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명(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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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이다.
2. 생애
1959년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났다. 대구 달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3] 1983년 육군사관학교 39기로 임관하였다.[4]
2000년에 제1보병사단 수색대대장(중령) 시절에 비무장지대 수색정찰 중에 설 중령과 함께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다.
그의 사례에 국방부는 2001년에 법을 개정해 상이군인이 계속 복무할 수 있도록 바꿨고 이종명은 2004년에 대령으로 진급했다. 상이군인이 진급한 첫 사례였다. 그러나 연대장을 맡을 수 없는 상황 때문인지 장관급 장교로 진급하진 않았고 2015년 9월에 육군 대령으로 전역하였다. 전역 후 이종명리더십사관학교를 설립하였다. 2015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 시구하면서 고향팀 삼성을 응원했고 그날은 이겼지만 그 다음 경기부터는...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2번으로 공천되었다.[5] 이변이 없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5.18 민주화운동 관련 망언으로 인해 자유한국당에서 제명될 처지가 되었다. 비례대표지만, '제명'이기에 의원직은 유지된다.
2018년 6월 25일 6·25전쟁 무공훈장 수여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하였으며, 이 법안은 수정가결되어 2019년 7월 24일부터 시행된다.
3. 논란
3.1. 2000년 '참군인' 영웅담 조작 논란
2000년에 제1보병사단 수색대대장(중령) 시절에 후임 대대장인 설동섭 중령(육사40기)[6] 과 대대장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비무장지대 수색정찰 중에 설 중령과 함께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다.
그동안은 영웅적인 군인으로 평가받으며 군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군가는 물론 심지어 뮤지컬까지 만들고 각종 방송에서도 칭송이 이어졌는데, 실은 현장 지형도 잘 모르는 후임 대대장을 앞세워 인수인계 과정에서 큰 사고를 당하게 한 데 대해 징계와 처벌을 받았어야 할 사람이 도리어 정략적인 영웅만들기의 수혜자로 둔갑했다는 군의 사실조작 논란이 있다.[7]
자세한 내용은 5월 13일 방영분 MBC 스트레이트 참조. # #
스트레이트 방영 이후 논란이 커지자 전하규 육군본부 공보과장(대령)은 “좀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5월15일 뉴스공장 취재 기자 인터뷰에서 사고가 난 곳은 일반적인 수색로도 아니었고 해당 위치에 길도 폭발흔도 없었다고 한다.
2019년 6월 3일과 7월 22일 방송분에서 후속취재를 하여 방송을 했다.
3.2. 2019년 자유한국당 공청회 5.18 망언 논란
미래한국당에 보내기 위해 뒤늦게 제명이 확정되었다가, 한국당이 통합당과 합당하며 결국은 다시 미래통합당 소속이 되었다.
3.3. 호모포비아 논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께서 동성애자는 아니시죠?" 라는 질문을 했다. 진선미 후보자는 질문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청문회에 부적절한 질문이었다는 지적과 함께, 특정 성적 지향이 결격사유라도 되는 양 질문하는 태도가 호모포비아적이며 무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4. 선거 이력
5. 둘러보기
[1] 출처. 참고로,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소속인 서울시냇가푸른나무교회의 장로이다.[2] 한국당 윤리위에서 '제명'이 의결되었고, 의원총회에서 2/3 이상 찬성 결정이 나 최종적으로 제명되어 미래한국당에 입당했다. 일부러 미래한국당의 의석수 확보를 위해 위해 제명했다는 것이 중론. 다시 미래통합당과 합당으로 복당하게 되었다.[3] 동문으로 육사 1기수 후배(육사40기)인 이종섭, 구홍모가 있다.[4] 육사 39기 동기생으로 김용우, 제갈용준, 장재환, 김완태가 있다.[5] 비례대표 공천순위는 여자는 홀수, 남자는 짝수이므로 사실상 이 대령이 첫 순번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6] 2003년 9월 30일 국군수도병원에서 전역하였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 임관빈 준장이 설 중령 전역식에 참석하였다.[7]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지만원과 육사동기인 길형보(육사22기)[8] 2019.02.14: 자유한국당 윤리위원회 제명 징계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