부분이었고 군사들 모두 소속 진영이 다른 군사들이다 보니 훈련 상태도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전술을 짜던 어느 날 동생 어재순이 찾아와 형의 밑에서 종군하겠다고 하자 부모님께 불효를 저지를 작정이냐고 혼을 내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어재순이 나라가 어지러운데 어찌 떠날 수가 있겠냐며 설득하였다. 결국 어재순은 형의 밑에서 종군하게 된다.
신미양요가 발생하자 전황은 좋지 않게 흘러가는데 미군이 초지진덕진진을 점령하고 본진인 광성보로 쳐들어온다. 이에 6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광성진에서 배수진을 치고 수비하던 어재연은 6월 11일에 덕진진까지 점령한 미군의 총공세에 맞서 고군분투하였다. 여기서 손돌목돈대까지 밀리자 어재연 장군은 휘하 군사 350명과 함께 최후의 전투 준비를 하게 된다. 손돌목돈대에서 미군과 조선군은 치열한 백병전을 펼친다. 어재연 장군은 수륙 양면 작전을 전개하는 미군에 맞서 싸우며 야포 사격을 전개하다가 육박전에 돌입해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데 미군 수병 제임스 도허티[3]가 찌른 총검에 장렬히 전사하였다.[4]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및 어재순과 휘하 군사 53명이 전사, 100명이 자결, 20명이 포로로 잡히는 처참한 패배를 당한다. 하지만 자신들과 끈질기게 싸운 조선군을 높이 평가한 미군이 어재연을 포함한 장교진들을 정중히 매장해준다. 남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었던 어재연과 어재순 형제의 부인들이 전사할 경우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두 형제들에게 표식[5]을 해두었는데 표식을 보고 두 분을 고향에 안장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라에서는 동생인 어재순에게는 이조참의, 형이었던 어재연 장군을 병조판서에 추증했고 형제의 충절을 기려 쌍충비를 세웠는데 내용은 이렇다.

형은 나라를 위해서 죽고 동생은 형을 위해서 죽으니 이 가문의 충성을 널리 알려라. 늠름한 충성은 달빛과 같이 밝으니 형제가 죽음을 서로 뒤따라가서 돌아가는 것 같이 하네

조선 후기에 양헌수와 같이 서양의 침입을 받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동생과 같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무인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광성보 정문 앞에 강화군이 어재연 장군을 기려 광성보 전투를 표현한 조각과 함께 가운데에 어재연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 오히려 고향인 이천보다 전사한 강화도가 더 열심히 어재연 장군을 기념하는 사업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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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재연이 쓰던 장군기인 수자기. 전투 후 미군이 가져가 미군해사박물관에 있다가 2007년 10월 한국에 10년 임대 형태로 돌아왔다. 2018년 계약 종료인 상태인데 미국에 반납하지 않고 있다. 2014년 갱신할 때 2020년까지 연장 대여하는 것으로 다시 기간을 늘렸다고 한다. 강화전쟁박물관에 소장 중이지만 복제품이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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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에 위치한 어재연의 묘소. 오른쪽은 동생인 어재순의 묘.
[1]충청도.[2] 흥선 대원군 집권기에 도성 방어 강화를 위해 강화도에 설치된 군영인 순무영(巡撫營)의 부지휘관 겸 수석 참모.[3] 명예 훈장 수훈자이다. 당시 도허티 수병의 계급은 이병.[4] 1980년대에 방영한 MBC 사극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대원군'에서는 어재연이 총에 맞아 전사하는 걸로 나온 바 있다. 황현매천야록에서는 신미양요 당시 어재연 장군의 전투를 자세히 기록하고 묘사하는데 내용 중에는 ‘칼을 들고 싸우다가 칼이 부러지자 납으로 된 탄환을 적에게 던지며 싸웠으며 적의 창에 난자되고 머리를 베어갔다’고 한다.[5] 어재연은 상투 댕기 끝 조리개를 평소와 다른 색으로 멨고 어재순은 버선을 뒤집어 신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