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철

 



'''3대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鄭信喆''' | '''John Baptist Jung Shin-chul'''
[image]
'''출생'''
1964년 10월 22일생(59세)
인천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image]
'''재임기간'''
교구장 직무대행
2016년 5월 30일 ~ 2016년 6월 4일
인천교구장 서리
2016년 6월 4일 ~ 2016년 12월 26일
인천교구
2016년 12월 27일 ~
[image]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
1. 개요
2. 여담


1. 개요


대한민국 가톨릭교회주교이자 제3대 인천교구장. 세례명은 '요한 세례자'이다.
1964년 10월 22일생(59세).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2]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3] 차남으로 태어났다.[4] 부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에 입학해 1991년 학부를 졸업하고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1993년 사제품을 받으면서 사제 생활을 시작했다.
사제 수품 직후 1년간 부천시 삼정동성당 보좌신부를 역임한 뒤 프랑스에서 8년간 유학 생활을 했다. 프랑스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실천신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딴 뒤[5] 2002년 귀국해 역곡2동성당 보좌신부를 맡았다. 2003년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겨 2010년까지 교수신부로 지냈다. 2009년 천주교 인천교구 성소국장으로 부임한 후 2010년에 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그러던 중 2016년 5월 30일 최기산 교구장 주교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선종하면서 교구장 직무대리가 됐고 곧 교구장 서리가 됐다. 그리고 2016년 11월 10일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천주교 인천교구 3대 교구장으로 공식 임명됐다.[6]
2016년 12월 27일 답동 성 바오로 주교좌 성당에서 열린 착좌식을 통해 교구장좌에 착좌하면서 제3대 인천교구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착좌 당시 나이가 '''만 52세'''였다. 가톨릭 교회법에 규정된 정년으로 인한 교구장 사임 청원 시점이 만 75세부터인 점을 감안할 때, 정 주교가 건강히 사목 활동을 지속하면 최소 25년 이상 인천교구장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꽤 젊은 나이에 교구장에 오른 탓에, 인천교구에는 정신철 주교보다 먼저 사제로 수품된 선배 신부들이 상당히 많다.[7]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사회주교위원회 위원과 교육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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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야구단 경기에서 투수로 등판한 정신철 주교

상당한 야구 마니아로, 이론과 실전에 모두 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인천광역시 출신답게 SK 와이번스의 팬이다. 다른 지역 주교들과의 모임에서 야구 이야기가 나오면 SK 와이번스를 응원하면서 뜨겁게 열변을 토한다고 한다.
인천교구의 젊은 신부들과 격의없이 소통하기 위해 사제 야구단에서도 직접 선수로 뛰기도 하는데, 보통 투수로 활약한다고 한다.

[1] (1요한 4,16)[2] 인천교구장을 역임한 3명의 주교 중 유일한 인천광역시 출신이다. 초대 교구장 윌리엄 존 맥나흐톤 굴리엘모 주교는 미국인이다. (한국식 이름은 나길모. '나 굴리엘모'라고도 부른다.) 2대 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김포시 출신이다. 다만 김포시천주교 인천교구 관내 지역이다.[3] 정 주교의 어머니는 인천지역 복음화의 증거자로 알려진 박순집 베드로의 후손이다. 박순집의 아버지 박 바오로는 병인박해순교했고, 박순집은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서 묻어 주고,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선교에 힘썼다. 또한 박순집의 딸 박황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수녀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입회, 김해겸 마리아 쌘뽈 수녀와 함께 한국인 최초의 수녀가 되었다.[4] 정 주교의 친형은 현재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근무 중인 정대철 교수다. 소아과 진료에서 상당한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5] 한국 천주교 사제 중에서 실천신학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은 정 주교가 최초라고 한다.[6] 최기산 주교의 선종 당시 정신철 주교는 교계제도상 교구장직 자동 승계가 불가능한 보좌주교였다. 그래서 교구장 직무대리와 교구장 서리를 거쳐 교구장으로 착좌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전임 교구장인 최기산 주교는 처음에 주교로 수품될 당시부터 교구장직 자동 승계권을 가진 부교구장 주교였기에, 나 굴리엘모 주교의 은퇴 직후 자동으로 교구장직을 이어 받을 수 있었다.[7] 대표적인 사례가 명강사 신부로 유명한 고 차동엽 노르베르토 신부. 차 신부는 정 주교보다 나이와 수품 기수 모두 선배이지만, 교구장인 정 주교에게 순명해야 한다. 가톨릭 성직자수도자성품성사/수도서원 때 청빈, 정결과 함께 순명을 서원하기 때문(이 3개를 복음삼덕이라 함).보통 순명서약은 교구장 주교의 착좌식때 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