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임관

 


  • 한자: 現地任官
  • 영어: battlefield commission
1. 개요
2. 설명
3. 기타


1. 개요


장교 임관 제도 중 하나. 간단하게 말해서 전시상황과 같은 비상시에 장교 자원이 부족해졌을 경우 선임 병사부사관 등을 바로 장교로 임관시키는 제도이다.

2. 설명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6.25 전쟁 당시 운용된 제도였다. 아직 건군 초창기인 상황에서 갑자기 많은 장교가 필요해졌기 때문. 1950년 8월 29일에 발령된 '육군보충장교령'에 의해서 시행되었는데 부사관들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이런 식으로 부사관에서 장교로 임관된 사람이 약 5,000명가량 되었는데, 이는 한국전쟁 3년간의 신임장교의 약 1/7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참고자료 이에 대해서는 2,525명이라는 신문기사도 있으므로 확실한 자료가 나오면 추가할 것. 이 기사에 따르면 600명 정도가 전사했고 2016년 1월 현재 생존자가 60명 가량이라고 한다.
소위 같은 위관급 초급 장교의 경우 직접 병사들을 인솔하여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망률이 높아서, 현지임관과 같은 제도가 없으면 초급 장교를 바로바로 보충하는 데 무리가 있었다. 또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중대소대언제 부임할지도 모르는 지휘관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현지임관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1961년 제정된 군인사법 제11조 제1항 제5호(2011년 5월 24일 제11조 전문개정으로 인하여 '제6호'로 변경)에는 전시에 탁월한 통솔력을 발휘한 준사관(즉, 준위) 및 부사관으로서 장성급 지휘관(준장 이상)으로부터 현지임관(現地任官)의 추천을 받은 사람은 장교로 임관될 수 있다고 정하여,(군인사법 참조) 현지임관에 대한 법적 근거를 유지하였다. 물론 전쟁이 끝난 후 국가가 안정되었으므로 이 때부터 지금까지 이 조항으로 임관된 장교는 없다.

3. 기타


1187년에 벌어진 예루살렘 공방전 당시 수성 측은 병력 6000명 중 기사는 오직 14명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 처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벨린의 발리앙은 병사와 시종 중 60명을 임의로 뽑아 그 자리에서 기사로 서임하였다. 현대의 기준으로는 일반 병사나 부관을 소위로 현지임관한 것과 비슷하지만 엄격했던 신분제를 생각해보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주위의 병사와 시종을 전부 기사로 서임하는 대인배 행보로 각색되었다.
1955년 육사 11기가 소위로 임관했을 때, 현지임관 출신 장교들은 대부분 소령, 중령으로서 대대장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육사 출신에 편중된 군 내 권력구도 때문에 20년 정도 지난 후 육사 11기가 먼저 장군으로 승진하는 일이 벌어져 현지임관 출신 장교들의 상실감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현지임관된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미군정기에 편성된 대한민국 국군의 전신인 남조선국방경비대에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부사관을 거치고, 6.25 전쟁 당시 현지임관으로 장교가 되어 소장 계급에 오른 최갑석 장군이 있다. 현지임관 출신 장교의 최대 진급 한계가 소장이었다고 한다. 사병 출신 장성 가운데 현지임관으로 장성급 장교까지 진급한 인물은 14명이며 5명이 준장, 9명이 소장이었다.
또한 베티고지 전투[1]를 승리로 이끌었던 김만술 소위도 원래는 특무상사에서 현지임관으로 소위가 되었고, 제1사단 제11연대 제6중대 제2소대장으로 임명된 날 작전에 투입되었다.
미군의 경우 10대 합참의장을 지낸 존 베시 대장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사로 근무중에 현지임관해 소위가 되었다.

[1] 국군 1개 소대가 중공군 1개 연대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전투. 이 전투로 김만술 소위는 한국 태극무공훈장과 미국의 수훈십자상을 수여받은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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