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체 문장
1. 개요
translationese
외국어를 번역하면서 생겨나는 이질적 문장. '번역투'라고도 한다. 번역의 관점에 따라 '번역투'보다는 '외국어투'가 더 적절하다는 견해도 있다. 조사와 시제에도 있다.
2. 설명
번역은 문장 자체 말고 의미를 옮기는 일이므로, \''''어떻게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옮기면서도 원문의 본래 의미를 잘 전달하느냐''''는 모든 번역가들의 공통된 생각거리이다. 특히 소설, 영화 등의 대사는 아무리 원뜻을 그대로 전달해도 사람들이 너무 생소하게 느끼면 대사가 딱딱해지고 인물의 개성이 살기 어려우니 직역과 의역을 모두 고려해서 의미전달이 가장 잘 되도록 번역해야 한다. 특히 한국어는 같은 문장도 어미를 어떻게 처리하냐에 따라 문장의 느낌이 확 달라진다. 이는 언어의 사회성을 거스르는 번역일 수도 있다.
원래 언어는 낱말뿐더러 문법도 전래되기 때문에 현재 언어에 어느 것이 원래 문법이고, 어느 것이 번역체인지는 구별하기 어렵다. 언어는 문법 구조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번역하는 과정에서 어쩌지 못해 번역체가 나타나거나, 단순히 번역자가 귀찮아서 번역기처럼 대충 번역하는 때에도 번역체 문장이 발생한다. 아니면 정말로 귀찮아서 번역기만 썼거나...
번역체 사이에도 유달리 어색한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the tree is dead.'를 '그 나무는 사망했다.'로 번역했다고 가정해 보자. 한국어는 유정명사와 무정명사의 문법적인 구별이 꽤나 까다로운 언어로, '사망'은 유정명사 사이에서도 사람에게만 쓸 수 있는 동적명사이다. 그럼에도 'dead'를 '사망한'의 의미로 연결해 곧이곧대로 번역해 버리는 것이다.
또, 영어 문장 "I love you"는 한국어 "사랑한다", "사랑해", "사랑합니다", "사랑하오" 등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다. 모두 어감이 다르며,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적절해 보이거나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간 배경에 따라 과거 어투 느낌을 줄 수도 있으니 '사랑하오'가 해당 분위기에 맞을 수도 있다.[1]
해당 외국어 순서에 엄격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어순이 한국어 순서보다 엄격한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특정 순서로만 번역하는 것. '대하다'를 활용할 때 '당사자가 이 사실에 대해 말했다' 식으로는 쓰나 '이 사실에 당사자가 대해 말했다' 식으로는 안 쓰는 것도 예.
본 문서의 주제는 단순한 번역 결과물뿐더러, 일상적인 한국어 사용에서도 나타나는 번역체들이다. 언어의 역사성으로 말미암아 이미 신문이나 뉴스 등의 언론에서도, '~로 알려졌다'도 쓰이나, "~라고 밝혀졌다", "~라고 알려졌다" 같은 번역체 문장을 쓰는 것이 이미 관행으로 굳어진 상태다. 20세기 이후로 한국어는 외래 언어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아, 언어의 상당한 부분이 번역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 되었다(관련 글 1, 2, 3). 이는 한국의 역사와도 유관하다. 물론 이는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서양 철학자들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고전을 읽으면서 문법을 다듬었듯이. #
번역체를 구별하는 빠르고 간단한 방법은 바로 문장을 직접 입으로 소리내어 말해보는 것이다. 입말, 특히 일상어는 번역체가 스며들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2] 글로 쓸 때는 문제가 없어 보여도 정작 말해보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표현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간단한 방법이고, 정확성은 낮다. 특히 일반적으로 모국어 사용자의 일상어는 비문과 비속어 등에 상당히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3] 입으로 말해보고 번역하려는 행위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또한 문어체는 맞는 표현이어도 오히려 입으로 말하면 어색한 말도 많다. 당연하지만 글에서 문어체를 쓰는 일은 상당히 많다. 문어체 또한 구어체에서는 잘 안 쓰는 일이 많기 때문에 입으로 말하면 당연히 어색하나 그른 표현이 아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입으로 말해보니 어색하다고 번역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또한 이런 방식은 본인의 어휘력에서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맹신하면 멀쩡한 문장을 자기가 써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번역체로 오해할 수 있으며,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되내면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간이 테스트로만 활용하는 것이 좋고, 국립국어원, 사전, 논문 등을 찾아 보는 것이 정확하다.[4]
3. 원인
만약에 외국인이 번역했으면 잘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으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외국인이 아니면 이렇게 어색한 번역들은 아마추어 번역가들 사이에서 특히 자주 나타난다. 직역하면 괴리감이 아주 커지는 관용어 정도를 제외하면 다소 어색해도 전체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번역을 추구하기보다 특정 단어나 특정 구절 낱개의 사전적인 뜻에만 집착하는 국내 아마추어 번역가들이 굉장히 많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원인으로는 가장 먼저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교육 방법'을 지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각종 언어 교과서, 사전에서는 'A=ㅏ'라는 식의 1:1로만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해당 뜻을 세세한 분석 없이 그냥 주입식으로 통채로 외우기만 하니 그것이 고착화하고 문법처럼 굳어지는 것이다. 언어 변화 또한 경로의존성과 군중심리와도 유관하기에 이것("4. 영어 단어 100개 외울 시간에 2-3개 단어만 집중적으로 파자")도 참고해서 읽어봐도 좋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아마추어 번역가들의 심리가 있다. '원문 그대로 표현을 전달하려는 심리'와 '전체 문장의 뜻을 고려하여 번역하면 사전적인 뜻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찝찝하다고 느끼는 강박관념'이 '''지나치게''' 작용하는 것이다. 대개는 위 항목에서 말한 '틀에 박힌 교육 방법'과 유관하다. 원문을 최대한은 살려서 번역하려는 자세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런 강박이 무조건 일대일 대응 단어 직역으로 자주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맞춤법의 예로는 '되다'의 활용 '되어'를 들 수 있다. '돼'로 줄일 수도 있지만 맞춤법을 무시하고 '되'로 잘못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피동 접미사 '-되다'의 활용 '-되어' 뒤에 '-지다'를 붙이면 이중 피동 '-되어지다'가 되지만 맞춤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조차 '-되지다'나 '-돼지다'로는 안 쓴다. 다른 맞춤법은 무시하면서도 번역체 맞춤법은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규범주의 논란과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언어 사대주의를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한국보다 낮게 인식하는 국가의 언어를 번역할 때는 위와 같은 심리가 옅어지고 전체 의미를 고려하여 이해하기 쉬운 번역을 지향하는 일이 대부분이며, 대표적으로 중국어처럼 많은 번역이 이루어짐에도 중국어 번역체와 관련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고, 터키어 등 비유럽권 언어들을 번역할 땐 문화적 고유명사 단어들 말고는 거의 의역을 동원하여 알아듣기 쉽게 번역한다. 영미권 번역가들이 동아시아 언어들을 번역할 때도 대개 의역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전체 문장의 뜻을 고려해 매끄럽게 번역한다. 다만, 이는 단순히 서양권 언어와 동양권 언어간 차이가 많은 문법 때문일 수도 있고, 이처럼 심리적 원인으로 나오는 어색한 번역체들은 서양 언어에도 있다. 중세시대의 영국인들이 자기네 언어보다 프랑스어를 더 높은 언어로 인식해서 영어답지 않은 영어 표현들[5] 이 잔뜩 나왔는데, 'other than(~ 밖에)'이 대표적이다.
4. 주의사항
언어는 고정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흐르고 바뀌기 마련이므로 한국어에 번역체 문법이 늘어나는 것을 '오염'처럼 생각하는 것은 국수주의 사상이 되기 십상이다. 번역체 문장의 하위 문서에도 해당 문체의 예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쓰여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번역체를 오역으로 인식하고, 서브컬처계에서 번역체 논란이 상당히 자주 나타나다 보니 번역체는 무작정 배척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오덕들도 많은데, 엄밀히는 번역체는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닌데 '''외국어를 번역하다 보면 흔히 나타나는 표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자체로 '''언어와 언어가 교류하는 일종의 문화 교류'''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시대에 맞는 '''변화'''로 보는 관점이 조금 더 바람직할 것이다. 당연히 오역으로 인해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표현, 우리나라 문법, 용법에 위배되지 않음에도 자주 쓰는 표현이 아니기에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표현 모두가 속한다. 전자의 경우는 수정하는 것이 옳지만, 후자의 경우는 무턱대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6]글을 쓸 때 흔히 강조하는 '우리말답게 쓴다'는 것은 곧 '말하는 듯이 자연스럽게 쓴다'는 뜻이다. '하나의 사과'를 단순히 일본어투라서 쓰지 말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사과 하나'라고 말하는 게 우리에게는 더 자연스러운, 즉, '우리말다운' 어법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우리말투를 살리자는 것이다. 다소 어려운 한자어이든, 낯선 외래어이든 그것이 우리말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기능을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다만 그것은 우리말다운 고유의 틀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우리 언어체계에 녹아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 홍성호, <짧고 쉬운 문장이 최고?> 중
사람들의 편견과 다르게 일상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쓰이는 번역체는 굉장히 많다. 과학 용어 가운데 상당수가 영어-일본어를 거쳐 들어온 번역체이고(심지어 분위기도 번역체이다), \''''그녀'''',[7]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영문 번역체도 널리 쓰인다.[8] 특히 이런 표현들이 사용되어 자연스레 스며들다 보면 거짓짝이나 불규칙(예외)이 많아지지 않는 한에서 언어의 표현력이 더욱 풍부해지고 언어가 발전해 나갈 수 있게 되어 독자나 청자가 문장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9] 또한 표현이 다채로워진다는 것은 단순히 어미 활용등 문, 어법적인 측면만 말고도 비유나 관용어 등을 새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한계를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번역체 문장이 무조건 그른 문장이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이는 외래어 표현 밖에 시간이 계속 흐르며 언어도 계속 변화하여 한 표현의 용법이 바뀌는 일이 많고, 반대로 그 변화에 따라 기존 번역이 번역체 내지 오역이 되기도 한다.[10]
이 문서와 하위 문서에서 다루는 번역체 문장은 외국어의 번역체라는 이유만으로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한국어와 억지로 호환하면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도록 방해하거나 의미 자체를 왜곡하기 때문에 문서 따로 분류한 것이다. 언어의 표현력이 더욱 풍부해진다는 말도 있지만 종결형으로 '○한다'도 '○하였다'도 '○하기'도 아닌 연결형 '○하여(서)'가 쓰이거나 비과거 관형사형 '○하는'/'○할'의 자리에 과거 관형사형 '○한'이 쓰이듯이 정작 영어 번역체와 일본어 번역체에는 풍부하게 활용되지 않아 사실상 불규칙으로 활용되는 말들이 많다(#). 번역체는 받아들이면서 특정 활용 밖의 나머지 활용들은 모조리 배척해야 된다는 암묵적 규범주의가 있는 것이다.[11] 그래서 비문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대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뿐더러 '올바른 비문'도 있다. 이때는 동의어나 유의어로 바꿔 보면 느낄 수 있다. 또한, 동의어 관계이기도 하면 하나는 널리 쓰이고 다른 하나 또는 나머지는 사어가 될 가능성이 있어서 표현이 도로 단순해질 수도 있다(<이음동의어> 문서 참고). '~에게서'와 '~한테서'는 아직 사어는 아니지만 '~에게'와 '~한테', '~(으)로부터'에 밀려 사어가 될 수도 있는 사례이다. 동사 '불구하다'의 동의어 '물구하다', 동음이의 형용사 '불구하다' 역시 아직 사어는 아니지만 이미 밀렸다.
따라서 한국어가 잔뜩 수정되지 않는 한은 문장에 맞지 않는 번역체를 오남용해 문장의 가독성을 파괴하거나 뜻을 왜곡하는 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번역체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배척하거나 '오염'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번역체를 새로운 표현으로써 받아들이냐 마느냐는 그 시대 언어 사용자들에게 맡기는 것이지, 배척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번역체를 오남용하는 쪽과 번역체를 지나치게 배척하는 쪽의 갈등은 규범주의 대 규범주의로 볼 수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순화를 권장하기도 하지만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의 내용에도 해당 번역체가 있다.
5. 목록
5.1. 영어 번역체
5.2. 일본어 번역체
5.3. 한문(중국어) 번역체
한문이 아직도 한국어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한문 번역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많고, 쓰더라도 살짝 딱딱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아서 번역체라고 지적당하는 일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있다.
- 도대체
순 한문 단어 "都大體"를 사용한 표현.
ex)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ex)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 이로써
한문의 허사 "是以~(이로써, 이리하여)"를 직역한 표현.
ex) 이로써 모든 것이 끝났다.
ex) 이로써 모든 것이 끝났다.
- 그+NP
한문에서 한정의 의미로 사용되는 관형격 3인칭표지 其의 용법을 그대로 사용한 것임.(ex:其人也)
ex)그 하는 행동이 별로야.
ex)그 하는 행동이 별로야.
- ~와 같이+VP
한문의 용법 "與A同B(~와 같이)"의 직역형태.(ex:與民同樂).
ex) 너와 같이 있고 싶어.
ex) 너와 같이 있고 싶어.
- ~부득불 ~할 수밖에 없다
한문의 허사용법 "不得不~(~하지 않을 수가 없다)"가 그대로 차용된 형태. 비슷한 것으로 "부득이하게 ~할 수밖에 없다"와("不得已~(~을 그칠 수가 없다)"에서 온 말이다) "불가피하게 ~할 수밖에 없다"(不可避~)가 있다. 순화하자면 어쩔 수 없이로 바꿔서 쓸 수 있다.
ex) 부득불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ex) 부득불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 하여간 ~하다
- VP인+바
한문의 명사형 표지 "所"(ex:所望)가 직역된 형태.
ex) 이것은 내가 바라는 바이다.
ex) 이것은 내가 바라는 바이다.
- ~할 것
한문의 용법 "~事(~할 일, ~할 것)"에서 온 표현. 사실 개화기 때만 해도 '~할 사'라는 표현으로 자주 쓰였다.
- '사람'이 '남'을 의미함
한문의 3인칭 인칭대명사 人을 직역한 것. 사실 중학교 한문(교과)에서 중3 때쯤 고사성어를 들어갈 때는 己 자는 '자기'로, 人자는 '남'으로 번역하라고 가르친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어에서도 한국어의 '사람'과 거의 같은 뜻의 ひと(人)를 '남'이라는 뜻으로 쓰는 일이 종종 있다.
- 그 말인즉슨
6. 다른 언어에서 나타나는 번역체
번역체가 한국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어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문제이며, 영어 등 서양 언어에서도 최근 들어 한국과 일본의 만화 및 드라마 등의 서브컬처가 건너가 변역되면서 그쪽 나름의 번역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 예로, 한국의 웹툰이 영미권으로 번역되면서 영어에서 특히 상대적으로 빈약한 의태어들을 기존 영어 동사 및 명사 등으로 처리하면서 일종의 번역체가 생겨났다.[14] 본래 영어는 의성어는 썼어도 의태어는 좀처럼 쓰지 않았다. 그냥 장면 설명 및 그림에 의존해 표현하지 않거나 기껏해야 괄호 속에 동작을 넣어서 '(smile)'과 같이 표현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2000~2010년대를 통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서브컬처들이 영어로 번역되어 수출되었는데, 원본 편집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괄호 바깥의 의태어까지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영어의 동사와 명사를 동아시아의 의태어처럼 단독으로 장면에 붙이는 형태가 종래보다 훨씬 많아졌다. 이 때문에 아직도 영미권의 나이 지긋한 사람들 사이에는 만화나 웹툰의 의태어 번역투를 눈에 밟히는 때가 종종 있다.
다른 예로, 애니메이션 등의 인물들이 당황할 때 곧잘 쓰는 \''''what''''이 있는데, 이는 \''''なに''''(뭐야?)의 번역체다. 본래 상황에 따라 길게 말하면 "what's going on?", "what happened?", 또는 "oh!", "jeez!" 등의 표현을 사용하나, 일본발 서브컬처에서 대체로 "なに?!"로 쓰다 보니 이것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주로 아마추어 애니메이션 번역가들이 자주 쓴다.
번역체를 뜻하는 영어는 확인 바람.
7. 기타
- 특정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번역체를 쓰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세련된 뉴요커를 연상시키려는 듯이 영어투를 사용하는 보그체가 그러한데 패션 잡지 특성상 일단 튀어야 마케팅하는데 더 유리하기 때문인 듯 하다.[15] 또한 일본어투는 특유의 오타쿠 느낌을 내는 드립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유튜브에서도 번역체를 쓰는 채널이 많은데 주로 웹 광고나 인사이트 뉴스를 복붙하는 경우이다. 건강관리, Bris Channel, 송가인 TV, 동물 TV, 뉴스 최신 등 다양하다.
- 번역체가 아니지만 번역체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 용어가 많이 나오는 글이 그러한데 예를 들면 영어식 용어를 자주 쓰는 IT 분야와 일본어식 용어를 자주 쓰는 회계 분야가 그렇다. 하지만 회계 분야는 국제회계도입 이후로 영어식 용어를 그대로 들여오는 경우가 많아졌고 회계법인에서는 영어단어를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회계 분야에서도 점차 일본어식 용어보다 영어식 용어로 바뀌는 추세다. 특히 감사(auditing) 쪽이 더욱 그렇다.
- 번역을 자연스럽고 맛깔나게 한다면서 한술 더 떠 원문에서도 없는 한국식 거친 욕설이나 속어를 함부로 남용하여 끼워넣는 번역가도 있다. 능력 없는 편집자와 능력 없는 번역가가 만나면 심해지는 현상인데 능력 없는 번역가가 영어 번역을 구어체로 번역하면 능력 없는 편집자는 문체를 다듬을 번역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대화가 맛깔나게 보이도록 욕을 많이 넣어달라'고 한다. '상황에도 맞지 않고 더군다나 외국에서는 쓰지 않을 쌍욕이 왜 이렇게 많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번역이 바로 저런 과정을 거친 번역물이다. 이는 오역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작품을 읽으면 그들이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전혀 맛깔나지 않고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다. 애초에 욕이 수두룩한데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으면 읽을 이유가 없다.
8. 관련 문서
[1] 사실 외국어도 마찬가지로 언어에 뉘앙스가 있어서 문장의 분위기에는 발음에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독일어나 러시아어가 딱딱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그러므로 원문과 발음까지 비슷하게 번역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2]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일반인에게 번역체는 원래 안 쓰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번역체를 많이 접한 사람은 일상어에 번역체가 스며들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할 것.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멀쩡히 한글로 읽던 용어들도 대학교에서 원서, 번역서를 보며 영어로 말하게 되는 일은 흔한 일이다.[3] 학교에서 문법, 어법을 배우지만 모국어 사용자끼리의 대화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 때문에 비문이 스며들기 쉽다. 사람들은 문법 파괴를 많이 한다.[4] 특히 번역가는 어떠한 자격이나 전공이 필수가 아닌 데다 정확성보다는 속도가 중요한 일이 많아 본인의 느낌에 따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번역체인지 아닌지 정확한 근거를 찾고 싶으면 번역가보다는 국문전공자를 찾는 게 좋다.[5] 외래어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6] 문학계에서는 번역체가 주는 독특한 느낌을 활용하는 움직임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번역체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어색하다고 배척하면 사어에 가까운 언어들이 주는 독특한 느낌을 이용하고자 문학작품에 쓰는 행위도 그른 것이라 주장하는 것과 같다.[7] 'she'에 해당하는 여성형 3인칭 단수 명사는 한국어에 '''없다.''' 남자와 여자 모두 \''''그''''로 표현하는 게 원래 맞는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명의 여성을 지칭할 때 \''''그녀들'''' 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여전히 같이 사용되는 이유가 그녀라는 표현이 비교적 최근에 들어와 사용된 것이기 때문이다.[8] 특히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사실상 이중 표현이기에 굉장히 어색한 느낌을 주는 문장이지만 오히려 자주 쓰이는 편이다.[9] 초중고에서 배우는 언어의 사회성, 언어의 역사성은 이런 것이다. 무작정 배척하기만 했으면 띄어쓰기도 없는 세로쓰기에서 고통받을 수 있었다. 띄어쓰기, 온점, 반점, 느낌표, 물음표 등 서양식 기호의 사용은 모두 근대에 새로 짜진 한국어 문법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고작 200년 정도밖에 안 지난 외래 용법이다.[10] 예를 들어 '어여쁘다'는 현재는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옛날에는 '불쌍하다', '가엾다'라는 뜻이었다. 훈민정음에서 "내 이를 어여삐 여겨..."라는 대목도 있다. 모든 언어에서 이런 의미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영단어 'silly'는 옛날에 '행복하다'의 뜻이었다가 '순수하다', '축복받았다' 등으로 변화했다가 '어리석다'의 의미가 되었다. 사투리의 존재를 알아도 되고, 문화어/어휘대조 문서를 참고해도 된다. #[11] '불구하다'는 위에도 적혀 있듯이 '그럼에 불구하여', '이럼에는 불구하니' 따위로 풍부하게 활용되지 않는다. '벌에게 대하기', '선생에게만 의해서', '가족을 위하러' 따위의 활용을 틀린 활용으로 생각하기도 한다.[12] 이 둘은 '何如하든'과 '如何하든'이 줄어든 말이다.[13] 곧 즉. 즉시, 즉각, 즉석, 즉결 등의 단어에서 바로 이 한자가 들어간다.[14] 유미의 세포들 영어 번역판을 보면 이 점이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15] 반대로 이러한 보그체를 너무 허세스럽고 사대주의적이라며 싫어하는 의견도 상당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