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카라

 


라틴 문자
Ankara
앙카라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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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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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지리
3. 지명
4. 역사
5. 구경거리
6. 교통
7. 기타


1. 개요


터키수도이자 제2의 도시.[1]

2. 지리


면적은 2,516.00㎢, 인구는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4,431,719명.
서울처럼 강을 끼지는 않았지만 서울과 비슷하게 구시가지 남쪽으로 잘 정리된 계획도시인 신시가지가 있으며, 그 중간에는 헤이켈(Heykel - 터키어로 '동상'이라는 뜻)이라 불리는 아타튀르크의 거대동상이 있다. 이곳 일대를 울루스(Ulus)라고 하는데 이곳이 앙카라의 중심지이며 이곳에 터키국회의사당, 은행, 오페라하우스 등 현대적인 건축물들도 들어서 있다.

3. 지명


'앙카라'의 어원은 을 뜻하는 그리스어 '안키라(Ἄγκυρα)'로 추측되며, 고대와 중세에도 이 도시는 '안키라(Ancyra)'로 불리었다. 앙고라라고도 불렸다. 또 하나의 유력한 설은 몽골의 중부 지방에 앙카라(Ankara)강이 있는데(사실 몽골보다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 지방에 존재하는 안가라 강으로 추측된다.) 터키의 수도도 '앙카라(Ankara)'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어, 앙카라라는 지명도 터키 민족이 서진함에 따라 함께 서쪽으로 이동해 온 지명으로 볼 수 있다. 마치 서양인들이 미국 땅에다 자신들이 살던 고향의 지명을 가지고와서 붙인 것처럼 말이다.[2]
앙카라 지역 사투리로는 k같은 무성음이 유성화되는 현상이 발생해서 다들 '앙가라' 거린다.[3] 도시 마스코트는 과거에는 앙카라 대학교의 상징이기도 한 히타이트의 사슴 조각이었지만, 현재는 검은 앙카라 고양이(터키쉬 앙고라). 현재도 옛 히타이트의 사슴조각은 앙카라 대학교 앞의 스히예(Sıhhiye) 광장에서 볼 수 있다.

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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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바이람 모스크와 로마 시대의 아우구스투스 신전, 로마-오스만 시대에 번영한 앙카라의 역사를 상징한다
콘스탄티니예(이스탄불)를 수도로 삼은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근대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앙카라를 수도로 삼았기 때문에 앙카라를 근대에 새로 생긴 신도시로 여길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앙카라 역시 이스탄불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다. 아니, '''거점도시 또는 대도시로서의 역사는 이스탄불보다 더 오래되었다.''' 사실 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기 전에 비잔티움은 소도시에 불과했으나, 그 당시의 앙카라는 이미 속주의 주도급 대도시였다.
기원전 2000년 경 히타이트인들이 안키라 지역에 터를 잡았고, 기원전 1000년대에는 프리기아인들이 이주해왔다. 이후 안키라는 리디아에 지배받고 나중에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통치를 받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헬레니즘 제국이 들어서고, 알렉산드로스 사후 안티고노스 왕조가 안키라를 통치하게 된다.
기원전 278년에 안키라를 포함한 아나톨리아 중부를 켈트족이 점령하면서 이 일대는 갈라티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기원전 25년 아우구스투스가 갈라티아를 정복하면서 안키라는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는다. 남아있는 로마 유적으로는 위의 사진에 나온 아우구스투스 신전과 율리아누스 기둥, 목욕탕 등이 있다. 4세기에 안키라에는 기독교가 융성하였다.
기원후 750년 아나톨리아 군관구
Bucellarians
부켈라리온 테마
동로마 제국에서 테마 제도가 실시되면서 기원후 7세기 안키라는 옵시키온 테마의 수도가 된다. 8세기 중반 옵시키온 테마가 분할되면서 안키라는 부켈라리온 테마의 수도가 된다.
1071년 만치케르트 전투 이후 셀주크 제국은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때부터 안키라에 오우즈족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동로마 제국은 안키라를 잠깐 수복하지만 얼마 안 가 룸 술탄국에 도로 빼앗긴다. 1243년 쾨세다으(Kösedağ) 전투에서 몽골 제국이 룸 술탄국을 이기고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지배하게 된다.
1330년 아나톨리아
Ahis
아히 형제단
1290년 즈음 상공업 조합인 '아히 형제단(Ahiler)'이 앙카라에 국가를 세워 일 칸국에서 반독립을 한다. 동시기 베이가 군림하는 아나톨리아의 다른 베이국(Beylik)들과는 다르게 아히 형제단의 국가는 상인 공화국의 형태를 띠었다.
1356년 오스만 베이국의 군주 오르한이 앙카라를 합병하여 아히 형제단의 국가는 멸망한다. 1393년 아나톨리아 성(ایالت آناطولی‎, Eyālet-i Anaṭolı)이 행정구역으로 세워지고 앙카라는 아나톨리아 성의 첫째 성도(省都)가 된다. 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 오스만은 아나톨리아 반도를 침공해 온 티무르에게 패배하여 앙카라를 잠깐 빼앗기지만 이듬해 되찾는다. 15세기 후반에 아나톨리아 성의 성도는 앙카라에서 퀴타히야로 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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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앙카라 성
1900년 앙카라 주
1827년 앙카라 성(ایالت آنقره, Eyālet-i Ānqarâ)이 들어서는데, 초기 성도는 요즈가트였다가 이후 앙카라가 된다. 앙카라 성이 1867년 앙카라 주(ولايت آنقره‎, Vilâyet-i Ānḳara)로 개편되면서 앙카라 역시 앙카라 주의 주도(州都)로 이어지게 된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오스만 제국그리스 왕국의 침공을 받고 있었는데,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 앙카라 근방의 사카리야 강에서 장장 21일간에 걸친 쉴 새 없는 전투 끝에 그리스를 물리치고 터키 공화국을 수립한다. 그 후로 앙카라가 터키의 수도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덕분에 앙카라는 인구가 불어나 급성장한다.
앙카라를 계획할 당시 중심지 이론으로 유명한 독일의 지리학자 크리스탈러에게 도시 계획을 의뢰했었다. 당시에는 최종 인구 50만의 도시로 계획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가 급팽창해 [4]크리스탈러의 도시 계획이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도시 계획 초안에 의하면, 도시 내에 고차 중심지에서 저차 중심지를 두고, 중추관리기능 - 상업 기능 - 공업 기능 - 주거 기능 등과 같은 형식으로 분화된 도시 기능을 두었다. 아직도 이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앙카라 역을 중심으로 북쪽의 울루스(Ulus) 구가 고차중심지이며, 울루스의 아타튀르크 상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주요 관공서들이 모여 있고, 앙카라 대학이 위치해 있으며 남쪽의 크즐라이(Kızılay)는 상업지구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보다 아래에 위치한 발갓(Balgat)에는 공업지구가 형성되어 있다.

5. 구경거리


앙카라의 관광지는 서로 근접하게 붙어있기 때문에 구경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서쪽에는 이스탄불, 동쪽에는 카파도키아라는 터키 여행의 정점들이 있다보니, 도중 경로에 해당하는 앙카라가 이 둘을 애매하게 섞어놓은 듯한 이미지가 있어 많은 여행객들이 그냥 통과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물이나 비상식량등을 미리 바리바리 사놓자. '''서부, 중부 아나톨리아에서 물가가 가장 싼 곳이 앙카라다.''' 특히, 시밋(Simit)은 터키에서도 가장 싼 곳으로 2개에 1리라[5], 싼 곳에 가면 3개에 1리라에도 살 수 있고 저녁쯔음 가면 10개에 1리라로 떨이판매하는 흔치않은 모습도 볼 수 있다(...) 가격정보는 2014년 초반을 기준으로 한다.
버스를 타고 앙카라에 오게된다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앙카라만 혼자 떡하니 있는 모습을 볼 수있다.
  •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Anadolu Medeniyetleri Müzesi)
관광객들이 앙카라를 굳이 방문하는 최대의 이유. 고대 히타이트의 유물들과 그리스-로마 이전의 고대 아나톨리아 문명의 유물들을 그득그득 쌓아놓고 있는(...) 박물관이다. 이곳에 전시한 유물들은 대부분 앙카라 동쪽의 하투샤(히타이트의 수도였던 곳)지금의 보아즈칼레(Boğazkale)에서 발견한 유적지에서 상태가 괜찮은 국보급 부조들을 '''통째로 뜯어다''' 나른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본토인 하투샤는 사자의 문 정도 말고는 휑해져서 '''안습'''[6]. 인류 최초의 도시인 차탈회윅(Çatalhöyük)의 가옥을 복원한 방과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 황금손으로 유명한 미다스왕의 무덤을 복원한 방도 구경할 수 있다. 2017년에 방문했을때는 여기에 괴베클리 테페의 신전 기둥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현재 앙카라의 박물관에 전시된 괴베클리 테페 기둥은 원본은 아니고 복제품이다. 고대 아나톨리아 문명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가봐야할 곳. 입장료 25리라.
  • 앙카라 성(Ankara Kalesi) (옛 시가지)
아나톨리아 박물관을 가다보면 지나치게 되는 곳이며, 칼레시 공원(도성공원) 위쪽에 있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앙카라 전체를 관망해볼 수도 있다. 또한 이 주변 인근의 조그만 골목들도 사진찍기에 좋은 곳. 이쪽은 앙카라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게제콘두(Gecekondu)가 여기저기 형성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제콘두란 터키의 슬럼, 빈민가를 뜻하는 지역이다. 신시가지와 비교하면 마치 19세기로 돌아온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 애초에 관광지가 아닌 주택가, 게다가 빈민촌이라 열악한 환경(아무런 표지판도 없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새 성에 올라와 있게 될 지도 모른다. 오히려 현지 주민들이 길을 알려준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마을 사람들이 아침을 여는 풍경과 아직까지 남아있는 전통 대장간이나 철물점, 빵집등을 구경하면서 시간때우기에는 매우 좋다. 빈민가라는 편견만 버린다면 위험하지도 않고 마을사람들도 매우 친절하기때문에 구경하면서 함께 사진도 찍어볼 수 있다. 심지어 운만 좋다면 동네사람들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함께 밥을 먹는 경험도 해 볼 수 있다.
2014년 현재는 리모델링및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깔끔해졌다. 과거 앙카라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으며, 성안에는 시장이 들어서 있어 토산품들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앙카라 성 입구에 위치한 라흐미 코치 박물관(Rahmi Koç Müzesi)은 현재 터키에서 가장 큰 재벌인 '코치 그룹'의 회장 라흐미 코치의 생전 유품과 그의 콜랙션(!), 코치 그룹에서 생산한 옛 제품들을 볼 수 있다. 역시 재벌은 뭔가 스케일이 다른지 독일 장난감부터 시작해서 별의별걸 다 수집해놓았다. 라이벌 기업인 사반즈(Sabancı)도 마르딘에 박물관을 갖고 있는데, 그곳도 기회가 된다면 가보자.
  • 공화국 박물관 (Cumhuriyet Müzesi)
아늣카비르와 앙카라 성 사이에 있는 작은 박물관. 과거 터키 공화국 초창기에 이 건물이 바로 국회의사당으로 쓰였으며, 박물관 한켠에 회의실이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여기에 아타튀르크가 터키 공화국을 세우는 과정과 아타튀르크가 사용한 비품 따위를 쭉 전시해놓은 곳인데, 아무래도 아늣카비르와 비슷한 테마라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현지 학생들이 야외수업 등으로 찾는 곳이다. 다만 안내를 원하면 각 방마다 지키고 서있는 경찰관들이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하고 그랬다는데 요즘은 그 경비원 숫자가 확 줄어서, 사실상 2층에서 입장과 퇴장안내만 해준다. 입장료는 3리라.
  • 독립전쟁 박물관 (Kurtuluş Savaşı Müze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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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대국민의회 최초 수립당시 기도를 하는 아타튀르크의 모습
1920년 4월 23일, 터키 최초의 국회가 열렸을때 의사당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위의 공화국 박물관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 현재 공화국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은 공화국 수립 이후 1924년부터 사용된 의사당 건물이다. 내부에는 터키 독립전쟁과 관련된 물품,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아늣카비르의 전시물과 어느정도 겹치기 때문에 시간이 급한 여행자들은 일반적으로 패스하게 된다.
  • 아타튀르크의 영묘, 아늣카비르 (Anıtkab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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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와 2대 대통령(겸 장군)인 이스멧 이뇌뉘(İsmet İnönü)가 잠들어있는 곳. 규모가 거대하다. 터키에 방문하는 귀빈들은 반드시 한 번 거치고 가는 곳이기도 하다. 아타튀르크 전시관을 겸하고 있다. 돌무쉬를 타고 바흐첼리에빌레르 방향으로 가거나 아니면 지하철을 타고 아나돌루(Anadolu)역[7]에서 내리면 가깝다. 아늣카비르 안에는 아타튀르크의 유물과 터키 독립전쟁당시의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도 있으니 한번 가보자. 단, 여름에는 양산과 자외선 차단 크림을 미리 발라둘 것. 1km나 되는 영묘에 아스팔트와 잘 닦아놓은 돌바닥을 걸어오는데도 ''그늘이 없다!!!''' 참고로 입장료 무료. 또한 적시에 가면 박물관 입구까지 데려다주는 무료 셔틀버스(Servis)를 탈 수도 있다. 입구에 짐맡기는 곳의 헌병에게 물어볼것.
이곳은 터키군에 있어서도 특이한 곳인데, 오로지 이곳만을 수호하기 위한 사령부가 하나 있다(...) 육해공 3군통합부대로 매일 짝수시간 정각에 위병교대식을 한다.
  • 민족학박물관 (Etnografya Müzesi)
스히예(Sıhhiye)에 위치해있으며, 앙카라와 중부아나톨리아 일대의 전통풍습을 유물들과 함께 설명한 박물관이다. 참고로 각 지역에 있는 민족학박물관은 각자 자기지역의 민속과 풍물들을 위주로 전시하고있으니 각 민족학박물관들을 돌아봐도 좋다. 이 곳에는 1100년대에 만들어진 카이세리 울루자미의 설교대(민베르)같은 진귀한 유물들도 있으며, 아타튀르크가 사망하고 아늣카비르가 완성될때까지 이곳에 안치되어있었기 때문에 그 흔적도 볼 수 있다. 아타튀르크가 안치되어있는 자리에는 아타튀르크의 데드마스크와 함께 그가 생전에 한 말인 Benim naçiz vücudum elbet bir gün toprak olacaktır. Fakat, Türkiye Cumhuriyeti ilelebet payidar kalacaktır. (나의 미천한 몸은 당연히 언젠가는 흙이 될 것이다. 하지만, 터키공화국은 영원히 우뚝 서 있을것이다.) 가 새겨져있다. 입장료는 5리라이며, 옆의 터키 현대미술관은 무료이다.
  • 한국 공원 (Kore parkı)
패키지 여행으로 앙카라에 오게 되면 숙박은 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들르게 되는 장소. 한국전쟁때 파병되어 세상을 뜬 터키인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가 있는데, 그게 전부라서 이곳을 찾는 외국인 대부분이 한국인이다.[8] 보통 패키지 투어 관광상품 일정에 포함되어있다. 참고로 거기가면 박정희대통령이 터키 갔을때 남긴 글도 있다. 나갈때 방문록 쓰는 곳에서 1리라나 1유로 팁을 주면 나자르 본주우(Nazar Boncuğu) 모양의 기념품을 준다고 한다. 건너편에 아타튀르크 문화센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가끔 괜찮은 공연을 할 때가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터키 방문을 할 당시 이곳의 상태가 영 안좋아서 한국 대사관에서 사람을 고용해서 관리하게 되고 '웬만하면 오는게 좋지 않겠냐' 정도의 발언을 해서 패키지에 끼어서 가게 된다. 대체로 새벽에 잠깐 보고 카파도키아로 가기 때문에 안까지 들어가기는 좀 힘들지만..
서울특별시와 자매 결연을 맺은 도시여서 그런지 서울 여의도에도 앙카라공원이 있다.
  • 크즐라이 지구(Kızılay, 신 시가지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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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서울로 따지면 명동, 신촌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며 실제로 쇼핑센터와 술집, 식당, 클럽들이 밀접해있는 곳이다. 다만 이스탄불과 비교하자면 정말로 초라할만큼 작다. 한국으로 따져도 웬만한 수도권내 중소도시 중심가같은 느낌이랄까... 기념품을 원한다면 이스탄불보다 싼 가격으로 이곳에서 쇼핑을 해도 괜찮을듯 싶다. 인근에 코자테페 사원(Kocatepe Camii)지하(!)에는 베엔딕(Beğendik)이라는 대형마트가 있는데 이곳에서 여행에서 사용할 생필품과 식량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 관광객들을 배려해서인지 로쿰같은 터키과자들이나 책, 기념품 같은것도 파니까 한번 꼭 가보자. 정말 싸다.[9]
  • 투즈 괼뤼 (Tuz gölü - 소금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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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앙카라에서 네브쉐히르(괴레메) 혹은 카이세리로 가는 경로에서 볼 수 있다. 족히 1시간을 달려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넓으니[10] 차 안에서 구경하는 것도 가능. (단, 좌석 오른쪽 창가에 앉아야 볼 수 있다.) 중앙 아나톨리아에 갇혀버린 바다로, 염도는 사해보다도 더 짠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얕아서 물에 둥둥 떠다니는 체험은 못한다고 한다. 건기에는 호수가 아니고 그냥 딱딱한 눈밭(..)[11] 같으니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으면 우기를 노리는게 좋다. 터키 소금의 7할이 여기서 생산될 정도로 품질도 괜찮다고.[12] 앙카라 버스터미널(Aşti)에서 1~2시간에 한대씩 출발하는 투즈괼뤼 세야핫(Tuzgölü Seyahat) 버스가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인데, 워낙 자가용이나 투어로 오는 곳이다 보니 기사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니 주의.
고대 히타이트제국의 수도였던 도시로, 정확하게 말하면 앙카라 바로 옆에 위치한 도인 초룸(Çorum)도에 있다. 하지만 핫투샤쉬 유적 인근에는 숙박시설이 몇개 없는데다가 가격도 비싸고, 초룸 자체는 산골짜기 깡촌이기때문에 보통은 앙카라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곳이다. 앙카라의 여행사들을 찾아봐도 좋고 직접 가고자 한다면 우선 오토가르에서 초룸으로 가는 버스를 탄 다음에, 대략 2시간쯤 가서 중간에 순구룰루(Sungurlu)에서 내린 다음 다시 한 시간정도 돌무쉬나 택시를 타고 간다. 핫투샤쉬 자체는 보아즈칼레(Boğazkale)군에 위치해있으며 말 그대로 산골짜기 시골동네기때문에 접근성이 썩 좋지는 않다. 핫투샤쉬 유적 근처에는 터키어로 '글자가 쓰여진 바위'라는 뜻의 야즐르카야(Yazılıkaya) 유적이 있으며, 히타이트 시절에 조각된 바위비석들을 볼 수 있다. 중요한 유물들은 거의 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 있긴 하지만 현지에도 유적과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으며 복원해놓은 히타이트 시절의 요새도 볼 수 있다. 초룸 인근에는 아마시아(Amasya)가 있으며, 이곳도 조용한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6. 교통


앙카라가 명색이 터키의 수도라서 그런지 오토가르(고속버스터미널)[13]에서 전국범위로 버스가 연결되어 있다. 이스탄불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서북쪽 끝에 있다보니 동부지방이나 조그만 시골마을로 가는 버스들은 잘 없는데 비해 앙카라로 가는 버스는 다 있다는 것.[14] Kamil Koç나 Metro, Özen turizm, Tatlıses 같은 쟁쟁한 버스회사들이 여러 노선들을 중복시켜서 운행하기 때문에 경쟁이 붙어서 고속버스 운임도 저렴한 편이다. 터키어 실력이 된다면 흥정해서 더 깎을 수도 있으니 참고할 것.
철도의 경우 이스탄불과 고속철도인 YHT로 오고 갈수 있는데 앙카라 중앙역에서 열차를 탈 수 있다. 이스탄불까지 3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개별로 앙카라를 방문하면 지하철과 버스가 있는데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버스는 이용하기가 많이 난감한 편이어서 지하철을 이용하게 된다. 어차피 지하철이든 버스든 EGO kart라는 교통카드로 통하며, 버스의 경우 행여나 개인버스(Özel halk otobüsü)에 타면 EGO카드가 통하지 않기때문에 안에 있는 차장에게 돈을 줘야한다. (우리나라 서울 지하철 1호선 색깔에 가까운 버스는 에고카트로만 요금을 낼 수 있고 4호선 색깔과 비슷한 버스는 현금버스임) 오토가르(AŞTİ)는 종착역에 있으며, 유일한 환승역인 크즐라이를 중심으로 왕복하게 되는데 빈카드(보증금 5리라)를 사고 거기에 요금을 충전하는 식으로 개편되었다. 기본요금은 2.50리라이며, 학생요금은 1.75리라인데, 터키에 재학하는 학생들만 해당되는거라 대부분의 위키니트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개인버스의 차장에게 학생이라고 말하면 학생요금으로 탈 수 있기는 하지만 진짜 유학생처럼 터키어를 하지 않는 이상은 무리. 그나마 과거에는 앙카라 오토가르에서 중심가까지 무조건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야 했지만 이젠 도착 터미널에서 밖으로 나가면 앙카라 곳곳으로 무료운행하는 시영 세르비스(셔틀)를 탈 수 있다. 크즐라이(Kızılay)나 울루스(Ulus)로 가고 싶다면 각각 앙카라대학, 오페라에서 내리면 된다. 한국대사관에 볼일이 있다면 크즐라이 백화점(Kızılay AVM) 건너편에 위치한 귀벤 공원(Güven Parkı)을 지나는 413번 버스를 타고 파라비(Farabi) 병원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참고로 정거장을 찾기는 힘들지만 울루스의 아타튀르크 동상 인근과 오페라, 스히예에서도 이 버스를 탈 수 있다.
조언을 주자면, 울루스나 스히예, 앙카라역 일대에서 오토가르로 가야할 경우 지하철보다 돌무쉬로 가는게 훨씬 더 빠르다.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갖고 있을 경우에도 엔간해선 돌무쉬에서 받아주니 타도 상관없다. 버스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울루스에서는 버스정거장 위치가 좀 애매한곳에 있고, 크즐라이나 스히예에서 탈 경우 어차피 울루스를 지나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을 더 잡아먹게된다. 크즐라이는 앙카라이라는 지하철 노선이 크즐라이와 아쉬티를 이어주기 때문에 그거 타고 한 방에 오토가르까지 갈 수 있다.
만약에 관광을 목적으로 앙카라에 왔다면, 지하철로 중요한 관광지와 숙소는 접근 가능하다. 저렴한 숙소 (단 깨끗한건 장담 못한다)는 울루스에 몰려 있고, 언덕 위의 게제콘두지역만 가지 않는다면 치안도 나쁘지 않다. 고급 숙소들은 크즐라이에 몰려있으며, 관광지들은 아늣카비르를 제외하면, 이 두 역 사이에 몰려있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택시값이 상당히 저렴한 곳이다. 2018년 상반기 기준으로 택시 기본요금이 4.1리라였다. 앙카라 중앙역에서 언덕배기인 앙카라 성 입구 사이의 3킬로미터 길은 굉장히 언덕이 가파르고 오르기 힘든 곳인데 택시를 타고가면 비싸게 줘봤자 15-20리라 사이이다. 만약에 조금 더 걸어서 울루스의 아타튀르크 상을 지난 다음 재래시장 입구에 서있는 택시를 타면 6-8리라에도 갈 수 있다. 일행이 많거나 힘들면 주저하지않고 택시를 타자. 다만 관광도시들과 달리 앙카라 택시기사들은 거의 영어를 못한다.

7. 기타


터키 하면 이스탄불이 워낙 유명한데다 터키에서는 정작 수도 앙카라보다 이스탄불의 규모가 더 커서 이스탄불이 터키의 수도인 줄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만큼 인지도 낮은 수도 중 하나.
서울특별시의 두 번째 자매결연 도시. 1968년 대만 타이베이에 이어서 1971년 앙카라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자매결연 당시 한창 개발이 진행되던 곳이 여의도였기 때문에, 한쪽 끝에 이 도시의 이름을 딴 '앙카라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KBS별관이 근처에 있기 때문에 가끔 KBS2의 아침프로그램에서 날씨 같은 것을 전할 때 앙카라 공원에 나가서 진행하기도 한다. 앙카라에도 한국 공원으로 한국과 관련된 공원이 있다. 또한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는 앙카라 학교 공원이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이 전쟁고아들을 위해 설립한 고아원의 이름을 이곳에서 따서 "앙카라 학원"이라고 이름지었기 때문이다. 아일라의 실제 모델인 터키군 장교 슐레이만 딜빌리이 옹과 할머니가 다 된 한국 소녀인 김은자(아일라)씨도 앙카라 공원에서 재회하였는데 김은자씨와 고아원 동료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앙카라 학교의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앙고라 토끼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2015년에 뜬금없이 거대 자쿠 동상이 세워진 적이 있다. 몸통과 사지는 자쿠2지만 어깨는 자쿠1의 어깨를 양쪽에 달아놨고, 머리는 철인 28호를 닮았다. 건립 이유는 새로운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문제는 시 예산으로 시에서 세운거라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앙카라 시장은 '로봇을 존중하라' 라는 의미불명의 답변만 해 더욱 빈축을 샀다. 결국 티라노사우루스 동상으로 대체되었으나 이것도 항의를 받아 2017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고 한다.

[1] 최대 도시는 알다시피 이스탄불, 앙카라 다음으로 큰 도시는 이즈미르이다.[2] 출처: 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저자 김정민), p.182[3] 터키어를 배운다면 다른 지방 사투리는 접할 일이 많지 않겠지만, 앙카라 사투리(정확하게 말하면 중부 아나톨리아 방언)는 접할 일이 많을 것이다. 이 사투리는 문법도 조금 특이해서, yapacak mısın? (할 거야?)을 yapcan mı?라고 줄인다. 좀 더 설명하자면, 가지안텝을 중심으로 한 남동부방언에서는 yapıcın mı? 혹은 edicin mi?라고 하고, 에게 방언, 특히 이즈미르에서는 yapçan mı?라고 앞의 자음에 따라 무성음화된다.[4] 게제콘두란 무허가판자촌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다른나라들도 산업화시절 다 겪는 이촌향도 현상 때문에 도시에 가난한 서민이나 농민들이 몰리면서 게제콘두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5] 시밋은 일종의 빵으로, 1리라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0원이다. 사실 그리스로 올라가면 물가가 치솟는데 터키가 그나마 유럽에서 가장 싼 정도. [6] 그나마 현재는 원래 있던 자리에 복제품을 세워놓아 구색은 맞추어 놓았으며, 하투샤의 일부 가옥들은 거의 완전히 복원되어 옛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7] 예전 이름은 탄도안(Tandoğan)이었지만 2016년경 바뀌었다.[8] 6.25전쟁 참전에서의 인연인지 터키의 경우 한국을 형제국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9] 2017년 7월 기준으로 닫혀있음. 아예 폐업한 건지 보수 공사 중인지는 모르겠다만 여하간 운영안하고 있음.[10] 면적 약 1,600km². 제주도와 얼추 비슷한 크기이다.[11] 그래도 도구 같은 걸로 조금 파면 금새 물이 나오긴 한다.[12] 그래서인지 소금을 광고하는 간판이 언어별로 쭉 세워져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13]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앙카라에서는 AŞTİ라고 부른다.[14] 굳이 직통으로 동부를 가려 해도 도로 사정상 결국 앙카라를 경유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앙카라 오토가르가 이스탄불 오토가르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는데, 수도가 아니다 뿐이지 상업, 공업의 중심지는 여전히 이스탄불이기 때문. 뭐가 생산이 되고 장사를 하고 해야 교통도 발달하기 때문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