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의 꿈
1. 개요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편에 실린 대표적인 '''꿈 이야기'''로, 조신몽(調信夢), 조신지몽(調信之夢)이라고도 한다. 우리 고전문헌에서 일장춘몽 속의 허무한 인생을 그린 '''원조 격''' 작품이니, 중국의 한단지몽, 남가일몽에 못지 않게 우리 조상님들 또한 꿈 이야기에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 플롯은 우리 국문학사상 전기체(傳奇體) 소설의 효시라 일컫는 조선시대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실린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에서도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중-후반기에 이르러 꿈 결말과 모에속성을 가미하여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 되시겠다.
하지만 꿈 속에서는 세속적 욕망에 매우 충실하고 일장춘몽은 그저 형식적 교훈으로만 보이는 후대의 몽자류 소설과 달리, 조신의 꿈은 불교적인 주제를 잘 담은 비극적인 작품이다.
2. 내용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조신이라는 사람이 스님으로 살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운 좋게 그 여자도 조신에게 호감이 있어서 둘은 사실상 야반도주를 해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밑천 없이 대충 가정부터 만들었으니 둘 다 가난에 허덕이며 수십 년간 살다 끝내 첫 아이까지 잃고, 자식들은 구걸로 먹고 살다가 개한테 물리는 지경에 처한다. 조신 부부는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서로가 만남이 바로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하고 이혼하기로 한 것. 근데 여기까지 전부 다 꿈이었고, 조신은 깨달음을 얻어 속세에 관심을 잃은 후 다른 절(정토사)을 세우고 선행을 베풀며 살다 어찌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과연 불교에 기반을 둔 삼국유사의 집필취지에 부합하는 불교식 교훈과 결말로 끝난 이야기라 하겠다.
3. 기타
춘원 이광수가 이 작품을 대단히 좋아해서 중편소설 꿈을 썼다. 이 소설의 배경은 똑같이 신라시대지만 TV 문학관에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바꾸어 방송하였는데, 각색을 대단히 잘했다고 평가받는다. 마지막에 나오는 훈남이 임성민.
신상옥 감독은 이광수의 소설 <꿈>을 굉장히 좋아해서 <꿈>을 두 차례나 영화화했는데, 1954년에는 최은희와 황남 주연이었고, 1967년에는 신영균과 김혜정 주연이었다.
배창호 감독도 1990년에 <꿈>을 영화화했지만, 이광수 소설보다는 삼국유사를 원작으로 했다. 안성기와 황신혜 주연이고 정보석과 최종원, 윤문식도 나온다. 시나리오는 배창호 감독과 이명세 감독이 같이 썼다.
현실-꿈-현실의 플롯을 가진 소설이 후에 금오신화를 포함해서 많이 등장하고 구운몽에서는 확연히 오마주를 담은 것을 볼 때, 이 이야기는 당시에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듯하다.
태수 김흔의 생몰년을 볼 때, 이 이야기는 9세기 초중반쯤 창작되거나 실제로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가 생겨났을 시점에서 수십년이 지났을 때쯤인 9세기 말, 이야기의 배경이 된 세달사에서는 어떤 애꾸눈 청년이 출가해서 잠시 몸을 의탁하게 되고, 이 청년은 훗날 절을 떠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데... 시기상으로만 보자면, 아마 그 역시 조신의 이야기를 접해서 주변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을 가능성도 있겠다.
[1] 삼국유사 판본 중에는 세규사(世逵寺)라고 쓴 것도 있으나, 다른 판본들과 비교해보면 규(逵)는 달(達)을 잘못 쓴 것이다. 절 이름은 세달사가 맞는다. 하지만 삼국유사으 ㅣ판본 중 '세규사'라고 쓴 것도 있으므로 인터넷에서도 표기가 세규사/세달사로 엇갈린다. 고려시대에는 흥교사(興敎寺)라고 불렀는데, 궁예가 집을 떠나 처음으로 출가한 절이다. 후에 폐사가 되어 잊혀졌으나, 2012년에 강원도 영월군에서 터가 발굴되어 위치가 확인되었다.[2] 太守, 옛날 중국의 지방관(地方官)을 이르는 말로 한국과 일본도 한때 이 관직명을 사용했었다.[3] 헤어지자고 말하는데 기뻐하다니, 아무래도 힘들게 살아오면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져버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