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역사

 


1. 개요
2. 19세기
2.1. 1878년
2.2. 1879년
2.3. 1880년
2.4. 1882년
2.5. 1883년
2.6. 1886년
2.7. 1887년
2.8. 1888년
2.9. 1889년
2.10. 1892년
2.11. 1893년
2.12. 1895년
2.13. 1896년
3. 20세기
3.1. 1900년
3.2. 1901년
3.3. 1902년
4. 21세기
4.1. 2008-09 시즌
4.2. 2009-10 시즌
4.3. 2010-11 시즌
4.4. 2011-12 시즌
4.5. 2012-13 시즌
4.6. 2013-14 시즌
4.7. 2014-15 시즌
4.8. 2015-16 시즌


1. 개요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의 역사를 서술한 항목.
※연도별로 정리가 되어 있으며, 해당 연도에 대한 간략한 글 혹은 장문이 기재되어 있으므로 주의.

2. 19세기



2.1. 1878년


제염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축구 클럽을 창단한다. 이 때 클럽 명칭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허드슨스라는 비누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붙게 되는데, 1:0으로 승리하면서 첫 승리를 따낸다.

2.2. 1879년


드디어 구단의 명칭이 생긴다. 그런데 흔히 알고 있는 현재의 이름이 아니다!!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West Bromwich '''Albion''')이 아닌 웨스트 브롬위치 '''스트롤러'''(West Bromwich '''Stroller''')이다.
명칭이 생기기 전에 이야깃거리가 있는데, 웬즈버리(Wednesbury)라는 지역으로 가서 축구공을 사고 나온 후에 Strollers라는 명칭을 붙히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Stroller는 산책하는 사람 또는 유모차라는 뜻이 있다.

2.3. 1880년


1년 후에, 스트롤러(Strollers)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알비온(Albion)으로 바꾼다.

2.4. 1882년


버밍엄 컵(Birmingham Senior Cup)에서 코셀리를 '''26-0(!)'''으로 가볍게 꺾어주는 패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버밍엄 컵은 아스톤 빌라가 우승한다.
참고로, 버밍엄 컵은 지역 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876년에 시작해서 '''2015년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축구 대회 중 하나이다.

2.5. 1883년


스탠포드시어 컵(지역 컵) 결승에서 스토크 시티를 3:2로 꺾고 첫 트로피를 가져가게 된다. 그리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FA컵에 출전하게 되지만, 웬즈버리 타운에게 0:2로 지면서 탈락해 버린다.

2.6. 1886년


3년 뒤에 역사상 처음으로 올라간 FA컵 결승전에서 블랙번과 붙게 되지만 0:2로 패하게 된다.

2.7. 1887년


4년전의 그 모습은 사라지고, 이번 년도에도 FA컵에 2년 연속 결승진출을 하게 된다. 상대는 지역 라이벌인 아스톤 빌라. 하지만 또 0:2로 패하고 만다.

2.8. 1888년


풋볼 리그가 이 때 개최하게 된다. 참고로 웨스트 브롬위치는 풋볼 리그의 원년 멤버이다. 1888년 9월 8일에 첫 경기가 열리게 되었는데 첫 상대로 스토크 시티가 걸렸다. 첫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풋볼 리그 첫 경기, 첫 우승을 한다.
그리고 3년 연속 FA컵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상대는 프레스턴 노스엔드였는데 '''2''':1로 꺾고 처음으로 FA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된다(!)
그 외에 다른 대회에서 스코틀랜드 컵 우승팀인 렌턴과 붙게 되지만 1:4로 패하고 만다.

2.9. 1889년


FA컵 8강 전에서 차담을 '''10''':1로 이기면서 기분 좋게 준결승 전으로 올라 갔지만 프레스턴에게 무릎을 꿇고 만다.

2.10. 1892년


FA컵 준결승전에서 크리스탈 팰리스를 꺾고 결승에서 지역 라이벌인 아스톤 빌라를 만나게 된다. 1887년에 패배를 설욕하듯이 3:0으로 손쉽게 우승을 하면서 FA컵 두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된다.
그리고 1892년에는 클럽의 기록이 세워지게되는데 바로 리그 최다 점수 차 승리이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

2.11. 1893년


리그 경기에서 최대 라이벌인 울버햄튼 원더러스를 8:0으로 기분좋게 밟아(?)버린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최고의 라이벌전 승리라며 좋아한다.

2.12. 1895년


FA컵 결승전에서 아스톤 빌라와 맞붙게 되는데 0:1로 지고 만다. 하지만 이 날은 정말 치욕스러운 날인데 바로 최단시간 골을 허용했기 때문... 그것도 '''라이벌 팀'''에게. 기록은 경기 시작 후 39초만에 골이 터졌다.

2.13. 1896년


프레드 에버리스(Fred Everiss)가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의 구단 직원으로 들어오게 된다. 1951년까지 재직하게 됨.

3. 20세기



3.1. 1900년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의 홈구장인 더 호손스(The Hawthorns)가 설립된다.그 전까지는 구장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홈구장에서 펼쳐진 첫 경기는 더비 카운티였는데 1:1로 비긴다.
스티브 브루머(Steve Bloomer)가 더 호손스에서 첫 골을 기록한다.

3.2. 1901년


1900/1901 시즌에 처음으로 리그에서 강등된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FA컵 준결승전에서 토트넘 핫스퍼에서 4-0으로 대패를 당한다. 이래저래 많은 사고가 있었던 일.

3.3. 1902년


구단 직원으로 일하던 프레드 에버리스가 20세의 나이로 감독직을 겸임한다. (1948년까지 재임.)

4. 21세기



4.1. 2008-09 시즌


여름이적시장에서 24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들여 보르하 발레로(마요르카, 5M), 스콧 카슨(리버풀, 4M), 지안니 주이벌룬(헤렌벤, 4M), 루크 무어(아스톤 빌라,3.75M), 압둘라예 메이테(볼튼, 2.6M), 마렉 체흐(포르투, 1.8M), 요나스 올손(NEC, 1M), 김두현(완전영입, 720K), 그레이엄 도란스(리빙스턴, 300K)을 영입하며 전력 보강에 나섰다. 그러나 빅영입은 지난 시즌 빌라의 주전 골키퍼였던 카슨을 제외하고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 경험이 있고 승격의 주역이었던 졸탄 게라케빈 필립스를 자유계약으로 풀럼과 버밍엄 시티에 넘겨줬고 지난시즌 빌라에 임대되었던 커티스 데이비스가 완전 이적으로 10M에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다.
코리안 프리미어리거 김두현으로 인하여 당시 EPL 중계를 맡았던 MBC ESPN이 WBA의 경기를 중계를 해주기도 했다.
개막전 아스날 원정에서 전반 초반 나스리에게 결승골을 실점하며 0:1로 아깝게 패하며 기대하게 만들었고 7경기에서 승점 10점을 따내며 선전하는 듯 했다. 그러나 맨유전 0:4 대패를 시작으로 공수 모두 약점을 노출하고 10경기에서 2무8패로 무승의 늪에 빠지며 꼴찌로 추락했고 시즌 끝까지 꼴찌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8년 말과 2009년 초에 맨시티, 토트넘,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홈에서 연속으로 승리를 거두며 나아지는 듯 했지만 이번에도 맨유전 0:5 홈에서의 대패를 시작으로 다시 11경기 연속 무승행진에 빠졌다. 헐 시티와 뉴캐슬, 미들즈브러의 폼도 같이 안 좋아 강등 확정은 계속 미루어졌고 34라운드와 36라운드 선덜랜드와 위건을 상대로 홈에서 대승을 거두며 17위 뉴캐슬(18위 헐시티와 승점 동률)과 3점 차이로 좁히고 2004-05 시즌의 재현을 기대하게 했으나, 37라운드에서 헐시티가 볼튼과 비기고 하루 뒤 리버풀과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0:2로 패하며 올라온지 1년 만의 강등이 확정되었다. 최종전 블랙번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며 미들즈브러에 골득실 2차이로 리그 꼴찌로 마감했다.[1] 승격 동기였던 스토크 시티헐 시티가 잔류한 것과는 달리 승격팀 중 유일하게 강등당했다.

4.2. 2009-10 시즌


1년 만에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된 가운데 지난 시즌에 이어 유니폼 스폰서를 찾지 못한 채 시즌을 시작했다.
토니 모브레이 감독이 셀틱 FC로 떠나고 MK 돈스를 이끌던 로베르토 디 마테오가 신임 감독이 되었다. 여름 주요 영입은 제롬 토마스(포츠머스, 자유계약), 곤살로 하라(콜로콜로)이고 지난시즌 PSG에서 임대되었던 유수프 물룸부를 완전영입했다. 조너선 그리닝과 김두현과 크레이그 비티는 팀을 떠났다.
개막전을 강등동기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로 치렀고 1대1로 비겼다. 개막 후 8경기 6승2무의 쾌조의 성적을 거두었고 또다른 강등동기 미들즈브러 FC를 상대로 원정에서 5:0으로 대파하며 승격 후보 1순위임을 입증했다. 팰리스와 반즐리를 상대로 연패하며 잠시 주춤했지만 그 이후 연패 없이 12월에 노팅엄 포레스트에 2위를 잠시 허용한 것을 빼면 4연승 2차례, 5연승 1차례를 기록하며 순항했고 결국 2010년 4월 10일 43라운드 동커스터 로버스에 3:2로 승리하며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이어 챔피언십 준우승으로 1년 만의 승격을 확정지었다.

4.3. 2010-11 시즌


가브리엘 타마스와 스티븐 리드, 파블로 이바녜스, 보아즈 마이힐, 니키 쇼리, 피터 오뎀윙기, 마크 앙투완 포춘, 소멘 초이, 폴 샤르너, 크레이그 도슨을 영입하며 많은 선수들을 보강했다. 그러나 초반 일정은 만만치 않은데 원정경기 4경기를 빅4 첼시-리버풀-아스날-맨유 순으로 원정을 가야한다.
개막전 상대로 디펜딩 챔피언 첼시를 원정에서 만나게 되었다. 예상대로 드록바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고 0:6 대패를 당했다.
2라운드 선더랜드와의 안방 경기에서 이적생 오뎀윙기의 골로 첫승에 성공했다.
6라운드 아스날 원정에서 3:2로 이겼고, 8라운드 맨유 원정에서도 2:2로 비기며 초반에 비교적 선전중이다. 9라운드 풀럼을 꺾으며 4승3무2패의 호성적.
그러나 풀럼에게 2:1 승리 이후 극심한 하향세를 탄다. 블랙풀 원정에서 1:2로 패하며 블랙풀에게 홈 첫승을 선물했고, 맨시티, 위건, 스토크에게 패배를 당하며 6위었던 순위가 16위까지 내려갔다.
에버튼 원정과 뉴캐슬과의 홈경기에서 각각 4:1, 3:1 2연속 승리로 9위로 올라갔지만 그후 5연패를 당하며 다시 부진에 빠졌다. 블랙풀에 3:2 승리를 거뒀지만 상승세로 이어가지 못하고 블랙번에게 졌고, 위건에게 비겼으며, 맨시티 원정에서 무기력하게 0:3 패배를 당했다. 맨시티전 패배 이후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이 경질되었다.
2011년 2월 12일 로이 호지슨 감독이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감독이 되었다.# 호지슨 감독이 부임한 후 첼시에게 1:3으로 패하기 전까지 7경기 3승4무로 무패를 달렸다. 그중에 4월 2일 A매치 휴식기간이 끝나고 붙었던 리버풀 FC를 2:1로 승리하면서 리버풀 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중하위권팀은 기적적으로 잘 살리는 호지슨답게 팀의 주포 피터 오뎀윙기를 200% 활용하여 36라운드까지 리그 13위를 기록했다. 남은 2경기를 모두 진다고 해도 리그 17위까지 밀려나가기에 리그 잔류를 성공시켰다. 5월 23일 마지막 경기에서는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0:3으로 밀렸다가 이후 3골을 넣으면서 무승부를 만들어냈고 리그 11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중하위권의 호지슨답게 그가 감독으로 오면서 13패(7승 5무)를 기록하던 팀이 딱 2패(5승 6무)만 기록했다.

4.4. 2011-12 시즌


2011-12 시즌은 리그 27차전까지 10승 5무 12패로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역시 중위권 전문인 호지슨. 물론 재정적인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팀으로선 리그 잔류(강등되어 2부리그로 떨어지면 수백억 이상의 중계권비 및 스폰서비가 날아가기에 1부리그 잔류로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 큰 보람이긴 하지만. 올 시즌에 돋보이는 건 27R에서 첼시 FC를 1:0으로 이기며 결국 첼시의 감독 경질에 결정타를 날렸버렸다.
그리고 2011-12 시즌을 리그 10위로 마무리했다. 놀라운 건 안방보다는 원정경기에서 7승 5무 7패라는 만만치 않은 성적을 보이면서 중하위권 대부분 팀이 안방은 강해도 원정에서 고전하는 거와 반대였다. 참고로 올 시즌 리그 5위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원정에서 8승 3무 8패,6위 첼시가 6승 7무 6패를 거둬들였던 걸 봐도 알비온의 원정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다. 대신 안방 경기는 6승 3무 10패에 그쳤는데 알비온보다 안방경기에서 많이 진 3팀이 볼턴 원더러스(4승 4무 11패).블랙번 로버스(6승 1무 12패).울버햄튼(3승 3무 13패)로 모조리 강등팀이다.

4.5. 2012-13 시즌


2012-13 시즌부터 로이 호지슨이 잉글랜드 국대 감독이 되는 바람에 새롭게 지난 시즌 리버풀의 수석코치였던 스티븐 클락이 감독이 되었다. 지난시즌 임대되어 주전 골키퍼가 되었던 벤 포스터가 버밍엄 시티에서 완전이적했고, 클라우디오 야콥과 마르쿠스 로젠베리가 영입되었다. 그리고 벨기에의 유망주 로멜루 루카쿠를 첼시로부터 임대영입했다. 그리고 디나모 키예프로부터 고란 포포프를 임대영입했다.
첼시와 웨스트햄, 리버풀에서 수석코치였던 클락 감독은 뉴캐슬 시절 감독 대행 이후 처음으로 감독직을 맞게 되었다. 코치직으로는 충분히 검증받았지만 감독으로서도 검증받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클락의 WBA에는 개막전 홈경기에서 리버풀을 3:0으로 떡실신 시켰고, 2라운드 토트넘 원정에서 종료 직전 추가시간에 제임스 모리슨이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1:1 무승부를 거뒀다. 그리고 3라운드에서 개막 후 2연승을 기록 중이던 에버튼을 2:0으로 이기며 3위가 되었다. 10차전까지 5승 2무 3패로 리그 5위까지 뛰어올랐다. 뭐 아직 상대들이 중하위권팀이 대부분이었는데 12차전 안방경기로 열린 첼시전을 2:1로 이기면서 리그 4위까지 올라와버렸고 13차전 선더랜드 원정도 4:2로 이기면서 일시적이긴 해도 리그 3위까지 올라왔다. 11월에 벌어진 4경기를 모조리 이겼다. 다음 라운드 스완지 시티 원정에서 패했고, 이후로 여러번 지면서 순위가 떨어지긴 해도 18차전까지 6위이다. 그런데 4위까지 같은 승점 30점이라서 순위 변동이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는 상황. 19차전은 강등권 1순위인 QPR 원정경기에서 2-1로 이기면서 2012년을 리그 6위로 마무리했다. 2013년 새해, 풀럼과 가진 안방경기에서는 1:2로 패하여 7위로 밀려났다. 그리고 22차전 19위 레딩 FC 원정. 루카쿠가 2골을 터뜨리며 기세좋게 이기나 했더니만 종료 10여분을 남겨두고 필사적인 레딩의 반격에 휘말려 2:3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26차전 리버풀 원정에선 2:0으로 이기면서 올 시즌 리버풀전은 5득점 0실점으로 2연승을 거둬들였다. 최종전에서 은퇴를 선언한 알렉스 퍼거슨의 맨유를 상대로 2:5로 끌려가다가 5:5로 마무리했다.12-13시즌 성적은 8위. 비록 우승컵을 하나도 들어올리지 못했으나, 중위권으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4.6. 2013-14 시즌


13-14 시즌 맨유를 이기고,[2] 첼시 원정에서 아쉽게 비기는 등[3]의 선전을 보이면서 중위권에서 그럭저럭 성적을 유지중이었으나, 4연패를 포함해 10경기 1승으로 순위가 14위까지 떨어지자 12월 15일 스티브 클락 감독을 경질하였다. 수석코치인 키스 다우닝이 임시 감독이 되었는데 지난 시즌과 이번시즌에서 성적만으로 놓고 볼땐 감독 경질은 성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뭐 그렇다고 성적이 좋아진 것만도 아니기 때문.
박싱데이 웨스트햄과의 3:3 무승부 경기에서 니콜라 아넬카가 보여준 '케넬' 세레모니가 전세계적 비난을 받으며 팀 분위기가 더더욱 어수선해졌다. 자세한 사항은 아넬카 항목 참조. 결국 회장이 유대인인 유니폼 메인스폰서 주플라와 후원 계약 연장에 실패하게 되었다. FA컵은 3라운드에서 크리스탈 팰리스에 홈에서 0:2로 지며 광탈했다.
클락의 후임 감독으로 1월 10일 전 레알 베티스 감독이었던 페페 멜이 선임되었다. 멜 감독이 베티스를 승격시키고 유로파 리그까지 진출시키긴 했지만 베티스에서 부진으로 경질된 지 얼마 안 된 터라 뜻밖의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멜 감독이 부임하고 첫 경기인 에버튼과의 홈경기는 1:1로 비기며 무난하게 출발했지만, 1월 29일 빌라와의 웨스트 미들랜드 더비 원정경기는 2골을 먼저 넣었음에도 난타전 끝에 3:4로 패했다.
겨울이적시장에서 에스파뇰의 티에비 비푸마를 임대로 데려왔고, 셰인 롱은 헐시티로 이적했다.
24라운드 리버풀과의 홈경기는 콜로 투레의 조공패스에 힘입어 1:1로 비기며 갈길바쁜 상대팀의 발목을 잡았지만 25라운드 팰리스 원정에서 1:3으로 패했다. 하지만 26라운드 선두 첼시와의 홈경기는 1:1로 비기며 도깨비팀의 면모를 다시 보여줬지만 27라운드 꼴찌 풀럼에게 홈에서 1:1로 비기며 멜 감독의 첫 승리는 6경기를 치른 상황에서도 얻어내지 못했다. 28라운드 선더랜드 원정경기는 선더랜드가 FA컵 8강을 치르게 되며 추후 연기되었다.
29라운드 맨유와의 홈경기에서 무기력하게 0:3 대패를 당하며 멜 감독은 7경기 째 무승을 기록했고, 한경기 덜치렀지만 18위 카디프와 승점이 동률인 아슬아슬한 17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30라운드 스완지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8경기 만에 멜 감독은 승리를 기록했다. 하지만 31라운드 헐시티 원정에서 0:2 패배를 당했고 32라운드 카디프와의 홈경기는 종료직전 동점골을 먹히며 멜 감독의 첫 홈경기 승리에 실패하였다. 다행히 33라운드 강등권 라이벌 노리치를 원정에서 꺾고 일단 16위로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음놓을 수도 없는게 강등권과 6점차라서 뒤집혀질지 모르며 남은 6경기 중 맨시티, 토트넘, 아스날과의 경기가 있기 때문. 강등권인 선더랜드 전과 중위권 웨스트햄, 스토크 시티와 경기에 총력을 다하면 좀더 희망적이긴 하다. 34라운드 토트넘을 홈으로 불러들여 3:3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을 따냈다. 3:0 상황에서 따라잡힌 것이라는 게 좀 안습이지만...
35라운드 맨시티 원정에서 1:3으로 패하며 강등권과 3점차로 좁혀졌다. 그래도 일단 강등권 팀과 승점이 같아져도 골득실에서 앞서 2경기 정도 패하며 따라잡히지 않는 한 여유가 있지만, 36차전 웨스트햄전은 반드시 이겨야지 리그 잔류가 확실시된다. 다행히 36라운드 웨스트햄과의 홈경기에서 베라히뇨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멜 감독의 홈 첫 승에 사실상 잔류는 확실시되게 되었고 37차전 아스날 원정에서 아쉬운 0:1 패배를 당했지만 리그 16위를 지키게 되었다. 승점 3점차인 18위 노리치가 1경기 남은 것과 달리 알비온은 2경기가 남아 있었고 다음 선더랜드만 이긴다면 확실히 잔류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세를 탄 선더랜드에게 28라운드 순연경기에서 0:2로 패해 17위로 추락, 18위 노리치 시티와 3점차가 되었다. 하지만 노리치가 아스날을 이겨도 승점은 같고 골득실차가 워낙 크기에(19골) 마지막 38차전 여부랑 상관없이 사실상 리그 잔류 확정. 노리치 시티가 마지막 38차전에서 아스날을 적어도 18골을 넣고 이겨야 하는 불가능한 상황(그마저도 38차전에서 알비온이 골없이 져야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로서 다음 시즌도 무사히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시즌 최종전은 스토크 시티에게 홈에서 1:2로 패배해 17위로 시즌을 마쳤다.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낸 홈팬들은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4개월간 단 3승에 그친 페페 멜 감독은 마지막 경기 후 경질되었다.

4.7. 2014-15 시즌


14-15시즌에 들어서면서 앨랜 아르빈을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전 감독인 페페 멜 못지않게 말아먹는다. 강등권 가까이 떨어질 정도였으니.. 얼마 못가 또 감독이 바뀌지만 광탈... 때마침 크리스탈 팰리스를 떠나 야인이 된 토니 풀리스 감독을 선임했다. 이후로는 안정적인 행보를 이어가 36라운드까지 41점 승점을 거두며 13위로 올라 남은 2경기를 다 져도 리그 잔류가 확정되었다. 이것으로 '잔류왕' 토니 풀리스 감독은 22시즌째 무강등 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
FA컵은 8강까지 올랐으나 아스톤 빌라에게 0:2로 덜미를 잡혀 탈락했고, 리그컵은 16강에서 2부리그 본머스에게 지고 탈락하였다.

4.8. 2015-16 시즌


6월에 위건 애슬레틱 소속 윙어인 제임스 맥클린과 3년 계약했다는 오피셜이 떴다. 그 뒤로는 유수프 물룸부,사마라스 등을 방출만 하고 영입이 없다. 아마도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듯한데 실제로 친선경기를 살펴보게 되면 팀 내 유망주 스트라이커인 아딜 나비를 기용했다.
그 뒤로, 잠잠했다가 뜬금(?)없이 헐 시티 소속 수비수인 제임스 체스터를 영입했다. 안 그래도 약간의 노쇠화 기질이 보이던 찰나에 좋은 영입이었다!! 8월 10일에는 제니트의 스트라이커 살로몬 론돈을 1200만 파운드로 영입하면서 보강을 이어나갔다. 이 때, 클럽의 최고 이적료 기록인 1000만 파운드를 깼다.그러나 대다수 팬들은 베라히노에게 관심을 보였던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할까 노심초사.
그리고 여담이지만 올 시즌 시작이 안 좋다. 첫 경기가 맨체스터 시티(...) 결국 0:3으로 패배했다. 무기력한 전술의 뻥축과 컨디션 최상인 우승 후보 팀과의 대결이었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비참한 패배였다.
두번째 경기는 왓포드 FC. 맨시티전에서의 충격을 벗어나기 위해 총공격전을 펼쳤다. 살로몬 론돈은 이 날 데뷔전을 치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골대의 저주(?) 때문인지 계속 크로스바를 맞추며 득점에 실패했다. 왓포드 FC는 중거리 슛을 통해 득점을 노렸지만 마이힐에게 다 막혔다. 리키 램버트까지 동원하며 득점을 노렸으나... 결국 0:0 무승부
왓포드 FC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마주한 또다른 강팀인 첼시(...) 특히 첼시페드로까지 가세해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토니 풀리스 감독이 4-5(수비형 미드필더)-1 전술을 채택했다는 점. 오늘도 무승부라도 한다면 다행이지... 싶었는데 네마냐 마티치가 칼럼 맥마나만에게 파울을 범해 '''페널티킥을 얻어낸다(!)''' 제임스 모리슨이 찬 페널티킥이 들어가나 싶더니 쿠르투아의 발에 걸려 득점에 실패한다. 그리고 정확히 4분 뒤에 페드로가 득점에 성공한다. 그 뒤로 흐름을 탔는지 디에고 코스타의 추가골이 나오면서 2:0(...) 페널티킥을 못넣었던게 한이 된건지 제임스 모리슨이 뒤늦게 득점에 성공하며 2:1로 따라잡는다. 그러나 전반전이 끝나기 '''3분'''전에 아스필리쿠에타가 골을 넣으며 3:1로 격차를 더 벌려놓는다. 후반전에는 존 테리가 살로몬 론돈에게 반칙을 하면서 퇴장당한다. 그리고 뒤이어 제임스 모리슨의 헤딩골이 들어가며 3:2로 격차를 줄이는데 성공하지만, 팀은 패배하고만다.
세 경기만에 득점을 올렸지만, 아직도 공격력에 있어서 문제점을 남긴 채 리그컵을 치루게 되는데 꽤나 약체팀인 포트 베일과 만나게 된다. 미드필더에서 세르쥬 그나브리와 브라운 이데예가 나오면서 1.2군 정도의 라인업으로 상대를 맞붙는다. 포트 베일정도는 껌이겠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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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포트 베일 골키퍼가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다. 브라운 이데예를 대신해서 살로몬 론돈이 교체 투입되었지만 여러 기회를 말아먹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나마 리키 램버트가 몇 차례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지만 결과는.... 특히 토트넘 핫스퍼에서 베라히노에게 제안이 왔으나 거절한 상황인데... 결국 이 승부는 연장전을 넘어 승부차기까지 가면서 5:3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베라히노가 이적 요청을 했다. 물론 제레미 피스는 거절. 웨스트 브롬입장에서는 매우 곤란한 상황이다. 아딜 나비가 포텐터졌다면 모를까. 안 그래도 팀 공격력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베라히노까지 가버리면...
4번째 경기는 토니 풀리스가 만들어놨던, 토니 풀리스의 팀이었던 스토크 시티와 붙게 되었다. 과연 뻥축 vs 약간의 탈뻥축 팀들과의 경기에서 누가 우승할 것인가가 경기의 관전 포인트. 시작 25분 후에 아펠라이가 크레이그 가드너에게 반칙을 범하게 되는데 '''레드카드크리(!)''' 뒤이어 찰리 아담이 크레이그 도슨에게 반칙을 범하면서 '''또 퇴장(!!)''' 그런데 이상하게도 득점을 쉽게 올리지 못했다. 전반 추가시간에 살로몬 론돈의 골이 터지긴 했으나 그게 끝. 1:0으로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한다.
그 뒤로 맨유에서 골키퍼 안데르스 린데가르트와 수비수 조니 에반스를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또한 졸리온 레스콧아스톤 빌라와 계약한다는 루머가 퍼졌다. 2015/16시즌 당시 웨스트 브롬은 수비과포화 상태였다. 왼쪽으로 가자니 크리스 브런트가 버티고 있고, 또 중앙으로 가자니 요나스 올손과 가레스 맥컬리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니거의 확정이라고 보면 될 듯? 그리고 브라운 이데예는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한다.
결국, 졸리온 레스콧아스톤 빌라와 계약을 맺는다. 여담으로 졸리온 레스콧은 최대의 팀들을 한번씩 다 거쳤다.
초반 부진을 딛고 WBA는 승점을 착실히 쌓으며 강등권과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13라운드에선 아스날을 홈으로 불러 2:1 역전승을 기록했다.
2016년 1월 16일, 웨일스 스트라이커인 테일러 로버츠와 2018년까지 재계약을 하는데 성공했다. 이전에는 유소년 계약이었으나 프로계약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6일 사우스햄튼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주축 선수 2명이 부상을 당하면서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부상선수는 대런 플레처와 제임스 모리슨인데, 제임스 모리슨 같은 경우는 6~8주나 되는 큰 부상(햄스트링)을 당했고, 대런 플레처는 검사를 해봐야 안다고 전했다. 그런데 대런 플레처의 부상부위가 무릎인 것으로 보아 심각할 지도 모른다.
사우스햄튼전에서는 첼시전에서 환상적인 골을 넣은 가드너와 이적료에 걸맞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었던 살로몬 론돈을 대신해 오랜만에 빅터 아니체베가 선발출전을 하면서 멱살잡고 캐리할 뻔했으나, 0:3으로 발렸다.
그러나 한가지 희망인 것은 부상중이었던 벤 포스터가 돌아왔다는 점이다. 물론 벤치멤버였지만.(...)
팬들이 토니 풀리스에게 약간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클라우디오 야콥 때문이다. 못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심하다 싶을정도로 혹사를 시키고 있기 때문. 이럴거면 유수프 물룸부를 왜 팔았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1월 29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 산드로를 임대 영입하였다.(+완전 이적 옵션) 등번호는 30번을 배정받았고, 토니 풀리스감독은 산드로를 완전 영입하고 싶다고 하였다.
1월 30일에는 피터보로와 FA컵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사이도 베라히노가 선발로 출전했는데, 토니 풀리스감독과 사이도 베라히노와의 불화설 + 이적루머에 대한 소리가 많은 가운데 교체멤버가 아닌 선발 출전을 해줬다는 것이 포인트. 전반전에 사이도 베라히노가 득점을 하면서 1:0으로 앞서가며 그럭저럭의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후반전에서는 망했어요...
78분에 골을 허용하였으나, 뒤이어 사이도 베라히노가 역전골을 만들면서 2:1로 이기는가 싶었지만... 또 얼마 못가 동점골을 내주면서 2:2로 비기게 되었다.
재경기에서 승부차기 승리를 거두며 16강에 올라갔지만, 레딩에게 패배하며 탈락한다.
리그에서는 에버튼, 팰리스, 맨유를 잡으며 29라운드에서 승점 39점. 잔류가 거의 확정적이다. 맨유전 승리를 끝으로 무와 패만 추가했지만 벌어놓은 승점이 있기에, 여유롭게 10승 13무 15패, 리그 14위를 기록하며 잔류했다.
강등 걱정 없이 시즌을 보낸건 성공적이었지만, 빌라 다음으로 적은 34골만 기록했고 무유효슈팅 경기가 7경기로 리그 최다였다. 팬들은 재미 없는 축구에 불만을 표했다. 그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풀리스는 또 한번 잔류청부사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 시즌이었다.
여름에 토트넘 이적이 결렬된 에이스 사이도 베라히뇨가 보드진과 다툼을 벌이며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했고 클럽 역사상 최고액으로 영입한 호세 살로몬 론돈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등 공격진들이 전체적으로 순조롭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그럼에도 합격점을 줄만한 것은 재미없는 경기 전개를 기꺼이 받아들인 잔뜩 내려앉은 수비와 세트플레이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자세를 팀 전체가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 2002-03 시즌, 2005-06 시즌 강등될 땐 19위였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를 처음으로 꼴찌로 마감한 시즌이 되었다.[2] 1978년 이후 처음으로 OT에서 이겼다.[3] 무리뉴의 첼시 감독으로 홈 무패 기록을 거의 깰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