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위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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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Adams Wickham, Jr.한국인은 나그네쥐와도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어도 따를 것이다.
(1928년 6월 25일~)
1. 개요
미국의 군인. 한미연합군사령관(1979-1983)[2] 과 육군참모총장(1983-1987)을 지냈다. 최종 계급은 육군 대장.
2. 생애
1928년 6월 25일에 뉴욕의 돕스페리에서 태어났다. 1946년에 미국육군사관학교를 진학하여 1950년에 졸업, 임관하였다. 1956년부터 1960년까지 육군사관학교에서 사회과학 교관을 맡기도 했다.
병과는 보병으로 처음에는 제18보병연대에 배속되었고 베를린에 주둔한 제6보병연대에서도 근무했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위탁교육으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았고 군내보수교육기관인 국방전쟁학교와 국방참모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나중에 제5기병연대 1전투단[3] 에서 복무할 때 다시 한국에 왔다.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기도 했다. 베트남전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기도 했다.
장관급 장교로 진급한 뒤에 주독미군 소속의 제3보병사단 제1여단장을 맡았다. 베트남군사원조사령부(MACV) 부참모장으로 포로 석방 협상을 맡기도 했고 제101공수사단장과 합동참모본부 수석본부장[4] 등을 거친 뒤에 대장으로 진급하여 1979년에 존 베시에 이어 주한미군의 최선임자인 한미연합군사령부 사령관이 되었다.
위컴이 부임한 뒤에 10.26 사건,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위컴 본인은 한국의 민주화를 지지했고, 신군부의 쿠데타 저지를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전두환을 견제하기 위해 수감 중이던 정승화 장군에게 생일케이크와 축하카드를 보내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한다.
위컴은 한국의 민주화가 실패하고 독재자가 나타나자 금세 기세가 꺾인 것을 두고 실망하여, 전두환이 육군 대장으로 진급한 다음날인 1980년 8월 8일에 <LA 타임즈>의 샘 제임스 기자와 AP통신의 테리 앤더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위컴은 전두환이 한국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마치 나그네쥐(레밍) 떼처럼 그의 뒤에 줄을 서고 그를 추종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만약 전두환이 합법적 방법으로 정권을 장악해 국민적 지지기반이 있음을 증명하고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정치 자유화보다는 국가안보와 내부안정이 최우선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내가 아는 민주주의를 실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참고로 저 발언에 나오는 '나그네쥐'란, 정확히는 북미 지역과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한 북유럽에 서식하고 있는 나그네쥐, 즉 '레밍'을 말한다. 즉 위컴은 한국인들이 단순히 쥐새끼 같다고 말한 게 아니라, 앞의 쥐들을 무조건 추종하여 물에 빠지는 레밍의 행태에 빗댄 것이다.
원래 해당 기사는 위컴의 신분을 '고위급 미군장성'이라고만 소개해 익명으로 보도했지만, 그 인터뷰를 보고 빡친 전두환에 의해 '그 장성'이 위컴이라는게 밝혀져서 일이 커졌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 미국 대사의 말에 따르면, 이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든 것은 전두환이 8월 8일 뉴욕 타임즈의 헨리 스코트 스톡스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군 고위관계자'를 위컴이라고 밝혀 익명성을 제거한 것 때문이었다. 서울발 기사는 미국 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이 기사가 한국 언론에 다시 보도되면서 기사 내용이 검열/왜곡되어 미국 정부가 전두환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둔갑해 물의를 더하면서 전두환은 환호했다. 이에 위컴은 자신의 견해가 잘못 전해졌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워싱턴과 서울에서 일고 있는 파장에 가장 당황했다.[5]
이에 미 국무부는 위컴의 발언을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이는 미국 정부의 뜻이기도 하다. 위컴의 해당 발언에 대해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존 앤더슨은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지미 카터 대통령이 위컴의 발언을 시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었다. 그러나 카터 역시 "한국인들은 그들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라도 (중략)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발언해 미국이 전두환을 사실상 지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위컴이 1996년에 대한민국 육군 제20보병사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했다고 시인하여 논란을 가져오고 있다. 다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인터뷰를 주한미군사령관의 정치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해서 신군부를 추종하는 당시 한국인의 국민성을 비판한 점을 보면, 위컴이 전두환 등 신군부의 일방적인 조작 보고에 의해서 군 투입을 승인했고 차후 실상을 알게 되어 크게 분노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정보력에 엄청난 예산을 쓰는 나라이므로 과연 실상을 몰랐을지 의문이다.
1983년에는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했으며, 1987년에 퇴역했다. 회고록으로 12.12와 미국의 딜레마가 있으며, 1999년 중앙M&B(현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정발됐으나 현재 절판 상태라 굳이 보려면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으로 가야 한다.
정복에 명찰을 절대 안 달고 다녔다고 한다. 미 육군과 공군은 규정상 부대 단위로 받는 약장(부대표창)들을 저 위치에 달고, 그 밑의 주머니 덮개에 명찰을 달아야 한다. 또한, 왼쪽 약기장 위의 CIB(Combat Infantry Badge)를 규정과 달리 만찬복에 다는 소형(miniature)을 달았는데, 칼라에 일부가 가려지는 걸 막기 위함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둘 다 복장 규정 위반이다.
3. 기타
2017년 7월 20일, 김학철[6] 이 '''국민은 레밍'''이라는 희대의 망언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다시 뜨고 있다. 존 위컴의 발언은 시간이 지나고 재평가되었지만, 이 사람의 발언이 재평가될 확률은 사실상 없다. 위컴의 발언은 당시 독재자의 사망 후에도 또 다시 군인들로 만들어진 독재정권을 수립하고 국민들이 이를 찬양한 것을 비판한 것이고 김학철은 그냥 비하 발언일 뿐이다. 더군다나 위컴은 미국인이었지만 이 자는 한국인이므로 더 죄질이 무겁고 미국인들을 비롯하여 과거의 서양인들은 대체적으로 동양인들을 무시하는 성향이 심해서 한국이나 중국 같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한 아시아 국가들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는 무시하는 분위기였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 다만 이 발언은 독재자를 지지하는 한국인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한 말이다.[2] 주한미군 사령관으로는 8대였고 한미연합사 사령관으로는 2대였다.[3] 영어로 battle group이며 5개 중대로 구성된다.[4] Director of the Joint Staff. 합동참모본부의 주요 본부장들(주로 2,3성 장군 및 제독들이 각 부처의 본부장. 간혹 준장급 장성들도 있다. 대개 국방부 민간 고위관료들이 보직하여 교차임무를 수행한다.)을 통솔하는 3성급 보직으로, 미군에서 이 보직에 오른다는 것은 사실상 대장 진급이 99% 확실하다는 뜻이다. 위컴 이후 주요 인물로는 노턴 슈워츠, 월터 샤프, 스탠리 매크리스털, 로이드 오스틴, 커티스 스캐퍼로티 등이 있는데, 위컴 이후로 이 보직을 거친 이들은 전원이 대장으로 진급했다.[5] <알려지지 않은 역사(윌리엄 글라이스틴 저.)>. 중앙M&B. 1999. p228.[6] 당연히 배우 김학철과는 다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