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원(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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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海元
1930년 9월 14일 ~ 2014년 12월 11일 (향년 84세)
대한민국의 전 교수, 관료, 정치인이다. 호는 자산(玆汕)이다. 제3대, 4대, 5대, 6대 국회의원(자유당, 민주당, 민중당)과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을 지낸 이태용(李泰鎔)이 그의 아버지이다. 본관은 전주로, 동명이인 황손 이해원#s-2과는 같은 항렬의 먼 친척이다.
1930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선친 이태용의 고향인 충청북도 제천군이다.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미네소타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63년부터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근무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북도 제천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종근과 민주공화당 복수공천을 받아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고 이종근과 동반 당선되었다. 선거 직후 민주공화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1979년 제10대 국회에서 유신정우회 제3기 국회의원에 임명되었다. 1980년 3월 유신정우회 원내수석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김영준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문화공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부터 3년 동안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휴식기를 갖다가 1991년 2월 수서비리의 여파로 박세직 서울특별시장이 경질되자 후임 서울특별시장으로 임명되었다. 서울특별시장으로서 지하도로 건설을 구상하였다. 그러나 해당 방안에 대해서는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그가 이듬해인 1992년 6월 시장직에서 물러나자 없던 일이 되었다.
이후 2014년 12월 11일, 지병으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