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
Fifth Iserlohn Offensive · 第5次イゼルローン攻防戦'''
날짜
우주력 792년, 제국력 483년 표준력 5월 6일 ~ ?
장소
은하제국이제르론 회랑 알테나 성계 이제르론 요새
교전 당사자
[image]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image]
[image] '''자유행성동맹''' [image]
지휘관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
라인하르트 폰 뮈젤
시드니 시톨레
드와이트 그린힐
알렉산드르 뷰코크
양 웬리
병력
은하제국군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
함선 13,000척, 장병 불명
이제르론 요새 주둔군
장병 불명
이제르론 요새
자유행성동맹군
함선 51,400척, 장병 6,000,000 명
피해 규모
불명
불명
결과
자유행성동맹군의 패배
1. 개요
2. 배경
2.1. 동맹군의 출정과 시톨레의 계략
3. 전투
3.1. 제국군의 대응과 전투의 시작
3.2. 전투의 시작과 동맹군의 작전
3.3. 동맹군의 맹공
4. 희생
5. 이후
6. 이후의 이야기
7. 관련 문서

은하영웅전설 외전 <황금의 날개>의 에피소드
라인하르트 폰 뮈젤 1차 암살미수사건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

라인하르트 폰 뮈젤 3차 암살미수사건
역대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
제1~4차 이제르론 공방전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

1. 개요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외전 1권 <황금의 날개> 3장 <황금의 날개>
    • 후지사키 류 코믹스 은하영웅전설 17화
  • 시기: 우주력 792년, 제국력 483년 5월 6일 6시 45분 ~ ?
은하영웅전설의 전투. 외전 <황금의 날개>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이다. 라인하르트 폰 뮈젤 3차 암살미수사건과 같이 진행된다.

2. 배경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대참패한 은하제국은 제국령과 동맹령을 연결하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인 이제르론 회랑이제르론 요새를 떡하니 건설하였다. 동맹에서 제국으로 침공하려면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하는 방법을 빼고는 페잔 회랑을 경유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동안 페잔 자치령에서 경제력과 외교력을 동원하여 "이곳은 당신들이 군사적 목적으로 쓸 수 있는 통로가 아님"을 똑똑히 각인시켜 놓았으므로 자유행성동맹 입장에서는 저 이제르론 요새를 넘지 못하면 제국령으로 침입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제국군이 이제르론 요새를 거점으로 삼아 동맹령 원정작전을 자주 수행했기 때문에 동맹군 입장에서는 이제르론 요새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다만 갈 데까지 간 거함거포주의의 상징인 이제르론 요새는 함포사격으로는 피해를 줄 수 없는 두터운 장갑을 갖추고 있었고, 여기에 1만 척 이상의 주둔함대와 강력한 요새주포 토르 하머까지 있었기에 앞선 네 차례의 공세는 동맹군이 일방적으로 박살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동맹 입장에서는 이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늘리고 싶지 않았고, 이에 대병력을 동원하여 이제르론 공략 사업에 착수하였다. 이 원정사업은 선거를 의식한 역대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와도 관련이 있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선거가 무엇인지 모르는 은하제국군 장병들은 '''뭔진 몰라도 선거철이 되면 동맹의 호전성과 전투력이 급증한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아예 제국 사관학교에서는 반란군의 선거라는 것과 대규모 전투의 관련성에 대한 논문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2.1. 동맹군의 출정과 시톨레의 계략


이번에는 반드시 요새를 함락하기를 원했던 자유행성동맹군은 약 51,400척의 함정과 장병 600만에 달하는 대규모 함대를 꾸려 요새 공략부대를 편성하고 우주함대 사령장관 시드니 시톨레 대장이 작전 사령관을 맡고 양 웬리 소령이 그의 부관으로서 참전하였다. 대치하던 제국군 요새 주둔함대는 13,000척이었다.
그간 이제르론 요새에서 벌어진 전투들은 제국군이 요새에서 출동하여 동맹군을 맞아 싸우다 동맹군을 이제르론 요새의 주포, 토르 하머의 사정거리 내로 점차 끌어들이고 동맹군이 사정거리에 포착되면 토르 하머가 동맹군을 한 차례 도륙낸 뒤 주둔함대가 마무리를 짓는 형식이었다.
5월 2일, 동맹군 총 기함 '헥토르'에서 열린 작전회의에서 시톨레 대장은 과거 네 번이나 뼈저리게 경험한 이 최악의 굴레에서 벗어날 작전안을 입안할 것을 휘하 함대 사령부에 전파하였다. 부관 양 웬리 소령의 상세한 작전 설명이 끝나자 각 함대 제독과 참모진들은 상당히 놀라는 반응을 보였고 작전 성공에 자신을 가지게 된다.[1]

3. 전투



3.1. 제국군의 대응과 전투의 시작


우주력 792년 표준력 5월 4일, 동맹군은 이제르론 요새 인근 공역에 도달하였고 라인하르트 폰 뮈젤 소령이 함장을 맡은 구축함 에름란트 II호가 초계활동 중 이를 포착하여 요새에 보고하였다.
5만척에 달하는 대규모 함대가 출현하였다는 보고에 요새 사령부는 처음에는 나이 어린 소령이 놀라서 보고를 과장한 것 아니냐며 비웃었으나 얼마 뒤 사방에서 빗발쳐 올라오는 보고에 뮈젤 소령의 보고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급히 작전회의를 개최하여 향후 대응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둔함대 사령부와 요새 사령부간 알력 다툼에 회의는 곧 자존심 대결과 상호비방의 추악한 싸움으로 번졌고,[2] 결국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주둔함대가 출격하여 동맹군을 요새주포 사정권으로 끌어들인다는 고전적인 작전을 채택하였다.

3.2. 전투의 시작과 동맹군의 작전


5월 6일,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는 작전에 따라 2시 50분 출격하여 요새 전방 108만 km[3] 지점에 좌우로 진영을 전개하였고 6시에 동맹군 함대를 포착한 뒤 6시 45분에 선제 공격을 감행하였다.
숫적으로 4배 이상 많은 적군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거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이제르론 회랑이 협소한 덕분에 제국군은 다소 안정적으로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 사령관 바르텐베르크 대장은 압도적인 적 함대의 포화를 버티며 요새로 퇴각할 시기를 재고 있었지만 동맹군의 화력이 워낙 압도적인 탓에 제국군이 수세에 몰렸고 바르텐베르크 대장은 속이 타들어가면서도 최적의 시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8시 50분, 바르텐베르크 대장은 함대에 후퇴지시를 하달하였고 이대로 제국군의 작전이 성공할려는 찰나, 동맹군이 제국군에 후퇴에 맞춰 저돌적인 돌진을 개시하였다. 동맹군의 시톨레 대장은 제국군의 유인작전을 미리 간파하고 제국군이 퇴각한다면 아군 함대를 제국 함대에 최대한 근접시켜 병행추격을 감행하여 전투를 근접전 양상으로 지속시켰고 이에 제국군은 아군 오인사격을 우려하여 토르 하머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채로 요새 근방까지 적군의 진출을 허용하고 만다.

3.3. 동맹군의 맹공


이제르론 함대 사령부는 물론 요새 사령부 역시 큰 충격에 빠졌다. 요새 코앞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자 제국군의 전술적 우위는 상당수 봉쇄되었고 교전중 발생하는 다량의 파편들이 요새 외벽에 충돌하면서 피해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격추된 스파르타니안이 요새 포탑과 충돌하여 파괴되는 상황까지 오자 요새 사령관 클라이스트 대장은 함대 사령부의 실책을 비난하며 크게 분노하였으나[4] 이미 상황은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한편, 작전이 성공하자 시톨레 대장은 전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지만 부관 양 웬리 소령은 적 사령관이 '''아군 1명을 희생시키고 적군 4명을 무찌른다는 합리화로 아군 오사를 각오하고 요새주포를 가동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시톨레 대장은 확실히 이런 점도 감안하고 있었기에 제국군이 폭주하기 전에 결판을 내기 위해 사전에 액체 헬륨과 우라늄 238 미사일을 잔뜩 실어둔 무인함을 요새 외벽에 돌입시켜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데 성공했으나 이 일로 '''요새 사령부가 이성을 상실'''해버리고 만다.

4. 희생


동맹군 함대가 요새에 육박했던 당시 요새 사령관 클라이스트 대장은 제국 역사상 이렇게까지 요새측에 수세에 몰렸던 적이 없었다며 크게 초조해있던 상황이었다. 자신의 명예에 큰 상처를 입을 것을 걱정하던 클라이스트 대장은 무인함선의 공격으로 역사상 요새가 처음 공격을 당해 타격을 입자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다 '''토르 하머를 가동할 것을 명령하였다.'''
아군 피해가 막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휘하 참모진들이 크게 놀라 반대하였으나 클라이스트 대장은 아군 피해를 우려하여 주포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요새가 함락될 것이고 이는 곧 제국 본토가 노출되어 더욱 큰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였고 결국 참모진도 이에 수긍하여 요새주포를 가동하였다.
많은 아군과 더 많은 적군이 소멸되자 전장은 제국군과 동맹군 어느 한 쪽을 가리지 않고 공포와 경악의 감정이 모두를 사로잡았다. 바르텐베르크 대장은 큰 분노를, 시톨레 대장은 크게 경악하였고 상황이 이렇다면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전투를 중지시키고 함대를 즉각 철수시켰다.

5. 이후


동맹군은 남은 함대를 재편성하여 이제르론 회랑을 벗어나 본토로 귀환하였다. 제국군은 이미 입은 피해가 너무 심하여 퇴각하는 동맹군을 추격할 생각도 하지 않고 남은 함대를 정리하여 요새로 퇴각하였다.
자유행성동맹군은 패배하긴 했으나 사상 처음으로 이제르론 요새에 대한 유효한 공략법을 선보이고 성과를 낸 시톨레 대장의 공적을 인정하여 그를 원수로 승진시켰다.
은하제국군은 승리하긴 했으나 적의 작전에 말려들어 최악의 사태를 초래한 바르텐베르크 대장과 막대한 숫자의 아군 함선과 장병들을 희생시킨 클라이스트 대장의 책임을 물어 사령관직에서 해임시켰다. 클라이스트 대장은 아예 명예퇴직으로 군직에서 잘렸고 바르텐베르크는 한직으로 축출당했다.
여담으로 라인하르트 폰 뮈젤그레고르 폰 크룸바흐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였으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의 적절한 도움과 본인의 활약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상세한 설명은 라인하르트 폰 뮈젤 3차 암살미수사건 항목을 참조.

6. 이후의 이야기


시톨레 대장이 선보인 이 전술은 훗날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도 모습을 보였으나 이에 더 철저하게 대비한 제국군의 방비에 막혀 실패하였다. 더불어 이후 동맹군 제독들이 즐겨 이용한 무인함 전술의 효시가 되는 작전이었다.

7. 관련 문서



[1] 회의가 끝난 후 시톨레 대장은 양 웬리 소령이 요새 공략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의견을 물었는데, 양 웬리 소령은 힘으로 공략하는 것은 난제이고 공략이 성공하더라도 요새에 큰 피해가 가해져서는 향후 전략 전개에 문제가 있음을 주장하며, 가능한 '''피해 없이 요새를 확보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2] 요새 사령부의 함대측이 출동하여 적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의견에 함대 사령부는 적이 아군보다 4배가 많은데 나가 싸우는게 말이 되냐고 응수했고 요새 사령부는 이에 대해 불리하면 요새로 도망칠 궁리나 한다며 함대를 비난하고 함대 사령부는 요새 사령부를 안전한 곳에서 전쟁놀이나 즐기는 겁쟁이 족속들이라며 비난하였다. 이를 말려야하는 양측 사령관은 참모들이 내뱉는 주장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휘하 참모들을 꾸짖는 척을 하며 회의를 마무리지었다.[3]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판에서는 10.6광초, 318만km.[4] 일개 함재기 따위와 요새 포탑이 1:1로 맞교환되는 상황은 결코 제국군에 이득이 아니다. 때문에 클라이스트는 퇴각도 제대로 못해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며 함대를 마구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