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연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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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昌德宮 演慶堂
창덕궁 후원에 있는 사대부가 형식의 건물이다. 순조 말에 대리청정을 맡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와 어머니 순원왕후의 존호를 올리는 의식을 치르면서 잔치를 하기 위해 후원 내 진장각(珍藏閣) 옛 터에 세운 연회장이었다. 한동안은 효명세자가 사대부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지었다는 설과 순조가 유유자적하게 지내고 싶어 지었다는 설이 알려져있었다. 하지만 아래에 나온 것처럼 효명세자가 지었을때는 분명히 연회장이었고, 사대부가 형식으로 개조된 것은 고종 때로 보인다.
연경당이라 하면 보통 사랑채 건물 한 채, 또는 사랑채 - 안채만을 가리키지만, 다른 부속 건물들까지 통틀어 일컫는 경우도 많다.
건물 이름인 ‘연경(演慶)’은 ‘경사스러운(慶) 행사를 연행(演行)[1] 한다’는 뜻이다.
연경당에 대한 3D VIEW 영상.
2. 역사
지은 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궁궐지》에는 1828년(순조 28년)으로 되어있는 반면, 《한경지략》과 《동국여지비고》에는 1827년(순조 27년)으로 적혀 있다.
건립 후 효명세자가 신하들을 접견하거나 진작례[2] 를 거행하였다. 헌종 대 이후에는 익종으로 추존 된 효명세자의 어진과 모훈[3] 자료를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다가 1857년(철종 8년)에 터가 서늘하고 습하다는 이유로 익종의 초상화를 다른 곳으로 옮겨 오랫동안 빈 건물로 있었다.#
고종 시기인 1865년(고종 2년) 새로 증축, 신축하였으나 곧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한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후 1884년(고종 21년) 갑신정변 때 청나라 군대에 쫓긴 개화파 수뇌들이 고종을 데리고 이곳으로 잠시 피신하기도 했고, 이외에도 고종과 순종이 외국 공사를 접견하고# #, 여러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도 순종이 이 곳에서 오찬을 열고# 다과회를 여는 등 활용되었으며# 1917년 창덕궁 희정당과 대조전 등 내전 건물이 전부 불타자 그 곳에 살던 순종과 순정효황후가 임시로 거처하기도 했다.#
이후 큰 훼손 없이 오늘에 이른다. 다만 자동차의 출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애련정 일대의 의두합의 전면이 깎이고, 다른 후원 권역에서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인 금마문(金馬門)이 개조되는 변화가 있었다.# 2012년 8월 보물 제1770호로 지정되었다.
3. 구조
- 연경당을 처음 지을 즈음에 그려진 효명세자 대리청정기에 그려진 《동궐도》를 보면, 지금과는 구조가 많이 다르다. ‘ㄷ’자 형 건물 한 채로만 되어있고, 건물 전면에는 여러 행사를 할 수 있는 넓은 월대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동, 서, 북쪽 담장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형태인 벽돌과 사고석으로 쌓았으나 남쪽 담장은 판자로 되어있으며 출입문은 남쪽에 2칸 짜리 솟을 대문 1개를, 서쪽에 1개를 두었고 남쪽의 솟을 대문 중 큰 칸의 이름을 장락문(長樂門)이라 하였다. 또한 동쪽에 긴 ‘ㅡ’자 형 부속 건물을 남쪽과 북쪽에 각각 한 채 씩 두고 담장과 이었는데 남쪽 건물은 운회헌(雲檜軒), 북쪽은 개금재(開錦齋)라 하였다. 연회, 공연같은 행사를 하기 좋은 구조인데, 애초 연경당의 설립 목적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런 형태는 철종 연간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이나 고종 때 증축, 신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 지금 남아있는 연경당의 모습은 사대부가 형식으로 지어져 다른 궁궐 전각들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우선 화려한 단청 칠이 되어있지 않고, 건물 양식도 정자인 농수정(濃繡亭)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둥 위에 공포를 올리지 않은 민도리 형식으로 되어있다.
- 하지만 사대부가를 모방했다해도, 어쨌든 궁궐의 건물이라서 그런지 일반 양반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점들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사대부가의 상한선이 99칸인 것에 비해 연경당은 100칸을 넘는 109칸 반에 달한다.[4] 때문에 일부에서는 왕자나 공주의 사저인 궁가(宮家)를 모방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문과 창문, 담장과 벽들의 무늬 등을 화려하며 세련되고 섬세하게 꾸몄다. 이는 전반적으로 연경당 영역에 있는 건물 대부분이 해당한다.#
- 배치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가처럼 맨 앞쪽에 행랑채를 두 겹으로 두른 뒤 대문을 두고, 대문으로 들어온 뒤 보이는 행랑채에 각각 사랑채(남성의 공간)와 안채(여성의 공간)로 통하는 출입문을 내었다. 이 출입문도 위계를 두었는데 사랑채로 가는 문은 솟을대문으로, 안채로 들어가는 문은 평대문으로 설치하여 서열을 구분하였다. 남자와 여자의 공간을 엄격하게 나누기 위해 사랑채와 안채의 앞마당 사이에 작은 담을 두었지만, 건물 자체는 연결되어 실내에서 드나들 수 있게 되어있다.#
3.1. 연경당 사랑채
- 팔작지붕에 홑처마 양식으로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고 중도리와 주심도리로 된 5량가 구조로 되어있다.# 정면 6칸, 측면 2칸이며, 정면 기준 제일 오른쪽에 마루 1칸이 있고 그 서쪽에 대청이 2칸, 사랑방 2칸, 그리고 마루 1칸이 나란히 있으며 서북쪽에 침방 2칸을 두었다.#(실제 칸 수는 측면 수를 곱하면 된다.) 방과 대청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는데 서쪽 온돌방의 툇마루 앞엔 문이 덧대어져 실내로 들어가 있고 대청과 동쪽 온돌방 앞은 막혀있지 않다. 동쪽의 마루는 ‘누(樓)’ 형태로 되어있어 아랫 부분이 화강암 돌 기둥으로 되어있으나 서쪽의 마루는 기단 위에 올려있고 창과 벽으로 마감되어있다.
- 대청에서 온돌방으로 가는 문과 동쪽 누마루로 가는 창은 가운데에 팔각형 창을 낸 불발기 형식으로 지었다. 대청 천장은 반자를 설치하지 않아 서까래가 훤히 드러나 보이며 마루 바닥은 우물마루로 꾸몄다.#
- 서쪽으로 안채와 연결되며 사랑채 건물 서쪽 끝에 안채와 구역을 나누는 작은 담을 앞, 뒤로 설치했다. 뒷마당의 담은 남북축으로 되어있으며 문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우신문(佑申門)이다. 앞마당의 담은 남쪽으로 내려오다 사랑채 출입문인 장양문(長陽門) 근처에서 서쪽으로 꺾이는데 그 부분에 안채와 연결되는 정추문(正秋門)이 동향한 채 있고 거기서 담은 다시 남북축으로 배치되어있다. 그리고 건물 기단 위에 안채로 가는 나무 쪽문을 두었다. 건물과 연결된 앞 마당 담 앞에는 괴석 4개를, 서쪽으로 틀어진 정추문 쪽 담 앞에는 괴석 1개를 두었는데 저마다 크기가 다 다르다.
3.2. 연경당 안채
- 건물 구조 자체는 사랑채와 거의 동일하다.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서쪽 끝 1칸이 남쪽으로 돌출되어있으며 누마루로 되어있다. 누마루 북쪽으로 안방이 2칸 있고, 온돌방 동쪽에 대청이 2칸, 건넌방이 2칸, 마루가 1칸으로 되어있다.# 건물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으며 창이나 문으로 막혀있지 않고 외부와 통하게 되어있다. 서편에는 창 앞에 쪽마루를 놓았다.
- 일반적인 안채와 달리 부엌이 따로 없다. 아무리 민가 양식을 본땄다 해도 어쨌든 궁궐이라 주방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요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난방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래서 아궁이는 다른 궁궐 침전과 같은 함실로 되어있다. #
4. 부속 건물
4.1. 선향재
昌德宮 善香齋
연경당의 서재로 사랑채의 동쪽에 위치해있으며 서향하고 있다. 연경당 창건 당시에는 없었고 고종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은 ‘좋은(善) 향기(香)가 서린 집’이란 뜻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에 대청이 3칸 있고 대청 좌, 우에 온돌을 2칸씩 놓았다. 청나라 양식의 영향을 받아 건물의 양 옆 면 벽은 붉은 벽돌을 쌓고 벽 중앙에는 회색 벽돌로 만든 둥근 틀 안에 화려한 문양을 넣었다. 그리고 벽 아래엔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건물 전면에는 차양을 덧대었다. 오늘날의 블라인드와 유사하게 지었으며 삼끈과 도르래를 달아 위치를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차양의 지붕은 기와가 아닌 구리 판으로 만들었다. 차양의 안쪽은 나무 판으로 덧대고 나무로 십자 틀을 엮은 형태이다.
이 차양은 오후의 햇살을 정면으로 맞기에 이를 피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사실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서향으로 놓여있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불편한 점이 오후 햇살 외에도 습기가 많이 차서 온돌에 불을 지펴 습기를 빼주어야 했다고 한다.
선향재의 뒷쪽(동쪽)엔 4단의 화계를 놓고 꽃과 나무를 심어 화려하게 꾸몄다.
4.2. 농수정
昌德宮 濃繡亭
연경당 영역의 정자로 선향재의 동북쪽에 있다. 건립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선향재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 이름은 ‘짙은 빛(濃)으로 수(繡)를 놓는다’는 뜻이다.
1칸 짜리 이익공 양식의 건물로 사모지붕에 겹처마로 되어있다. 각 면마다 문이 설치되어있는데 아(亞)자살로 되어있어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문짝은 위로 들어 올릴 수 있어있어 문을 올리면 사방이 트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
4.3. 반빗간
연경당의 부엌으로 안채의 뒤에 있다. ‘ㄴ’자 형태로 되어있는 정면 8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서북쪽에 2칸이 트여있는 공간으로 되어있고, 서쪽에 주방이 2칸 있으며(각 주방 사이에 폭이 좁은 공간이 1칸 있다.) 주방 동쪽에 온돌방 2칸, 대청 2칸, 그리고 온돌방 1칸이 나란히 놓여있다.
5. 여담
- 2009년 12월 17일 연경당 내 선향재에서 아궁이에 불피우기 행사를 했다. #
- 2010년 3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선향재에서 한시적이나마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기업 등이 회의 장소로 빌려 쓸 수 있게 하였다. #
- 2019년 10월 15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선향재에서 《후원에서 만나는 한 권의 책》이란 문화 행사가 열렸다. 시, 수필, 어린이 도서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을 두고 관람객들을 위한 독서 장소로 개방하는 프로그램으로, 단풍 절정기에 아름다운 후원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게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