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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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根
1923년 10월 22일 ~ 2003년 10월 22일(80세)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이다. 호는 월촌(月村), 본관은 전의이다.
1923년 충청북도 충주군에서 태어났다. 충주농업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8기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에 참여했고, 쿠데타 지지를 거부한 이한림 제1야전군사령관의 체포조 조장을 맡아 이한림을 서울로 압송한다. 1963년 육군 준장으로 진급한 뒤 예편한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국독립당 이희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농림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이택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해원과 민주공화당 복수공천을 받아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둘 다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단수공천을 받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이택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장이 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해원 후보와 민주한국당 김영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농사를 지으면서 잠시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남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신민주공화당 부총재, 대한민국 국회 선거부정조사특별위원장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윤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노환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생전에 청렴한 생활로 유명[1]하였으며, 의원 임기 동안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유치, 충주대학교의 4년제 승격, 충주여성회관과 충주재향군인회관 준공 등의 많은 업적을 이뤄내며 충주시 발전에 이바지했다.
[1] 본인 명의의 예금과 주식이 없었고, 정기국회 기간에는 딸의 서울 집에서 더부살이했다고 한다. JP의 측근임에도 불구하고 3김의 측근들이 무더기로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던 5.17 내란도 무사히 넘기고 11대 총선에 출마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