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혈전(한국 영화)
1. 개요
1992년 개봉한 한국의 액션 영화. 당시 인기 절정의 코미디언 이경규가 기획, 각본과 주연에 연출까지 도맡아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지만, 후세에는 폭망한 한국 영화의 대명사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는 작품이다.'''「이경규」의 파워 변신!!!'''
2. 상세
주인공 태영(이경규 분)이 자신의 인생을 망쳐놓은 악당 마태호(박동현 분)에게 복수를 한다는 스토리의 전형적인 액션 영화이다.
스토리는 단순한 복수극이기는 하지만, 액션 영화로서는 단순한 스토리도 그렇게 나쁘지 않고, 액션도 당시 국내 영화의 수준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스토리 라인은 영웅본색과 비슷했고 당시 유행하던 홍콩 영화, 특히 오우삼의 영향이 짙다.
하지만 가장 크나큰 문제는 '''하필 주연이 이경규'''였다는 것이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이경규가 자학개그를 하게끔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전술했듯이 액션씬은 지금 시점에서 봐도 망작이라는 선입견만 내려놓으면 꽤나 봐줄 만하며, 쿵푸 4단에다 30대 초반 한창 나이였던 이경규의 무술 실력을 유감 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경규는 영화인이 아니라 당시 몰래카메라로 인기 절정에 있었던 '''코미디언'''이었기에 '''진지한 이미지와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았다'''. 첫 장면이 이경규가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컷으로 시작하는데, 쓸쓸하게 교도소 벽에 기대서 담배를 피는 나름대로 진지한 장면, 그리고 극의 후반부에서 이경규의 동생 역으로 나온 김보성[1] 이 죽었을 때 그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으니 말 다했다. 차라리 진지함을 버린 코미디 액션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미지 매치가 상당했겠지만, 완전히 진지한 액션 영화를 만들려다보니 분명 분위기나 내용은 진지한데 이경규의 모습만 봐도 관객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안습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래 하술하겠지만 이경규는 돈 때문에 당시에도 방송 활동을 쉬지 않았는데, 쉽게 말해 극장에서 복수혈전을 보고 집에 와서 TV를 틀면 같은 이경규가 개그를 하며 사람들을 웃기고 있으니 관객들에게 제대로 이미지 매치가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당시 기준으로도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작위적인 대사들[2] 과 쓸데없이 힘을 준 목소리톤[3] 은 관객들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래서 영화는 철저하게 흥행에 실패했고, 이경규는 당시부터 지금도 예능에서 단골 소재로 이 영화를 써먹고 있다. "옛날에 그... 고사성어 중에서요 멋 모르고 까불다가 날뛰면 홀라당 망한다. 이걸 고사성어로 '''복수혈전'''이라고 합니다."[4] 혹은 "망했다는 건 유명한데 정작 본 사람은 한 명도 못 봤습니다" 식의 자학개그. 나중에 딸 이예림, 후배 배우 조재현, 조민기, 주상욱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며 과거를 회상했다.
다만 복수혈전을 나름 진지하게 본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는지, 만화가 강풀은 힐링캠프에 출연할 때 복수혈전에 출연한 이경규를 꽤나 멋지게 봐서 자신의 일기장에다가 복수혈전 포스터를 오려서 붙이기도 했다고.[5]
한편, 이경규는 <복수혈전>의 실패 요인을 자신의 자서전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시는 국민여러분>(95년)에서 이렇게 밝혔다.
1) 제작 경험 없는 사람(이경규)이 처음부터 정통 액션 추구를 한 것이 무리였다.
2) 사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3) 영화 때는 영화만 했어야 했는데 돈 때문에 방송도 계속 했고 농약 포스터 광고에도 나왔다.
4) 기획 각본 감독 주연 1인 4역을 하느라 무리가 왔고 결국 자신을 힘들게 했다.
5) 여러 매체에 무차별적인 홍보를 했다.
서세원이 감독해서 대단히 망한 영화 <납자루떼> 같은 경우는 아무도 공개석상에서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는 것과 비교할 만한 일. 다만 납자루떼를 공개적으로 디스한 건 김완선이었다. 생전에 김형곤도 서세원 앞에서 디스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점점 후배들의 디스가 늘어서, 서세원이 진행했던 당시 인기 방송 '서세원 쇼'에서 개그맨 후배나 서세원과 친분 있는 지인이 손님으로 나왔을 때 그의 단골 멘트는 "납자루떼 얘기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였다. 은근히 자주 이야기가 나왔는데, 개그 포인트로 PD가 시켰다고 의심될 정도로 후배 연예인들이 대화 중에 다른 영화나 드라마 얘기만 나오면 슬쩍 "그럼 저기 선배님도 그때 납자루떼..." 이러면서 한마디씩 했다. 이에 서세원은 웃으며 대화다가도 납자루떼 얘기만 하면 바로 울먹일 정도로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액션 영화가 비웃음거리로 파묻힌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경규가 비트 타케시처럼 배우로도 겸업을 해서 대중들한테 "이경규가 진지한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라는 이미지가 있었더라면, 당시 이경규의 인기를 생각했을 때 도리어 꽤 흥행할 수도 있었던 영화였다. 아니면 차라리 성룡 영화 같은 코믹 액션물이었을 경우 이경규의 코믹한 이미지에다가 볼 만한 액션이 더해져서 오히려 꽤나 성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실패한 영화에는 유오성의 <별>(2003)이 있다. 멜로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 거였는데, 그 전의 두 작품이 조폭 영화 <친구>, 권투 영화 <챔피언>이었다. 이런 이미지였으니 평점 이전에 관객 자체가 들지 않았다. 별이 어찌나 심하게 실패했는지 나중에 유오성은 "2003년 이후 삶이 즐겁지 않았다" 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
사실, 크게 망했다고 사람들을 통해 회자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이경규가 직접 몸으로 뛰고 또 우정출연 비슷하게 적은 비용에도 출연해준 배우들 덕분에 총 제작비는 크게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즉, 흥행은 망했지만 큰 적자는 보지 않았다. <남자의 자격>에서 밝힌 바로는 5억원 정도 적자가 났다고 한다. 물론 당시 5억원이면 빌딩 한 채 가격이니 결코 적다고만은 할 수 없는 금액이다. 이경규가 이후로도 잘나가는 연예인이었던지라 쪼들리는 처지는 아니기는 했지만 말이다.
당연하지만 손익분기점은 넘지 못했다.
이경규의 인맥으로 출연한 연예인이 나온다. <긴급조치 19호> 정도로 득실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 뒤로 영화계에 뛰어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경규였지만 한~참 훗날 영화 <복면달호>의 투자자로 나섰다. 물론 감독은 따로 있다. 이경규는 <무릎팍 도사>에서 3편 정도 투자만 하면서 감독들에게 연출 기법을 배워 직접 연출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경규=망한 영화의 대명사로 인식되어있었기 때문에 영화에 이경규가 참여한 것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고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다행히도 영화는 나름대로 흥행을 했다. 이경규가 만든 영화라는 호기심으로 온 사람도 초기에는 많았다. 사실 영화 자체도 나름대로 괜찮았고. 결국 복수혈전과는 달리 손익분기점은 겨우 넘었다. 그러고 나서야 이경규는 자신의 영화임을 밝혔다. 물론 차태현은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러닝 개런티를 받기로 한 그는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 "내가 봤을 때는 (손익분기점) 넘은 거 같은데 안 넘었다고 우기니까 믿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반면 이경규는 무릎팍도사에서 왜 차태현은 대박을 다른 영화(과속스캔들)에 가서 치는지 아쉽다고 반 농담조로 말했다. 이경규가 복면달호의 주연으로 차태현을 얼마나 '''모셔'''왔냐 하면, 차태현을 캐스팅하는 조건 중 하나가 복면달호에 삽입된 모든 노래에 대한 저작권과 수익을 차태현에게 양도한다는 조건이었다.
3. 평가
4. 기타
학창시절 이소룡을 보고 자라며 액션 영화를 찍겠단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물이 이 복수혈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똑같은 동기로 액션 영화를 찍은 류승완 감독과는 참 대비되는 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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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포스터가 이 영화를 표절했다는 농담도 있다. 자세가 비슷한 데다 둘의 광고 카피도 따지고 보면 서로 바뀌어도 별로 이상해보이지 않는다.
네이버 영화 항목에서 이 영화의 8.88 평점을 맞추려고 했다. 관람 후 평점은 8.88으로 맞춰져 있으나, 관람 전 평점은 그 전까지 8.88이 아니다가 2010년 10월 21일 기준으로 8.88로 드디어 맞췄다.
저사진에서 이경규가 팔뚝을 들어보이는 사진에서 핏줄이 선명하고 간지가 나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고무줄로 팔뚝 아랫부분을 꽉 매서 핏줄이 나오게 한 것이라는 뒷이야기가 있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에 TV 저널이나 기타 스포츠지 보도에 따르면 원래 기획 자체는 탈북자(혹은 간첩)가 남한 사회에서 겪는 비극이나 기타 다른 멜로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바로 이 영화의 컨셉을 정했고, 처음에는 '''주연만''' 맡고 다른 사람이 감독을 하려고 했으나 어느 틈에 감독까지 하게 되었다고.
안철수가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이 영화를 언급했는데, 당시 안철수는 의대생이라 '복수(腹水)는 배에 물이 차는 것이고 혈전(血栓)은 피가 굳는 것이니까 의학 영화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6] 참고로 복수혈전을 한자로 쓰면 復讐血戰. 비슷한 얘기로 애니메이션 '업'이나 '도리를 찾아서'가 철학 영화인 줄 알았단 사람들이 있다.
의외로 이경규의 영화 데뷔작은 이 영화가 아니다. 그의 첫 스크린 데뷔는 1991년 개봉한 특촬물 '''「우주전사 불의 사나이」'''가 먼저다. 물론 그것 또한 흑역사. 심형래의 우뢰매, 이용식의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 김흥국의 반달가면[7] 을 다분히 의식하고 캐스팅한 듯 하지만 결과는 그냥 망해버렸다. 그런데 이 특촬물은 평소에는 허당인 핫바지 아저씨지만 파이어맨으로 변신해 진지하게 싸우는 영웅 모두 보여줬다. 그래도 복수혈전처럼 이미지와 어긋나는 작품은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2를 제작한다는 농담 비슷한 소문이 돌다가 결국 2008년 이경규가 메인이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에서 복수혈전 2를 제작했다. 약 15분 정도의 분량으로. 그리고 바로 다음 주, 라인업은 시청률 폭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냥 폐지를 앞두고 이경규 소원 하나 들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이경규는 이 영화 때문에 친구인 김정렬과 사이가 틀어졌다. 김정렬은 어렵게 건물을 매입했는데 이경규가 김정렬에게 '''그 건물을 담보로 해서 보증을 서 달라고 요구했다.''' 김정렬은 이 문제를 서승만과 상의했는데 서승만은 '''그거 날리면 형은 빈털털이잖아.'''라면서 반대했다. 김정렬이 서승만의 얘기를 듣고 이경규의 요구를 거절했는데 그 이후로 이경규가 김정렬을 이 이유 때문에 싫어하게 되었다. 이렇게 안면몰수로 지내다가 대선배 배삼룡의 장례식장에서 화해했다.
아빠를 부탁해에서 딸 이예림과 주상욱, 이경규가 함께 이 영화를 감상하는 장면이 나왔다. 예상대로 진지한 장면에서도 폭소를 터뜨리고, 여기에 이경규가 적절하게(?) 자학 개그를 곁들여서 순식간에 코미디 영화 감상회로 전락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개봉 24년만에 감독 코멘터리를 곁들인 반강제(?) 상영회를 열었는데, 역시나 반응은 폭소의 도가니탕. 극중 이경규가 죽은 동생 김보성을 끌어 안고 오열하는 장면에선 '부관참시' 드립이 나왔고, 결과적으론 '5억을 똥통에 버렸다', '92년에 태어나지 않길 잘했다' 등의 평가로 마무리. 다만 평론가 김태훈은 액션 연기만큼은 괜찮다는 평을 내렸지만, 90년대 영화답지 않게 70년대 이소룡식 액션을 차용한 점이나, 액션에 강약 조절이 없고 시종일관 강강강으로 일관했다는 것이 흠이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1] 참고로 이 때 김보성은 그의 본명인 허석으로 출연했다.[2]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삶이었지. 피래미라고 함부로 까불면 안 된다는 걸 명심해. 잠깐 쓰다듬어 줬을 뿐인데 픽 쓰러지더군. 영양결핍이 있거나 평소 건강관리에 소홀했던 모양이지?[3] "마태호!!!"[4] 본인이 무릎팍도사에서 나와 말했다.[5] 인혜 역을 맡았던 배우 김혜선은 김보성(당시 허석)이 출연한 드라마인 KBS 2TV 서궁의 연출자인 동시에, 이경규의 띠동갑이면서 동국대 선배이기도 한 김재형 PD가 연출자로 낙점되었으나 수뢰 혐의로 손을 뗀 KBS 1TV 태조 왕건에서 강비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다. <서궁>에서 김개시 역으로 나온 이영애가 강비 역 물망에 오르기도 했고, 김혜선은 <태조 왕건> 남자 주인공이었던 최수종의 초등학교(서울 충무) 후배다.[6] 당연히 방송을 위한 농담이다.[7] 심지어 반달가면은 1년 이른 1990년에 첫 비디오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