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디비전

 

1. 영국의 밴드
2. 음반 목록
2.1. 정규 앨범
2.2. 싱글
2.3. 편집 앨범
2.4. 라이브 앨범
4.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1. 영국의 밴드



[image]
(왼쪽부터 스티븐 모리스, 피터 훅, 이안 커티스, 버나드 섬너)
Joy Division.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 활동했던 영국 맨체스터 출신 4인조 포스트 펑크 밴드. '''그리고 뉴 오더의 전신'''.
사실 맨체스터는 음악으로도 유명한 곳인데 그 유명세의 시발점 중 하나다. 펑크의 붐이 한창이던 1977년, 이미 맨체스터에서 활동하고 있던 섬너, 모리스, 훅이 하급 공무원 생활을 하며 노래를 부르던 이안 커티스를 발견 해 영입하면서 결성되었다. 초기엔 바르샤바[1] 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다가 Warsaw Pakt라는 밴드랑 혼동되는 걸 피하기 위해 몇 차례 개명 후 지금 이름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지금 이름은 나치 시절을 다룬 소설에 등장하는 위안부에서 따왔다고 한다. (...) 그리고 이들의 첫 EP인 An Ideal for Living의 앨범 커버에는 북을 치는 히틀러 유겐트 그림이 그려져 있다. 물론 파시스트 밴드는 아니였지만, 이 때문에 큰 홍역을 치루기도.
바르샤바 시절 RCA 레코드랑 계약한 상태였지만 미적지근한 반응과 실망스러운 녹음에 계약을 해지하고 지금 밴드명을 바꾼 뒤 독립 레이블에서 EP를 내놓게 된다. 그리고 다시 런던쪽 메이저 레이블하고 계약하려고 했다가 지역 명사 토니 윌슨[2]이 이들을 주목해 레이블을 만들어 끌어들였는데, 그 레이블이 바로 팩토리 레코드다.
일단 펑크에 기초한 음울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으며 (더불어 가사도 상당히 어둡다. 이안 본인의 심경이 많이 녹아 있는 편.), The Doors짐 모리슨데이빗 보위가 록 계로 다시 끌어들인 프랭크 시나트라 식 크루닝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이안 커티스의 창법[3]과 밴드의 이미지는 고딕이라는 하나의 서브 컬쳐 문화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4] 활동 당시 Unknown PleasuresCloser 이 두장의 정규 앨범만 남겼고[5] 국지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이지만 모두 걸작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들 특유의 강렬하고 어두운 음악은 워낙 임팩트가 강해서 잊혀질 만하면 이들과 비슷한 음악을 하는 그룹들이 유령처럼 나타나곤 하였다. 현재는 인터폴(Interpol), 디 에디터즈(The Editors), 더 엑스엑스(The xx) 화이트 라이즈등이 이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인터폴은 그야말로 '조이 디비전의 재림'이라 불리는 그룹.
이안 커티스는 노래를 부를때 오징어처럼 막춤을 추는 것으로 유명한데[6], 언제선가부터 라디오헤드톰 요크는 이 춤을 따라하고 있다[7].
그러나 이 밴드의 유명세는 음악외적인 사실에서도 비롯된다. 바로 너바나[8]와 같은 천재 보컬리스트의 요절. 조이 디비전의 보컬인 이안 커티스가 밴드의 미국 진출 전날인 1980년 5월 18일 자택에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되었던 것이다.[9] 당시 드러머 스티븐의 연인이었던 질리언을 포함한 밴드의 멤버들은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안을 기다리던 카페에서 그의 부고를 들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그들은 우울한 마음이라도 추스르기 위해 관광차 미국으로 갔고 당시 미국의 클럽에서 유행하던 신디사이저가 적극적으로 가미된 음악을 듣고 충격받아 [10] 다시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는데 그것이 바로 신스팝의 전설적인 밴드 뉴 오더의 시작이었다. 조이 디비전의 2집이자 이안 커티스의 유작인 셈인 <Closer>는 이안의 죽음 2개월 후에 발매되었다.
파란만장한 삶으로 인해 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가 두 편이나 만들어졌다.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 컨트롤)
비극적인 삶과 특이한 보컬, 위에서도 언급된 파괴적인 퍼포먼스로 유명한 이안 커티스 외에도 다른 멤버들 역시 쟁쟁했고 사운드와 연주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흥미롭고 뛰어난 밴드다. 특히 버나드 섬너의 무거우면서도 오밀조밀하게 짜여져가는 기타 [11]피터 훅의 베이스는 당대 평론가들에게 포스트 펑크 록을 재정의했다는 평을 들었고, 그의 독특한 피킹은 조이 디비전과 뉴 오더의 상징이 되었다. 스티븐 모리스의 분해된 드럼키트[12]에서 들려주는 분절적인 연주와 라이브에서의 뛰어난 드럼실력[13] 역시 찬사를 받았으며 전담 프로듀서 마틴 하넷 역시 천재로 유명하다.[14] 한마디로 멤버들 뿐만 아니라 프로듀서까지 각자의 방면에서 천재급으로 추앙받는 스페셜리스트들. 이들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이안 커티스 사후 만들어진 뉴 오더만 봐도 알 수 있다.
참고로 영국인들이 무척 좋아하는 밴드들 중 하나라 한다. 어떤 한국 음악 평론가는 한국인이 산울림, 들국화에 대해 품는 감정하고 비슷하다고 정리했다.
만화 크로우의 작가도 조이 디비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영화 크로우 1편에선 나인 인치 네일스가 조이 디비전의 Dead Souls를 리메이크했다.
당시 초짜 시절이였던 사진 작가 안톤 코빈이 이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경력을 쌓았으며, 훗날 이안 커티스의 전기 영화 컨트롤을 만들기도 했다.
2019년부터는 조이 디비전 40주년을 기념해서 공식 채널에서 과거의 곡들로 만들어진 뮤비를 올리고 있는데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는 영상미로 팬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2. 음반 목록


※ 정규 앨범의 완성도를 중요시 했기 때문에, 기존 펑크 록의 관례와 달리 발표된 싱글들은 정규 앨범에 수록하지 않았다.

2.1. 정규 앨범



2.2. 싱글


  • "Transmission" (1979년)
  • "Atmosphere" (1980년)
  • "Komakino" (1980년)
  • Love Will Tear Us Apart[15] (1980년)
  • Atmosphere (1980년)

2.3. 편집 앨범


  • Still (1981년) - 미공개곡 모음집
  • Substance 1977-1980 (1988년) - 싱글 모음집. 상술했듯이 조이 디비전은 앨범 미수록 싱글이 제법 있기 때문에 조이 디비전 이해를 위해선 필수적으로 듣게 되는 앨범이다. 이건 뉴 오더의 동명 앨범에게도 적용되는데, 뉴 오더는 그나마 리마스터 재발매될때 부록으로 B사이드와 싱글이 수록돼서 나은 편.
  • Warsaw (1994년) - 본래 데뷔 앨범으로 출시할 계획이었던 음반
  • Permanent (1995년) - 베스트 앨범
  • Heart And Soul (2004년) - 정규 앨범과 미발표 음원을 모은 CD박스. 1997년 발매되었다가 조이 디비전 카탈로그가 리마스터 재발매되었을떄 다시 나왔다. Substance 1977-1980 수록곡도 들어있다.
  • Let The Movie Begin (2006년) - 라이브와 아웃테이크 모음집
  • The Best Of Joy Division (2008년) - 베스트 앨범+존 필 세션 라이브

2.4. 라이브 앨범


  • PRESTON 28 FEBRUARY 1980 (1999년)
  • The Complete BBC Recordings (2000년)

3. 소설 죠죠의 기묘한 모험 II 골든 하트/골든 링스탠드


[image]
ジョイ・ディヴィジョン
위쪽의 철구 같은 것이 조이 디비전이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 황금의 바람 소설판 골든하트/골든 링의 등장인물 솔리올라 로페즈의 스탠드다.
양 손으로 만진 것을 순간적으로 바꿔넣는 스탠드. 시간차 교체도 가능해서 미리 만져뒀다가 폭탄으로 바꿔넣는 등의 트랩을 설치하거나 벽이나 바닥을 만져 이동할 수도 있다.
막판에 가서야 죠르노 일행에게서 살아남고 싶다는 일념으로 스탠드를 발현하지만 빠르게 사망. 자세한 묘사가 거의 없다.

4.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16]
현 닉네임은 JD로, 서클 'JoyDivision'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성인용 동인 CG집 위주로 작업하며, 10년 넘게 베르단디만 줄창 괴롭힌 고참.[17] 주 테마는 NTR와 능욕.
길쭉하게 뻗은 체형에 거유, 아크로바틱한 자세 묘사 등이 특징으로, 표정으로는 어쩔 줄 몰라하는 듯한 미소를 자주 그린다. 개인 취향은 주로 유부녀 쪽인 듯하다.
2018년 이후 픽시브 FANBOX 계정을 개설하여 리퀘스트받은 일러스트를 투고해왔으나, 2020년 1월에 업로드 지연을 사과하는 공지를 올린 이후 소식이 없는 상태다.
닉네임은 1항목의 조이 디비전으로 추정된다. 이 사람 CG집 이름이 1번 항목의 조이 디비전의 대표곡들인거 보면 빼도 박도 못하는 조이 디비전 덕후 인증.
[1]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 Low의 수록곡 Warszawa(바르샤바의 영어 표기)에서 따왔다.[2] 조이 디비전이 처음으로 TV 출연한 지역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였다. 이전에 자기가 진행하는 TV 프로에서 섹스 피스톨즈를 처음으로 출연시켜 영국의 펑크 열풍에 불을 지핀 사람이기도 하다. [3] 이안 커티스의 평소 목소리는 노래 부를 때와 정반대로 얇은 테너 목소리였다고 한다.[4] 그렇다고 조이 디비전을 큐어나 바우하우스처럼 화장하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밴드로 오해하면 안된다. 조이 디비전의 어두움과 삭막함이 고쓰록에 영향을 줘 그러한 밴드들이 생겨난거지 그들 스스로가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다.[5] 앨범에 실리지 않은 싱글이 꽤 있다. Love will tear us apart, transmission, atmosphere 등. 명곡들이 많으니 듣고싶은 분이 있다면 싱글 모음집인 substance를 들어보자.[6] Northern Lights cassette magazine (1979) 의 인터뷰에서 춤은 노래의 감정과 가사의 내용을 표현하고자하는 방식이라고 한다.[7] 라디오헤드의 Scotch Mist 라이브를 보면 Ceremony의 커버가 있다.(이 곡은 뉴 오더로 바뀌고 나서 발표되었지만, 조이 디비전 시절에 이안 보컬로 녹음한 판본이 존재한다.) [8] 공교롭게도 커트 코베인은 이들의 Love Will Tear Us Apart를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러브송이라 코멘트한 바 있다.[9] 마찬가지로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기타리스트 리치 제임스역시 밴드의 미국 진출을 하루 남겨두고 묵었던 호텔에서 실종된다.[10] 원래 조이 디비전 시절에도 뉴웨이브신시사이저에 친화적인 밴드기도 했다. 이안 커티스크라프트베르크를 듣고 충격을 받아 멤버들에게 크라프트베르크와 신시사이저를 전파했다는 일화도 있고 이들의 2집 Closer은 완연하게 신시사이저를 흡수해 뉴 오더 음악을 예견케 하는 구석이 있다.[11] 당대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나면 더 스미스조니 마가 "영국에선 모두들 조이 디비전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들의 어두운 요소들 - 내가 그들처럼 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들은 전체 트랙의 어두움 속에서 무엇인가를 이끌어냈다. 어떤 의미에서 버나드 섬너는 80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기타리스트이자 송라이터 중 하나다. 조이 디비전이 없었다면 U2큐어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12] 프로듀서 마틴 하넷의 아이디어였다.[13] 라이브를 보면 밴드 특유의 기계적이고 주술적인 비트를 그대로 파워풀하게 구사해낸다.[14] 조이 디비전과 같은 팩토리 레코드의 또다른 간판밴드 해피 먼데이즈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1집 특유의 공간감과 프로그레시브함은 이 사람의 솜씨.[15] 이안 커티스의 묘비에 이 곡의 제목이 쓰였다. [16] 링크된 사이트 모두 후방주의.[17] 다만 후지오카 하루히배틀 스피리츠 소년돌파 바신의 등장 여캐 등을 다룬 것도 소수나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