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호(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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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前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소속의 좌완 투수, SK 와이번스 루키팀 재활코치. 現 kt wiz 1군 불펜코치.
2. 선수 경력
2.1. LG 트윈스 시절
서울강남초, 강남중, 선린상고, 단국대(1995학번)를 졸업하고 1999년 LG 트윈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한 후 쭉 평범한 중간계투로 지내다가 2003년에 포텐이 터지며 LG의 좌완 에이스로 각성하며 11승 11패, 3.1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191⅔이닝과 157삼진으로 최다 이닝, 탈삼진 1위, 평균자책 2위를 차지했다.[1]
하지만 이게 정말 끔찍한 혹사였던 게, 그전까지 중간계투로만 뛰면서 '''100이닝도 안 먹어 본 선수를 갑자기 200이닝 가까이 소화하게 만들었으니,''' 탈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해 커리어 하이를 찍은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만다. 2003년 너무 무리해 얻은 부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까지 선발로 출장하여 100이닝을 넘는 이닝을 소화하고 5~8승 정도 챙겨주고, 평균자책점도 4점대 정도로 웬만큼 버티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투고타저였음에도 불구하고 높아져 가는 평균자책점과 나날이 줄어가는 이닝 소화력으로 인해 불안함을 점점 표출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당시 감독이었던 그 분의 무리한 당겨쓰기로 인해 부상이 심화되고 만다.[2]
마음을 다잡기 위해 1번에서 37번으로 번호를 바꾸기도 해봤지만[3] 2008년 7월 이후로는 팔꿈치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되었다.
2.2. SK 와이번스 시절
결국 2009년 LG 보호선수 명단에서도 빠지면서 FA로 LG에 이적한 외야수 이진영의 보상선수로 SK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SK로 옮기고 된 이후의 첫 시즌인 2009년, 김성근 감독은 팀의 5선발로 써볼 생각이었지만 신뢰를 얻지 못한 채 다시 팔꿈치 부상이 도져 내년을 기약하며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다.
2.2.1. 2010 시즌
2010년에는 중간계투로 2경기에 나와서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6월 1일 한화전에 선발등판해 4이닝 3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최근 한화의 타선폭발을 감안하면 대단한 선방인 셈. 하지만 팀은 류현진에게 13K로 초토화당하면서 패전(…).
전보다 구속은 다소 떨어졌지만 대신 제구력이 향상되어 볼이 낮게 형성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복하는 동안 투심 패스트볼도 습득했다고 한다.
6월 8일 삼성전에서 중간계투로 나와서 ⅔이닝 던지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3년 만에 맛보는 승리의 맛이였다. 이 날엔 안타깝게도(?) 정대현이 세이브를 해서 이승호가 승리와 세이브를 같이 하는데에는 실패했다.
9월 23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선발 투수인 카도쿠라 켄의 컨디션이 영 좋아보이지 않자 계투로 등장. 2⅔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이기던 2010년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해 1⅔이닝 35투구수 1피안타 2볼넷 1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4로 이겼다.
2010년 10월 1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2:1로 이기던 3회말 무사 2루 상황에서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⅓이닝 43투구수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4:2로 이겨서 이승호는 이날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덤으로 이날의 세이브는 이 문서의 1번항목의 이승호가 했고, 이날은 한국시리즈에서 동명이인의 투수가 승리와 세이브를 동시에 기록한 최초의 날이 되었다.
이승호는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4이닝 1피안타 3볼넷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2.25, 1승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2.2.2. 2011 시즌
2011년 4월 15일 넥센전에서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4⅓이닝 동안 퍼펙트 피칭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4월 21일 [4] 친정팀 LG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6⅓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1,378일 만에 선발승'''을 올렸다.
그런데 리즈 시절 구위와 함께 본인의 아이덴티티이던 볼넷도 함께 돌아온 듯했다. 비록 누수가 심한 선발진에서 선방하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쌓고 있는 장작을 보면 정녕 원래 모습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2011년 3 ~ 6월에는 11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67을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내었으나 7월부터 성적이 나빠져 버렸다. 특히 김성근 감독의 사퇴 이후부터는 답이 안 나올 지경이었고, 그 때문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2011년 11월, SK와 2년 2억 원에 잔류 FA를 맺었다.
2.2.3. 이후
하지만 2년 동안 단 한번도 등판을 하지 못했다. 2013시즌 이후 기사에 따르면 2012년도 4월달에 왼쪽 팔꿈치에 뼛조각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고 재활을 했는데 2013시즌에 복귀 준비를 하다 탈이 나서 또다시 재활에 매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긴 재활기간 때문에 선수생활을 그만두려 했지만 김경태 재활코치가 마음을 다잡아 줬다고 한다. 2013년 12월 말 현재, 재활은 마무리 단계라고 했다.
2014년 6월 1일 퓨처스리그에서 복귀 이후 첫 등판을 했지만, 팔꿈치가 아닌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재활을 이어가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결국 2014년 7월 22일 자로 본인의 요청으로 웨이버 공시되었다.
3. 은퇴 이후
웨이버 공시된 후 나이도 39세로 많은 편인 데다가 몸 상태도 좋지 못해 은퇴했고, SK 와이번스의 제의를 받아 스카우트#s-1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였다. 본인도 스카우트 일을 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2017년부터는 루키팀 재활코치로 활동한다. 2019 시즌부터는 kt wiz에서 불펜 투수코치로 활동하게 됐다.
4. 여담
- 슼승호와 구별하기 위해 '엘승호'로 불렸지만, 2009년 이진영의 보상 선수로 SK 와이번스에 오면서 '큰승호'로 불렸다. 알파벳을 이용하여 'E승호'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2017년에는 넥승호가 데뷔하여 더더욱 호칭이 복잡해지게 되었다. 물론 큰, 작은 이승호 둘 모두 현역 은퇴한 뒤라 헷갈릴 일은 없지만... 우연히도 셋 다 좌완 투수이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1위는 3.01의 현대 용병 투수 바워스. 그리고 3위는 정민태. 그런데 바워스는 143이닝 투구에 13승 4패를 기록, 정민태는 177이닝 17승 2패를 기록하였으나, 이승호는 11승 11패를 거두었다(…). LG 크라이 계보의 원조격.[2] 여기서 그 분이 LG 감독 시절 남긴 희대의 명언인 '''재활은 마운드 위에서 하면 된다'''가 나오게 된다. 이 말은 흔히 이동현에게 한 걸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당시 재활이 필요했던 이승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어찌 보면 이승호도 이순철의 선수 관리 실패의 피해자였던 셈.[3] 처음 LG 입단했을때의 등번호가 37번이었다.[4] 참고로 2011 시즌 LG의 내팀내는 7월부터 시작되었다. 7월에 4위, 8월에 5위 추락, 10월에 6위 추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