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1947)

 




[image]
1. 개요
2. 행적
4.1. 재판
5.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립과 활동 방해 계획 관련
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방해 관련


1. 개요


李丙琪
1947년 6월 12일 ~
대한민국의 전 외무공무원, 전 별정직공무원, 전 정무직공무원.

2. 행적


1947년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경복고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외무고시에 합격했다.[1]
이휴 외교관으로 제네바, 케냐 등에서 활동하다 1981년 제네바에서 함께 근무했던 노신영의 추천으로 정무장관 노태우의 비서로 발탁된다. 이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 의전수석비서관 등을 지내며 노태우의 이미지메이킹 전략을 담당한다. 김덕룡3당 합당의 가교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1996년 국가안전기획부의 해외파트를 담당하는 제2차장에 임명된다. 이때 황장엽 망명 사건 등을 맡아 처리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기부장 권영해와 더불어 '북풍'공작 실무역할 해왔던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나 권영해 등이 이병기는 이 사건에서 배제돼 있었다고 주장해 기소되지 않았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의 정치특보로 활동했다. 이때 한나라당 사무총장 김영일의 지시로 이인제를 영입하기 위해 이인제의 측근에게 2억 5000만원을 전달했다. 이 사건 때문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도왔다.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아 천막당사 아이디어를 내며 탄핵 역풍으로 고전하던 한나라당의 선전에 기여했다. 정작 본인은 2년 전 정치자금 문제로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대신 당 대표였던 박근혜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때부터 박근혜의 대권 행보를 본격적으로 도왔다. 2007년 경선 때는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았고,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는 막후에서 새누리당선진통일당의 합당을 주선하며 박근혜의 승리를 도왔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주일대사, 국가정보원장,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3. 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2017년 1월 3일 블랙리스 관리 의혹으로 특검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
2017년 10월 6일 “종북 생태계 척결”의 일환으로 '블랙리스트' 인사들을 축출했다는 관련한 사실이 나왔다.#

4.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2017년 10월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박근혜 청와대에 상납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7년 11월 14일, 긴급체포되었다. #
2017년 11월 17일,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판사 권순호가 구속 영장을 발부하며 구속되었다.#
2019년 6월 14일, 구속기한 만료로 석방되었다. #

4.1. 재판




5.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립과 활동 방해 계획 관련


2018년 3월 29일 검찰이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립을 방해한 혐의로 추가 기소하였다. #
2019년 6월 25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 #
2019년 10월 31일 항소심 첫 재판이 열렸고,# 2020년 12월 17일 항소심에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방해 관련


2020년 5월 28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2020년 6월 30일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3] #
[1] 대학 시절 영어 회화 클럽에서 김근태를 만난 인연으로 대한민국 제5공화국 당시 김근태가 구속되자 구명을 벌였다고 한다.[2]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영석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에겐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안종범 전 경제수석비서관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3] 일부 피고인은 위 사건과의 유사성을 들어 이중기소를 주장했다. 검찰은 특조위 방해 계획을 세운 부분이 이미 기소됐고, 이번에는 실제 실행한 부분에 대한 공소 제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