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현

 

1. 개요
2. 생애
3. 사건사고로 인한 방송가 퇴출
4. 죽음으로 끝난 근황
5. 활동 내역
5.1. 출연작 목록
5.2. 광고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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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9월 12일 ~ 2011년 12월 9일 (35세) 참고 영상

1. 개요


한국의 아역 출신 배우였다. 전라남도 함평군 출생.

2. 생애


서울청파초등학교 4학년 때이던 1987년경부터 삼촌이 근무하던 연기학원에 입학해 연기수업을 받으며 1988년 2월 10일 김만철 일가 탈출사건을 다룬 KBS1 반공특집드라마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김만철의 막내아들 역으로 데뷔했다. 같은 해 5월부터 MBC 어린이연속극 《또래와 뚜리》[1]에 출연하여 MBC와 연을 맺었고, 이듬해 후속작 《댕기동자》의 허물렁, 1990년 《꼴찌 수색대》에서 주인공 꼴찌 수색대의 라이벌 기믹인 붉은 번개 수색대의 대장으로 출연해 서서히 인기를 끌었다. 이후 《한지붕 세가족》에서 신문을 팔던 악동소년 병태 역을 맡으며 아역배우로는 정상권에 오른다. 특히 꼴찌 수색대에서는 아역배우의 레전설이었던 홍경인과 연기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홍경인이 꼴찌 수색대의 리더, 정명현이 붉은 번개 수색대의 리더. 영화계에선 1991년 장길수 감독 작품 《은마는 오지 않는다》에서 기지촌 아이들로 나왔다.
어린이 드라마에서는 주로 공부 못하고 장난은 좋아하는데 자기 장난에 자기가 당하는 일 많은 악하진 않으나 운도 없는 말썽꾸러기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인상이 그런 쪽에 특화된 편이기도 하고... 다만 1992년 3월 29일 경향신문 기사에선 실제론 문제아는 아니라고 자부했으며, 연기생활 시절 학교에선 조퇴하는 일이 잦았다.
사진을 보면 딱 떠오르겠지만 이 사람이 계속 왕성히 활동했다면, 지금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배우인 류승범이 아마 포스트 정명현이라고 칭해졌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만큼 이미지가 비슷하였다. 10년이 넘는 데뷔시기 차이로 인한 사회상의 변화와, 활동 당시의 연령[2]이 달랐기에 맡은 배역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이후 1992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인 이경규몰래카메라에서 이경규가 "장닭표 양념통닭 프랜차이즈의" 광고를 찍는다고 그를 섭외해 낚았다. 그는 이것이 몰래카메라용의 가짜 설정이라는 것을 모른 채 열연했고, 여기서 대박을 터트렸다. 이후 이경규와 친분을 트게 되었다. 이경규는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면서 그냥 활동만 한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쓸만하다 싶으면 스타덤에 올려주는 '''아주 좋은 버릇'''을 갖고 있었다.
강호동, 이휘재, 박경림, 박명수 등은 이경규의 이런 습관의 최대수혜자였으며 이렇게 뜬 개그맨들이 규라인을 형성하며 자연스럽게 공동출연 등으로 이경규가 오랫동안 영향력 있는 연예인으로 활동하는데 이바지했다. 그리하여 1992년 이경규 주연의 《복수혈전(한국 영화)》에도 등장했다. 그리고 《장닭 고교 얄개》라는 원맨쇼 코미디 영화를 찍기도 했고, 여러 CF에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박중훈하고 공동 출연한 '딥콘' CM 등.
이후에도 최진실 최수종 주연의 《질투》에 나오는 등, 여러 드라마에서 감초역으로 나왔다. 그대로 갔으면 아마 연극영화과도 쉽게 들어가서, 이후에도 주연급은 아니더라도 감초연기자로 잘 풀릴 수도 있었다. 이문식이나 유해진의 뒤를 잇는 감초급 조연을 계승했을 것이다. 잘생겼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개성이 강한 구수하게 느껴지는 외모에, 준수한 연기력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배우였으나......

3. 사건사고로 인한 방송가 퇴출


당시 고교생(선린상고#)이었던 그는 행실에 문제가 있었다. 급기야는 1993년 본드를 흡입하고 절도행위를 하다가 잡혀서 소년원 신세가 되었고, 이후 방송 출연이 금지되었다. 이후 얌전히 반성하고 있었다면 한 2~3년 있다가 일이 풀렸을 수도 있는데, 5개월 후 더 심각한 본드 흡입 후 성폭행을 저질렀다. 이 부분은 논란이 있는데, 일단 당시 신문기사에는 분명히 특수강간, 그러니까 윤간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최종판결은 '''강간미수'''로 끝났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MBC에서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었으며, 이후 연예계에서 완전히 퇴출되었고 한지붕 세가족에서 강판되었다. 이후 그는 1998년 SBS 드라마 미스터Q에서 카메오로 출연했지만, 그가 카메오에 출연하다는 얘기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정명현이 《미스터Q》에 카메오 출연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이것은 고인의 마지막 방송 출연 커리어가 되었다.'''

4. 죽음으로 끝난 근황


이후 그의 소식이 끊겼고, 1990년대 후반 케이블에서 모 프로의 진행을 맡았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진 않다. 어쨌든 대중의 눈에는 거의 띄지 않았고, 그 이후 조용히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민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2011년 자살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신문에 난 것은 아니고 경기 광주시 분당스카이캐슬 추모공원[3]에 있는 유명인 명단에 정명현이 있었고, 누군가가 "이 정명현이 한국의 배우 정명현이 맞느냐?"고 문의해왔고, 그에 추모공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인과 진위 여부를 알려줬다. 후술할 동영상의 견해대로 유가족이 입을 열지 않고 있기에 자살의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고 아역배우로 뜬 그가 방송을 떠나 지내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거라는 추정만 나왔다.[4] 그럼에도 몇년 간 알려지지 않았다가...
2013년 1월 그가 세상을 뜬 지 2년 후 갑자기 부고기사가 나왔다. 뜬금없는 부고기사에 많은 사람이 놀랐고, 한동안 포털 사이트 검색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 이 때 그와 같이 한지붕 세가족에서 병태 동생 역으로 나온 서재경은 트윗에 조의를 표했다. 동월 23일 tvN e-News 'CSI 스타수사대'가 전술한 추모공원까지 찾아가 관계자들에게 사망 경위를 물었으나, 추모공원 측은 이슈화를 우려하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연락처 제공과 촬영 요청을 거절했다.
연기력 자체에 대해서는 천부적 재능을 가졌으나, 성장기를 빼앗기는 바람에 인격을 다듬을 수 없어 이후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양진영과 더불어 아역배우의 최악의 사례들 중의 한 명이 되었다. 한국판 신나는 개구장이의 저주인 셈이다.

5. 활동 내역



5.1. 출연작 목록


  • 드라마
    • 따뜻한 남쪽나라 (1988, KBS1)
    • 또래와 뚜리 (1988, MBC)
    • 댕기동자 (1989, MBC)
    • 꼴찌수색대 (1990, MBC)
    • 한지붕 세가족 (1991~1993, MBC) - 병태 역.
    • 질투 (1992, MBC)
  • 영화
    • 은마는 오지 않는다 (1991) - 찬돌 역.
    • 하늘의 용사 이글맨 (1991)
    • 복수혈전 (1991)
    • 장닭 고교얄개 (1992)

5.2. 광고 경력


작성당시 리비전에선 인터넷에 남아있는 광고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목록임을 밝힘. 보면 알겠지만 10대를 대상으로 한 과자 제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참고로, 이 제품은 이외에도 애니메이션 광고를 냈었다.
  • 사조산업
    • 사조 로하이 김치찌개전용 참치(1992)

[1] 《꾸러기》의 후속작이다.[2] 정명현은 커리어의 전부를 오로지 아역으로만 보내다 10대 후반에 갖은 사건사고로 인해 연예계에서 퇴출된 상황이었고, 류승범은 이미 20세 성인의 나이에 데뷔하여 초창기 몇 작품에서만 고교생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3] 전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의 유골도 그곳에 모셔졌다.[4] 오랜 이민생활 중 생활고로 자살했다는 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