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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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예방법
4. 여담


1. 개요


塹壕足, Trench Foot
침족병[1] 중의 하나. 춥고 습한 환경에서 꽉 끼는 신발류를 착용하고 있을 때 생긴다. 일반적인 동상과는 달리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도 생길 수 있다.

2. 상세


최초의 기록은 1812년 나폴레옹러시아 원정에서 등장하였으며, 당시 프랑스군의관이었던 도미니크 잔 라리(Dominique Jean Larrey)가 원정 기간동안 만연했었던 참호족에 대해 최초로 기술하였다.[2]
이 명칭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계기는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숱한 참호전에서 비롯되었다. 이 때의 서부전선에서는 각 군이 참호를 길게 파고 병사들이 여기에 틀어박혀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문제는 가 와서 빗물이 고이거나 지하수를 잘못 건드려 참호 안에 항상 이 차있었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은 추운 날씨에도 장시간 발이 물에 젖어있는 채로 돌아다녀야 했다. 이 마를 새가 없는데다가 꽉 끼는 신발을 신고 있었으므로 참호족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진지가 상대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했던 연합군 쪽 병사들이 더 많이 고통을 받았다. 찰리 채플린은 그의 영화 "어깨총"(Shoulder Arms, 1918)에서 이러한 상황을 코믹하게 묘사했다. 그런데, 실제로 참호전 당시 참호가 침수되어서 잘 곳이 마땅치 않은 경우, 그렇다고 밖에서 잘 수는 없어서 물이 들어찬 벙커에서 어떻게든 숙면을 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이 상태로 있으면 발에 있는 모세혈관이 수축하므로 홍색증과 청색증이 나타나며 발끝의 감각이 점차 없어진다. 좀 더 진행되면 발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조직의 부패 때문에 나는 악취로 괴사가 일어난다는 경고다. 물집과 상처가 생기기도 하는데 여기에 진균류가 감염되어 열대궤양(Tropical ulcer)을 일으키기도 한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괴저로 진행되어 결국에는 '''절단 수술'''을 해야 한다.

3. 예방법


가장 확실한 예방법은 발을 따뜻하게 하고 잘 말리는 것이다. 발을 말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양말을 자주 갈아신어야 한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 때 병사들은 가족들한테 양말을 더 보내달라는 편지를 자주 썼다. 당시의 지급 양말은 전장에서 3일만에 구멍이 나곤 했다. 또한 부대에 참호족 예방 목적으로 고래기름으로 만든 연고나 바셀린이 지급되었으며, 하루에 10갤런(약 38리터)의 연고나 바셀린을 소비하는 대대도 있었다. 그리고 장교들이 자주 발검사를 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또한 영국군은 헌터제 고무부츠[3]를 지급하여 개선하기도 하였다. 부지런히 발 관리를 하면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인지라, 참호족은 종종 부대의 군기 상태를 체크하는 척도로 쓰이기도 했다.

4. 여담


  •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조 토이가 바스토뉴 방어전에서 이 병으로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말리려고 벗어 놓은 군화가 적 포탄에 날아가버려서 한동안 발을 대충 헝겊으로 감싸고 다니다가 유진 로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 1982년 포클랜드 전쟁영국군도 춥고 습한 날씨에, DMS 부츠가 방수가 제대로 되질 않아서 많은 병사들이 참호족에 걸려서 갖은 고생을 했다.
  • 베트남 전쟁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글에 웅덩이가 많고 우기로 항상 습하다 보니 발생하게 되었던 것.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검프와 버바가 처음 베트남에 배치되었을 때 상관인 댄 테일러가 한 말은 "내게 경례하지 말 것"[4]과 "메콩강 강물에 발이 썩어 떨어지는 게 싫으면 양말을 자주 갈아신어라"는 충고이다.[5]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의 조지 S. 패튼 장군이 이것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당연히 본인이 걸린 것은 아니고, 참호족 때문에 후송되어 입실한 병사에게 폭행을 한 것. 화끈한 성격으로 유명했던 그인 만큼 겉보기엔 상처 없이 멀쩡한 병사가 병상에 누운 걸 보고 격분해서 걷어차 버렸다. 그 전에도 이미 PTSD 증상으로 입원해 있던 병사를 겁쟁이라며 구타해서 문제가 되었는데 당시에는 PTSD를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전쟁 후유증을 의지 따위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 때는 패튼이 장병들에게 사과하면서 겨우 넘어가는 듯 했는데, 그것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또 다시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패튼에게 맞은 병사는 그 자리에서 패튼에게 "저는 물 고인 참호 속에서 일주일이 넘게 처박혀 있었습니다, 장군님."이라고 항변했다. 사실 이 입실한 병사는 시칠리아 전투 중에 질척질척한 참호 속에 장시간 있었던 탓에 참호족에 걸리게 된 것이다. 이를 들은 패튼이 잘못을 깨닫고 그 병사에게 사과하기는 했지만 기자들에 의해 미국 본토까지 기사화되어 알려지면서 여론이 극히 악화되어 해임 압력까지 나왔었다. PTSD 환자 폭행의 경우엔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엔 PTSD를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나마 문제 의식이 덜했지만, 참호족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이에 시달리고 아예 발가락을 절단하기도 한 참전 용사의 사례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 일 때문에 패튼은 보직 해임을 당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때까지 한직에서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다.

[1] 15℃이하의 찬물에 피부가 지속적으로 접촉, 노출될 시 발가락 등의 신체 일부분이 동상에 걸리는 병을 말한다.[2] 참고[3] 현재는 여성들의 장마철 패션 아이템인 레인부츠로 유명한 브랜드가 되었다.[4] 저격수의 최우선 목표는 직급이 높은 사람, 즉 경례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5] 주월한국군을 지휘하던 채명신 장군도 휘하 장병들의 발건강에 신경을 썼다. 틈만 나면 강이나 바닷가의 뜨거운 모래사장에서 찜질을 하게 시키기도 하고, 이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장교들에게도 징계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