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개발당

 


[image]
'''Adalet ve Kalkınma Partisi'''[1]
'''약칭'''
AK Parti, AKP
'''영문명칭'''
Justice and Development Party
'''한글명칭'''
정의개발당
'''창당일'''
2001년 8월 14일
'''정치적 스펙트럼'''
우익
'''이념'''
이슬람 민주주의 (비공식),[2]
미국식 세속주의 (공식),[3]
국민보수주의, 권위주의,
사회보수주의, 우익 대중주의
'''중앙당사'''
터키 앙카라 발랏 202번지
'''대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국민의회 의석수'''
289석 / 600석
'''웹사이트'''

1. 개요
2. 역사
2.1. 에르도안 집권기
3. 지지 기반
4. 기타
5. 선거 결과


1. 개요


터키이슬람주의 정당. 약칭은 AKP와 악 파르티. 종교적 우파 성향 정당으로, 현재 터키의 집권 여당이다. 당수는 2016년까지 전 터키 총리인 비날리 이을드름이었으나 2017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대통령직과 당수직의 동시보유를 금하는 조항을 폐지하고 당대표 자리에 올랐다.
현재는 대통령 에르도안의 사당이나 다름없는 막장 정당이 되어 가는 중이다. 덕분에 터키의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세속주의 전통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 역사


정의개발당의 뿌리는 1997년 터키 정계를 뒤흔들어 놓은 복지당 해산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네즈멧틴 에르바칸(Necmettin Erbakan) 전 총리가 창당한 복지당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이후로 철저한 세속주의 아래 금기시되어 오던 이슬람주의 노선을 대놓고 표방하는, 경제개혁과 복지 확대를 외치며 집권한 포퓰리즘 정당이었다. 복지당의 당수였던 에르바칸은 아타튀르크 이래 터키 역사상 최초의 이슬람주의 총리였다.
허나 터키/정치 항목에서도 보이듯 강한 세속주의적 성향을 지닌 군부는 에르바칸 총리에게 사퇴하지 않으면 쿠데타를 일으킬 거라 위협했다. 결국 총리는 사퇴, 복지당은 무혈 쿠데타로 해산된다. 이 때는 터키 역사상 마지막으로 성공한 쿠데타로, 20여년 후 일어난 유사한 사건은 그 동안 정치적 감각과 인기를 쌓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난다.
1997년 당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스탄불의 민선 시장을 지내며 에르바칸 전 총리의 후계자로 꼽히고 있었다. 그는 당이 해산되었지만 정계 활동을 이어가며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와 개혁적 공약으로 인기를 높여 가다가, 2001년 복지당 시절의 동료들을 모아 절치부심하여 정의개발당을 창당한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군을 장악한 세속주의자들의 권력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져야 했었지만 그 4년 동안 여론은 뒤바뀌어 에르도안에게 점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의개발당은 창당 다음 해인 2002년 총선에서 총 550석 중 무려 363석을 차지, 압도적인 제 1당이 되어 단독내각을 수립하는 기염을 토한다.[4]
초기의 정의개발당은 말 그대로 빅텐트 정당으로, 이슬람 성직자부터 기업인들, 심지어 개혁 성향의 세속주의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구성된 정당이었다. 공화인민당과 민주좌파당(DSP)[5] 등 전통적인 세속주의 정당의 실정에 질린 터키인들은 부패 청산과 복지 확대, 경제 성장을 부르짖는 정의개발당에 표를 던졌다. 이때만 해도 이념적으론 오히려 중도우파적 성향에 가까웠다. 당시 외신에서는 유럽 기독교민주당과 비교했을 수준이었으니..
집권 초기 AKP와 에르도안 내각은 민주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매우 부각시키며 정치를 했다. 친서방적인 정책 기조를 보이며 EU 가입을 위해 애썼고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전면적으로 도입해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쳤다. 화폐개혁을 통해 십수 년 동안 만성적으로 지속되던 터키의 인플레이션(자세한 것은 터키 리라 항목 참조)을 일소시키고 경제성장률 역시 괄목할 만한 지표를 찍으면서 2007년, 2011년의 선거에서도 압도적인 득표율로 순항을 거듭했다.[6]
또한 국내 정치적 문제에서도 세속주의 정권 아래에서 민간인 학살의 책임을 회피해 오던 전직 대통령이자 독재자인 케난 에브렌을 90대의 나이에도 법의 심판에 회부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등 과거사 청산에 대한 의지를 보였고 이는 좌우를 막론하고 대다수의 터키인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꽤나 괜찮은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2.1. 에르도안 집권기


민주적인 정권교체를 이루며 선출된 당과 지도자는 '''점진적으로 종교 근본주의 정권 건설을 추구하는 독재자의 개인 정당으로 흑화'''해 버리고 만다. 이 당이 서방과 세속주의 세력으로부터 공격받는 가장 큰 이유.
사실 초기부터 어느 정도 그럴 것이라는 기미가 존재하기는 했다. 훗날 정부와 집권여당의 조작이라 밝혀진 발료즈 쿠데타 모의 사건을 계기로 군 내부의 세속주의 세력을 일부 숙청하고, 터키 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강력한 세속주의 정책을 일견 민주적인 방식으로 파괴하는 등.. 물론 여기까지는 '종교의 자유' 를 근간으로 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그 후속조치가 문제일 뿐.
정의개발당이 첫 집권한 2002년부터 지금까지 터키의 사회는 점점 더 종교적/문화적 보수성이 완연해지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여교사가 대통령에게 손가락 욕을 했다는 이유만으로[7] 징역형을 선고받고, 정의개발당 소속 의원이 공개적으로 터키는 세속주의 헌법을 포기하고 이슬람적 가치관이 담긴 헌법을 채택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예전 같았으면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법한 일들도 이젠 진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들리는 수준까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꼭 이슬람주의를 걸고 넘어지지 않더라도 현재의 정의개발당은 에르도안이라는 개인의 카리스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당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정의개발당 집권 초~중반기까지 의원내각제 시스템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에는 '총리=당수'라는 공식이 당연하게 성립되었지만[8] 2016년 터키 쿠데타 미수 사건을 전후로 하여 에르도안의 권력은 한층 강화되었고, 결국 2017년 대통령 중심제로의 개헌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대통령[9]이 당대표직을 겸직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하여 AKP의 모든 당권을 장악하였다.
정의개발당 집권의 중반기부터 이어지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의 지속적 박탈, 그리고 그 과정에서(대표적으로 2013 터키 시위) 보여 준 폭압적 진압과 감금으로 인해 프리덤 하우스이코노미스트에서 조사하는 민주주의 지수들에서 터키는 이미 '부분적 자유(Partly Free)[10]'에서 '부자유(Not Free)' 급으로 격하된 지 오래이다. 또한 근래는 언론 탄압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데, 정부 비판적 논조를 띠는 휘리예트(Hurriyet) 신문의 기자들을 단체로 감금하고 십수 년에 이르는 형을 구형한 것을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017년 본래 AKP와 연대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보다도 더 극우적인 민족주의행동당(MHP) 출신인 여성 정치인 메랄 악셰네르가 탈당하여 신당 좋은당(iYi Parti)을 창당하였는데, 정의개발당의 지지율에 대한 악재가 되고 있다. 튀르크 민족주의이슬람주의를 더하면 정의개발당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데, 역시 튀르크 민족주의를 주장하지만 반대로 강력하게 세속주의를 외치는 좋은당과 악셰네르는 AKP의 지지자 중 과격한 이슬람주의에 거부감을 느끼는 다수의 표를 끌어올 수 있기 때문.
2017년 에르도안이 2016년 쿠데타 미수 사건 이후 계엄령 하에서 밀어붙여 통과시킨[11] 대통령 중심제 신 헌법 하에서, 2019년에 처음 실시될 예정이었던 대선 및 총선이 2018년 6월로 앞당겨졌는데 이를 위해 민족주의행동당과 다시 선거연대를 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한편 야권에서는 인민민주당을 제외한 공화인민당, 좋은당, 민주당(DP), 행복당(SP) 등이 야권연합을 결성하고 결선투표에 오른 야권 후보를 밀어 주기로 결정했다. 5월의 여론조사에서 에르도안과 악셰네르가 결선에 오를 시 0.2%포인트의 지지율 차이로 초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드러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허나 2018년 터키 대선 및 총선은 정의개발당과 민족주의행동당의 인민 연합이 압승하며 끝났다. 이전 여론조사와 꽤나 차이나는 결과에 부정선거 논란이 제기되고 공화인민당은 다음 달 결선투표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관권을 장악한 AKP와 에르도안을 이기기는 힘들어 보인다. 대선은 약 52%의 득표율을 가져가며 1차 투표에서 끝날 전망이며 총선에서도 표면적 득표율 자체는 떨어지고 의석수가 300석 미만으로 줄어들었지만 선거 동맹을 체결한 MHP와 합하면 의회 과반을 안정적으로 차지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에르도안과 AKP의 초장기집권을 뒷받침할 승리라는 평. 물론 깨끗한 선거가 아니었기에 어찌 될지 모르지만 그동안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2019년 3월 31일에 열린 지방선거에선 정의개발당이 의외의 일격을 당했는데, 3대 대도시 앙카라, 이스탄불, 이즈미르 모두에서 광역단체장 자리를 잃었다. 전통적인 공화인민당 강세지역인 이즈미르는 차치하더라도 수도인 앙카라에서 무려 26년만에 야당이 승리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에르도안은 민족주의행동당이랑 연대해서 52%는 지켜냈다고 정신승리 중이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꽤나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황. 특히 현직에서 물러나지도 않은 채 이스탄불 민선도지사로 출마한 비날리 이을드름 총리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비날리 이을드름은 공화인민당 후보인 에크렘 이맘오울루와 엎치락 뒷치락 하던 와중 당선 축하 현수막까지 이스탄불 곳곳에 붙이는 등 설래발을 치다가 0.6%로 패배하자 "중앙선관위에서 무효처리한 표 중에 정의개발당으로 돌아간 표가 있는데 야당의 음모로 싸그리 무효처리시켜버렸다"(...)며 이의제기를 했으나 안티들은 내로남불이라며 비웃는 중.
이스탄불을 놓칠 수 없었는지 이래저래 군불을 떼우다 이스탄불 재선거가 기어코 결정나면서 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허나 결국 6월 23일에 있었던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에서도 8% 차이로 오히려 깔끔하게 패배했다.
이스탄불 선거 패배 이후 당 내분이 격하되면서 압둘라 귈 전 총리·대통령, 바바잔 전 부총리가 신당에 참여하기로 했으며, 전 총리였던 아흐메트 다우트오울루, 전 총리 네즈멧틴 에르바칸의 아들도 보수성향의 신당을 창당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정의개발당 입장에서는 표가 분열되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결과적으로 알리 바바잔이 총수가 되어 Demokrasi ve Atilim Partisi(민주진보당)을 결성해 떨어져나갔다. 민주진보당은 정의개발당 창당맴버인 알리 바바잔이 주역이 된 당으로 다원성, 인권, 민주주의수호를 당강령에 딱 박아놓고 초창기 정의개발당과 비슷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기존 정의개발당 지지자들의 표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중이다. 또한 아흐메트 다우트오울루 전 총리 또한 미래당(Gelecek Partisi)이라는 원외정당을 세워 다가올 선거를 준비하는 중이다.
2020년 7월 29일부로 소셜 미디어 내 내용을 규제 및 검열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표현의 자유 침해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일부에선 나오고 있다.#

3. 지지 기반


정의개발당의 주된 지지 기반은 아나톨리아 중부~동부 지역이다. 터키의 정치에서도 역시 각 국가에서 제법 흔한 우촌좌도 구도가 존재한다. 특히 아나톨리아 서부와 국토의 3%뿐인 유럽 지역에 대부분의 산업 기반과 사회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는 터키의 특성상 매 선거 때마다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이즈미르 같은 서부 대도시들에서는 공화인민당 같은 세속주의 정당의 세가 강하게 나오는 모습이 보이나 발전이 더디나 인구는 무시할 수 없이 많은, 또한 다소 강경 보수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을 띠는 아나톨리아 중부 지역에서는 정의개발당의 힘이 강한 편이다. 쿠르드족이 밀집되어 있는 동부에서도 쿠르드 민족주의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에 밀리기는 하지만 이슬람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기반으로 꽤나 표심을 가져가고 있다.
이렇게 도시 지역에서의 확장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채찍과 당근을 병행하는 정책으로 지지율을 높이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인프라 구축이나 신도시 건설 등으로 도시 지역 표를 가져오려고 노력함과 동시에 여당에 반대하는 자치단체장들에게 교묘한 탄압을 가하는 것.[12] 2018년 초 공화인민당 소속인 이스탄불의 베식타시 구청장을 대통령 권한으로 해임한 것이 그 대표적 예시이다. 게다가 꼭 야당이 아니더라도, 여당 내부에서도 에르도안의 권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숙청당하는데 총선 패배의 책임을 물음과 함께 에르도안의 노선에 영합하지 않아 사퇴를 권고받다가 결국 그만둔 이스탄불 시장의 사례도 존재한다.

4. 기타


터키 계열의 미승인국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정당들은 이념과 성향이 유사한 터키 본토 정당들의 지구당 혹은 우당에 가까운데, 정의개발당의 경우는 이 중 튀르크 민족주의 보수 정당으로 터키의 북키프로스 병합을 주장하는 국민통일당(UBP)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상징색 역시 황색으로 유사하다.
인도인도 인민당과 포지션이 여러모로 유사하다. 두 정당들 모두 현 여당이며 성향은 반세속주의고 각각 힌두교이슬람교 근본주의적이다. 또한 두 정당 모두 기존 여당의 강압적인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창당되었으나 현재 행보 상으로는 본인들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몰아낸 인도 국민 회의공화인민당에 의해 창당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거기에다 양당 모두 젊은 층 사이에서 지지율이 증가하며 선거에서 압승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5. 선거 결과


총선
연월일
득표수
득표율
득표율증감
의석수
의석수증감
비고
2002년 11월 3일
10,808,229표
34.28%
신설
363/550
신설
첫 집권
2007년 7월 22일
16,327,291표
46.58%
+12.30%p
341/550
-22
2011년 6월 12일
21,399,082표
49.83%
+3.25%p
327/550
-14
2015년 6월 7일
18,867,411표
40.87%
-8.96%p
258/550
-69
과반의석 상실
연정 무산으로 재선거
2015년 11월 1일
23,681,926표
49.50%
+8.63%p
317/550
+59
2018년 6월 24일
21,335,579표
42.56%
-7.24%p
295/600
-22
두번째 과반의석 상실
MHP와 연정
대선
연월일
후보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여부
비고
2014년 8월 10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21,000,143표
'''51.79%'''
'''1위'''
'''당선'''
첫 직선 대통령
2018년 6월 24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26,325,188표
'''52.59%'''
'''1위'''
'''당선'''
대통령 중심제 하의 대통령
지방선거
연월일
광역자치단체장
(전국 득표율)
기초자치단체장
(전국 득표율)
광역의원
(전국 득표율)
기초의원
(전국 득표율)
비고
2004년 3월 28일
12/16
46.07%
1,750/3,193
40.19%
2,276/3,208
41.67%
16,637/34,477
40.33%
2009년 3월 29일
10/16
42.19%
1,442/2,903
38.64%
1,889/3,281
38.39%
14,732/32,393
38.16%
2014년 3월 30일
18/30
45.54%
800/1,351
43.13%
779/1,251
45.43%
10,530/20,500
42.87%
2019년 3월 31일
15/30
50.00%
762/1,351
56.40%
/1,251
%
/56.40
%

[1] 발음은 "아달렛 베 칼큰마 파르티시"[2] 의외로 이 당은 공식적으로는 특정 종교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정하고 있다.[3] 정의개발당이 설치기 전 터키의 세속주의는 프랑스의 라이시테같은 적극적 세속주의에 가까웠다. 즉, 이슬람주의를 밀어내기 위해 좀 강압적인 방식의 세속주의도 내세웠다는 것. 예를 들어 공적 공간에서는 종교적인 사소한 복장이나 행동조차도 각종 제한이 많이 걸렸었다. 허나 정의개발당은 그런걸 없애고 직접적으로 정치적 세속주의를 해치지 않는다면 미국처럼 공적인 곳에서도 자유롭게 히잡이나 종교적 복장을 착용하고 신앙생활 할 수 있게 하자는 뜻이다. 물론 기독교가 주류인 미국에서 소수종교의 생활상을 존중하는 것과 이슬람교가 주류인 터키에서 주류종교의 정치화로 이어질 수 있는 노선을 표방한다는 건 좀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심지어 그 미국에서도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행태는 비판을 받고 있다.)[4] 사실 세속주의자들 스스로가 놓은 덫에 걸려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슬람 포퓰리즘 정당의 약진을 막기 위해 비례대표 봉쇄조항을 10%까지 올려 놓았는데, 본인들이 여기에 걸려 공화인민당만 제외하고 직전 집권당이던 민주좌파당을 비롯한 기타 정당이 원내 진입에 실패한 것.(...)[5] Demokratik Sol Partisi. 정의개발당 바로 이전의 집권당으로, 뷜렌트 에제비트(Bulent Ecevit) 전 총리가 1980년 쿠데타 이후 창당한 정당. 현재는 공화인민당에 거의 흡수되고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다.[6] 다만 2014년부턴 다시 터키 경제가 후퇴하고 외환위기 경고에 물가도 폭등해 정의개발당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7] 심지어 에르도안은 "남자였다면 모르겠지만 여자가 그런 제스처를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라는 말까지 했다.[8]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의회에서 다수당이 내각을 결성하고 그 당의 대표가 총리직을 갖게 된다. 그런 이유로 2013년 총리직에서 퇴임한 에르도안은 정의개발당의 당대표직을 가질 수 없었다.[9] 역시 의원내각제 국가의 보편적인 특징으로 명목상의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당적을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존재한다. 이 쪽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10] 원래도 완전한 자유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세속주의 군부의 힘이 강하던 반 군정 체제일 때에도 부분적 자유 이상으로 올라가지는 못했기 때문.[11] 당시부터 부정선거 관련 수많은 논란이 존재했다. 애초에 이 쿠데타 자체가 개헌을 획책하기 위한 에르도안의 자작극이었다는 음모론까지 돌았을 정도.[12] 대도시 지역에서도 구와 동마다의 발전 정도 혹은 소득 수준에 따라 표심이 갈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