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르 바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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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2. 클럽
2.1. CA 보카 주니어스
보카 주니어스의 유소년 팀 출신으로, 불과 18살의 나이에 수준급의 재능을 보여주며 1군에 승격되었다. 팀의 동료 미드필드였던 페르난도 가고가 2007년 1월에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함에 따라,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계승자로 선택되었다. 바네가는 2007년 2월 10일, 4-0으로 승리한 CA 반필드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2007년 4월에는 교체 아웃되며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등 빠르게 팀의 주요 선수로 성장하였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소속팀에게 우승을 안기고 이후 2008년 1월에 스페인 발렌시아 CF로 이적했다.
2.2. 발렌시아 CF
2008년 1월 바네가는 라 리가의 명문 발렌시아로 이적하였으며 €20m의 거액의 이적료가 발생했다. 감독인 로날드 쿠만의 비호 아래 꾸준히 출전했지만 20살도 안된 어린 바네가는 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08-09 시즌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임대되어 뛰었으나 442의 측면 미드필더 자리에 간혹 기용되는 정도였고 활약도 썩 좋지 못했다.
09-10 시즌을 앞두고 팀에 복귀하여 에버튼 FC 임대설과 VfB 슈투트가르트이적설이 돌았으나 프리시즌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기에 우나이 에메리 감독은 바네가를 팀에 잔류시키기로 결정한다.[3] 바네가는 리가 개막전 세비야 FC 와의 경기에서 2어시를 기록하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어 에메리의 믿음에 보답했고,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루벤 바라하의 노쇠 이후 믿을맨이 없었던 발렌시아 미들라인의 핵심이 되었다.
10-11시즌에 재정문제로 다비드 비야와 다비드 실바를 모두 이적시킨 발렌시아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바네가는 여전히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였으나 들쭉날쭉한 경기력과 후반기로 갈수록 부진해지는 문제로 인해 팀내 입지는 다소 애매했다.
11-12시즌은 바네가에겐 암울한 시즌이었는데 프리시즌 기간에 레알 마드리드 CF의 유니폼을 입은 사진이 공개되어 현지팬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고[4] 설상가상으로 시즌 중반에는 '''주유소에서 자동차의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워놓지 않았다가 차가 굴러와서 다리가 깔리는''' 어처구니없는 부상을 입었다. 회복되려면 최소 6개월이 걸린다는 진단을 받으면서 시즌아웃 확정. 이 여파로 인해 복귀한 이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수시로 팀 훈련에 지각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에메리 감독이 팀을 떠난 이후 부임한 감독들인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감독과 후안 피찌 감독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결국 13-14시즌에는 자국 리그 팀인 뉴웰스 올드 보이스로 임대되며 사실상 발렌시아와의 결별 수순을 밟게 되었다.
2.3. 세비야 FC 1기
임대 복귀 후에도 돌아오지 않는 폼에 애물단지로 전락한 그를 다시 부른 건 세비야에 부임한 옛 은사 에메리 감독. 14-15시즌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이반 라키티치를 대체하며 세비야 미들진의 핵으로 자리잡으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발렌시아 시절에는 다소 수비적인 역할까지 겸하는 3선 중미로 주로 기용되었지만 세비야에서는 더 윗선으로 배치되어 4231 포메이션의 공미 자리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발렌시아 시절에도 종종 공미로 기용되었으나 자신의 볼 키핑능력을 과신하여 볼을 질질 끌다 패스타이밍을 놓치던 플레이로 일관하던 때와는 다르게 더 간결하게 킬패스를 찔러주는 유형으로 변모하였다. 이런 바네가의 활약에 힘입어 13-14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팀이었던 세비야는 14-15시즌, 15-16시즌에도 연속으로 유로파 리그 우승을 이뤄낸다. 특히 15-16시즌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는 MOM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6년 6월 코파 아메리카에서 활약하는 가운데 기자회견에서 인테르나치오날레 행을 인정했다. 세비야와의 계약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불명.[5]
일단 인테르는 코파 아메리카가 끝나서야 오피셜을 낼 생각으로 보이며, 2016년 7월 7일 이적이 공식적으로 완료되었다. # 영입 자체는 인테르의 얇은 중원 뎁스를 살려줌과 동시에 오랜 숙원이었던 트레콸 자리를 맡아줄 수 있는 꿀영입으로 보았으나, 만치니 감독은 바네가 외에 야야 투레 영입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어서 어찌될지 귀추가 주목되었는데... 만치니 감독이 잘렸다.
프리시즌에는 지금까지와는 질이 다른 키핑 능력과 패스 실력을 선보이며 인테르 팬들의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예상과는 달리 클래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활약상에 그치고 있다. 같이 영입된 주앙 마리우가 보다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2선에서도 중용되고, 2선이 아예 기용되지 않는 경기들도 늘어나면서 다소 계륵이 된 신세.
사실 공격 기여도를 살펴보면 주앙 마리우를 압살한다. 인테르에서 2016-17시즌 전반기 동안 바네가보다 많은 기회를 창출한 선수는 안토니오 칸드레바 단 한 명에 불과하며, 그나마 크로스가 대부분이라 실제 기회창출은 단연 바네가가 톱이라고 할 수 있다. 공미 라는 포지션에 한정해서는 인테르 스쿼드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다.
다만 바네가의 가장 큰 문제는 기복. 분위기 타는 날에는 혼자서 전개, 키핑, 키패스, 크로스 죄다 도맡아서 상대 팀을 깨부수는데, 안되는 날에는 필드에 없는 것이 도움이 될 수준이다. 상황도 바네가에 유리하게 풀리지 않았는데, 소방수로 들어온 피올리 감독이 중원전개를 선호하지 않으면서 바네가의 장점을 발휘할 상황이 모두 사라졌다. 때문에 불과 6개월 만에 이적설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중국 슈퍼리그에서 실제로 두 건의 오퍼가 도착했었다.
돌이켜보면 '''바네가를 가장 잘 써먹었던 감독은 프리시즌의 만치니 감독'''이었다. 바네가는 만치니가 요청했던 영입이기도 했고. 만치니 다음에 들어온 데부어 감독은, 키핑이 간결하고 템포 높은 패스 축구를 선호했고, 지나치게 볼을 끄는 바네가보다는 패스의 흐름을 잘 읽는 주앙 마리우를 훨씬 선호했다. 이어 들어온 피올리 감독 역시 마찬가지. 피올리 초반에는 바네가의 전개능력에 주목했으나, 점차 측면을 통한 공격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키핑을 통해 수비를 끌어내고 모험적인 패스를 마구 지르는 바네가보다는 안정적으로 측면에 볼을 공급할 수 있는 마리우나 브로조비치를 선호했다.
신임 스팔레티 감독 역시 공미에게 많은 활동량과 전개롤을 부여하는데, 마찬가지로 바네가와는 썩 좋지 않은 조합이라 스팔레티 체제 하에서 바네가의 미래도 어두운 상황이다.
2.5. 세비야 FC 2기
이적료 900만 유로(약 115억원)로 1년 만에 세비야에 복귀하게 되었다.
에메리 시절과는 달리, 좀 더 후방 미드필더로서 플레이를 하고 있다 [6]
특히, 맨유와의 챔스 16강 2차전에서 은존지와 함께 맨유의 미드라인을 쌈싸먹으면서 팀이 OT에서 승리를 하면서 16강에 진출을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아스날과 루머가 나고 있다. 은사였었던 에메리가 그를 원한다고..
18-19 시즌이 시작되며, 감독이 바뀌고 바네가를 돕던 파트너 은존지가 떠났다.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었던 주변상황이었지만, 팀은 리그 1위에 올라서며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중. 전임 감독들의 체제에서는 4231의 더블볼란테의 일원, 가끔씩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장하였다지만, 마친 감독 치세에서의 바네가는 낮은 위치인 딥라잉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한다 되었다. 마음껏 공을 뿌리고 폭넓은 활동을 가져가며 팀의 전술적인 키맨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 이는 3백 체제로 전환하며 바네가를 도울 중앙 미드필더의 숫자가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곧 그의 수비부담을 덜어주며 공격적으로도 더욱 다양한 패스 선택지를 보장받게 된다는 뜻이다.
12월 말, 아스날로의 이적설이 보도되고 있다. 타 클럽으로 이적설이 나돌고있는 아론 램지의 대체자로 추정되는 중.
19-20시즌이 끝난뒤 자유계약으로 풀린 뒤 알 샤밥으로 이적한다는 오피셜이 떴다.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유로파리그 우승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2.6. 알 샤밥
20-21시즌 이적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주장으로 선출되었다.
3. 국가대표
바네가는 U-20 국가대표에 세르히오 아궤로와 더불어 캐나다에서 열린 2007년 FIFA U-20 월드컵 스쿼드에 차출되었고, 7경기 모두 출장하여 팀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페르난도 가고와 함께 아르헨티나 중원진을 이끌어 갈 재목으로 평가받았다.[7]
2008년 1월, 발렌시아 CF로 둥지를 옮긴 후, 그는 같은 해 2월 6일에 과테말라전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선발로 치렀다. 같은 해 여름, 그는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금메달 사냥에 공헌하였다.
발렌시아에서 기복없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디에고 마라도나로부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23인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하였다. 마라도나 사임 이후에는새로 부임한 세르히오 바티스타에 의해 발탁되어 중용되는 듯했으나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바티스타 사임 이후 알레한드로 사베야가 부임하면서 국대와 다시 멀어지게 된다.[8] 201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최종 엔트리에 들어가서 출전하였다. 주로 교체출전. 이듬해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는 주전 미드필더로 도약하며 미드필드의 키맨으로 활약했다.
4. 플레이스타일
'''축구도사'''
뛰어난 수준의 패스와 크로스, 그리고 탁월한 경기 운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볼키핑과 탈압박에도 능한 선수. 중앙에서의 볼 배급을 주로 담당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는다. 젊은 시절 2선과 3선을 오가며 클럽 팀에서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나 공격적인 롤을 주로 수행했지만, 아르헨티나에 있던 시절엔 수비형 미드필더 롤을 수행하기도 했고, 세비야 리턴 이후에는 3선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롤에 정착한 모습이다. 현대 축구가 2010년대 들어 2선보다는 3선의 플레이메이킹에 초점을 맞춤에 따라 자신의 플레이 포지션을 자연스럽게 변경한, 전술 이해도가 뛰어나면서 유연함을 갖춘 선수라고 볼 수 있다.
플레이메이커로서 부족함이 없는 패스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다소 느린 발과 약한 몸싸움이 단점. 젊은 시절 대표팀에서 외면 받은 것도 이런 면이 대표팀에서 두드러진 탓이 컸는데, 당시 2선 공격형 미드필더 자원이었던 바네가를 기용하기에는 이미 아르헨티나 공격진은 포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 향수병, 불의의 부상 등으로 인해 월드컵 직전 시즌에 고국의 뉴웰스 올드 보이스로 돌아갔고, 결국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바네가 대신 페르난도 가고가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아르헨티나 중원에서 플레이메이킹이 가능한 유일한 미드필더라고 볼 수 있으며, 자주 대표팀의 부름을 받고 있다. 경쟁자들인 엔소 페레스는 분명 육각형 선수이나 그 크기가 작은데다 특유의 더티플레이로 흐름을 끊고, 페르난도 가고는 전성기가 반 세대 정도 앞서 이미 폼이 떨어진지 오래이다. 루카스 빌리아는 조금 더 밑에서 홀딩 역할을 하는 수비에 최적화된 미드필더로, 공격 작업에 있어 큰 역할을 맡기긴 어렵다. 아르헨티나의 미드필더진을 더욱 면밀히 살펴보면 최전방까지 침투하여 공격을 지휘하는 파울로 디발라, 앙헬 디마리아, 그리고 수비적인 역할에 치중하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루카스 빌리아 등으로 극단적이게 이분화되어 있다. 이들 2선과 3선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면서 2선이 부진할 때 밑에서 올라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선수가 바로 바네가이기 때문에 2010년대 중후반 아르헨티나 중원의 대체불가한 자원이 되었다.
바네가가 활약한 큰 경기들을 꼽자면 가장 먼저 3번의 유로파리그 결승전. 특히 2015-16 리버풀과의 경기에서는 리버풀의 중원을 압도하며 MOM에 선정되었으며,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경기인 2019-20 인테르와의 경기에서는 뤽 더용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국가대표에서는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조별예선 칠레와의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로 메시가 없는 아르헨티나에 승리를 가져다주었고,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는 깔끔한 롱패스로 메시의 선제골을 도왔다.
5. 여담
- 바네가의 능력을 완벽히 개화시킨 것이 바로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다. 에메리가 발렌시아 감독으로 있던 2008~2012년에는 3선 미드필더 자리에서 팀의 중심으로 기용되었으나, 에메리가 떠난 이후 멘탈적인 문제와 부상이 겹쳐 부진의 늪에 빠졌다. 그러다 세비야 감독으로 부임한 에메리의 부름을 받고 그의 지도 아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완벽하게 적응하며 2014-15, 2015-16 유로파 리그를 제패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4-2-3-1의 NO.10 자리에 많은 역할을 부여하는 에메리의 성향을 보았을 때 그가 얼마나 바네가의 능력을 믿었는지, 또 바네가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2018년 에메리가 아스날에 있을 때에도 바네가와 진한 링크가 나기도 하였으나, 결국 영입은 무산되었다.
- 자위 행위를 한 동영상이 돌아서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그래서 한때 딸네가로 불렸지만, 지금은 가정을 이루었으며, 2016년 둘째를 득녀하면서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다. SNS에서 가족 사진을 굉장히 많이 올리는 편이다.
- 발렌시아에 있었을 때, 구단 측에서 그를 다름아닌 체 게바라와 닮은 꼴로 민 적이 있었다.#
- 아들만 5명인 아들부잣집의 셋째이다. [9] 형제들도 축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6. 우승
- CA 보카 주니어스 (2007)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2007
- 발렌시아 CF (2008~2014)
- 코파 델 레이 : 2007-08
- 세비야 FC (2014~2016 , 2017~2020)
- UEFA 유로파 리그 : 2014-15 , 2015-16, 2019-20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 FIFA U-20 월드컵 : 2007
- 베이징 올림픽 : 금메달
-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 2015, 2016
[1] 리오넬 메시, 마우로 이카르디 등과 동향이다.[2] 에이전시에서 관리하는 계정이며, 실제로 에이전시 홈페이지에 가면 그의 에이전트 마르셀로 시모니안의 이름이 보인다. 에이전시의 '''설립자'''다.[3] 당시 발렌시아의 단장이었던 페르난도 고메스는 바네가를 이적시키고 조나단 데 구즈만으로 대체할 것을 에메리에게 권했으나 에메리는 이를 거부했었다.[4] 서로간에 선수 이적이 꽤 있는 편이지만 발렌시아와 레알마드리드 간의 사이는 지금까지도 좋지 않은 편이다. 과거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의 이적 건은 그 절정이었다.[5] 1년 자동갱신 조항이 있는 상황에서 FA 자격으로 인테르에 가게 된 상황이라 해당 조항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불명인 상황이다. 에이전트는 해외 구단 이적 시 실효가 없는 조항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세비야 측은 조항이 이미 발효되었다고 주장하는 상황. 인테르가 위약금을 내고 해지시켰을지도.[6] 이는 몬텔라 시절때가 특히 그러하였다. 은존지와 함께 투 미드를 형성 [7] 물론 당시 각종 매스컴은 바네가보다는 가고에게 더 많은 비중이 있었다.[8] 다만 평가전에서는 종종 기용된 일이 많았다. 다만, 부상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폼과 더불어 수비주의적인 전술을 선호하는 사베야의 성향으로 인해 다시 국대에서 제외된 것이 컸다. [9] 헤수스 나바스와 형제관계가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