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워커

 

'''니카라과 제국의 역대 황제'''
니카라과 제국 건국

'''1대 월리엄 워커'''

공화국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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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Walker
1824년 5월 8일 ~ 1860년 9월 12일
1. 개요
2. 나라 세우기
2.1. 로어 캘리포니아 공화국
2.2. 소노라 공화국
2.3. 니카라과 제국
2.4. 온두라스
2.5. 영국령 온두라스(현 벨리즈)
3. 기타


1. 개요


미국 출신의 탐험가, 용병으로, 이 사람의 행적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중앙아메리카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운게른슈테른베르크는 1년 간 몽골에서 독재 정치를 펴는 동안에 당시 몽골의 수도였던 니슬렐 후레에서 3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학살해서[1] 끔찍한 학살자로서의 이미지도 크지만, 몽골인들의 정치적, 영적 지도자였던 복드 칸을 우대하고 몽골의 국민 종교인 티베트 불교를 진흥시킨 공적도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호불호가 갈리는 평을 받고 있다. 그에 반해, 윌리엄 워커는 가는 곳마다 침략과 더불어 노략질만 일삼는 짓을 하는 통에, 악평만 그득하다는 점에서는 차이도 있는 편이다[2]. 그리고 가장 유명한 필리버스터이기도 하다. 여기서 필리버스터란 정부의 승인 없이 외국 혁명을 지원하러 용병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이르는데, 이는 미국 의회에서 소수당이 고의적으로 다수당을 방해하는 필리버스터의 어원이 된다. 윌리엄 워커는 의사 출신으로 저널리스트 활동도 하고 있었지만, 노예 제도를 찬성하고 백인 우월주의를 신봉하던 자였다.

2. 나라 세우기



2.1. 로어 캘리포니아 공화국


그래서 자신과 뜻이 맞는 백인들로 이뤄진 민병대를 만들어 멕시코로 가서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 주에 1853년, 멋대로 로어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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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어 캘리포니아 공화국 국기
당연하지만 이런 짓거리로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콜로라도 주, 뉴멕시코, 유타 주 등 서부와 텍사스, 오클라호마 주 등 미국 멕시코 전쟁으로 남부의 엄청난 땅을 미국에게 빼앗긴 멕시코가 또 당할 리 없어서 군대로 박살내버렸다.

2.2. 소노라 공화국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1854년에는 멕시코 소노라 주로 가서 소노라 공화국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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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라 공화국 문장
그러나 소노라 공화국은 몇 달만에 무너지고 그는 멕시코 측의 수배를 피해 더 아래로 피했다가 니카라과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용병으로 고용되었다.

2.3. 니카라과 제국


하지만 겨우 100여명 백인 용병을 이끌고 1856년 마나과를 점령하고 백인 우월정책을 쓰며 황제임을 선포했다. [3] 이 정도 병력으로 성공한 건 당시 니카라과가 여러 군벌로 나뉘어져 서로 싸우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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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제국 국기.
워커는 하느님이 미국을 선물했고 미국 땅을 넓히는 게 정당한 것으로 믿던 이른바 미국우월주의자였다. 그는 미국계 백인을 귀족으로 선포하며 노예제도를 부활시키고 친미정책을 취하며 당시 미국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이 이끄는 미국 정부 승인까지 받았는데 당시 미국에선 텍사스처럼 니카라과미국 땅으로 차지할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인황제라는 것에 비난을 당해서인지 나중에는 니카라과 공화국 대통령으로 바꾸지만 그게 그거였다. 어차피 억지로 차지하던 것이고 정책은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그동안 서로 싸우던 군벌들은 뜻을 모아 싸움을 멈추고 힘을 합쳐 워커를 공격했기 때문에, 1년도 못 가 워커는 미국으로 달아났으나 황제가 되려는 꿈을 접지 않았다.

2.4. 온두라스


주변 나라인 온두라스로 가서 황제가 되고자 갔으나 멕시코와 니카라과에서 벌인 짓 덕분에 중미 여러 나라에서는 그에 대하여 악명이 자자하다 보니 그를 지지하는 이가 당연히 없었다. 당연히 온두라스 정부가 수배했기에 그는 달아나야 했으며 니카라과온두라스에선 그의 목에 거액의 상금까지 걸려 현상금 사냥꾼 추적까지 받아야 했다.

2.5. 영국령 온두라스(현 벨리즈)


그럼에도 이번에는 현재의 벨리즈인 영국령 온두라스에서 황제가 되려는 야심에 젖었지만 영국에게 패해 잡히게 된다. 사실 위에 서술된 것만 봐도 중미에서도 스스로 힘으로 해낸 게 분열되어 쉽게 차지한 니카라과 뿐이고, 그마저도 군벌들이 힘을 합치자 1년도 못벼텨 버린 워커였다. 그런 워커가 당대 미국도 쫄던 세계 최강국 영국이 지배하던 영국령 온두라스에서 영국 육군을 이기고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다라는 것은 터무니없이 무모했다[4]. 결국 길게 싸우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잡혀버릴 수 밖에. 이렇게 잡힌 워커는 영국 육군 장병들 앞에서 워커는 자신이 니카라과의 황제라고 떳떳하게 굴었으나 영국군들은 그에게 목줄을 걸고 팔다리를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개처럼 밥을 먹이며 멍멍이 황제라고 비웃었다.
영국은 이웃한 온두라스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자 워커를 온두라스로 보냈으며 그는 분노한 온두라스 사람들에게 침과 돌팔매질을 당하면서 모욕을 당하며 사람들 앞에서 산 채로 화형당했다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사실은 그냥 총살당했다고 한다.

3. 기타


우습게도 외몽골러시아인 지배자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와 거의 똑같은 일생을 지냈는데, 다른 나라에서 황제 등극과 몰락까지 1~2년이 채 걸리지 않았으며 나이도 비슷하게 죽었다(워커는 36살, 슈테른베르크는 35살). 이 때 미국은 외면했다. 당시 미국은 남부가 독립한다고 시비를 걸던 때라서, 뷰캐넌 정권으로선 자국 문제도 급한 와중에 니카라과 일을 신경쓸 수 없었다. 반면 소련담딘 수흐바타르에게 군대를 주어 외몽골에서 운게른을 축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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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워커의 일생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에드 해리스 주연의 영화 워커(한국 비디오 및 DVD제목은 불사신 워커/Walker.1987)이다. 하지만 흥행이나 평은 그리 좋지 않았는데 리포 맨, 시드와 낸시로 호평을 받던 알렉스 콕스 감독의 범작 및 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후 워커가 쫓겨나고 니카라과에선 결과적으로 보수주의자가 집권했다. 위키백과

[1] 오늘날의 울란바토르인 니슬렐 후레의 당시의 인구가 5만 명밖에 안됐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대학살이 아닐 수 없다. 도시 인구의 0.6%를 몰살시킨 것이니, 이 시기 울란바토르에서는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이미지는 최악이었다.[2] 가톨릭이 대세인 중앙아메리카에서 개신교 신앙을 강제하였으며, 현지인들의 지지를 받는 현지의 유력 정치인이나 종교인들에 대한 우대는 엿바꿔 먹었으니,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한국어 위키백과의 윌리엄 워커 문서에서는 미국해적(...)이라는 분류도 달려있는데, 그의 용병단이 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노략질했으니 빼도박도 못할 해적 맞다.[3] 본인은 투표를 통해 정당하게 됐다고 주장했지만, 본인 군사들에게까지 투표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4] 오늘날로 치면 자기만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미국령 지역'''을 침공했다가 '''미군'''이랑 붙게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