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인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홍경인
洪景仁
'''
'''출생'''
1976년 10월 27일 (48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국적'''

'''신체'''
166cm[1], 65kg, O형
'''가족'''
형, 누나
'''배우자'''
박애리[2]
'''학력'''
광성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종교'''
개신교
'''소속사'''
델미디어
'''데뷔'''
1988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 '강'
'''링크'''

1. 개요
2. 배우 활동
3. 출연 작품
3.1. 드라마
3.2. 영화
3.3. 뮤지컬
3.4. CF
3.5. 라디오
3.6. 음반
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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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
대한민국배우. 1990년대 충무로 최고의 유망주에 아역배우계에서 레전드로 회자되는 배우며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다.

2. 배우 활동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강'으로 데뷔하였다. 1992년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 엄석대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으며[3],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전태일, KBS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의 정신지체아 수철 역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그야말로 연기력의 화신에 가까운 배우라는 평가를 받은 전무후무한 아역배우였다.[4]
특히 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5]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이다.[6] 섭외했던 전문가는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화상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되었으며 1995년 '이천 춘사영화제'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수상. 당시 겨우 '''만 19세'''.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록은 계속 보유 중이다.
그러나 '전태일' 이후의 그의 행보는 썩 좋지 못했다. 케이블 및 지상파 오락 프로그램에 여기저기 출연하고 진행하는 등의 그의 행보로 인하여 특히 영화계에서는 '''도대체 누가 배우 관리를 저렇게 하냐? 저런 배우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방송 여기저기 나오게 하냐?'''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7]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이 당시 젊은 배우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예능프로에 자주 출연하여 인지도나 친밀감을 쌓는 게 당연시였던 시절이었고, 당시 배용준이 소속되어있던 소속사로 이적하다 보니 여기저기 나오는 게 당연시되었었다.[8] 장동건만 해도 마지막 승부로 스타덤에 오르고 예능에 나와 망가졌지만, 당시만 해도 장동건은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가 아닌, 꽃미남 청춘 스타였기에 그런 모습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나 홍경인은 나이는 어리지만 연기력으로선 거의 톱을 찍는 시점이었고, 충무로를 뒤흔들어놓은 작품을 여러번 내놓은 그를 시청자들 누구도 단순한 청춘 스타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무게감 없이 망가지고 있으니 불편함을 느꼈다. 그만큼 홍경인은 폭발적인 인기는 없었지만, 배우로서 무게감 다른 청춘 스타들과 차원이 달랐다. 더불어 영화 전태일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선택했던 '피아노맨', '채널 식스나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연기력면에서는 호연을 보여줬으나 영화 자체의 운이 없었거나 연기력이나 화제성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하지만 1996년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크게 활약을 보여 다시 한 번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철없는 캐릭터인 '날파리'[9]로 유명해지는 동시에 곧바로 슬럼프를 겪게 된다. 단신인데다가 동안인지라 개그 역할을 맡아서[10] 크게 히트했으나 그 이후로 원래의 연기력에 맞는 역할을 얻지 못하는 비운을 산다. 괴리가 너무 컸다. 1999년에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앨범 《후애(後愛)》을 발표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11]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찾지 못하고 공백기를 가지던 중,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군 복무를 마치고 2007년 뮤지컬 배우로 컴백했다. 2008년에는 불한당에서 주인공 장혁의 친구이자 장혁을 남몰래 사랑하는 동성애자 역할을 소화해내기도 했다.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악역인 석품랑의 배역을 열연하였다. KBS드라마 전우에도 출연했다. 2011년엔 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비교적 비중있는 조연인 연살타로 출연했다.
좋은 연기력을 가졌음에도 시트콤에서 얻은 이미지 때문에 몇 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게 된 안타까운 경우다.[12] 그래도 군 전역 후에는 드라마에 많이 출연하며 다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본좌급의 연기력을 갖고도 지나치게 작은 키 때문에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하진 못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인 송승헌, 소지섭 등이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한 것과는 대조된다. 특히 소지섭은 아직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동갑으로 이름이 참 비슷한 홍경민과 절친이라서, 6살 연상(CF 모델이기도 하다)의 미인 아내와 결혼할 때 홍경민이 축가를 불러주었다고 한다. #
트위터를 하지만, 2012년 3월 이래로 안 하는 상황이다.
이미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도 유머러스하고, 입담도 좋은 편이다. 라디오 스타에 아역 특집에 나와서 이민우김정현을 압도하는 말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역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다가 장렬하게 자폭하는 토크가 특징이다. 1976년생 용띠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뱀발로 문희준이 군대 시절에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선임 중 한명이 홍경인[13]이었다고 하며 그의 갈굼에 복수하기 위해서 문희준은 그의 양말에 불개미를 넣었다고 한다.[14][15]
2013년 11월 중반부터 12월 중반까지 EBS 라디오 연재소설에서 최민석 원작의 '풍의 역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다양한 인물을 미친 연기력으로 소화했는데, 특히 '오중사'가 압권이다. 라디오 연재소설의 공개방송인 낭독의 힘에서 현장낭독을 할 때는 원작자인 최민석 작가가 경인씨의 신들린 연기에 연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며 제 책이 이렇게 재밌었나 싶었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본인은 이 책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해보고 싶은 역할이 뭐냐는 질문에 '앞잡이' 라고 말했다. 앞서 말한 공개방송에서 어느 낭독 전날 술을 마셨다고 밝히며 자긴 목소리가 잠겨서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날 제작진은 목소리가 더 듣기 좋아졌다며 좋아했다고.
2016년 12월 11, 18일에 방송된 복면가왕에 참가해 모처럼 시청자들을 찾았다. 동네방네 스피커라는 이름으로 나서서 내 안에 첫눈 있다 스노우볼과 같이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부르면서 승리했으며 조율하고 가실게요! 바이올린맨과 겨룰 때 부른 곡은 신승훈의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이었다. 참고로 그를 가수라고 생각했던 김구라는 당황한 모습을 내비쳤다. 정식 앨범을 낸 경력이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연기를 하다가 매너리즘이 와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 연기활동은 계속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팔로우 숫자 뒤에 K가 안 붙는다며 이번을 계기로 K가 붙었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했다.

3. 출연 작품



3.1. 드라마


'''방영 연도'''
'''채널'''
'''제목'''
'''배역'''
'''비고'''
2018년
OCN
보이스 2
나형준

2015년
TV 조선
위대한 이야기
광장시장 사람들
강호

tvN
2013년
tvN
환상거탑
형식

2011년
KBS
광개토태왕
연살타

2010년
전우
양상길

2009년
MBC
선덕여왕
석품

2008년
SBS
불한당
김만두

2002년
대망
서구

2000년
MBC
신 귀공자
광수

나쁜 친구들
이홍원

1999년
왕초
날파리

1996년
MBC
남자셋 여자셋
본인

일곱 개의 숟가락
조정인

1.5
송진복

KBS
컬러 - 그린
박준영

1995년
KBS
젊은이의 양지
임수철

SBS
모래시계
강우석
박상원 아역
1993년
MBC
제3공화국
박정희
이진수 아역
1990년
꼴찌수색대



3.2. 영화


'''개봉 연도'''
'''제목'''
'''배역'''
2017년
빈센트
만호
2016년
애비

2014년
욕망의 독: 중독
준상
신이 보낸 사람
우진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
두석
2011년
공소시효

2003년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2002년
남자 태어나다
만구
2001년
달마야 놀자
막내
1998년

기찬
1996년
피아노 맨
진우
채널 식스나인
석기
1995년
영원한 제국
세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전태일
1994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1992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석대
1991년
텔레파시 여행


3.3. 뮤지컬


'''공연 연도'''
'''제목'''
'''배역'''
2007년
해어화
산하
2004년
소나기

1995년
명성황후
고종

3.4. CF


'''출연 연도'''
'''광고주'''
'''제품'''
1995년
CJ제일제당
숯불구이맛 햄
해태제과식품
덴티 큐
칸츄리 콘
농심
다시마 오뎅
야채 소고기
1996년
파리크라상
파리바게뜨
1997년
팔도
쇼킹면

3.5. 라디오


'''출연 연도'''
'''채널'''
'''제목'''
2015년
EBS FM
EBS 책 읽는 라디오 낭독 시리즈

3.6. 음반


'''발매 년도'''
'''음반 제목'''
'''타이틀 곡'''
1999년
후애(後愛)
후애

4. 수상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92년
제13회 청룡영화상
특별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제3회 춘사대상영화제
우수 연기상(아역)
1993년
제29회 백상예술대상
특별상

1995년
제6회 춘사대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KBS 연기대상
신인상
젊은이의 양지
제1회 씨네21 영화상
최고의 배우상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 과거 신검 키.[2] 팝핀현준의 부인과 이름이 같다.[3] 촬영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는데 성인 배우도 소화하기 힘든 복잡한 역할인 엄석대를 겨우 중학생이었던 그가 아주 살벌하고 소름끼치게 표현해내어 당시 대한민국 영화계는 천재 배우가 나왔다며 발칵 뒤집혔다. 참고로 선생님 역할로 신구최민식이 나온다.[4] 그야말로 연기 스펙트럼이 엄청났다. 독재자(엄석대 역)부터 노동운동가(전태일), 그리고 정신지체아까지. 근데 이 정도의 필모그래피를 다 '''10대 때, 즉 중·고,대학생 신분으로 전부 쌓았다(...).'''[5]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 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본인피셜이지만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는 서태지보다 더 인기 많았다고~[6]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7] 심지어 개그맨들과 정통 개그프로그램 꽁트를 찍기도 했었고, 드라마타이즈 코미디에도 꽤나 참여했을 정도다. 그것도 개그를 받쳐주는 정상인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바보스럽게 코믹한 쪽으로... 무려 90년대 최고 개그우먼 중 하나인 이영자와도 꽁트를 했을 정도다. [8] 역시 배우에게는 예능이 毒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홍경인과 배용준을 관리하던 사람은 바로 훗날 전지현을 대스타로 만든 싸이더스HQ의 '정훈탁' 되시겠다. 당시 정훈탁은 EBM이라는 매니지먼트사를 차렸는데, 소속 연예인은 바로 배용준, 한재석, 정찬, 차태현, 홍경인.[9] 대부분 철없는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마지막회의 진지한 씬에서는 그의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한다.[10] 긴 바바리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길어서 코드 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어 낙엽을 쓸며 노래부르는 장면이 특히 유명하다(...).[11] 사실 가창력은 꽤 좋은 편이다. 그러나 이미지가 이미지라서 큰 주목은 받지 못하였다.[12] 16살 때 이미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냥 그 나이에 맞는 연기 그런 게 아니라 엄석대 역이었으니. 19살 때 전태일 역으로 분신자살까지 소화하며 명 연기를 펼치다가 남자셋 여자셋 이후로는 주연을 못하게 된다.[13] 홍경인이 가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문희준을 가장 많이 괴롭혔다고 한 사람은 홍경인의 군대동기 윤계상이었기 때문이다. 윤계상이 제대를 할때쯤에야 건너건너 윤계상이 괴롭힌 이유가 신인시절 3년 선배였던 문희준이 방송국에서 후배인 자신의 인사를 안 받아준 원한이 컸기 때문(동갑인데 후배에게 살갑지 않은 모습에 19살에 데뷔해서 22살에 데뷔한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이라는 걸 들었고, 본인은 일부러 인사를 안 받은 기억이 없어서 못보고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원한을 갚은 방법은 이등병이던 문희준에게 상병이던 윤계상이 신병이 경례자세가 잘못 되었다며 몇십분 동안 "야 문희준, 경례가 그게 뭐야? 다시 해봐"라고 끝도 없이 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몇달간 주기적으로 문희준을 보면 괜히 "똑바로 하라"고 했다고 한다.[14] 참 아이러니한 것이, 문희준이 속한 H.O.T.의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의 가사에서 저격하는 대상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엄석대를 연기한 인물을 군대에서 만났으니...[15] 문희준이 철없이 상당히 위험한 행동을 한건데, 불개미는 개미산을 쏘아대서 간지러움과 피부손상이 심하게 생긴다. 괜히 불개미라 불리는 곤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