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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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圭昌
1925년 11월 22일 ~ 2002년 10월 12일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창녕(昌寧)[1].

2. 생애


조규창은 1925년 11월 22일 경상북도 영천군 지곡면 삼창동(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 현고마을[2]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상학과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윌밍턴 캠퍼스 경제학과에 편입하여 그곳을 졸업하였다. 이후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대학원 국제경제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 상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유엔군사령부 민사부장을 지냈다. 이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재미교포 실업가로서 활동하며 재미한인상공회의소 부회장, 한미통신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 다시 귀국하여 아세아기술개발회사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으며, 곧 정계에 입문하여 신민당에 입당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포항시·영일군·울릉군·영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정무식 후보와 무소속 권오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7년 미국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자서전 『Why Not the Best?』를 번역하여 『지미 카터 自敍傳 : 왜 最善을 다 하지 않는가?』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위와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정무식 후보에 설욕하고 무소속 권오태 후보와 함께 당선되었다. 이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역대 국회의원 선거 사상 유일한 야당 출신 의원의 당선 사례라고 한다.# 10대 국회에서 '40만 재미교포의 경제활동을 지원해달라'는 발의를 하기도 해서 잠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후 1981년 민주한국당이 창당되자, 이에 입당하였다. 그해 3월 25일 열린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한국당 후보로 포항시·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진우 후보와 한국국민당 이성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 살던 중 2002년 10월 12일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73
제9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제3선거구[3])
신민당
34,281표 (18.43%)
낙선 (3위)

1978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제3선거구[4])
신민당
'''66,868표 (29.28%)'''
'''당선 (2위)'''

198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제4선거구[5])
민주한국당
16,856표 (9.01%)
낙선 (4위)

[1] 25세손 '''규(圭)''' 희(喜) 재(在) 기(基) 항렬.[2] 인근의 귀호리·금호리와 함께 창녕 조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조병화·조재만, 조규설 전 국회의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3] 포항시·영일군·울릉군·영천군[4] 포항시·영일군·울릉군·영천군[5] 포항시·영일군·울릉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