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전
- 게임 제작사 니혼 팔콤의 게임 시리즈 영웅전설 시리즈
-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전장 영원의 전쟁터
- 일본 해군의 함상전투기 영식함상전투기
- 모바일 게임 라스트오리진의 도전 컨텐츠 영원한 전장
- 일부 대학교에서 칭하는 '영어 전용 강의'의 줄임말 영어 강의
- 월드 오브 워쉽 게임 내의 영국 전함의 줄임말
1. 榮轉
榮轉
이전보다 더 좋은 자리로 옮겨감. 직책을 옮기는 일반적인 전보와는 다르다. 전보가 같은 수준의 직책에서 이동하는 거라면 영전은 승진을 겸한다. 혹은 꼭 승진이 아니더라도 좋다고 여기는 자리로 옮김을 뜻한다. 보통 수십년 간 활약해온 지도자가 은퇴를 할 때 그 동안의 실적을 인정하여 현장 은퇴의 의미로 더 높은 직급을 주는 것이다. 주로 스포츠 감독이 총감독으로 옮길 경우를 영전이라고 표현하는 편. 예를 들면 삼성 라이온즈 시절 김응룡 감독이나, 2015년 현역 은퇴한 신치용이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부사장행 등이 영전한 케이스.
반대 세력에 찍혀 해고되었다가 복직할 때 더 높은 자리를 주어 복직시킬 때에도 영전이라고 한다.[2]
그러나 항상 이전보다 좋은 자리로 가는 것만은 아닌데, 상층부에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인물을 직급은 이전보다 높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오히려 발휘할 수 없는 자리로 옮겨버릴 수도 있다. 형식상으로만 영전이지 '''사실상 좌천인 셈'''이다.[3]
2. 靈前
신이나 죽은 사람의 영혼을 모셔놓은 자리. "부모님의 원수의 목을 베어 영전에 바쳤다." 이런 용례로 쓰인다. 이럴 경우 영전은 위패나 무덤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3. 影殿
임금의 어진을 모시는 곳을 말한다.
4. 零戰
영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戦闘機(れいしきかんじょうせんとうき)의 준말. A6M 항목으로.
5. 榮典
「1」 영광스러운 전례.
「2」 경사스러운 의식.
「3」 『법률』 국가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그 공적을 치하하기 위하여 인정한 특수한 법적 지위.
이 단락에서는 「3」에 대해서 기술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는 저렇지만, 현실과는 괴리된 정의다.
대한민국에서 지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국가유공자는 물론, 지위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는 훈장도 영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국 같은 외국에서는 지위에는 해당하지만 공적과는 관계없을 수도 있는 작위도 영전으로 분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지방에서 명예시민, 명예군민 등을 지정하는 것처럼, 굳이 국가에 공적이 없어도 영전을 부여할 수 있다.
5.1. 서훈(敍勳)
명예칭호(title of honor)를 부여하는 것이다. 서구권에서는 주로 기사단(order)과 결합한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는 러시아에서도 구 러시아 제국 시절의 기사단을 군주국의 색채를 지우고 재활용하고 있다.
5.1.1. 기사단과 무관한 경우
5.1.1.1. 한국
5.1.1.1.1. 고려
훈관(勳官)과 공신호를 병용했다. 공신호에 관해서는 공신을 참고.
고려에서 사용했던 훈관의 칭호로는 상주국(上柱國), 주국(柱國), 상호군(上護軍), 호군(護軍), 상경거도위(上輕車都尉), 경거도위(輕車都尉), 상기도위(上騎都尉), 기도위(騎都尉), 효기위(驍騎尉)가 있다.[4]
5.1.1.1.2. 조선
개국~1900년까지는 1등공신, 2등공신, 3등공신, 원종공신이 존재했다. 상세는 공신을 참고.
5.1.1.1.3. 대한제국
위 표에 따라 대훈위, 훈X등, 공X등에 서훈하고, 그에 상응하는 훈장을 수여했다.
기사단이나 그에 해당하는 단체가 없었으므로 기사단과 무관한 경우로 분류하기는 했지만, 애매한 연결점은 존재했다. 당대 구미 각국 기사단은 국가원수나 그 배우자[9] 가 그 주군(sovereign)이나 대총관(grand master/mistress)이었는데, 이들은 해당 기사단의 주군 또는 대총관으로서 해당 기사단 최고 예장을 갖출 수 있었고 또한 해당 기사단원의 서훈을 전담했다. 대한제국에서도 금척대훈장·서성대훈장·이화대훈장·자응장·태극장·팔괘장의 주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황제는 당연히 그 서훈을 전담하면서 그 최고위 훈장을 패용할 수 있었고, 서봉장의 주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10] 황후는 당연히 그 서훈을 전담하면서 그 최고위 훈장을 패용할 수 있었다.[11]
5.1.1.1.4. 대한민국
국가유공자를 참고.
5.1.1.1.5. 북한
공화국영웅[12] 과 로력영웅[13] 을 참고.
5.1.1.2. 중국
5.1.1.3. 일본
2003년에 서훈은 폐지되었고, 훈장만을 수여한다. 따라서 이하에 기술하는 '서훈' 제도는 현행이 아니다.
5.1.1.3.1. 양로령(養老令)
5.1.1.3.2. 근대~2003년
5.1.2. 기사단(order)
각 기사단은 명목상으로는 군부대에 해당하므로, 그 단원은 명목상으로는 현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각 기사단별로 제복과 계급이 규정되며, 각 기사단의 각 계급별로 규정된 계급장[31] 과 녹봉[32] 이 수여된다.
5.1.2.1. 덴마크
5.1.2.2. 스웨덴
5.1.2.3. 영국
5.2. 수장(授章)
훈장, 포장, 기장 등의 휘장을 수여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영전은 대개는 구미의 영전을 기초로 한 것인데, 구미 본토에는 cross, medal, 그리고 order의 구분이 존재한다.
order는 상술한 대로 기사, 기사단 및 그 계급장을 의미한다.[36]
cross는 십자훈장(十字勳章)으로, 디자인에 십자가를 포함한 형태의 훈장이다. 당연히 주로 기독교 문화권 국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cross는 기사나 기사단과 관계없이 주로 기독교 문화권 국가에서 공훈이 큰 자에게 수여되는 게 보통이다.
medal은 훈장, 포장, 기장이란 뜻으로 번역되는데, 나라에 따라서, 또 경우에 따라서 그 훈격이 천차만별이다. 미국에서는 명예훈장, 대통령자유훈장, 의회황금훈장 같은 최고위 훈장들에 사용된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훈장보다 훈격이 낮은 포장, 기장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5.2.1. 각국의 휘장[37]
- 한국
대한민국 훈장
대한민국 포장
대한민국 기장
대한민국 표창
훈장(상훈)/북한
- 구 소련
- 미국
의회 명예 황금 훈장
명예 훈장
미국 국가 예술 훈장
퍼플 하트
- 영국
- 일본
일본 방위기념장
[1] 서훈에 부수하는 것은 서훈에 등재한다.[2]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되며 화려하게 중앙으로 컴백했던 윤석열.[3] 이는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주로 일어나는 형태인데, 일본은 문화상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최소한 겉으로 보이는 직급과 대우는 옮겨갈 자리가 더 높은 식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하는 건 '''우리도 당신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대우해 줄테니 당신도 더 이상 민폐끼치지 말고 나가 주시오'''라는 의미이니 이들도 대부분 퇴직을 선택한다.[4] 이상은 고려시대 史料 Database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제도의 원류인 당·송에는 이 밑에 비기위(飛騎尉), 운기위(雲騎尉), 무기위(武騎尉)가 있었다. 고려에서도 이들을 썼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5] 요건은 무공이 발군한 자[6] 서성대훈장을 패용한 자가 특별한 공로를 세우면 특지로 수여한다.[7] 이화대훈장을 패용한 자가 특별한 공로를 세우면 특지로 수여한다.[8] 문무관 중에서 태극1등장을 패용한 자가 특별한 공로를 세우면 특지로 수여한다.[9] 여성 전용 내지 여성이 주로 서훈되는 기사단인 경우에[10] 서봉장을 황후의 휘지로 수여한다고 규정한 게 바로 이 때문이다.[11] 대한제국이 모방한 당대 일본 제도도 그랬다. 메이지 천황은 그 자신이 주군인 국화장·욱일장·서보장의 제정을 당하여 국화장·욱일장·서보장을 '스스로 패용'하였으며, 쇼켄 황태후는 그 자신이 주군인 보관장의 제정을 당하여 보관장을'스스로 패용'했다.[1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1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14] 1876년 도입[15] 1890년 도입[16] 무공 발군한 자를 서훈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폐지되었다.[17] 1875년 욱일장 도입, 1888년 욱일동화대수장·보관장·서보장 도입[18] 그 밖의 공로자를 서훈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욱일장은 남성인 공직자로서 훈공이 현저한 자에게, 보관장은 여성인 공직자로서 훈공이 현저한 자에게, 서보장은 공직자로서 연공(年功)을 세운 자와 민간인 남녀에게 수여되었다.[19] 1888년 도입[20] 1876년 도입[21] 메이지 16년(1883)의 "서훈 정원 내규를 정하다(叙勲定員内規ヲ定ム)"와 메이지 24~25년경(1891~1892)의 "서보장 서사 정원 내규를 정하다(瑞宝章叙賜定員内規ヲ定ム)"에 따르면 정원은 욱일장과 서보장 각각 50명이었다.[22] 메이지 16년(1883)의 "서훈 정원 내규를 정하다(叙勲定員内規ヲ定ム)"와 메이지 24~25년경(1891~1892)의 "서보장 서사 정원 내규를 정하다(瑞宝章叙賜定員内規ヲ定ム)"에 따르면 정원은 욱일장은 100명, 서보장은 130명이었다.[23] 메이지 16년(1883)의 "서훈 정원 내규를 정하다(叙勲定員内規ヲ定ム)"와 메이지 24~25년경 (1891~1892)의 "서보장 서사 정원 내규를 정하다(瑞宝章叙賜定員内規ヲ定ム)"에 따르면 정원은 욱일장은 300명, 서보장은 330명이었다.[24] 메이지 16년(1883)의 "서훈 정원 내규를 정하다(叙勲定員内規ヲ定ム)"와 메이지 24~25년경(1891~1892)의 "서보장 서사 정원 내규를 정하다(瑞宝章叙賜定員内規ヲ定ム)"에 따르면 정원은 욱일장은 600명, 서보장은 800명이었다.[25] 메이지 16년(1883)의 "서훈 정원 내규를 정하다(叙勲定員内規ヲ定ム)"와 메이지 24~25년경(1891~1892)의 "서보장 서사 정원 내규를 정하다(瑞宝章叙賜定員内規ヲ定ム)"에 따르면 정원은 욱일장은 1200명, 서보장은 1330명이었다.[26] 메이지 16년(1883)의 "서훈 정원 내규를 정하다(叙勲定員内規ヲ定ム)"와 메이지 24~25년경(1891~1892)의 "서보장 서사 정원 내규를 정하다(瑞宝章叙賜定員内規ヲ定ム)"에 따르면 욱일장과 서보장이 무제한이었다.[27] 메이지 16년(1883)의 "서훈 정원 내규를 정하다(叙勲定員内規ヲ定ム)"와 메이지 24~25년경(1891~1892)의 "서보장 서사 정원 내규를 정하다(瑞宝章叙賜定員内規ヲ定ム)"에 따르면 욱일장과 서보장이 무제한이었다.[28] 욱일장으로 분류된다.[29] 메이지 16년(1883)의 "서훈 정원 내규를 정하다(叙勲定員内規ヲ定ム)"와 메이지 24~25년경(1891~1892)의 "서보장 서사 정원 내규를 정하다(瑞宝章叙賜定員内規ヲ定ム)"에 따르면 욱일장과 서보장이 무제한이었다.[30] 욱일장으로 분류된다.[31] 이것이 바로 훈장이다.[32] 이것이 바로 대한제국 때 훈장연금을 규정한 이유다.[33] 30인에서 50인으로 확대되었다. 단, 덴마크의 왕족과 외국인은 정원 외이다.[34] 덴마크의 국기 이름[35] 영국의 왕족과 외국인은 정원 외이다. 이하동문[36] 따라서 기사, 기사단을 두지 않는 나라에는 order가 없어야 한다. 미국의 최고위 훈장들, 명예훈장, 대통령자유훈장, 그리고 의회황금훈장이 medal인 것도 미국에는 기사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기사, 기사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order를 훈장으로서 운용한다.[37] 서훈에 부수하는 것은 서훈에 등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