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의 꿈

 

1. 개요
2. 내용
3. 기타


1. 개요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편에 실린 대표적인 '''꿈 이야기'''로, 조신몽(調信夢), 조신지몽(調信之夢)이라고도 한다. 우리 고전문헌에서 일장춘몽 속의 허무한 인생을 그린 '''원조 격''' 작품이니, 중국의 한단지몽, 남가일몽에 못지 않게 우리 조상님들 또한 꿈 이야기에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 플롯은 우리 국문학사상 전기체(傳奇體) 소설의 효시라 일컫는 조선시대 매월당 김시습금오신화에 실린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에서도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중-후반기에 이르러 꿈 결말모에속성을 가미하여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 서포 김만중구운몽 되시겠다.
하지만 꿈 속에서는 세속적 욕망에 매우 충실하고 일장춘몽은 그저 형식적 교훈으로만 보이는 후대의 몽자류 소설과 달리, 조신의 꿈은 불교적인 주제를 잘 담은 비극적인 작품이다.

2. 내용


주인공은 신라승려 조신(調信). 조신은 본디 세달사(世達寺)[1]에 있었는데, 절의 장원(莊園)이 명주(溟洲 현 강릉)에 있었으므로 파견되어 장원을 관리하였다.
조신은 명주 태수[2] 김흔(金昕, 803-849)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하여 낙산사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그 여인과 맺어지게 해주십사 하고 남몰래 기도하였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연분이 맺어지기는커녕 다른 남자와 혼사가 정해졌다는 소문이 들릴 뿐이었다. 조신은 밤중에 불당에서 관세음보살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사모하던 낭자가 제 발로 절에 나타나 불당 문을 열고 조신을 찾아오지 않는가.
김씨 낭자 또한 부모가 정한 혼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우연히 만난 조신에게 연정을 품고 과감히 집을 나온 것. 그리하여 두 사람은 그대로 도피하여 부부의 연을 맺고 가정을 일구었다.
두 남녀는 40년간 같이 살면서 자식들 5명을 낳았으나 집은 서발 장대 거칠 것이 없는 판이었다. 나중에는 그 보잘것없는 누옥도 잃고 온 가족이 함께 떠돌아다니며 구걸로 먹고 살기를 10년간 했다. 어느 날 해현령(蟹峴嶺) 고갯길을 넘어가는데 15살 된 큰아이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죽자, 부부는 대성통곡을 하며 시신을 길 옆에 묻었다. 그 뒤 남은 가족들이 우곡현(羽曲縣)에서 풀을 엮어 집으로 삼아 구걸로 먹고 살았다. 부부는 늙어서 움직이기도 힘든데, 어느 날 10살 된 딸이 마을에서 구걸을 하다가 에게 발목을 물려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부부가 이 꼴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눈물을 흘리는데 아내가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아름답고 젊었으며 의복도 깨끗했습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살아온 세월이 벌써 50년이니 참으로 깊은 인연입니다. 그러나 병은 깊어가는데 굶주리며 추위에 떨기를 피할 수 없으니, 이제는 보잘것없는 음식이라도 제대로 빌어먹지도 못하여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꼴을 당해도 돌보지도 못하는데 언제 부부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얼굴이며 밝은 웃음도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지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언약도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가지처럼 지나갔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예전의 기쁨이 바로 근심의 뿌리였습니다. 다 함께 굶어죽기보다는 서로 헤어져 상대방을 그리워함만 못할 것입니다. 좋다고 취하고 나쁘다고 버림은 사람 마음에 차마 할 짓이 못 되지만, 인연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헤어지고 만남에도 명이 따르는 것이지요. 바라건대 이제 헤어집시다."
조신은 아내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각자 아이들을 둘씩 데리고 헤어지기로 하였다.[3] 떠나기 전에 아내가 말하였다.
"저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두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조신이 꿈에서 깨어났다. 새벽빛이 희뿌옇게 밝아오는데 머리카락과 수염이 새하얗게 세어버렸다. 마치 한평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겪은 듯 세상사에 뜻이 사라지고 재물에도 관심이 없어졌다. 또한 자기 앞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웠다.
조신이 돌아가는 길에 꿈 속에서 큰아이를 묻은 곳에 들러 땅을 파보았더니 돌미륵이 나왔다. 조신은 미륵상을 물에 씻어 가까운 절에 봉안하고 세달사로 돌아와 소임을 내려놓은 뒤, 정토사(淨土寺)를 세우고 부지런히 선행을 하며 살았다. 이후 조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조신이라는 사람이 스님으로 살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운 좋게 그 여자도 조신에게 호감이 있어서 둘은 사실상 야반도주를 해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밑천 없이 대충 가정부터 만들었으니 둘 다 가난에 허덕이며 수십 년간 살다 끝내 첫 아이까지 잃고, 자식들은 구걸로 먹고 살다가 개한테 물리는 지경에 처한다. 조신 부부는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서로가 만남이 바로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하고 이혼하기로 한 것. 근데 여기까지 전부 다 꿈이었고, 조신은 깨달음을 얻어 속세에 관심을 잃은 후 다른 절(정토사)을 세우고 선행을 베풀며 살다 어찌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과연 불교에 기반을 둔 삼국유사의 집필취지에 부합하는 불교식 교훈과 결말로 끝난 이야기라 하겠다.

3. 기타


춘원 이광수가 이 작품을 대단히 좋아해서 중편소설 을 썼다. 이 소설의 배경은 똑같이 신라시대지만 TV 문학관에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바꾸어 방송하였는데, 각색을 대단히 잘했다고 평가받는다. 마지막에 나오는 훈남이 임성민.
신상옥 감독은 이광수의 소설 <꿈>을 굉장히 좋아해서 <꿈>을 두 차례나 영화화했는데, 1954년에는 최은희와 황남 주연이었고, 1967년에는 신영균과 김혜정 주연이었다.
배창호 감독도 1990년에 <꿈>을 영화화했지만, 이광수 소설보다는 삼국유사를 원작으로 했다. 안성기황신혜 주연이고 정보석최종원, 윤문식도 나온다. 시나리오는 배창호 감독과 이명세 감독이 같이 썼다.
현실-꿈-현실의 플롯을 가진 소설이 후에 금오신화를 포함해서 많이 등장하고 구운몽에서는 확연히 오마주를 담은 것을 볼 때, 이 이야기는 당시에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듯하다.
태수 김흔의 생몰년을 볼 때, 이 이야기는 9세기 초중반쯤 창작되거나 실제로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가 생겨났을 시점에서 수십년이 지났을 때쯤인 9세기 말, 이야기의 배경이 된 세달사에서는 어떤 애꾸눈 청년이 출가해서 잠시 몸을 의탁하게 되고, 이 청년은 훗날 절을 떠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데... 시기상으로만 보자면, 아마 그 역시 조신의 이야기를 접해서 주변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을 가능성도 있겠다.

[1] 삼국유사 판본 중에는 세규사(世逵寺)라고 쓴 것도 있으나, 다른 판본들과 비교해보면 규(逵)는 달(達)을 잘못 쓴 것이다. 절 이름은 세달사가 맞는다. 하지만 삼국유사으 ㅣ판본 중 '세규사'라고 쓴 것도 있으므로 인터넷에서도 표기가 세규사/세달사로 엇갈린다. 고려시대에는 흥교사(興敎寺)라고 불렀는데, 궁예가 집을 떠나 처음으로 출가한 절이다. 후에 폐사가 되어 잊혀졌으나, 2012년에 강원도 영월군에서 터가 발굴되어 위치가 확인되었다.[2] 太守, 옛날 중국의 지방관(地方官)을 이르는 말로 한국과 일본도 한때 이 관직명을 사용했었다.[3] 헤어지자고 말하는데 기뻐하다니, 아무래도 힘들게 살아오면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져버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