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앤드류스

 



''' 줄리 앤드류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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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image]
'''여우주연상'''
''' 제36회
(1964년)'''

'''제37회
(1965년)'''

'''제38회
(1966년)'''
퍼트리샤 닐
(허드)

'''줄리 앤드류스
(메리 포핀스)'''

줄리 크리스티
(달링)


'''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image]
'''여우주연상 - 뮤지컬 및 코미디'''
''' 제21회
(1964년) '''

''' 제22회
(1965년) '''

''' 제23회
(1966년) '''
셜리 맥클레인
(당신에게 오늘 밤을)

'''줄리 앤드류스
(메리 포핀스)'''

줄리 앤드류스
(사운드 오브 뮤직)
''' 제22회
(1965년) '''

''' 제23회
(1966년) '''

''' 제24회
(1967년) '''
줄리 앤드류스
(메리 포핀스)

'''줄리 앤드류스
(사운드 오브 뮤직)'''

린 레드그레이브
(조지 걸)
''' 제39회
(1982년) '''

''' 제40회
(1983년) '''

''' 제41회
(1984년) '''
버나뎃 피터스
(내 사랑 시카고)

'''줄리 앤드류스
(빅터/빅토리아)'''

줄리 월터스
(리타 길들이기)

'''역대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
[image]
'''최우수 뮤지컬 시리즈 부문'''
'''제24회
(1972년)'''

'''제25회
(1973년)'''

'''제26회
(1974년)'''
The Carol Burnett Show

''' The Julie Andrews Hour'''

The Carol Burnett Show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image]
'''이름'''
'''줄리 앤드류스
JULIE ANDREWS
'''
'''분야'''
'''영화'''
'''입성날짜'''
'''1979년 10월 5일'''
<:><bgcolor=#dda0dd>'''{{{#ffd700 위치
'''
'''6901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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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e Julie Andrews'''
'''DBE'''
[image]
'''이름'''
줄리아 엘리자베스 웰스[1]
Julia Elizabeth Wells
'''국적'''
영국 [image]
'''출생'''
1935년 10월 1일 (89세)
영국 서리 월턴 온 템즈
'''직업'''
배우, 가수, 작가
'''활동'''
1945년 ~ 현재 (무대)
1949년 ~ 현재 (스크린)
'''신체'''
173cm
'''배우자'''
토니 월턴 (1959 ~ 1967, 이혼)
블레이크 에드워즈 (1969 ~ 2010, 사별)
'''자녀'''
슬하 3녀
1. 개요
2. 활동
3. 출연 작품
4. 여담


1. 개요


영국배우가수, 작가[2].

2. 활동


그녀의 어머니 바바라 워드 웰스는 에드워드 찰스 테드 웰스와 결혼했으나 이혼하고[3] 어머니의 재혼 상대인 테드 앤드류스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며 런던콘 립맨 스쿨의 교사 릴리안 스타일스 알렌에게 레슨을 받게하면서 그녀의 재능이 깨어나게 된다. 줄리는 릴리안을 제3의 부모라고 칭할정도로 그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냈고 릴리안 또한 회고록에서 줄리 앤드류스의 음악적 재능에 경탄했다고 밝혔다. 다만, 릴리안은 줄리가 모차르트와 로시니 오페라 아리아를 부를 수 있다면서 오페라 가수가 되기를 바랬지만 줄리는 오페라 가수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대신 1945년부터 부모의 도움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1948년에는 BBC의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뮤지컬 에피소드를 공연하기도 했다.
1954년, 그녀의 나이 19세 때 줄리는 영국 뮤지컬 "The Boyfriend”의 뉴욕 브로드웨이 초연에서 여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Boyfriend 제작진과 맺은 계약이 만료될 무렵에 그녀는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디션 제안을 받고 여주인공에 발탁되었다. 이때 그녀의 재능에 감탄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은 자신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TV 뮤지컬 "신데렐라"에 캐스팅했고 이것이 CBS에서 방영되어 1억이 넘는 미국인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1960년에는 뮤지컬 "카멜롯"에서 기네비어 왕비역으로 출연하여 배우 리처드 버튼과 호흡을 맞췄다. 후에 리처드 버튼은 줄리를 피터 오툴,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더불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였다고 회고를 할 정도로 그 또한 줄리의 재능에 감탄했다.
그러나 마이 페어 레이디워너 브라더스를 통해 영화화될 당시 잭 워너는 줄리가 영화 출연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 대신 오드리 헵번을 선택했다. 마이 페어 레이디에 출연이 불발되고 그녀에게 찾아온 기회가 바로 디즈니가 기획하던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였다. 이 무렵 줄리는 무대 연출가 토니 월턴과 결혼해 딸 엠마 캐서린 월턴을 임신중이었기에 메리 포핀스역을 거절했으나 디즈니는 '이 역할에는 줄리 앤드류스가 가장 잘 어울린다'라면서 그녀가 영화에 출연할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결국 딸을 출산한 이후에 줄리는 월트 디즈니의 요청을 받아들여 메리 포핀스에 출연하게 된다. 영화는 대박을 쳐서 줄리는 196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상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수상하였고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분 여우주연상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줄리는 자신을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탈락시킨 잭 워너를 향해서 "마지막으로 훌륭한 영화로 저를 인도해주신 미스터 잭 워너에게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디즈니가 생전에 제작한 영화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고 수상까지 한 배우는 줄리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듬해인 1965년에 줄리는 자신의 최고 대표작이 될 영화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이 그것이다. 메리 포핀스에서의 연기를 보고 감탄한 제작진은 그녀를 여주인공 마리아 본 트랩 역으로 캐스팅했고 영화는 1965년 개봉 할리우드 영화중 가장 큰 흥행수익을 기록한다, 이는 20세기 폭스사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흥행성적이다. 마리아 역으로 줄리는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2년 연속 수상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2년 연속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나 아쉽게도 수상은 "달링"의 줄리 크리스티에게 넘겨주어 2년 연속 수상에는 실패했다.
1966년에는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된 영화 "하와이"에 출연해 3연속 대박을 치게된다. 1967년에는 폴 뉴먼과 함께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찢어진 커튼"에 출연했으며, "모던 밀리"라는 영화에도 출연해 큰 흥행을 거두었다.
그러나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지속된 줄리의 흥행신화는 이후 대대적인 흥행실패로 주춤거리게 된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같이 호흡했던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연출작인 거트루드 로렌스의 전기영화 "스타!"에 출연했으나 이 영화는 그녀 커리어에서 가장 큰 실패작이 되었다. 록 허드슨과 호흡을 맞춘 "달링 릴리”도 흥행에 참패했다. 이 무렵에 그녀는 첫남편인 토니 월턴과 이혼한 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대박을 친 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와 재혼한다. 에드워즈도 이혼의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둘은 이후 오랫동안 해로하다가 2010년 에드워즈가 사망하면서 사별하게 된다.
1970년대 줄리는 몇몇 영화에 출연하여 60년대의 흥행에 비교하면 못 미치는 상업적 성과를 거두었지만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1979년에 남편 블레이크 에드워즈가 감독을 맡은 코미디 영화 “10”은 흥행에도 성공하였고 평도 좋았다. 영화 출연을 잘 하지 않는 대신 TV에 자주 출연해 커리어를 이어나갔고 자신의 이름을 단 “The Julie Andrews Hour”라는 TV쇼로 에미상 수상에도 성공한다. 1982년에 코미디 영화 "빅터/빅토리아"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줄리는 빅터와 빅토리아라는 두 얼굴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는 배역으로 제임스 가너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로 그녀는 오랜만에 세 번째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수상은 “소피의 선택”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은 메릴 스트립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이후에도 그녀는 TV와 뮤지컬, 영화, 공연 투어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갔다. 1986년도에는 잭 레먼과 같이 찍은 That’s Life!라는 영화와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의 삶을 모티브로 한 “듀엣 포 원”이라는 영화로 골든 글로브 드라마와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에 더블 노미네이트 되기도 한다.[4] 또, 1993년에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손드하임의 뮤지컬 “Putting in together” 공연을 하며 브로드웨이 복귀에 시동을 걸며 1995년에 영화 “빅터/빅토리아”의 뮤지컬 버전으로 브로드웨이에 복귀했다.[5] 그러나 1997년에 “빅터/빅토리아”의 브로드웨이 공연 이후 목소리가 쉬는 일로 인해 뉴욕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만 이 수술에 의료 사고가 발생해서 4옥타브를 오가던 그녀의 고음 발성 능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단순히 고음만 낼 수 없어진 것이 아니라 평소 말할 때의 목소리도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서 약간 쉰 듯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계획 중이던 공연 투어, 앨범, 노래를 하는 역할을 비롯한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당초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 의사들은 6주만 지나면 원래대로 목소리가 돌아올것이라 장담했으나, 2년이 지나도록 목소리는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분노한 그녀는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을 의료 사고로 고소하고 승소한 다음 얻은 돈을 전부 기부했다. 그녀는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메사추세츠 주립 병원의 스티븐 S 제이텔즈에게 수술과 치료를 받아 목소리를 회복할 수 있었으나, 과거와 같은 고음은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줄리 앤드루스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면 자신 안의 무언가가 영원히 바뀌게 될 것 같다(I think it will change something inside me forever)고 말했다.
이러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그녀는 계속 연기를 이어나갔고, 2001년 그녀는 "프린세스 다이어리"에 출연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녀의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이듬해의 "프린세스 다이어리2 로얄 웨딩"에도 출연했다. 프린세스 다이어리 2에서는 성대 수술의 의료 사고로 심각한 성대 손상을 입은 이후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5음만 사용하는 음역대가 작은 노래였지만 이 장면을 촬영할 때 많은 스태프들이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 메리 포핀스 때를 생각하며 디즈니 관련 일들을 하게 되었고 2004년 드림웍스가 제작한 슈렉2에서 피오나 공주의 어머니인 릴리안 왕비의 성우를 맡기도 했다. 이후 속편인 슈렉3, 슈렉 포에버에도 같은 역으로 출연했다. 슈퍼배드 시리즈에서는 주인공 그루의 어머니 역할을 맡는 중.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음악상 시상자로 나섰는데, 그녀에게 헌정하는 공연을 레이디 가가가 원키로 소화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 문화예술 공헌을 인정받아 엘리자베스 2세에게 여성 기사작위인 "데임" 칭호를 받게 된다. 또한 2002년에는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에서 59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7년엔 3월 17일부터 넷플릭스에서 방영하기 시작한 줄리의 그린룸에 주연으로 출연 중이다. 줄리의 그린룸은 미스 줄리로 분한 줄리 앤드루스와 무대감독 겸 미스 줄리의 보조인 거스[6], 그리고 어린이 머펫들이 함께 뮤지컬을 만들어내는 게 스토리인 미취학 아동 대상 어린이 뮤지컬 드라마로, 뮤지컬 드라마인 만큼 줄리 앤드루스가 노래를 부른다! 오랜만에 노래를 부르는 역을 소화해내고 계시는 중.
2018년에는 DC 확장 유니버스 영화 아쿠아맨에서 고대 괴수 카라덴의 목소리를 담당하였고, 같은 해에 무려 50여년만에 메리 포핀스의 후속작 메리 포핀스 리턴즈가 개봉되었는데, 전편에 출연한 일부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했지만 정작 주인공을 맡은 그녀는 카메오조차도 고사했다. 건강상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본인이 직접 '''No.'''를 한 것. 메리를 맡은 후배 에밀리 블런트가 자신 때문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이유여서였다고.

3. 출연 작품



4. 여담


  • 바퀴벌레를 정말 무서워한다고 한다.


[1] 어머니가 양부와 재혼할 때 이름을 Julie Andrews로 바꿨기에 지금 이름은 줄리 앤드류스가 맞다. 더 정확히 하면 사별한 남편 성으로 바뀐 Julie (Andrews) Edwards. 이 이름은 자신이 쓴 어린이 책의 필명으로 자주 쓰인다.[2] 1971년부터 꾸준히 아동용 책을 써서 출간하고 있으며 자서전도 2권 집필했다.[3] 줄리는 테드 웰스를 아버지로 알고 자랐지만 나중에 그녀가 성인이 되었을때 어머니 바바라는 '그녀의 생부가 따로 있다.' 실토했다고 한다. 줄리 앤드루스는 이를 밝히지 않다가 2008년 자서전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4] “듀엣 포 원” 영화는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인 주인공이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바이올린을 켤 수 없게 된 그 뒤의 삶을 그리는 영화이다. 나중에 줄리가 자신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었던 목소리를 잃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2019년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줄리는 이 영화에 대해 “prophetic”하다고 이야기를 꺼냈다.[5] 이때 나이 60이었으며(!!) 뮤지컬 단독 주연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공연이 2시간 반씩 주 8회 공연이라 스케줄이 매우 살벌했다. 이런 공연을 2년 반씩이나 지속해온 것이다.[6] 줄리안 야오 조옐로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