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1940년 2월 1일 ~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 개요
1940년 충청남도 아산군 송악면에서 태어났다. 아산거산초등학교, 아산중학교, 온양고등학교,성균관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충청남도 천안시-천원군-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종철 후보와 신민당 정재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온양시-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황명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온양시-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황명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이상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원철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복기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복기왕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치러진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2007년 한나라당 충남도당위원장에 당선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려 했으나 낙천되었다. 이에 격렬히 반발하고 무소속 출마를 고려했으나 끝내 당의 결정을 수용한다.
그의 당적 변경을 보면 알겠지만 한 번도 탈당한 적이 없다. 민주통일당은 정당해산을 당했으니 논외고 이후로 평화민주당 - 민주당 - 통합민주당 - 한나라당 테크는 민주당계 정당의 변천사와 궤를 같이 한다. 아울러 한 번도 지역구를 옮기지 않았으나, 그런 외길 인생에도 정치적 성과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당선에 근접했던 것이 14대 총선 때 정도.
심지어 그가 당선된 2005년 재보궐선거때도, 열린우리당이 후보로 낙점한 이명수의 이중당적에 따른 후보등록 거부 파문덕분에 어부지리로 당선된 거다. 물론 공식선거전에서 박근혜가 팍팍 유세를 해준 것도 크지만. 그때문인지 이후 친박계로 분류되었으나 친박핵심까지는 가지 못했고, 2008년 총선에서는 친박계로 낙인찍혀 당시 당권을 쥔 친이계에 의해 낙천되었다. 그런데 이때 설령 공천되었어도 당시 충남을 휩쓴 창풍에 낙선했을 거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후로는 가끔 한나라당과 그 후신 정당들의 아산 지역 선거때 얼굴을 내비치는 것 말고는 정치행보를 안하고 있다. 덕분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이름 한 번 거론되지 않았으니 인생사 새옹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