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일렉트릭 F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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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Electric F101'''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개발한 군용 저바이패스[2] 터보팬 제트엔진으로서 오직 B-1B 폭격기에만 적용되어 현재도 운용하고 있으며 GE가 개발한 첫 번째 애프터버너 터보팬 제품이다. 이 정도만 보면 뭐 그냥 평타 수준의 엔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으나 개발과 항공기에 들어가서 실전배치되는 과정이 꽤 복잡했다.
일단 B-1A가 개발이 막 시작될 1964년 무렵은 XB-70A 폭격기의 비극적인 추락사고도 나기 전이었고 그 프로젝트도 아직 유효한 상태였으나 미 공군은 이른바 AMSA (Advanced Manned Strategic Aircraft)라는 또 다른 계획을 시작한다. 과거의 프로젝트처럼 고공 초음속 운항능력도 지닌 한편 소련의 영공에 진입할 무렵에는 저공으로 비행해서 몰래 때려 부수고 나온다는 개념이었는데 가변익을 채용해서 저공에서의 안정성을 도모함과 함께 활주로의 손상에 대비한 STOL 능력도 부여하려 했다. 이 계획이 제대로 올라타기만 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최소 1,000개의 엔진을 납품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GE와 P&W 모두 자사의 공돌이들을 쌍코피 터지도록 열심히 족치기 시작했다.
어쨌든 GE는 1968년 GE9[3] 라는 기술실증용 터보팬 엔진을 개발한 후 이듬해 이 새로운 폭격기의 엔진 계약자로 선정됐는데 당시 미 공군이 요구했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해냈다며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받게 된다. 물론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와중에 자잘한 문제점들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흘러갔고 1973년 무렵에는 F101이라는 명칭까지 부여받게 된다. F101은 이 육중한 기체를 50,000 ft의 고도에서 마하 2.2의 속도까지 도달하게 했으며 1974년에는 B-1A의 첫 비행도 무사히 완료시키는 큰 공을 세우게 되었고 그래서 B-1A를 총 240대 생산해서 1979년까지 모든 물량을 배치시킬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전망을 지녔으나 1977년 취임한 지미 카터에 의해 취소[4] 되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작업이 도로아미타불로 둔갑할 위기에 처했지만 CED (Continued Engineering Development) 프로그램에 힘입어 기존에 제작된 B-1A의 시험비행과 이런저런 테스트는 지속될 수 있었다.
물론 이 영향으로 1980년 초반 당시까지 F-16A/B의 엔진은 모두 P&W의 F100 계열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미 공군이 AFE (Alternative Fighter Engine: 동일기종 타엔진 장착)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F-16/101이라는 이름으로 F101 엔진을 장착한 F-16이 시험비행을 하기도 했는데 워낙 기본설계가 워낙 출중했던 관계로 F100 엔진을 장착한 F-16보다 성능이 더 좋았지만 F101 엔진을 채택하는 데는 실패했다. 대신 1984년 F101을 전술기의 사이즈에 맞게 축소시키고 약간의 개량을 거친 F110이라는 파생형이 등장하게 되어 당시 미 공군에 배치되기 시작하던 F-16C/D의 엔진으로 채택[5] 되어 무려 75%가량의 물량을 점유하는 잭팟이 터졌다.
여기에 미 해군이 추진한 F-14A 개량사업에도 협력업체로 선정되어 그 문제 많던 TF30을 깨끗하게 밀어내고 B-2A와 U-2S에 탑재된 F118도 F101에서 파생된 엔진을 장착하고 F101의 핵심부에 대한 기술은 GE가 프랑스의 스네크마와 합작한 회사인 CFMI로 흘러들어가 1974년 CFM56이라는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켜 B737 오리지널 이후의 모든 엔진을 싸그리 독식함은 물론 C-135 계열 항공기의 엔진 교체사업까지 거의 다 수주하는 등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왕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물론 CFM56 엔진이 이제 슬슬 단종의 수순을 밟을 예정이긴 하나 그 후속으로 나온 LEAP라는 제품이 B737 MAX와 A320neo 기종에 채택되어 있어 장차 큰 말썽이 없는 이상 또 다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암튼 다시 돌아와서 F101 엔진의 제조사인 GE 역시 부품의 내구성을 높이고 엔진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엔진의 완성도를 조금씩 높여가던 중 지미 카터는 이런저런 실정으로 재선에 실패하고 만다. 이후 1981년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B-1과 B-2는 물론 FB-111A까지 모두 장거리 핵투사 전력으로 밀어 붙이겠다는 계획을 밝히긴 했는데[6] 이렇게 다시 부활하긴 했지만 B-1이 차지하는 포지션은 B-2의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의 땜빵 노릇에 불과했고 조달 물량도 100대로 감소해서 장차 퇴역할 B-52의 머릿수를 채우는 용도로만 여겨지게 된다. 이 와중에 B-1의 전략적 운용방침이 변경되면서 저공에서의 최고속도를 마하 0.85에서 0.92로 증가시킴과 함께 고공에서는 마하 1.25를 상회하지 않도록 수정하면서 B-1B로 형식이 바뀌게 됐고 F101은 고공에서의 순항과 저공에서의 침투를 위해 소음을 감소시키고 순항 중에는 매연이 거의 발생하지 않게 개선하는 작업과 함께 노즐을 단순화해서 자체중량을 줄이는 다이어트를 거쳐 1982년 F101-GE-102라는 새로운 모델이 승인을 받기에 이른다.
여기서 기존의 공기 흡입구가 초음속을 위해 가변식으로 되어 있었던 것을 고정식으로 단순하게 바꾸는 한편 RCS를 줄이기 위해 공기 흡입구에서 엔진의 팬 블레이드 까지의 경로를 S자 형태로 수정하는 작업도 병행됐는데 이 결과 B-1B는 F-15보다도 작은 RCS 값을 지니게 됐고 이 기술은 B-2에 고스란히 응용되어 스텔스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한편 1990년은 B-1B에 "Lancer"라는 별명이 부여된 뜻 깊은 해였는데 공교롭게도 10월[7] 과 12월[8] 에 엔진 고장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해서 미 공군의 모든 B-1B가 50일 동안 비행금지 처분을 받는 망신을 당하고 만다. 게다가 2건 모두 팬 블레이드를 고정하는 금속 부품의 결함이 원인으로 판명되어 더 두껍고 강화된 재질로 교체하는 한편 검사 주기를 단축시키는 조치가 내려진다. 불행 중 다행으로 두 기체의 승무원들은 모두 무사했고 기체의 손상도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아서 수리 후 다시 작전에 복귀했고 현재까지도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전인 1987년에는 비행 중 펠리컨 떼를 만나 버드 스트라이크를 당했는데 불행하게도 파편이 엔진과 연료 라인을 손상시켜 기체가 불덩어리가 됐고 승무원 3명[9] 이 사망하여 기체와 엔진에 대한 보강과 총체적인 대책이 마련된다.
그 다음 해 11월에는 좌측 엔진 쪽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서 승무원 4명 모두 무사히 탈출하긴 했으나 기체는 추락해서 완전히 파괴되는 착잡한 일이 생긴다. 이뿐만이 아니라 1998년 2월에는 공중급유 훈련을 하다가 엔진 4개가 모조리 퍼지는 바람에(...) 또 1대[10] 를 제대로 해먹었고 2007년에도 멀쩡하게 날던 기체의 엔진에 불이 솔솔 피어올라 황급히 착륙하는 등 엔진과 관련한 사고가 꽤나 빈번한 편이다. 사실 조종사의 과실로 멀쩡한 산을 들이받지 않나 별 시답잖은 사유로 기체를 상실하는 등의 사고가 잦아 좀 문제 많은 항공기로 인식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새로운 엔진으로 교체하려 하거나 개량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봐서 B-1B의 퇴역 시까지 같이 운용될 공산이 크다.
(영문 위키백과) General Electric F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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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2. 개요
'''General Electric F101'''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개발한 군용 저바이패스[2] 터보팬 제트엔진으로서 오직 B-1B 폭격기에만 적용되어 현재도 운용하고 있으며 GE가 개발한 첫 번째 애프터버너 터보팬 제품이다. 이 정도만 보면 뭐 그냥 평타 수준의 엔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으나 개발과 항공기에 들어가서 실전배치되는 과정이 꽤 복잡했다.
일단 B-1A가 개발이 막 시작될 1964년 무렵은 XB-70A 폭격기의 비극적인 추락사고도 나기 전이었고 그 프로젝트도 아직 유효한 상태였으나 미 공군은 이른바 AMSA (Advanced Manned Strategic Aircraft)라는 또 다른 계획을 시작한다. 과거의 프로젝트처럼 고공 초음속 운항능력도 지닌 한편 소련의 영공에 진입할 무렵에는 저공으로 비행해서 몰래 때려 부수고 나온다는 개념이었는데 가변익을 채용해서 저공에서의 안정성을 도모함과 함께 활주로의 손상에 대비한 STOL 능력도 부여하려 했다. 이 계획이 제대로 올라타기만 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최소 1,000개의 엔진을 납품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GE와 P&W 모두 자사의 공돌이들을 쌍코피 터지도록 열심히 족치기 시작했다.
어쨌든 GE는 1968년 GE9[3] 라는 기술실증용 터보팬 엔진을 개발한 후 이듬해 이 새로운 폭격기의 엔진 계약자로 선정됐는데 당시 미 공군이 요구했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해냈다며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받게 된다. 물론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와중에 자잘한 문제점들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흘러갔고 1973년 무렵에는 F101이라는 명칭까지 부여받게 된다. F101은 이 육중한 기체를 50,000 ft의 고도에서 마하 2.2의 속도까지 도달하게 했으며 1974년에는 B-1A의 첫 비행도 무사히 완료시키는 큰 공을 세우게 되었고 그래서 B-1A를 총 240대 생산해서 1979년까지 모든 물량을 배치시킬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전망을 지녔으나 1977년 취임한 지미 카터에 의해 취소[4] 되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작업이 도로아미타불로 둔갑할 위기에 처했지만 CED (Continued Engineering Development) 프로그램에 힘입어 기존에 제작된 B-1A의 시험비행과 이런저런 테스트는 지속될 수 있었다.
물론 이 영향으로 1980년 초반 당시까지 F-16A/B의 엔진은 모두 P&W의 F100 계열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미 공군이 AFE (Alternative Fighter Engine: 동일기종 타엔진 장착)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F-16/101이라는 이름으로 F101 엔진을 장착한 F-16이 시험비행을 하기도 했는데 워낙 기본설계가 워낙 출중했던 관계로 F100 엔진을 장착한 F-16보다 성능이 더 좋았지만 F101 엔진을 채택하는 데는 실패했다. 대신 1984년 F101을 전술기의 사이즈에 맞게 축소시키고 약간의 개량을 거친 F110이라는 파생형이 등장하게 되어 당시 미 공군에 배치되기 시작하던 F-16C/D의 엔진으로 채택[5] 되어 무려 75%가량의 물량을 점유하는 잭팟이 터졌다.
여기에 미 해군이 추진한 F-14A 개량사업에도 협력업체로 선정되어 그 문제 많던 TF30을 깨끗하게 밀어내고 B-2A와 U-2S에 탑재된 F118도 F101에서 파생된 엔진을 장착하고 F101의 핵심부에 대한 기술은 GE가 프랑스의 스네크마와 합작한 회사인 CFMI로 흘러들어가 1974년 CFM56이라는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켜 B737 오리지널 이후의 모든 엔진을 싸그리 독식함은 물론 C-135 계열 항공기의 엔진 교체사업까지 거의 다 수주하는 등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왕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물론 CFM56 엔진이 이제 슬슬 단종의 수순을 밟을 예정이긴 하나 그 후속으로 나온 LEAP라는 제품이 B737 MAX와 A320neo 기종에 채택되어 있어 장차 큰 말썽이 없는 이상 또 다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암튼 다시 돌아와서 F101 엔진의 제조사인 GE 역시 부품의 내구성을 높이고 엔진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엔진의 완성도를 조금씩 높여가던 중 지미 카터는 이런저런 실정으로 재선에 실패하고 만다. 이후 1981년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B-1과 B-2는 물론 FB-111A까지 모두 장거리 핵투사 전력으로 밀어 붙이겠다는 계획을 밝히긴 했는데[6] 이렇게 다시 부활하긴 했지만 B-1이 차지하는 포지션은 B-2의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의 땜빵 노릇에 불과했고 조달 물량도 100대로 감소해서 장차 퇴역할 B-52의 머릿수를 채우는 용도로만 여겨지게 된다. 이 와중에 B-1의 전략적 운용방침이 변경되면서 저공에서의 최고속도를 마하 0.85에서 0.92로 증가시킴과 함께 고공에서는 마하 1.25를 상회하지 않도록 수정하면서 B-1B로 형식이 바뀌게 됐고 F101은 고공에서의 순항과 저공에서의 침투를 위해 소음을 감소시키고 순항 중에는 매연이 거의 발생하지 않게 개선하는 작업과 함께 노즐을 단순화해서 자체중량을 줄이는 다이어트를 거쳐 1982년 F101-GE-102라는 새로운 모델이 승인을 받기에 이른다.
여기서 기존의 공기 흡입구가 초음속을 위해 가변식으로 되어 있었던 것을 고정식으로 단순하게 바꾸는 한편 RCS를 줄이기 위해 공기 흡입구에서 엔진의 팬 블레이드 까지의 경로를 S자 형태로 수정하는 작업도 병행됐는데 이 결과 B-1B는 F-15보다도 작은 RCS 값을 지니게 됐고 이 기술은 B-2에 고스란히 응용되어 스텔스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한편 1990년은 B-1B에 "Lancer"라는 별명이 부여된 뜻 깊은 해였는데 공교롭게도 10월[7] 과 12월[8] 에 엔진 고장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해서 미 공군의 모든 B-1B가 50일 동안 비행금지 처분을 받는 망신을 당하고 만다. 게다가 2건 모두 팬 블레이드를 고정하는 금속 부품의 결함이 원인으로 판명되어 더 두껍고 강화된 재질로 교체하는 한편 검사 주기를 단축시키는 조치가 내려진다. 불행 중 다행으로 두 기체의 승무원들은 모두 무사했고 기체의 손상도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아서 수리 후 다시 작전에 복귀했고 현재까지도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전인 1987년에는 비행 중 펠리컨 떼를 만나 버드 스트라이크를 당했는데 불행하게도 파편이 엔진과 연료 라인을 손상시켜 기체가 불덩어리가 됐고 승무원 3명[9] 이 사망하여 기체와 엔진에 대한 보강과 총체적인 대책이 마련된다.
그 다음 해 11월에는 좌측 엔진 쪽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서 승무원 4명 모두 무사히 탈출하긴 했으나 기체는 추락해서 완전히 파괴되는 착잡한 일이 생긴다. 이뿐만이 아니라 1998년 2월에는 공중급유 훈련을 하다가 엔진 4개가 모조리 퍼지는 바람에(...) 또 1대[10] 를 제대로 해먹었고 2007년에도 멀쩡하게 날던 기체의 엔진에 불이 솔솔 피어올라 황급히 착륙하는 등 엔진과 관련한 사고가 꽤나 빈번한 편이다. 사실 조종사의 과실로 멀쩡한 산을 들이받지 않나 별 시답잖은 사유로 기체를 상실하는 등의 사고가 잦아 좀 문제 많은 항공기로 인식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새로운 엔진으로 교체하려 하거나 개량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봐서 B-1B의 퇴역 시까지 같이 운용될 공산이 크다.
3. 관련 링크
(영문 위키백과) General Electric F101
[1] 원래 엔진이 납품될 때는 이렇게 노즐 연동부가 노출되지 않고 이른바 "Turkey Feathers"라는 판떼기로 덮여 있었지만 1990년대에 정비 편의성과 중량을 줄이기 위해 판떼기를 탈착하 는 조치를 내렸다. 현재 미 공군이나 항공자위대에 P&W의 F100을 탑재한 F-15 계열도 이와 똑같은 상태로 비행하고 있으나 불규칙한 표면 때문에 항력이 증가해서 중량의 감소로 인한 효과는 별로 없다고 한다.[2] 사실 이게 지금(2010년대 이후 시점)의 기준으로 민수용 터보팬과 비교했을 때나 낮은 비율이지 예나 지금이나 여객기를 기반으로 한 군용기의 엔진을 제외하고는 이 정도의 수치를 지닌 애프터버너가 붙은 터보팬은 대단히 드물다. B-52H에 달려있는 TF33-P-3만 해도 바이패스비가 1.55에 불과하며 Tu-160의 NK-32는 이보다도 낮은 1.4의 수치를 지닌다.[3] GE가 최초로 개발한 군용 터보팬은 A-10과 S-3에 사용된 TF34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J79와 같은 기존의 터보제트와 확연히 다른 점은 저압 터빈과 고압 압축기/터빈이 따로 연동된 2축 (Two Spool) 구조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구조가 살짝 복잡해지긴 하지만 각각의 회전이 비행 상황에 따라 최적화되어 낮은 소음과 높은 추력을 달성하는 데 있어 상당히 유리하게 된다. 어쨌든 TF34 이후로 나온 GE의 엔진들은 모두 2축 구조를 채택하고 있고 P&W 제품들도 다 마찬가지이나 토네이도의 RB199는 개발 시기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3축의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건 100% 롤스로이스의 영향 때문에 그렇다.[4] 가뜩이나 쪼들리는 상황이니 이런 거 만들지 말고 ICBM이나 SLBM을 사용하든가 아님 B-52를 AGM-86B의 셔틀로 만들어서 팡팡 날려도 충분히 소련을 때려잡을 수 있다는 논리였는데 이게 실질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방법이긴 했다. 게다가 소련의 MiG-25 1대가 일본으로 망명하면서 걔네들의 중저고도 방공망이 절대로 물렁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이는 B-1이 위 아래 어떤 고도로 비행하던 간에 생존율이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고 아니나 다를까 미 공군은 1988년 마지막 기체가 인도되기도 훨씬 전에 B-1B가 소련의 방공망에 생각보다 취약하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었다. 한편 이 무렵에 ATB (Advanced Technology Bomber)라는 새로운 폭격기의 개발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시작됐는데 이게 바로 B-2의 모태가 되었고 결국 ATB가 성공하기만 한다면 B-1은 있으나 마나니까 알아서 판단하라는 의미이기도 했다.[5] 추정되는 원인으로는 F-15E형이 개발 되기전에 미군이 운용하고 있는 F-15C/D 계열이 모두 P&W가 독식하고 있던 터라 독점을 우려한 나머지 암묵적으로 GE의 F110 엔진을 F-16 계열에 많이 밀어주었다. 이후 F110 엔진은 1997년 F-15E에 적용 테스트를 무리없이 소화하긴 했으나 국방예산 감축 등의 문제로 실제 미 공군의 F-15 계열에 장착되어 작전에 투입되지는 못했지만 이후 대한민국 공군이 선택한 F-15K 등의 해외 수출형 모델에 거의 대부분 채택되어 체면을 살리게 된다.[6] 개발사 Rockwell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개발비에 대해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았던 상황이라 가변익을 포기한 고정익 형태 로 수정할 것을 제안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급유기 노릇까지 겸하게 만들면 어떻겠냐는 애처로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 공군은 "이왕 이렇게 된 거 더이상 추한 꼴 보이지 맙시다"라며 일갈했다고 한다(...)[7] 엔진 1개의 팬 블레이드가 박살나면서 파편이 엔진 포드를 뚫고 나갔는데 착륙해보니 그 엔진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8] 엔진에 화재 발생과 함께 자동으로 소화기가 작동했다.[9] B-1B의 승무원은 총 4명으로 할당되어 있고 사출좌석도 4개뿐인데 하필이면 이 날은 교관과 학생 조종사가 1명씩 더 탑승했고 그들에게는 탈출할 방법이 없었다. 사출좌석에 앉은 4명 가운데 부조종사를 포함한 3명은 안전하게 탈출했지만 조종사는 사출좌석의 오작동으로 사출되는 순간 기체와 충돌하여 즉사했다.[10] 이 기체는 1994년 독일의 공군기지에 착륙도중 브레이크 과열로 불이 나서 랜딩기어를 불고기로 만들어 먹은 이력이 있었다.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