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다

 

1. 개요
2. 역사
3. 비슷한 의미의 동사들
4. 용례
5. '찍다'가 쓰인 문서


1. 개요


한국어의 동사. 주로 평평한 면에 대해서 좁은 면으로 힘을 가하는 현상을 '찍다'로 자주 쓴다. 사전적인 의미를 모아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 (-에) 도장이나 낙인으로 자국을 내다 ('종이에 도장을 찍다')
    • 판이나 주형틀로 인쇄하다 ('벽돌을 찍다', '책을 찍다' 등)
  • (도끼포크 등의 날붙이로) 내리치다
  • (-에) 액체나 가루를 묻히다
  • 여러 선택지 중에서 고르다
세 번째 '묻히다'라는 의미와 네 번째 '고르다'라는 의미는 위의 의미와 조금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세 번째 의미도 주로 길다란 물건을 소스와 같은 액체에 힘을 가해 표면을 닿게 한다는 면에서는 행동 양상이 비슷하며, 네 번째 의미 역시 넓은 선택지 중 좁은 몇 개를 골라 손가락 등으로 가리키는 이미지라는 면이 '찍다'의 다른 의미와 통하는 바가 있다.
오늘날에는 '무작정 찍어내다', '도장 찍기' 같은 말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양산하다'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이것은 도장에서 유추된 의미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인쇄(印刷)'는 그 한자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널찍한 도장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약간의 유추를 더 거치면 주형들로 뽑아내는 과정 역시 인쇄의 일종으로 의미가 확장될 수 있다.
사진에 대해서 '찍다'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도장에서 뻗어나간 의미 연쇄의 최종 단계로 볼 수 있다. 디지털 기기로 간단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오늘날에는 새삼 느껴지기 힘들지만 과거의 사진은 필름이나 은판에 영상을 담아내는 인쇄의 일종으로 볼 수 있었다. 영어일본어에서 '얻다', '취하다' 등 비교적 정적인 동사로 '사진 찍다'라는 단어를 나타내는 것과는 대조된다. 중국어는 '사진 찍다'에 칠 박(拍) 자를 써서 한국어와 약간 비슷한 면이 있지만 인쇄물에 대해서는 다른 글자를 쓰기에 조금 다르다. 이 '사진 찍다'는 더 의미가 확장되어, '본인이 사진을 만들어내는'('사진을 인쇄하는') 상황이 아니라 사진 안의 광경으로 참여하는('사진으로 인쇄되는') 상황에서도 쓰일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대에는 또 한 가지 의미 확장이 있었다. RFID 등 전자기술의 발달로 교통카드신용카드를 단말기에 살짝 대서 결제를 할 수 있는데, 이런 카드를 쓸 때에도 '단말기에 카드를 '''찍는다''''라고 한다. 아무래도 '-에 도장 따위를 찍다'라는 1번 의미에서 '단말기에 카드를 찍다' 식으로 확장된 것 같은데, 도장과는 달리 이러한 카드는 단말기 표면에 카드가 전혀 닿지 않아도 무방하다. 앞서서 '찍다'는 두 개체 사이의 타격이나 접촉을 의미한다고 하였는데 교통카드와 단말기 사이에서는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 이 경우에는 '카드를 다시 대 주세요'라는 단말기 안내 멘트에서처럼 '대다'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다'는 정말로 접촉만을 나타낸 표현. 완전히 닿지 않아도 결제가 되긴 하지만, 한국어에 '물질 A를 표면 B에 근접시키긴 하지만 완전히 닿게 하지는 않고 1~2cm 거리를 두게 근접시키는 행위'에 대한 동사는 따로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듯. 사실 '대다'도 의미 확장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된 기본 동사라서 이 정도의 확장은 무리가 없다.
'고르다'라는 의미에서 '찍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주로 임의의 선택지 중 아무거나 고르는 것을 보고 '찍는다'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원하는 후보를 찍어뒀다'처럼 어떤 이유를 갖고 고르는 것에도 '찍다'를 사용할 수 있다.
근대에 생겨난 스테이플러 심 역시 '스테이플러(호치키스)를 찍다' 식으로 '찍다'를 써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찍-'+'-개'로 '찍개'라는 순화어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2. 역사


懸癰[1]

垂長, 咽中妨悶。

白礬(一兩燒灰) 塩花(ᄀᆞᇇ곳一兩) 同細研爲散,

以筯頭, '''點'''在懸癰上差。

목져지 드리디여 목 안히 막고 답답ᄒᆞ거든

ᄇᆡᆨ번 ᄒᆞᆫ 랴ᇰ ᄉᆞ론 ᄌᆡ와 ᄀᆞᇇ곳 ᄒᆞᆫ 랴ᇰ과ᄅᆞᆯ ᄒᆞᆫᄃᆡ ᄀᆞᄂᆞ리 ᄀᆞ라

져읏 그트로 '''디거''' 목졋 우희 '''디그면''' 됴ᄒᆞ리라

목젖이 늘어져 목 안이 막히고 답답하거든

백반 한 량 불사른 재와 소금꽃 한 량을 함께 가늘게 갈아

젓가락 끝으로 '''찍어''' 목젖 위에 '''찍으면''' 낫느니라.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1489) 2권 63b 한문, (괄호는 협주)'''

역사적으로는 '딕다'였다가 구개음화되어 '찍다'가 되었다. 당대에 어간끼리 합성하여 '딕먹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쪼아먹다'라는 의미라 오늘날의 찍어먹다('액체나 가루를 묻히다')의 의미하고는 조금 다르다.

3. 비슷한 의미의 동사들


'찍다'라는 행동은 일종의 타격 행위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중세국어에서는 '도장을 찍다'라는 의미로 '인(印) 티다'라고, '치다'를 쓰기도 했다. 등장 문헌이 노걸대언해라서 당대 중국어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현대 중국어에서는 도장에는 '덮다(盖)'라는 단어를 써서 '치다'와는 다르다. '치다'는 '찍다'에 비해서 조금 더 넓은 면에 대한 타격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2]
'누르다'는 이미지 자체는 비슷하지만 '찍다'와 같은 의미 확장을 거치지 못해 여전히 '평평한 면에 대해서 좁은 면으로 힘을 가하다'라는 의미로만 쓰인다. 한자로는 '도장 찍다'의 의미로 押印을 쓰기도 하지만. '누르다'의 경우 힘을 가하는 면이 너무 좁으면 쓰일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 포크로 찍을 수는 있지만 포크로 누를 수는 없듯이. 이 부분은 '찍다-치다'의 의미 차이하고도 조금 비슷하다. 또한 '누르다'는 의미상 속도나 공격성이 약한 편이다. 같은 행동이라도 어느 이상으로 빠르게 누르면 누른다고 하지 않고 '밀다'를 쓴다.
좁은 면에 힘을 가한다는 면에서는 '꽂다'와도 약간 유사하다. 이 단어는 서남/동남/충청 방언에서 '꼽다'로 쓰이기도 한다. '꽂다'는 '콘센트를 꽂다', '화분에 꽃을 꽂다' 등을 생각해보면 이미 구멍이 있는 곳에 집어넣는다는 의미가 강하다. '꼬챙이를 꽂다', '땅에 깃발을 꽂다' 같은 그 행동도 있긴 하지만. 이들 역시 '찍다'와는 달리, '꽂다'라는 행동이 있은 후에 그 '꽂다'라는 행동이 이루어진 물건이 가만히 고정되어 있다는 이미지가 있다. 을 생각해봐도 '창이 꽂혔다'라는 건 몸에 박혀서 창이 안 움직이는 상태를 말하지, 창이 뚫고 지나간 것을 보고 '꽂혔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에 비해 '찍다'는 '창으로 내리찍어서 방패를 뚫어버렸다'라는 문장을 생각해봐도 어색하지 않다. '창으로 내리찍어서 방패에 꽂혔다'라는 문장을 생각해보면 같은 뾰족한 물건에 대한 동사여도 '찍다'는 '내리치는 행동'에, '꽂다'는 '내리친 후의 상태'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동사라고 볼 수 있다. '꽂다'와 유사한 행동을 좀 더 반복적으로 비벼가면서 하면 '쑤시다'가 된다.
'찌르다' 역시 '찍다'와 유사하게 좁은 면에 힘을 가하는 행동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동사이다. 하지만 '누르다'와 마찬가지로 '찌르다'는 '타격 행위'라는 의미로만 쓰이고 의미 확장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누르다'가 완전히 공격성이 없는 것과는 반대로 '찌르다'는 아무리 약하게 찌르더라도 대상에게 자극을 주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
'찧다'는 완전히 '눌러서 친다'라는 의미에 충실한 동사이다. 이 '찧다'에서 더 나아가 '가루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찧는다고 하면 '빻다'를 쓰게 된다. '찧다'는 '찍다'에 비해서 절구처럼 조금 넓은 면적으로 타격이 이루어진다는 차이가 있다. 서남방언 가운데에서는 '찧다'의 의미로 '찍다'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쪼다'는 '찍다'와 비슷하고 한때 '딕먹다'가 '쪼아먹다'의 의미를 나타낼 때도 있었지만 오늘날의 '쪼다'는 새가 부리로 모이 등을 치는 행동에만 쓰일 뿐이다.

4. 용례


'사진 찍다'의 의미로, 사진을 자주 찍는 사람을 '찍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 붙은 단어랑 비슷하게, '사진사'나 '촬영사'에 비해서는 비전문적인 느낌이 강하다.
피동사로는 피동접사 '-히-'를 써서 '찍히다'를 쓴다. 앞서 소개한 뜻이 다 타동사로 쓰이기 때문에 다 '찍히다'를 쓸 수 있긴 한데, 일상에서는 '고르다'라는 의미에서 '(요주의 인물로) 선택되었다'라는 뜻으로 '찍혔다'를 자주 쓴다. 선택을 받긴 받았는데 썩 긍정적인 것은 아닌 게, '찍다'의 타격 행위의 의미에서 영향을 좀 받은 것 같다. 얼핏 생각하면 '도끼로 찍혔다'의 그 '찍히다'인가 싶어지기까지 하고.
비박(정치 세력) 중 하나로 '찍박'이라는 단어가 이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피동접사가 붙은 형태에서 유래한 말인데 준말이 되면서 피동접사가 빠진 것도 재미난 현상. '찍는 박'이 아니라 '찍힌 박'이라는 것.
'고르다'라는 의미의 '찍다'는 선거철에 유행어를 많이 만든다. 19대 대선에서는 '홍찍자', '심찍홍' 등등의 줄임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어대문 참조.
날붙이로 내리친다는 의미에서의 '찍다'는 '도끼'와 긴밀한 관계를 지닌다. 창으로도 찍고 포크로도 찍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도끼로 찍다'가 제일 익숙하다. '칼'로는 '베고', '창'으로는 '찌르고', '도끼'로는 '찍는' 그렇고 그런 관계. 속담 중에서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가 있다.

5. '찍다'가 쓰인 문서



[1] 원문에는 癰(악창 옹)라고 되어있으나 그러면 '항문에 나는 종기'가 된다. '목젖'이라는 언해문에 맞추려면 壅(막을 옹)이 맞을 듯하고, 한문 구급방에도 壅로 쓰고 있다.[2] '치다'에 더 공격성을 가하면 '때리다'가 된다. 그래서 "때린 게 아니라 그냥 친 것이다" ('공격적으로 타격한 게 아니라, 그냥 타격한 것이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