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

 

'''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image]
'''감독상'''
''' 제67회
(1995년) '''

''' 제68회
(1996년) '''

''' 제69회
(1997년) '''
로버트 저메키스
(포레스트 검프)

'''멜 깁슨'''
('''브레이브 하트''')

안소니 밍겔라
(잉글리쉬 페이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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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생애
3. 여담
4. 출연작 (연도)
5. 감독작
6. 관련 문서


1. 소개


Mel Gibson
멜 깁슨은 미국과 호주의 영화배우, 감독, 제작자이다. 키 175.3cm.
1956년 1월 3일 (음력 1955년 11월 21일) 아버지 휴튼 깁슨(Hutton Gibson)[1]과 어머니 앤 패트리카 라일리(Anne Patricia Reilly) 사이에서 형제자매만 무려 11명인 보수적 아일랜드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가족주의는 아일랜드 가톨릭 집안의 특징이다. Mel은 아일랜드 성인(聖人)의 이름이고 어머니의 성인 라일리도 대표적인 아일랜드계 성씨다. 멜 깁슨 감독 본인은 아일랜드 복수국적자이기도.
본래 출신지는 뉴욕시지만 깁슨 감독이 열두 살이던 1968년에 가족 전체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다. 지금도 오스트레일리아를 자기 고향으로 생각하는 듯하고 오스트레일리아에 목장도 있다. 단 호주 국적은 없고 호주 영주권만 있으며 오히려 아일랜드 국적을 가진 복수국적자다.

2. 생애


7~8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각광받았던 호주 뉴웨이브 영화의 간판 스타로 그 명성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배우. 1979년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로 호주 영화가 주목받았고 1980년대 호주 출신 아티스트들의 할리우드 입성과 동시에 깁슨 감독도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으로 출세한 호주 출신 배우로는 멜 깁슨 이외에도 샘 닐니콜 키드먼이 있고, 감독으로는 갈리폴리의 피터 위어 감독이 있다. 이후 상당히 많은 호주 출신 아티스트들이 할리우드 시스템에 회의를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간 반면, 위 인물들은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후 리쎌 웨폰 시리즈에서 대니 글로버와 형사 콤비를 이뤄 멋진 액션 연기를 보여준 덕에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함께 80년대를 주름잡는 액션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다만 이후 액션 배우로만 머물지 않고 감독이 되어 직접 영화를 만드는 등 영화인으로서 노력을 기했고, 감독과 주연을 겸한 브레이브 하트로 흥행에 크게 성공하고 아카데미상까지 휩쓸면서 최고의 영화인임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이후 예수의 고난과 박해를 그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제작, 감독해 역시 큰 히트를 기록했지만, 유대인들을 잔인한 냉혈한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미국 유대인 단체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다.[2] 정치적 보수성, 독실한 가톨릭 교도로서[3] 반유대인, 반동성애 성향이 언론에 알려지는 바람에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다. 반동성애야 가톨릭 교도로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아버지 휴튼 깁슨과도 연관된 홀로코스트 허구설을 기반으로 한 반유대 성향은 변호할 도리가 없다.[4] 하지만 깁슨은 반유대적인 발언을 후회하며 2017년부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비밀리에 선행을 베푼다고 한다.
이후 아포칼립토란 영화를 제작하는데, 이 영화 역시 고증과 연출이 굉장히 뛰어났지만, 그 때문에 남미 원주민들을 미개인으로 묘사했다 비판을 받았는데... 고증이나 실제 역사를 보면 멜 깁슨이 단순히 남미 원주민을 비하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한때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 1위로 뽑히기도 했지만 이후로 계속 사생활에서도 말이 나오고, 특히 유대계와 사이가 안 좋아서 할리우드에서 입지가 많이 좁아져 아포칼립토 이후 감독 일을 10년 가까이 쉬어야 했다. 유대계 영국인 샤샤는 아예 자신의 영화 '브루노'에서 멜 깁슨의 헤드샷을 가리키며 총통이라고 했을 정도. 술에 취해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여자친구를 땅에 파묻어 생매장시키겠단 협박을 했다고도 하는 등 이미지가 상당히 많이 망가졌다. 연기력은 동시기 액션배우로 전성기를 구가한 아놀드나 스탤론보다 (둘 다 대사전달력이 약하니) 확실히 낫고[5], 감독 재능도 있어 계속 영화에만 전념했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될 수도 있었으나, 하필 헐리우드를 꽉 잡은 유대인들과 문제를 일으켜 감독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멜이 연출한 작품 4개가 고증(브레이브 하트)이나 정치적 올바름(아포칼립토)으로는 지적받을지언정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높아 전부 수작으로 인정받음을 생각하면 아쉬운 노릇이다.
배우로서도 2010년대 흥행이 별로 좋지 않은데, 코미디 영화인 비버(2011)가 흥행에서 참패했다. 조디 포스터[6] 연출로 제작비 2100만 달러가 들었지만 미국 극장 수익이 총 97만 달러로 실패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깁슨을 고용한 문제도 있지만, 연출도 포스터의 이전 작과 달리 상당히 미흡했다는 게 보편적인 평. 이후 악역으로 분한 마세티 킬즈익스펜더블 3까지 흥행에 실패했다.[7] 영화가 안 좋음은 제작자와 감독 잘못이지 배우 탓은 아니지만, 선구안이 나쁜 건 변명하기 어려운 일.
2016년에는 핵소 고지를 연출했는데, 그 영화가 호평을 받으면서 할리우드에 다시 어느 정도 재기했다.
그는 마블영화에 대해 비판하면서 영화는 어떤 이유로 폭력을 보여주는지 전달해야 하는데, 마블영화는 폭력을 통해 관객들에게 카오스를 전달한다고 평가했다.#
브레이브 하트부터 핵소 고지까지 멜 깁슨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정말 실감나는 폭력묘사인데 등장인물이 무엇 때문에, 어떤 식으로 폭력을 자행하고 또 당하는지 정말 명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각종 병기가 난무하는 잔혹한 전쟁씬을 길게 가져가면서도 늘어짐 없이 생생하게 연출하는 능력은 그를 싫어하는 평론가들조차 순순히 인정한다.

최근 들어 완전히 감독으로만 활동하고 배우활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팬들은 예상했으나 2017년 10월 그의 대표작이자 최고작인 '''리쎌 웨폰 시리즈가 5번째 후속작으로 돌아오는 것이 확정'''되었고 그의 복귀 역시 확정되었다. 그러나 2020년이 지나도록 결국 제작 소식도 없고 이젠 리처드 도너 감독이 90살이라서 나올 가능성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3. 여담


깁슨과 절친 사이였던 조디 포스터에 따르면, 깁슨은 한때 알코올 중독이어서 술을 끊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26년간 살았던 부인과 이혼한 원인도 사실은 고질적인 알콜 중독과 취하면 나타나는 폭력적인 언행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화 세트장에서는 많은 여배우들한테 지지를 받는 것 같다. 매들린 스토우와도 매우 친해, 많이 만난다고 한다. 깁슨과 같이 일하기가 편하다고. 링크
개심했다 하지만 한때는 홀로코스트 허구론까지 덜컥 믿을만큼 골수 카톨릭에, 아버지는 아예 2차 바티칸 공의회 자체를 부정하는 초보수주의 교황공석주의자고, 마초적이면서 오래된 알콜 중독 경험에 극렬한 반영감정까지 이리보나 저리보나 참 해외로 이민간 아일랜드계의 스테레오타입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양반이라 이런 선입견에 질려하는 아일랜드인, 아일랜드계 본인들도 의외로 껄끄러워하는 유명인으로 보인다(...).
깁슨의 인종차별 행위는 꽤 다층적인 영향을 남겼다. 인종차별이 기본인 극우 스킨헤드들이 '중동에서 보기 싫은 아랍 놈들 잘 죽이는 이스라엘 유대인을 까다니!'라면서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한 듯한 비난을 하거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탄압하는 이스라엘의 나치 같은 모습에 염증을 느낀 일부 진보 성향 사람들이 깁슨의 인종차별스러운 발언에 일부 찬동하는 등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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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 사우스파크에서는 이 만화에 언급되는 실존 유명인사들이 늘 그렇듯이(...) 엄청나게 까였다. 얼굴 사진 합성으로 등장했는데, 완전 미치광이 캐릭터에, 유대인을 엄청 싫어하는 카트맨이 우상으로 섬기고 방에는 멜 깁슨 포스터를 붙였을 정도. 반면, 다른 사람들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 감동한 반면 스탠케니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며 환불을 받으려고 멜 깁슨을 찾아가지만 멜 깁슨이 돈을 순순히 주질 않자 둘이서 지갑에서 강제로 두 명의 영화표값 18달러를 빼가는데, 멜 깁슨이 빼간 돈 돌려달라면서 총을 쏴대고 트럭으로 추격하는 등 정신나간 행각을 보였다. 결국 카일은 멜 깁슨이 미친놈임을 알고 자기가 저 미친 사람의 영화를 보고 죄책감에 빠졌음에 어이없어하고 예수한테 있던 죄책감이 사라진다.
자식을 많이 낳아 자녀가 총 9명이다. 이혼한 전부인 로빈 무어와 사이에서 6남 1녀를 낳았고, 이혼 후에 만난 러시안 뮤지션인 전 여자친구 옥사나 그리고리에바와의 사이에선 딸이 있다. 현재 동거 중인 여자친구 로잘린드 로스는 작가이고 1990년생인데 깁슨과의 나이차이는 34살이다. 깁슨의 장녀인 해나가 1980년생이니 맏딸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사는 아버지인 셈이다. #
로잘린드와의 사이에선 2017년에 아들이 태어났다. #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때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멜 깁슨은 은근히 영국과 악연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영화 《갈리폴리》에서 멜 깁슨은 영국군의 압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갈리폴리 전투의 사지에 뛰어든 호주군을 연기했다. 또한 그의 대표적인 감독작인 《브레이브 하트》에서는 중세 영국사 최고의 명군으로 손꼽히는 에드워드 1세를 포함한 대부분의 잉글랜드인들을 비열하고 찌질하며 몰인정한 소인배 악당으로 묘사하였다. 몇 년 후에 주연을 맡은 《패트리어트》에서도 미국 독립군들을 미화하는 과정에서 영국군들을 양민학살을 비롯한 온갖 잔혹한 짓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지르는 인간말종들로 묘사하였다.[8] 영국 언론에서는 이런 멜 깁슨을 두고 '영국 혐오증이라도 걸리지 않았는가.' 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
아니, 실제로 인터뷰 등에서도 본인의 아일랜드 혈통을 부각하면서 반쯤은 영국 자체를 상당히 싫어하는 사람으로 인증했다. 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의 이민사에 드리워져 있는 짚은 제국주의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가는 자세도 아니지만, 이 사람은 결정적으로 실제론 호주와 미국 사이에서 자란 사람이다. 서양권에선 애초에 옛날부터 아일랜드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은 아일랜드계 후손들이 에스닉 코스프레 한답시고 막상 본토 아일랜드 현지 사람들보다 북아일랜드 분쟁 같은 아일랜드 관련 역사적 논란에 더 열을 올리는것도 종종 조롱 받는 수준인지라 아이리쉬 배경을 쳐줘도 어쨋든 깔거린 많다. 사실 막상 실제로 북아일랜드든, 아일랜드 공화국이든 막상 이민 안가고 계속 현지에서 살았던 진짜배기 아이리쉬들은 하도 당장 근현대사에 직접적인 암운을 겪으면서 살았고, 좋던 싫던 영국과의 관계를 원론적으로 끊는다는건 불가능하다는걸 알아서 오히려 이 주제에 관해 말을 아끼는 편이라 멜 깁슨을 비롯한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오버질을 더 질색하는 점도 있다.
2020년 4월에 코로나 19에 걸렸었는데 렘데시비르 치료를 받고 회복했다고 한다.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가 7월에서야 공개했다.

4. 출연작 (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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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 특공대 (1982) - 호주, 대만과 합작으로 멜 깁슨, 샘 닐과 최가박당에서 괄괄한 여형사 하동시로 나온 장애가가 나오고 외팔이 검객 시리즈로 유명한 대만 배우 왕우가 일본군 악역으로 나왔다. 원제인 어택포스Z라는 제목으로도 비디오가 재출시됐다.
  • 가장 위험한 해 (1983)
  • 바운티호의 반란 (1984)
  • 소펠 부인 (1984)
  • 살아가는 나날들(The River) (1984)
  • 매드 맥스 3 (1985)
  • 리쎌 웨폰 (1987)
  • 불타는 태양 (1988)
  • 리쎌 웨폰 2 (1989)
  • 햄릿 (1990)
  • 전선 위의 참새 (1990)
  • 에어 아메리카 (1990)
  • 리쎌 웨폰 3 (1992)
  • 사랑 이야기 (1992)
  • 어스 앤 더 아메리칸 드림 (1992)
  • 매버릭 (1994)
  • 포카혼타스 (1995) - 존 스미스
  • 꼬마 유령 캐스퍼 (1995)
  • 랜섬 (1996) - 납치된 아들을 구출한다는 영화로, 아들을 납치한 범인들에게 돈을 주는 대신, 방송에 출연해서 오히려 범인들을 잡는 현상금을 거는 장면이 유명하다. 참고로 여기서 악당으로 주연한 배우는 CSI 뉴욕 시리즈의 맥 테일러 반장으로 유명한 게리 시나이즈다.
  • 컨스피러시 (1997)
  • 리쎌 웨폰 4 (1998)
  • 페이백 (1999)
  • 패트리어트 - 늪 속의 여우 (2000)
  • 치킨 런 (2000)
  • 밀리언 달러 호텔 (2000)
  • 왓 위민 원트 (2000) - 자신의 꼴마초스러움이 남자다운거라 착각하며 살다, 우연히 전기감전사고로 여성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진심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 인빈서블 (2001)
  • 위 워 솔저스 (2002)
  • 싸인 (2002)
  • 노래하는 탐정 (2003)
  • 엣지 오브 다크니스 (2010)
  • 더 비버 (2011)
  • 완전범죄 프로젝트 (2012)[9]
  • 마세티 킬즈 (2013)
  • 익스펜더블 3 (2014)
  • 블러드 파더 (2016)
  • 대디스 홈 2 (2017) - 마크 윌버그의 아버지 커트 역으로 출연했다. 꼴마초였던 아들과 마찬가지로 완전 상남자인데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가는데 마다 젊은 애인을 만드는 절륜한 미노년 캐릭터(...).
  • 포스 오브 네이쳐 (2020) - 레이 역
  • 리스타트 (2021) - 클라이브 벤터 역[10]

5. 감독작



6. 관련 문서



[1] 1917년생이며 2020년 5월 104세로 사망하였다. 미국의 작가이자 대표적인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이고, 전통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도 성 비오 10세회보다 더 보수적임을 자처하는 교황공석주의자(Sedevacantist)이기도 하다.[2] 사실 복음서의 묘사를 충실히 따른다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음이 사실이고, 이 부분을 그대로 영상화했을 뿐이다. 그래도 유대계의 눈치를 아주 안 볼 순 없어서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하는 부분에는 영어 자막을 달지 않았다.[3] 전술했듯 멜 깁슨 감독은 매우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멜의 아버지 휴튼 목사는 아예 현 교황 자체를 부정하는 인물인데, 멜은 교황과 바티칸 공의회를 인정한다고 한다.[4] 서양권에서는 구교와 신교를 가릴 것 없이 기독교도라면 무조건 유대인들을 탄압해왔다.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며 게토에서만 모여살게 했고, 사유재산을 엄격히 통제했다. 유럽에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1900년대 초반 중반까지 미국에서도 유대인들은 차별받았다.[5] 연기력 차이만 문제는 아니었다. 아놀드는 오스트리아 출신 이민자라 영어를 익히고 독일어 역양을 지우는 데 오래 걸렸고, 실베스터는 미국에서 나긴 했지만 안면마비 등의 신체적 장애가 있어서 대사가 어눌하였다. 반면 멜은 영국(호주)식 영어에 목소리가 부드럽고 울림이 깊기에 차이가 더욱 컸다.[6] 여담으로 아버지가 알려지지 않은 조디 포스터의 아들들의 생부라는 의혹이 있다.[7] 단, 흥행에 실패했을 뿐 연기를 못하진 않았다. 해당 영화들에서 보여준 연기는 평가가 좋았다. 특히 조연에 악역이었지만 마세티 킬즈에서의 존재감은 대단했다는 평.[8] 《갈리폴리》는 갈리폴리 전투 당시 영국군 수뇌부의 실책과 그로 인해 희생된 호주군들을 묘사한 것이므로 역사왜곡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브레이브 하트》와 《패트리어트》는 실제 역사와는 다른 점이 많아 역사왜곡 문제로 큰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다.[9] 원제는 겟 더 그링고(Get the Gringo).[10] 프랭크 그릴로와 공동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