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워 솔저스
'''We Were Soldi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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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랜들 월리스, 멜 깁슨 주연의 베트남 전쟁을 다룬 2002년 할리우드 전쟁 영화이다.
베트남 전쟁 초기의 격전 중 하나인 이아드랑 전투를 소재로 하였다. 주인공인 할 무어 중령 본인이 퇴역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종군기자 조셉 겔러웨이와 함께 쓴 논픽션 '우리는 한때 군인이었다'(원제: We Were Soldiers Once... And Young)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감독 랜들 월리스는 브레이브 하트의 각본으로 멜 깁슨과 인연을 맺었으며, 둘이 잘 맞았는지 멜 깁슨 감독의 2016년작 전쟁 영화 핵소 리지의 각본을 맡기도 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미국은 당시 최신식 미래무기였던 헬기콥터를 이용한 공중강습 부대를 실험 중이었는데, 이 미래형 군대를 실전에서 테스트 하기 위해 베트남전에 파병한다. 그리고 이 첫번째 시험 전투의 책임은 미 육군 사관학교 출신 할 무어 중령(주인공)이 맡게 되었다. 그러나 임무 수행지인 이아드랑 계곡에 대한 사전 검토에 들어간 주인공은 이곳이 10여년 전, 프랑스 군인들이 몰살당했던 지역으로 일명 죽음의 협곡이라 불리는 사실을 알게 된다.[13] 언제나 그랬듯 자기 생애 마지막 전투가 될 지도 모를 출전에 대비해 아내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무어 중령이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파병장면은 그야말로 멋진 장면이다.
1965년 11월 14일 일요일 오전 10시 48분.
무어 중령은 월맹군의 본거지를 섬멸하기 위해 제7기병연대 1대대장으로 대대와 함께 이아드랑 계곡에 헬기로 투입된다. 하지만 계곡 주변을 점령한 북베트남군은 아군보다 5배 이상 많은 대규모 정예부대였고, 멋대로 적 정찰병을 잡으러간 선발대가 매복의 의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 고립되었고, 그 사이 적 낙오병에게서 적의 규모를 파악한 1대대는 보급을 헬리콥터로만 의존한 채 격전을 벌이게 된다.
1965년 11월 15일 월요일 오전 2시 30분.
공중강습 작전의 특성상 오직 헬기를 통해서만 외부와 접촉이 가능한 험준한 협곡, 고통 속에 신음하는 부상자들마저 부상으로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총을 들고 싸워야하거나 무기력하게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하나 둘 그 목숨을 잃어간다.
그뒤 시간이 흐르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깊은 밤, 적진에 버려진 군인들에게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이곳에서 모두 동지들에 대한 걱정으로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이룰 수 없다. 한편, 전쟁 리포터로 전지에 들어온 조 갤러웨이의 카메라에는 젊은 영혼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는 모습들이 담겨지고, 그는 더 이상 카메라가 아닌 총을 들고, 민간인이 아닌 군인으로 전장을 뛰어다니게 된다.
1965년 11월 16일 오후 4시 05분.
막강한 월맹군은 공포에 빠진 미군들을 포위해 들어가자 상부는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고 무어 중령 혼자 사단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무어 중령은 부하들을 내버리고 혼자 도망치고 전장을 등질 수 없다며, 최후의 수단으로 브로큰 애로우를 외친다. 곧바로 미 공군 폭격기의 어마어마한 지상 폭격이 감행되고, 월맹군의 추격은 봉쇄되지만, 폭격 좌표의 오차로 인해 무어 중령의 일부 부대원들도 네이팜탄의 화염에 죽어가.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처참한 상황.[14] 그러나 전세는 조금씩 미군편에 유리해지기 시작한다.
1965년 11월 17일 오전 1시 00분.
무어 중령은 월맹군 작전을 간파하고, 이를 교란 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최후의 반격을 준비하고, 마지막 작전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처참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어 중령은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들이 살았건, 죽었건 내 뒤에는 아무도 홀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미국 참전용사 커뮤니티에서는 평가가 좋은 편이다. 그리고 종군기자로 그 자리에 있었던 조 갤로웨이(할 무어 장군과 원작 책을 같이 썼다)는 75% 정도는 맞고 25%가 허구라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이 정도면 놀라운 편. 플래툰이나 풀 메탈 자켓처럼 영화적 가치로써는 훌륭한 영화지만 미군을 너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아서 참전용사들에게는 비판 받은 작품들과 비교가 된다. 하지만 이아드랑 전투에 참전한 몇몇 참전용사들은 영화와 책에 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너무 할 무어 시선으로 표현한 영화라고 했다.
다만 흥행은 망했다. 7500만 달러 제작비로 만들어져 미국에서 7800만 달러 흥행을 버는데 그쳤고 해외 흥행도 합쳐야 5천만 달러도 되질 못했다. 다합쳐 1억 3천만 달러도 되지 않으니 본전치기인 1억 5천만 달러조차 벌지 못했다.
영화 도입부는 적장인 응우옌 후 안 중좌의 회상씬으로 베트남군의 기습공격에 패배당하는 프랑스군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프랑스 국기(삼색기)가 달린 나팔을 바라보면서 살아있는 프랑스군을 사살하라고 명령하는 응우옌 후 안 중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15] 많은 사람들이 영화 초반에 베트민군과 프랑스군이 싸우는 전투를 1954년에 있던 디엔비엔푸 전투로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영화 초반에 나온 전투는 디엔비엔푸 전투가 아닌 인도차이나 전쟁의 중대한 전환점이자 응우옌 후 안 중좌가 참전했던 동케 전투이다. 이 전투는 베트남-중국 국경지역인 4번 국도를 중심으로 벌어졌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베트남 독립군과 프랑스군이 각각 승리와 패배의 시발점이 된 전투이다.위키피디아 동케고지 전투 문서를 참조
영화를 보면 출동하기 전 무어 중령이 자신의 부대인 7기병연대가 과거 인디언 토벌 작전 중 인디언들에게 전멸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7기병대의 전멸은 미군의 끔찍한 흑역사 중 하나로 인디언 전쟁 당시 리틀 빅혼 전투 중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 육군 제7기병연대는 아메리카 원주민 수우족 전사들에게 포위당해 사실상 전멸했다.[16] 이번에도 과거와 똑같이 월맹군의 본거지를 치러 들어가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과거의 역사가 오버랩 돼서 과거처럼 방심하면 안된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북베트남군 지휘관인 응우옌 후 안 중좌 역은 베트남 배우인 돈 중(Don Duong)이 맡았다.[17] 응우옌 후 안 중좌는 무어 중령에 비해 출연 비중은 적지만 침착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베트남군을 지휘하며 무어의 부대를 곤경에 넣는 등 작지 않은 존재감을 나타낸다. 그런데 원래 베트남에서 한국의 안성기급 국민배우 지위에 있었던 돈 중은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베트남에서 수년간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전투가 끝난 후 현장에 돌아온 응우옌 후 안이 미군이 전장에 꽂아놓고 철수한 성조기를 뽑아 들었다가, "전쟁이 계속되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며 나무가지에 도로 꽂았는데, 성조기를 도로 꽂은 것을 베트남 공안 당국에선 미군에 대한 찬양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 여파로 결국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심장마비로 쉰다섯이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전투의 거의 마지막에 미군들이 '''총검 돌격'''을 감행하고 그 직후에 UH-1 건쉽이 미니건과 로켓탄으로 지원 사격을 날리는 장면은 픽션이다. 무어 장군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실제로는 그 상황에서 때맞춰 온 공군의 폭격으로 위기를 넘겼다고. 영화의 극적 효과를 살리기 위해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전투 중 너무 뜨거워서 발사할 수 없는 상태인 박격포를 무어 중령과 다른 군인들이 '''오줌'''으로 식히는 장면이 유명하다. 원래는 식수까지 포에 뿌려가며 사격을 강행했는데 물도 떨어지자 무어 중령이 "그럼 오줌으로라도 식혀!"라며 직접 허리띠를 풀고 시범을 보여서 포반 대원들도 뒤따라서 오줌을 눈다.
멜 깁슨 외에도 우리에게는 MCU의 필 콜슨으로 친숙한 클라크 그레그가 톰 멧스커 대위 역할로 등장한다.
초반 무어 중령과 새로운 부하들의 첫 대면시 가장 첫줄 좌측에 있던 장교. 전투가 시작된 직후에 무어 중령 옆에서 본부와 무전연락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여 헬기로 후송되나, 자리가 모자라다는 말을 듣고 양보하려 했다가 그 직후 날라온 총탄 두 발을 맞고 사망하여 헬기에 같이 실려가는 모습이 나온다.
그 외에도, 멜 깁슨이 대대장으로 부임한 대대의 주임원사 역으로 샘 엘리엇이 나오는데, 1년후인 2003년 헐크(영화)에서 썬더볼트 로스 장군 역을 맡게 된다. 이 인물은 무어 휘하에서 다양한 전쟁을 경험한 베테랑으로 너무늙은 인상탓에 할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18] 거기다가 과거의 M1 개런드나 카빈같은 구시대 소총에 너무 손이익은 탓인지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당시 최신형 미래병기인 M16 소총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19] 영화내내 콜트권총 하나로만 적을 상대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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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도 20년이 흐른 1994년, 미 육군 중장으로 퇴역한 할 무어와 베트남군 최고 계급인 상장(계급)으로 복무 중이던 응우옌 후 안 장군이 과거 전투지역을 찾아, 당시 전투를 이야기하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많은 참전용사들이 전후에 다시 만나면 그러했듯,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주요 인물들 중 응우옌 장군이 저 만남을 가진 이듬해 1995년에 68세로 먼저 사망했고, 플럼리 원사는 2012년 10월 10일에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무어 장군은 2017년 2월 12일 94세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 삽입곡 중에서 이아드랑 계곡에 헬기를 타고 투입되던 장면과 착검 돌격 장면에서 나오던 곡의 제목은 Sgt. MacKenzie.
원래는 영화에 삽입할 목적이 아니라 조셉 맥켄지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자신의 할아버지를 기리면서 쓴 곡이었다.
그러나 감독 랜들 월리스가 곡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편곡 후 삽입했다고 밝혔다. 유심히 들어보면 영어인 듯 영어 아닌 가사가 들리는데 스코트어라서 그렇다.
엔딩 크레딧 부근에 삽입된 곡읜 제목은 Mansions of the Lord로 랜들 월리스가 직접 쓴 찬가이다.
영화 삽입곡으로 만들어진 노래지만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에서도 연주되었고 미군 관련 합창단에서 종종 부르는 편이다.
영화 촬영시 엑스트라들의 휴식 시간에 지급된 담배와 성냥, 간식, 휴지 등은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 나온 물건을 그대로 복각해서 만든 물건으로 지급되었다고 한다. 엑스트라라고 할지라도 그 시대에 돌아간 척만 해서는 안 되고, 그 시대에 정말 가 있어야 영화에 시대상이 배어 나온다는 감독의 원칙 때문이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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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감독 랜들 월리스, 멜 깁슨 주연의 베트남 전쟁을 다룬 2002년 할리우드 전쟁 영화이다.
베트남 전쟁 초기의 격전 중 하나인 이아드랑 전투를 소재로 하였다. 주인공인 할 무어 중령 본인이 퇴역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종군기자 조셉 겔러웨이와 함께 쓴 논픽션 '우리는 한때 군인이었다'(원제: We Were Soldiers Once... And Young)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감독 랜들 월리스는 브레이브 하트의 각본으로 멜 깁슨과 인연을 맺었으며, 둘이 잘 맞았는지 멜 깁슨 감독의 2016년작 전쟁 영화 핵소 리지의 각본을 맡기도 했다.
2. 등장인물
2.1. 미군
- 할 무어 중령 (LTC Harold "Hal" Gregory Moore Jr.) 멜 깁슨 분
영화의 주인공이며 미 육군 사관학교 출신 보병 장교로 공수부대를 거쳐 극중에서는 주월 미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장이다.[1] 영화는 주인공이 미 본토 주둔 미 육군 제2보병사단 23연대 2대대장 시절부터 시작된다. 당시 미 육군은 인접부대인 제11공수사단을 최신식 미래형 교통수단인 헬리콥터를 이용한 공중강습 부대로 전환하고 있었는데, 병력부족으로 2사단과 부대를 통합하고, 이 미래형 부대가 후일 공중 기병대의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기대하여 당시 한국에 주둔하던 미 제1기병사단과 부대마크를 바꿔달도록 했다.[2]
미 육군은 이 최신식 미래형 군대를 실전에서 테스트하기 위해 베트남 전쟁에 파병한다. 베트남에 파병된 후 첫 실전은 이아드랑 계곡 근처에 포진하고 있던 북베트남 정규군(이하 월맹군)을 섬멸하는 작전이었다. 1대대 병력 356명과 함께 이아드랑 계곡으로 공중투입된 주인공은 포로 심문을 통해 최소 3,000명 이상의 월맹군 소굴로 들어왔음을 알았다.
미 육군은 이 최신식 미래형 군대를 실전에서 테스트하기 위해 베트남 전쟁에 파병한다. 베트남에 파병된 후 첫 실전은 이아드랑 계곡 근처에 포진하고 있던 북베트남 정규군(이하 월맹군)을 섬멸하는 작전이었다. 1대대 병력 356명과 함께 이아드랑 계곡으로 공중투입된 주인공은 포로 심문을 통해 최소 3,000명 이상의 월맹군 소굴로 들어왔음을 알았다.
주인공은 적장의 마음을 파악한 듯한 적절한 지휘와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 및 공중지원에 힘입어 후속병력 포함 총1000여명의 병력으로 최대 1만여명으로 추정되는 월맹군의 역포위 전술에 가까스로 맞대응한다. 수차례 전선 붕괴 위험에 사단본부에서는 대대장이 포로로 잡힐 우려가 있으니 안전한 후방으로 이동하여 무전으로 지휘하라는 명령에 "부하를 버릴 수 없고, 전투 중에 쓸데없는 명령 좀 내리지 말라!"고 응답하는 모습도 보여준다.[3] 명 지휘관답게 적 지휘관의 최후 공세 작전을 예측하여 자신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역공을 하였고, 무장 헬기의 화력 지원을 바탕으로 월맹군 본진을 향하는 길목에 있는 적 전초기지를 점령하여, 적 지휘관에게 거점을 포기하고 후퇴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출정식에 말했듯이 본인이 먼저 내리고 가장 늦게 후퇴하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킨다.
- 바실 프럼리 원사 (SGM Basil L. Plumley) 샘 엘리엇 분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로 주인공 대대의 주임원사이다.[4] 매우 무뚝뚝한 외모에 무뚝뚝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영화 초반부에 주둔지에서 그와 마주친 병사 한 명이 반갑게 인사를 건넬 때마다 비꼬는 말로 답한다. 대대장이 훈련 중 자기 소대원의 건강 이상을 감지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잭 조지건 소위를 칭찬하자, 동의하면서 부대원의 상태는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닥달하는 헨리 헨릭 소위를 보고 "저 덩치 큰 놈은 훈장에 눈이 먼 거 같군요."라며 일침을 가한다. 공중강습 부대에 우선 지급된 최신형 M16 소총을 보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총 아녜요? 마치 장난감 공기총 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걸 들고 싸울 바에 권총들고 싸우겠습니다." 라며 말하며 M1911 권총을 사용한다. 그리고 월맹군이 몰려오는데 피하지도 않고 권총으로 한명 한명 사살하는 모습을 보인다. 파병 훈련 중 대대원들 앞에서 자신을 할배라 부르는 개자식들은 죽여버리겠다는 대사로 위관급 장교 이하 대대원들의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5]
- 토니 네이달 대위 (CPT Tony Nadal) 차이수 가르시아 분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 A중대장. 이아드랑 전투 당시 주인공으로부터 북베트남군이 계곡 측면을 우회 공격하기 위해 개울 바닥을 통과할테니 그곳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곳을 사수한다. 고립된 척후소대인 B중대 2소대를 구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포위망 진입을 시도했지만 두터운 월맹군의 방어망으로 인해 실패하고, 두번째 시도에 성공하여 새비지 병장을 포함한 생존자 2명을 구출한다.
- 잭 조지건 소위 (2LT John Lance "Jack" Geoghegun) 크리스 클라인 분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 C중대 2소대장으로 주인공이 리더십을 인정한 유망한 초임 장교. 생도생활을 하는 펜실베니아 군사대학 ROTC 출신답게 자신보다 소대원들을 걱정하는 진정한 장교의 면모를 보인다. 훈련 중 흑인 병사 갓볼트가 혼자서 뒤쳐져 있음을 깨닫자 소대의 행군을 전부 정지시키고 자신이 직접 갓볼트의 발을 확인한다. 물집으로 인한 상처임을 확인하자 양말을 갈아신으라 하고 약을 뿌려준뒤 소대원들에게 서로의 발 상태를 자신처럼 해주라는 당부로 참된 장교의 모습을 보인다. 그의 손목에는 출정식 몇 주 전에 태어난 딸 카밀의 이름에 새겨진 비즈 팔찌가 있다. 그의 소대는 공중강습 제2파로 총알이 빗발치는 이아드랑 전투 속에서 착륙하여 주인공의 명령으로 착륙지점 방어를 위해 착륙지점 북쪽 능선을 방어한다. 뛰어난 리더십과 지휘능력으로 11월 16일 오후까지 어떻게든 버텨내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월맹군의 공세에 결국 후퇴한다. 그러나 후미에 있던 소대원 갓볼트가 적탄에 쓰러지자 되돌아가 그를 업고 오다가 월맹군의 집중사격으로 전사한다.[6]
- 헨리 헨릭 소위 (2LT Henry Henrrick) 마크 블루카스 분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 B중대 2소대장. 행군 훈련 때 뒤처지는 병력들의 원인은 살피지 않고 무작정 왜이리 굼뜨냐 거리며 윽박지르는 신임 장교. 의욕은 좋지만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앞뒤를 보지 않는 모습 때문에 대대 주임원사에게 훈장에 눈이 먼 거 같다는 눈총을 받는다. 극중 강습 1파의 첨병소대 임부를 부여 받고, 착륙 직후 발견한 월맹군 정찰병을 포획하기 위해 앞뒤 보지 않고 소대원을 이끌고 가다가 본대와 너무 멀리 떨어지는 바람에 잃어버린 소대가 되고, 월맹군의 매복에 걸려 부대가 고립되어 패닉에 삐진다. 3분대장 새비지 병장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지만 이내 북월맹군의 총격으로 총상을 입고,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죽기 직전 새비지 병장에게 절대 적군들에게 통신음어표가 넘어가지 않게 하라면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게 되어 기쁘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한다. 의욕만 앞서는 나쁜장교의 좋은 예를 보여주며 공식적으로 자신의 소대는 정원 44명 중 40명 사망, 2명 실종으로 사실상 전멸.
- 브루스 스네이크 크랜달 소령 (MAJ Bruce "Snake" Perry Crandall) 그렉 키니어 분
미 육군 제1기병사단 229강습헬기대대 A중대장으로 UH-1 헬기 조종사이다. OCS 출신 공병장교로 임관 후 항공병과로 전과했다. 6대의 헬기로 구성된 육군항공 비행중대를 항상 솔선수범하여 이끄는 책임감 있는 지휘관이다. 그가 지휘한 중대는 빗발치는 대공 사격에 굴하지 않고 탄약 보급과 부상자 후송, 보충병력 수송을 위해 누구보다 가장 많은 임무를 수행했고, 야간이 되어 비행작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지만 언제든지 필요하면 날아오겠다는 최고의 중대였다. 극중 의무후송 헬기가 착륙지점의 대공사격이 심하여 상공 진입을 못하자 자신의 중대를 따라오라며 의무후송 비행중대를 착륙지점으로 유도하지만 적의 사격이 너무 빗발치는 바람에 아군 헬기가 한 대 추락하고, 의무후송 헬기가 철수하자 자신의 헬기로 부상병들을 다 태울 때까지 착륙지점에서 대기하는 등 자살행위에 가까운 대담한 모습을 보인다. 첫째 날 비행작전 종료 후 의무후송 헬기 중대장이 왜 자신의 부하들을 위험한 착륙지점에 끌고갔냐며 거칠게 항의하자 권총을 꺼내며 "나한테 따지고 자시고 할 용기는 있으면서 가서 베트콩들 하고 한판 붙어볼 용기는 없냐?!" 라며 얼굴에 권총을 겨누고 다시 보이면 죽여버리겠다며 분노를 드러내자 동료들이 제지한다.[7]
- 에드 투톨 프리먼 대위 (CPT Ed W. "Too Tall" Freeman) 마크 맥크래큰 분
미 육군 제1기병사단 229강습헬기대대 A중대장인 크랜달 소령의 윙맨으로 육군항공 조종사이다.[8] 키가 매우 크다보니 주로 투톨이라 불린다. 클랜달 소령과 함께 목숨을 걸고 자살행위에 가까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 결과 크랜달 소령과 함께 명예훈장을 수훈했다.[9]
- 미스터 닉(Mr. Nik) 비엔 홍 분
남베트남 육군 레인저 부대에서 주인공 대대에 파견된 통역관이다. 국방색 민무늬 전투복과 M1 철모를 쓴 다른 미군과 달리 타이거 스트라이프 위장무늬 전투복과 부니햇을 착용하고 있어, 대번에 눈에 띈다. 강습 1파로 주인공과 같이 투입되었고 현장에서 포획한 월맹군 포로를 심문한 결과 작전지역에 월맹군 병력이 생각보다 지나치게 많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이후 강습 2파가 도착할 때, 포로를 후송하기 위해 사단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배역이 끝난다.
- 어니 새비지 병장 (SGT Ernie Savage) 라이언 허스트 분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 B중대 2소대(헨리 헨릭의 소대) 3분대장. 헨리 헨릭이 전장에서 조우한 월맹 정찰병을 잡기 위해 막무가내로 뛰어가자 제지를 해보지만 소대장이 이를 무시하고 계속 쫓아가자 할 수 없이 소대장의 뒤를 따르다가 매복한 적의 기습에 당황하는 소대장을 진정시킨 후 소대의 혼란을 수습하여 근처 풀 숲으로 엄폐하여 월맹군에 맞선다. 전사한 헨리 헨릭 소위의 유언으로 소대 지휘권을 인수하여, 포병 지원을 받아 풀숲에서 계속 버틴다. 그러나 월맹군 포병의 무자비한 소이탄 포격과 빗발치는 소화기 사격 그리고, 미친듯이 몰려오는 월맹군에 맞서느라 고립된 소대 부상병들이 전부 출혈 과다로 사망하게 된다. 15일에는 중대장 네이달 대위에게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다음날 오전에 구하러 오겠다는 말에 절망하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생존한 소대원들과 월맹군의 야간 공격에 맞서다 탄약이 떨어져 대검을 들고 미친듯이 싸운다. 다음날 구출하러온 중대원들의 목소리에 풀숲 시체더미에 숨어있던 다른 생존자인 갈렌 벙검 기술상병(SP4 Galen Bungum)[10] 과 함께 극적으로 구조된다. 구조 직후 플럼리 원사는 '이런 날이 좋은 날이다. 새비지 병장.'이라고 했다. 직후 같이 살아남은 벙검과 함께 대대장인 무어를 찾아가 전투에 재투입 시켜달라고 한다.
- 갓볼트 일병 (PFC Willie Godboldt) 에드윈 머로우 분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 C중대 2소대 소총수. 파병 훈련 당시 발에 물집이 터져 상처가 까진 것 때문에 가장 뒤쳐져서 오며 등장한다. 이후 이아드랑 전투에서 16일 오후까지 조지건 소위와 함께 북쪽 능선 최전선에서 싸웠으나 후퇴하던 과정에 총을 맞고 죽는다.
- 조 갤러웨이 (Joseph "Joe" Lee Galloway) 배리 페퍼 분
텍사스 출신 미국 UPI 통신사의 종군기자로 강습작전의 마지막 제대를 태우고 이륙하던 스네이크 소령에게 탑승을 요청하자, "미친놈이면 타라!"는 말을 듣고 흔쾌히 탑승한다. 이후 무어 중령을 만나서 현재 위기상황과 극복 가능 여부를 인터뷰를 한다. 무어중령에게 자신이 이 전쟁을 바꿀수는 없다는것을 알지만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전쟁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을 이해시키고 싶다는 말을 한다. 다음 날 오전부터 시작된 월맹군의 거센 공세에 대대본부마저 함락위기에 놓이자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대대주임원사는 이곳은 위험하니 사진은 다른데서 찍으라며 그를 그나마 안전한 장소로 데려다 주고, 호신용 M16 소총을 준다. 자신은 기자인데 왜 무기를 주냐고 묻자, 이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 군인이라는 답변을 듣는다. 이후 사방에 둘러쌓인 월맹군의 공격에 사진찍을 틈도 없이 살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점점 더 전투가 격렬해지고 브로큰 애로우 발령으로 인해 시작된 폭격의 와중에 아군의 오폭으로 무자비한 네이팜탄의 화염에 휘말려서 몸의 절반 이상이 불에 타버려 고통을 호소하는 지미 나카지마 일병을 보고 크게 놀란다. 의무병에게 나카지마 일병의 다리를 들어 달라는 말에 듣고 다리를 드는 순간 까맣게 탄 피부가 벗겨지며 뼈가 보이는 모습에 놀라고, 자신의 아내와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는 처절한 유언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이후 폭격의 적의 공격이 잠잠해지자 다시 사진기를 들고 전장의 참혹한 장면을 사진기에 담기 시작한다. 전투가 끝나자 치누크를 타고 몰려오는 종군기자들이 그에게 전투가 어땠는지 물어보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그는 할 말을 잃고 그냥 물러간다. 너덜너덜한 행색의 갤러웨이는 이후 무어중령에게 눈시울을 붉히며 너무 참혹한 현실을 겪고 나니 어떻게 기사를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무어 중령 역시 눈시울을 붉히며 내 부하들이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죽어갔는지 사실대로 써달라고 말하자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간다. 민간인 기자 신분으로 이 전투에 참전한 공로를 인정받아 후일 동성무공훈장을 수훈한다.
- 지미 나카야마 일병 (PFC Jimmy Nakayama ジミー・ナカヤマ) 브라이언 티 분
제1기병사단 8공병대대 C중대 공병으로 주인공 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전투편조로 배속된 병력. 다른 조연들과 마찬가지로 실존 인물이며, 일본계 미국인 2세이다.[11] 지미 나카야마는 원래 미 아이다호 육군 주방위군 공병 소위로 임관했으나 복무 중 연방 육군 장교로 복무를 희망하여 연방 육군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장교 정원(TO)이 나오지 않아 임관을 기다리며 먼저 육군 공병 병사로 복무를 하게 되는데, 아이드랑 전투 당시에는 일병 계급이었다. 다들 걸리적거린다며 냉담하게 대하던 대대원들 중 유일하게 갤러웨이 기자가 들이대는 카메라에 전투 중임에도 브이 자를 보이고 웃으며 호의적으로 대한다. 이름을 물어보던 갤러웨이에게 "얼마 전에 내 딸이 태어났는데 축하한다고 좀 전해 달라"고 하기도 하는 등 유쾌한 성격으로, 그 직후 옆 대대원이 다치자 재빨리 의무병을 부르는 등 민첩하게 대응했다. 이후 아군의 오폭으로 인해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후송 후 사망했다. 전투 당시엔 그의 연방 육군 공병 소위 임관이 확정됐지만, 이 소식을 듣기 전에 전사했고, 묘비에도 반영되지 않아 최종 계급이 서류상으론 소위임에도 묘비엔 일병으로 기재되어 있다. 남아 있는 영정은 육군 공병 장교의 정복 차림인데, 그가 주방위군 장교이던 시절에 찍은 것이다.
- 찰리 헤이스팅스 중위 (1st LT Charlie Hastings)
영화 중반에 잠시 등장하는 인물로 미합중국 공군(USAF)에서 파견된 전방항공통제관(FAC)이다. 무어 중령은 상황이 다급해지자 그에게 브로큰 애로우를 발동한다. 그는 폭격 좌표를 무전으로 보내 월맹군을 쓸어버리는 것으로 전세를 차츰 회복시키지만, 한 번은 실수로 좌표를 잘못 지시했다가 대대장의 제지를 받고 전투기에 즉시 중지를 요청했으나 이미 선두기가 폭탄을 투하한 직후라 아군 2명이 폭격에 휩쓸려 콜래트럴 데미지가 발생한다. 이같은 불상사로 순간 패닉에 빠졌으나 냉철한 대대장의 격려를 받고 정신을 차려 다시 폭격을 유도한다.
2.2. 북베트남
- 응우옌 후 안 중좌 (Nguyễn Hữu An) 돈 중 분
이아드랑 전투 당시 B3 전선군 사령관 겸 정치위원, 계급은 육군 중좌. 베트남 입장에서 보면 독립군 출신으로 독립전쟁인 인도차이나 전쟁의 시작부터 디엔비엔푸 전투와 전쟁의 끝인 사이공 함락까지 모두 참전하고, 전후 상장(계급)까지 승진한 명장으로 극중 첫씬에서의 등장은 응우엔 후 안 중좌가 독립군을 소탕려는 프랑스군을 공격하고 이때 죽어가는 프랑스군 병사를 향해 총을 겨누는 독립군 병사에게 프랑스군을 모조리 죽여야 이들이 침략을 멈출 것이라고 외치며 등장한다.[12]
월맹 지휘관의 과거 활약상 씬에서 보듯 이 전투 당시 미 육군은 월등한 화력지원과 제공권 덕분에 버틴 것이지 만약 이 2가지 조건이 없었다면 전멸이였을 정도로 영화내에서 월맹 지휘관은 뛰어난 전술과 부하를 다독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만약 무어가 현장 대대장이 아니었다면 미군은 응우옌 후 안의 전략에 놀아나서 패배했을 정도로 월맹 지휘관의 전장상황 파악 능력과 전략거점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나다.
영화 내에서도 미군이 계곡에 기관총을 비롯한 전선을 형성했다는 보고에 그럼 개울 바닥을 이용해서 측면을 공격하여 무너뜨리라는 명령과 후방에 있는 미 육군 포병이 가장 큰 위협이니 후방을 쳐서 포병을 무력화 시키라는 작전과 압도적인 공세로 미군을 수세에 몰아 넣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17일에 새벽을 틈타 미군의 숨통을 끓기 위해 은밀하게 접근하여 기습할 작전을 세웠으나 무어에게 작전을 간파당하고 할 무어의 최후의 반격과 무어의 반격을 도와주는 무장헬기의 화력지원 그리고, 미군의 연대거점과 베트콩 본거지 중간 기지가 점령 당했다는 보고에 발 빠르게 현 거점을 포기하고 본부를 철수한다. 그러나 이내 미군이 이아드랑 계곡의 베트콩을 격멸했으니 후퇴하자 다시 돌아와서 점령한다. 이후 나무에 꽂힌 작은 성조기를 뽑아 들며 "미국은 이 전투에 이겼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오판이며 전쟁이 지속되면 얼마나 더 죽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그 성조기를 도로 꽂아 놨는데, 이 장면 때문에 후술한 대로 담당 배우 돈 두옹이 낭패를 봤다.
3. 시놉시스
출처 - 네이버 영화
미국은 당시 최신식 미래무기였던 헬기콥터를 이용한 공중강습 부대를 실험 중이었는데, 이 미래형 군대를 실전에서 테스트 하기 위해 베트남전에 파병한다. 그리고 이 첫번째 시험 전투의 책임은 미 육군 사관학교 출신 할 무어 중령(주인공)이 맡게 되었다. 그러나 임무 수행지인 이아드랑 계곡에 대한 사전 검토에 들어간 주인공은 이곳이 10여년 전, 프랑스 군인들이 몰살당했던 지역으로 일명 죽음의 협곡이라 불리는 사실을 알게 된다.[13] 언제나 그랬듯 자기 생애 마지막 전투가 될 지도 모를 출전에 대비해 아내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무어 중령이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파병장면은 그야말로 멋진 장면이다.
1965년 11월 14일 일요일 오전 10시 48분.
무어 중령은 월맹군의 본거지를 섬멸하기 위해 제7기병연대 1대대장으로 대대와 함께 이아드랑 계곡에 헬기로 투입된다. 하지만 계곡 주변을 점령한 북베트남군은 아군보다 5배 이상 많은 대규모 정예부대였고, 멋대로 적 정찰병을 잡으러간 선발대가 매복의 의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 고립되었고, 그 사이 적 낙오병에게서 적의 규모를 파악한 1대대는 보급을 헬리콥터로만 의존한 채 격전을 벌이게 된다.
1965년 11월 15일 월요일 오전 2시 30분.
공중강습 작전의 특성상 오직 헬기를 통해서만 외부와 접촉이 가능한 험준한 협곡, 고통 속에 신음하는 부상자들마저 부상으로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총을 들고 싸워야하거나 무기력하게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하나 둘 그 목숨을 잃어간다.
그뒤 시간이 흐르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깊은 밤, 적진에 버려진 군인들에게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이곳에서 모두 동지들에 대한 걱정으로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이룰 수 없다. 한편, 전쟁 리포터로 전지에 들어온 조 갤러웨이의 카메라에는 젊은 영혼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는 모습들이 담겨지고, 그는 더 이상 카메라가 아닌 총을 들고, 민간인이 아닌 군인으로 전장을 뛰어다니게 된다.
1965년 11월 16일 오후 4시 05분.
막강한 월맹군은 공포에 빠진 미군들을 포위해 들어가자 상부는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고 무어 중령 혼자 사단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무어 중령은 부하들을 내버리고 혼자 도망치고 전장을 등질 수 없다며, 최후의 수단으로 브로큰 애로우를 외친다. 곧바로 미 공군 폭격기의 어마어마한 지상 폭격이 감행되고, 월맹군의 추격은 봉쇄되지만, 폭격 좌표의 오차로 인해 무어 중령의 일부 부대원들도 네이팜탄의 화염에 죽어가.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처참한 상황.[14] 그러나 전세는 조금씩 미군편에 유리해지기 시작한다.
1965년 11월 17일 오전 1시 00분.
무어 중령은 월맹군 작전을 간파하고, 이를 교란 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최후의 반격을 준비하고, 마지막 작전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처참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어 중령은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들이 살았건, 죽었건 내 뒤에는 아무도 홀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4. 흥행
미국 참전용사 커뮤니티에서는 평가가 좋은 편이다. 그리고 종군기자로 그 자리에 있었던 조 갤로웨이(할 무어 장군과 원작 책을 같이 썼다)는 75% 정도는 맞고 25%가 허구라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이 정도면 놀라운 편. 플래툰이나 풀 메탈 자켓처럼 영화적 가치로써는 훌륭한 영화지만 미군을 너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아서 참전용사들에게는 비판 받은 작품들과 비교가 된다. 하지만 이아드랑 전투에 참전한 몇몇 참전용사들은 영화와 책에 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너무 할 무어 시선으로 표현한 영화라고 했다.
다만 흥행은 망했다. 7500만 달러 제작비로 만들어져 미국에서 7800만 달러 흥행을 버는데 그쳤고 해외 흥행도 합쳐야 5천만 달러도 되질 못했다. 다합쳐 1억 3천만 달러도 되지 않으니 본전치기인 1억 5천만 달러조차 벌지 못했다.
5. 기타
영화 도입부는 적장인 응우옌 후 안 중좌의 회상씬으로 베트남군의 기습공격에 패배당하는 프랑스군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프랑스 국기(삼색기)가 달린 나팔을 바라보면서 살아있는 프랑스군을 사살하라고 명령하는 응우옌 후 안 중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15] 많은 사람들이 영화 초반에 베트민군과 프랑스군이 싸우는 전투를 1954년에 있던 디엔비엔푸 전투로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영화 초반에 나온 전투는 디엔비엔푸 전투가 아닌 인도차이나 전쟁의 중대한 전환점이자 응우옌 후 안 중좌가 참전했던 동케 전투이다. 이 전투는 베트남-중국 국경지역인 4번 국도를 중심으로 벌어졌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베트남 독립군과 프랑스군이 각각 승리와 패배의 시발점이 된 전투이다.위키피디아 동케고지 전투 문서를 참조
영화를 보면 출동하기 전 무어 중령이 자신의 부대인 7기병연대가 과거 인디언 토벌 작전 중 인디언들에게 전멸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7기병대의 전멸은 미군의 끔찍한 흑역사 중 하나로 인디언 전쟁 당시 리틀 빅혼 전투 중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 육군 제7기병연대는 아메리카 원주민 수우족 전사들에게 포위당해 사실상 전멸했다.[16] 이번에도 과거와 똑같이 월맹군의 본거지를 치러 들어가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과거의 역사가 오버랩 돼서 과거처럼 방심하면 안된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북베트남군 지휘관인 응우옌 후 안 중좌 역은 베트남 배우인 돈 중(Don Duong)이 맡았다.[17] 응우옌 후 안 중좌는 무어 중령에 비해 출연 비중은 적지만 침착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베트남군을 지휘하며 무어의 부대를 곤경에 넣는 등 작지 않은 존재감을 나타낸다. 그런데 원래 베트남에서 한국의 안성기급 국민배우 지위에 있었던 돈 중은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베트남에서 수년간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전투가 끝난 후 현장에 돌아온 응우옌 후 안이 미군이 전장에 꽂아놓고 철수한 성조기를 뽑아 들었다가, "전쟁이 계속되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며 나무가지에 도로 꽂았는데, 성조기를 도로 꽂은 것을 베트남 공안 당국에선 미군에 대한 찬양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 여파로 결국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심장마비로 쉰다섯이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전투의 거의 마지막에 미군들이 '''총검 돌격'''을 감행하고 그 직후에 UH-1 건쉽이 미니건과 로켓탄으로 지원 사격을 날리는 장면은 픽션이다. 무어 장군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실제로는 그 상황에서 때맞춰 온 공군의 폭격으로 위기를 넘겼다고. 영화의 극적 효과를 살리기 위해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전투 중 너무 뜨거워서 발사할 수 없는 상태인 박격포를 무어 중령과 다른 군인들이 '''오줌'''으로 식히는 장면이 유명하다. 원래는 식수까지 포에 뿌려가며 사격을 강행했는데 물도 떨어지자 무어 중령이 "그럼 오줌으로라도 식혀!"라며 직접 허리띠를 풀고 시범을 보여서 포반 대원들도 뒤따라서 오줌을 눈다.
멜 깁슨 외에도 우리에게는 MCU의 필 콜슨으로 친숙한 클라크 그레그가 톰 멧스커 대위 역할로 등장한다.
초반 무어 중령과 새로운 부하들의 첫 대면시 가장 첫줄 좌측에 있던 장교. 전투가 시작된 직후에 무어 중령 옆에서 본부와 무전연락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여 헬기로 후송되나, 자리가 모자라다는 말을 듣고 양보하려 했다가 그 직후 날라온 총탄 두 발을 맞고 사망하여 헬기에 같이 실려가는 모습이 나온다.
그 외에도, 멜 깁슨이 대대장으로 부임한 대대의 주임원사 역으로 샘 엘리엇이 나오는데, 1년후인 2003년 헐크(영화)에서 썬더볼트 로스 장군 역을 맡게 된다. 이 인물은 무어 휘하에서 다양한 전쟁을 경험한 베테랑으로 너무늙은 인상탓에 할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18] 거기다가 과거의 M1 개런드나 카빈같은 구시대 소총에 너무 손이익은 탓인지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당시 최신형 미래병기인 M16 소총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19] 영화내내 콜트권총 하나로만 적을 상대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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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도 20년이 흐른 1994년, 미 육군 중장으로 퇴역한 할 무어와 베트남군 최고 계급인 상장(계급)으로 복무 중이던 응우옌 후 안 장군이 과거 전투지역을 찾아, 당시 전투를 이야기하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많은 참전용사들이 전후에 다시 만나면 그러했듯,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주요 인물들 중 응우옌 장군이 저 만남을 가진 이듬해 1995년에 68세로 먼저 사망했고, 플럼리 원사는 2012년 10월 10일에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무어 장군은 2017년 2월 12일 94세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 삽입곡 중에서 이아드랑 계곡에 헬기를 타고 투입되던 장면과 착검 돌격 장면에서 나오던 곡의 제목은 Sgt. MacKenzie.
원래는 영화에 삽입할 목적이 아니라 조셉 맥켄지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자신의 할아버지를 기리면서 쓴 곡이었다.
그러나 감독 랜들 월리스가 곡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편곡 후 삽입했다고 밝혔다. 유심히 들어보면 영어인 듯 영어 아닌 가사가 들리는데 스코트어라서 그렇다.
엔딩 크레딧 부근에 삽입된 곡읜 제목은 Mansions of the Lord로 랜들 월리스가 직접 쓴 찬가이다.
영화 삽입곡으로 만들어진 노래지만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에서도 연주되었고 미군 관련 합창단에서 종종 부르는 편이다.
영화 촬영시 엑스트라들의 휴식 시간에 지급된 담배와 성냥, 간식, 휴지 등은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 나온 물건을 그대로 복각해서 만든 물건으로 지급되었다고 한다. 엑스트라라고 할지라도 그 시대에 돌아간 척만 해서는 안 되고, 그 시대에 정말 가 있어야 영화에 시대상이 배어 나온다는 감독의 원칙 때문이였다고.
[1] 주인공은 제11공수사단, 제82공수사단에서 소대장을 지내고, 6.25전쟁 당시에는 미 육군 제7보병사단 17연대 소총중대장, 중박격포중대장, 대대작전장교, 연대작전장교, 사단작전장교로 참전한 참전용사이다. 이후 미 육군 사관학교에서 보병전술교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후일 걸프전쟁 당시 중부사령관이 된 노먼 슈워츠코프 생도를 가르쳤다.[2] 그래서 주인공의 부대원들이 처음에는 2보병사단 마크를 달고 있다가 이내 1기병사단 마크를 달고 있다[3] 새벽에 복귀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자 어떤 꼴통 새끼가 빌어먹을 전장 한복판에서 그딴 명령을 계속 내리냐며 통신병에게 따져 물을 정도였다.(원문 What idiot would keep ordering that in the middle of a goddamn battle?)[4] 그는 이등병 시절 미 육군 제82공수사단 320글라이더 포병대대원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공수투입 되었고, 마켓 가든 작전에도 공수투입 되었다. 이후 미 육군 제2보병사단 23연대 2대대로 전입하여 6.25전쟁에 참전, 불모고지 전투를 치뤘다. 6.25 전쟁 이후로는 계속 23연대 2대대에 근무했다. 월남 파병 직전에는 2보병사단 23보병연대 2대대의 부대 명칭이 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로 바뀐 후에도 계속 주임원사로 근무한다[5] 또한 무삭제판 영상에서는 의회 명예훈장을 2개나 받은 역전의 용사인 하사 조차도 프럼리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낀다는 장면이 있다. 그 하사 에피소드 에서 ROTC 출신으로 갓 임관한 소대장이 훈장을 착용하지 않은 그 하사를 갈구며 훈장 착용을 하고 오라는 말에 나체로 명예훈장 2개와 군번줄만 착용하고 와서 소위에게 경례 받는 장면이 나온다.[6] 사후 은성무공훈장을 수훈했다[7] 그는 이 전투에서 적의 포화 속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모두 22회 출격하여 총 70명의 부상자를 후송한 공적으로 의회 명예훈장을 수훈했다.[8] 6대의 헬기 중 2번째 헬기 조종사[9] 프리먼 대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수병으로 2년 간 참전한 참전용사로 종전 후 육군 공병 부사관으로 재입대했다. 6.25전쟁 당시 257명의 부대원 중 14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치열한 격전이었던 폭찹힐 전투의 생존자이다. 당시 공적으로 미 제8군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 대장이 중사(E8)였던 그에게 직접 소위계급장을 달아 주어, 소위로 현지임관했다. 장교로 임관한 덕분에 그는 어릴적 꿈이었던 조종사에 도전할 수 있게 되어, 전후 육군항공 조종사가 되었다.[10] 당시 미 육군 전투병과에서는 상병인 Corporal(E4)부터 부사관(NCO)이었지만, 기술행정 병과는 따로 Specialist 계급이 부여되고, 최저 계급이 기술상병(SP4, E4)부터 시작한다. 기술행정 병과는 각 특기에 따라 부사관 권한이 부여되는 계급이 각각 다르다. 가령 군악 특기는 기술중사(SP7, E7)부터 부사관 권한이 부여되고, 이 권한은 기술행정 병과 내에서만 통용된다. 같은 소대라도 기술중사는 전투병과의 일등병에게 선임자 대우는 받지만, 지휘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11] 그의 삼촌 중에는 미 육군 제442연대전투단 소속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참전용사가 있다. 442연대전투단은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로 억류된 일본계 미국인 중 지원자들을 받아서 구성한 일본계 부대이다. 김영옥이 소속되었던 제100대대도 이 442연대전투단 소속이었다.[12] 다만 이 장면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당시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려던 프랑스군이 좋게 보일 수도 있다.[13] 디엔비엔푸 전투가 베트민의 승리로 끝나고 1달 뒤인 1954년 6월 베트남 중부고원 지대인 이 지역에서는 베트남군의 승리로 끝난 망양 패스 전투가 벌어졌다.[14] 이때 무어는 좌표를 잘못 불러 충격에 빠진 공군 전방항공통제관(FAC)를 위로한다.[15] 이 전투에 참가한 6천명의 프랑스인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은 700명에 불과하고, 정예를 자랑하던 프랑스 외인부대 제1공수대대(BEP)가 전멸하여, 프랑스 공수부대 역사상 전투 중 전멸한 첫번째 공수대대로 기록될(500명 중 23명만 귀환.) 정도로 베트남군이 대승하고 프랑스군은 대패한 전투였다.[16] 나중에 최신 미래무기인 헬리콥터로 이동하는 공중강습부대가 새로 창설되었을 때 이 새로운 헬리콥터 강습부대가 미래의 기병대가 될 것을 희망하며 기병대의 단대호를 붙여 주었다.[17] 여담으로 이 배우는 SBS의 창사 특집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도 베트콩 역으로 출연했고, 당 드라마의 전야제 참여를 위해 한국에 내한한 적도 있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베트남전 당시엔 어린 학생이었고 백마부대 소속 한국군에게 태권도를 배운 적도 있다고.... 링크 [18] 작중 해당 부대 장교들에게 '나를 할아버지라 부르는 장교님들은 모두 제 손에 죽을 줄 아십시요.'라고 했다... 이 말은 그냥 자막 상으로 순화된거고, 실제 영상에서 하는 대사를 들어보면 위관 장교들에게 Any you some bitches call me grandpa, I'll kill you. 즉 "여기 있는 몇몇 개년들이 나를 할배라 부르는데, 내가 죽여버린다" 였다... [19] 무어 : 혹시 모르니, 자네도 하나 준비해 두게. 상사 : 쓸 때되면 전장에 굴러다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