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산혁명렬사릉

 



대성산혁명렬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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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공화국영웅 메달 조형물.
1. 개요
2. 구성
3. 안치 인물 목록
4. 남북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 흡수통일 혹은 멸공통일 이후 전망
5.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애국렬사들을 안치한 묘역. 국립서울현충원의 애국자 및 독립유공자 묘역의 북한 버전으로 생각하면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북한 기준'''이니 오해하지는 말자.
착공일자는 1973년 8월, 1975년 10월에 준공되었으며 83년부터 2년간 재정비 공사가 있었다.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의 주작봉에 위치해 있다. 부지는 29만 7500㎡에 달한다. 신미리에 있는 애국렬사릉에 비해 그 격이 높다고 한다.
북한은 "해방 직후부터 국가 차원에서 만주 등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찾아 평양시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모셨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만주는 한국독립운동의 주요 무대였음에도 광복 직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동구권에 속했다. 그에 따라 냉전기 교류가 수십년간 완전히 끊기면서 안타깝게도 대한민국(남한) 정부는 오랫동안 만주 각지에 생존 또는 묻혀 있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실질적인 대우를 할 역량이 없었다. 결국 북한 정권의 정통성과는 별개로 본의 아니게 이곳에 안장된 수많은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들 때문에라도 이 묘원을 마냥 무가치하게 바라볼 수는 없으며 사후 안장자 목록을 파악한 후 재평가와 분별이 필요하다.

2. 구성


그래도 나름 '렬사'들이 안치된 곳이라 다수의 독립운동가들도 이곳에 잠들어 계신다. 실제로도 자매품격인 신미리 애국렬사릉에 비해 소위 혁명원로라고 불리는 항일 빨치산들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대략 100여 명 정도 된다고. 물론, 북한김일성 가족과 개국 공신들이 더 좋은 취급을 받고 있으며, 주체사상의 성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은 묘역임은 분명하다.
립구구역, 중심계단구역, 조각군상구역, 교양마당구역, 반신상구역 등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대문과 본묘역 사이에는 400개의 계단이 있다고 한다.
입구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정면에 대형 '공화국영웅메달'이 있고, 왼쪽에는 '''김일성의 친필비'''가, 오른쪽에는 헌시비가 있다. 심지어 대문의 현판은 '''김정일'''이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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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인물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묘비 앞에 분묘, 비석과 함께 반신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이 반신상과 비석에는 묻힌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약력이 서술돼 있다. 총 9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랫단부터 사망일 순서대로 안치돼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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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정숙, 김책, 오진우 등 총 15명의 김씨 일가의 구성원과 최고참 구성원들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참고로 '''가장 정중앙이 김정숙'''이다.

3. 안치 인물 목록


☆표시는 제일 윗단에 안치된 인물
  • : 생전에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였으나, 정작 안장되지는 못했다. 패륜아 아들놈이 우상화를 한답시고 금수산태양궁전에다가 시신을 박제해 전시한 탓. 덕분에 김일성은 최후의 미담조차 잃어버렸다. 어차피 집권 정당성의 원천이라고는 오로지 '김일성의 아들'이라는 사실 하나뿐으로 결국 아버지를 이용해먹을 수밖에 없었던 자기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한 게 본인이니 자업자득이라 할 만하겠다.
  • 김정숙: 김일성의 아내, 김정일의 어머니. 사실상 이곳의 주인공이다.
  • 김책: 김일성이 가장 아끼던 부하인 만큼 이곳에서도 중요하게 대접받고 있다.
  • ☆안길: 평양학원 초대 원장, 보안간부훈련대대부 참모장
  • 최용건: 전 민족보위상, 조선인민군 초대 총사령관. 배우자 왕옥환과 합장되었다.
  • ☆최희숙: 항일빨치산. 1941년 전사.
  • 강건: 6.25전쟁 당시 인민군 총참모장
  • 김일: 전 민족보위성 부상.
  • ☆김경석: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동료
  • 최현: 6.25전쟁 당시 2사단장, 인민무력부장
  • 류경수: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동료,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 땅크사단 초대 사단장.
  • ☆오중흡: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동료, 1939년 전사.
  • 오진우: 오중흡의 사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원수, 조선인민군 원수.
  • ☆오백룡: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동료, 인민군 8사단장,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 ☆최춘국: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동료, 6.25전쟁 당시 안동최춘국12보병사단 사단장
  • 김철주: 김일성의 동생.
  • 김형권: 김일성의 숙부.
  • 최광: 조선인민군 원수.
  • 리을설: 조선인민군 원수.
  • 최효일: 1930년대 남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 최윤구: 1930년대 남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4. 남북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 흡수통일 혹은 멸공통일 이후 전망


통일 이후에는 주체사상의 상징인 이곳을 갈아엎고 유골은 따로 처리한 뒤 공원 등으로 조성하자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처리할 경우 '''여기 안장된 독립운동가들까지 실수부관참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가령 이곳에 묻힌 최효일 열사는 대한민국에서도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남북분단 이전에 사망해 만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가의 유해를 모아서 안장했다는 북한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1] 북한 정권 수립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독립운동가 또한 많이 안장되어 있을 가능성도 높다. 혹여 단 한 분이라도 제대로 모시지 못할 망정 부관참시는 안 될 말이다.
그러면 독립운동가의 유골만 보존하고 김씨 일가나 6.25 전쟁 전범들의 유골만 추려내면 안 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전범'이라는 것은 사실 남측에서 보는 시각이고, 실제로 북한 주민들이 그런 의견에 동의하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을 애국자로 생각하리라고 추측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리고 독립운동과 북한정권 부역 둘 다 해당하는 사람의 부정적 재평가는 십중팔구 친일 매국노 프레임과 엮일 가능성도 크다. 다만 친일파였다가 6.25 전쟁의 전쟁영웅이 된 백선엽도 국내 일부 세력에 의해 친일 매국노 심지어는 6.25 전쟁에서조차 운이 좋아서 성과를 거뒀다는 폄하를 받고 무덤도 파묘할 거라는 이야기가 돌기 때문에, 북한정권에 부역한 독립운동가 역시 부정적으로 재평가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한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다른 곳도 아닌 혁명렬사릉은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의 민심 수습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남조선 간나새끼들이 이겼다고 제멋대로 군다" 라는 반발을 살 우려가 있으므로, 굳이 여기를 밀어버리는 방향으로 간다면 북한 주민의 민심을 적절히 수습한 뒤 장기적인 안목으로 천천히 진행하는 게 최선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북한 정치인이나 군인들은 남한의 시점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전범"이지만, 북측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영웅"으로 비춰지는 인물일 수도 있으므로 북한 민중의 동향을 민감하게 파악하면서 진행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또 북측 주민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진행하면 이제는 남측에서 6.25 전범 무덤들을 빨리 철거 안하고 뭐하냐는 비난여론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다(...). '''애초에 항일투쟁 경력과 북한 정권에의 기여 및 6.25 전쟁 참전 경력이 공존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아서, 가려내야 할 묘의 기준부터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정치적 부담 측면에서만은 전쟁 중에 파괴당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비록 진짜 독립운동가분들의 유해를 상실할 위험이 크지만 적어도 그냥 밀어버리는건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복구한다 해도 김씨일족은 핑계를 대고 처분하고 애매한 문제인물은 빼돌린단 선택지도 있고.
더 자세한 사항은 남북통일/인프라 문제 항목으로.

5. 참고문헌


[1] 조선인 독립운동가의 유해를 수습해 만주에서 북한으로 보내주는 것은 중국 정부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즉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