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사레 보르자(창세기전 시리즈)

 


1. 소개
2. 창세전쟁 때의 행보
3. 창세전쟁이 끝난 후
5. 이후 작품에서의 묘사
6. 평가


1. 소개


Cesare Borgia
일본 팔콤판 명칭: チェザレ・ボルジア(체자레 보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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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판
일본 팔콤
창세기전: 안타리아의 전쟁
창세기전 시리즈의 등장인물. 본명은 '''로벨'''이며, 성직자로서 사용하는 가명의 유래는 실존 인물 체사레 보르자.
에스겔력 1192년생[1]으로 게이시르 제국 고위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2. 창세전쟁 때의 행보


제국 대장군 그리엄 산하의 암흑기사로 활동할 당시까지는 어떻게든 정상적인 군 생활을 하려던 것으로 보였으나, 그리엄이 베라딘의 명령을 받지 않은 독단 행위로 아스타니아 침공을 강행하고 로벨의 간청마저 거부한 채 팬드래건 성에서 옥쇄를 선택하는 바람에 갈 곳이 사라지게 되자[2]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싸움을 피해 도망쳐 달아날 궁리만 하기 시작한다.
로벨은 그리엄이 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보란듯이 적전도주했고, 카슈타르에게 그리엄의 전사 사실을 알렸다. 카슈타르는 별다른 의심 없이 로벨에게 별동대를 주어 썬더둠 요새를 공격하던 실버 애로우의 뒤를 치도록 명령했는데, 로벨은 카슈타르의 지시를 바로 어기고 두 번째 적전도주를 실행, 이것이 썬더둠이 함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눈에 불을 켠 카슈타르가 배신자인 로벨을 추적해 잡아내고 즉결 문책하려던 찰나, 이올린 팬드래건의 파상공세가 들이닥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는 틈을 타 로벨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병사를 찌르고 세 번째 적전도주를 저지른다.
세 번의 항명 및 적전도주가 적용되어 극형을 받게 될 처지가 된 로벨은 모든 것을 버리고 카슈미르로 들어갔는데, 이 때 알시온 블랙소드의 밑에서 이름 없는 부하로 일하며 용병들과 함께 생활했다. 이 때 명예보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기본 가치관이 완전히 정립되었고, 1210년에 제국으로 복귀한 흑태자가 징집 명령을 내려 카슈타르에게 정체를 발각당했을 때 팬드래건 측의 사소한 정보를 하나 헌납하고 흑태자 산하로 들어간다. 이 때부터 이중 스파이로서 실버 애로우와 다크 아머를 오가며 정보를 흘렸으며, 이후 흑태자가 G.S로서의 기억을 되찾아 회색기사단을 창설할 때 거기에 소속되었고, 폭풍도에서 벌어진 인류연합군의 최후의 일전에도 참여했다.이 때의 평가는 '맹렬히 싸우지는 않았지만 전직 기사로서 고용료만큼은 했다'는 식인데, 인류 전체가 멸망당할 위기라고 알려졌기 때문에 딱 죽지 않을 만큼만의 실력 행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3. 창세전쟁이 끝난 후


흑태자가 죽고 게이시르 제국이 붕괴하자 로벨은 용병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모든 것을 버린 채 아스타니아에 남아 있던 주신교 템플러단의 수도원으로 들어갔고, 체사레 보르자라는 가명을 이용해 말단 수도사가 되어 주신교 신학을 공부했다. 회색기사단 소속으로 폭풍도에서 벌어진 최후의 일전까지 참여한 당사자이기에 당연히 주신들에 대한 신앙심은 전혀 없었지만, 흑태자 사후의 안타리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신교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되어 창세전쟁의 진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사실을 왜곡하는 데 주력했던 것이다.
투르 제국의 아스타니아 침공 이후 더 이상 아스타니아가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한 그는, 13암흑신을 숭배하는 암흑신교의 망령을 제국령에서 쫓아내 주신교의 영광을 전파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주교단의 큰 신임을 얻어 게이시르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게이시르에서 열성적인 주신교 선교사로 활동하며 암흑신 신앙을 몰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포교 활동에 처음 귀를 기울여 최초의 주신교 개종자 중 한 명이 된 모 중소 귀족 가문 출신의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결혼한 후 자신에게 물심양면으로 봉사하며 가정을 함께 꾸려나간 아내에게 큰 감명을 받아 거짓된 신앙심으로 아내를 이용한 성직자로서의 생활을 반성하고, 그녀를 위해 포교 활동에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제국령 순회 도중 암흑신교의 독실한 신자였던 한 지방 영주의 심경을 거스르는 언행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화가 단단히 난 영주에 의해 그 영지에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아내가 '주신교 개종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체사레가 보는 앞에서 즉결 사형 처분을 받게 되고, 체사레와 그의 어린 딸 메르세데스 보르자가 영지에서 바로 추방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체사레는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며 심한 자책감에 빠졌고, 급기야 자신이 이런 치욕을 당한 이유가 힘없는 성직자이기 때문이라는 비뚤어진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이후 그의 포교 활동은 정치적인 세를 불리는 방향으로 완전히 변질되었으며, 표면적인 성과를 내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주교단은 지난 수십 년간 아무도 이뤄내지 못한 제국령의 주신교 개종률을 보여 준 체사레를 치하함과 동시에, 과거는 불분명하지만 제국에서 주신교를 선포하는 데 앞장섰다는 이유로 제국 출신으로는 최초로 추기경의 직위에 임명한다.
그렇게 게이시르 전체를 손에 넣은 체사레는 교회 세력을 앞세워 소영지들로 분할된 각 지방의 영주들을 마음대로 주무르게 되었고, 게이시르 제국령은 '''신정 정치의 탈을 쓴 체사레 독재정으로 바뀌었다.'''

4.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


제국령 전체를 좌지우지할 권세를 손에 넣은 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암흑신교를 '악마숭배 신앙'으로 공포한 뒤 주신교로 개종하지 않은 세력들을 종교 재판을 통해 숙청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협력하고자 하는 영주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주고 마음을 얻었으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다질 수 있는 친위세력을 차근차근 불려 나갔다. 체사레를 등에 업고 주신교로 전향한 지방영주들은 체사레의 철권통치 밑에서 한껏 득세했으며, 일자리를 찾으러 다니는 여러 용병들 또한 체사레에게 두둑한 수당을 받고 암흑신교의 탄압에 앞장섰다.
수많은 종교 재판이 시행되어 자신의 아내가 죽은 영지를 비롯한 수많은 암흑신교측 영지들에 칼바람을 불러 일으켰으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을 전부 악마교도로 몰아 처형하는 식의 마녀사냥을 벌여 전 제국령을 피바다로 물들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귀족 가문들이 멸문당했는데, 특히 자신의 딸인 메르세데스와 약혼 관계에 있었던 시라노 번스타인을 파멸로 몰아넣고 번스타인 가문마저 멸문시키는 등 자신의 주변을 완전히 청소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던 알프레드 프레데릭의 손을 빌린 뒤 메르세데스를 알프레드와 정략결혼시키고, 손녀딸인 크리스티나 프레데릭 역시 비프로스트 공국모젤 2세에게 강제로 시집을 보낼 계획을 세우는 등, 이미 인간이 아니라고 할 만한 수준의 탐욕의 화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체사레의 야망에 놀아나지는 않았다. 조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몰락귀족들, 사상보다는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수많은 서민들, 주신교의 횡포에 치여 궁지에 몰린 모든 이들이 하나씩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러한 반발에 대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는지 그들의 정체가 드러날 때마다 진압하면 그만이라 여겼지만, 제피르 팰컨의 등장과 함께 자신의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제국령의 시민들이 점점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는 등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게 되자 비프로스트를 끌어들여 제국령을 침공하게 하여 저항 세력들을 일소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제국령이 단결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프레데릭 군과 제피르 팰컨이 연합하여 비프로스트의 침공을 막아내게 된다. 그러자 제피르 팰컨과 프레데릭을 분열시킬 요량으로 알프레드 프레데릭을 암살하고 그 누명을 시라노에게 뒤집어씌워 제피르 팰컨을 분열시킨다. 그 와중 몰래 암흑신 디아블로의 도움을 받아 파괴신 부활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손녀 크리스티나를 파괴신 부활의 제물로 이용하기도 하는 등 완전히 인외의 길을 걷기까지.
그의 최종적인 목표는 파괴신의 힘을 이용해 안타리아 대륙을 자신의 발 아래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 제국 통일은 그에게 어디까지나 그를 위한 발판 마련에 불과했을 뿐, 제국을 위한다는 의식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한 야망을 위해 힘과 권력만 부풀리기 바빴던 그는 제피르 팰컨이 파괴신의 부활을 저지하자 다시 한 번 비프로스트와 손을 잡는다. 이 때 아스카론까지 동원하는 대가로 제국령 영토의 절반을 양도한다는 매국노적인 조약은 덤. 그것마저도 다시 뭉친 제피르 팰컨의 활약[3]팬드래건 왕국의 국왕 라시드 팬드래건의 개입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몰린 그는, 망티고아 산에서 벌어진 최후의 전투 때 파괴신으로부터 얻은 힘을 자신에게 사용해 괴물로 변신하여 끝까지 발버둥치지만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마화한 뒤 파괴신의 힘을 얻은 자신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신이라고 외치는데, 막상 그를 제압한 것이 시라노도 그에게 아수라를 계승받은 클라우제비츠도 아닌 로베르토/이자벨/크리스 정도의 사실상 2군급 라인이었던 걸 보면, 파괴신의 힘이니 뭐니 해도 결국 그가 얻은 힘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4] 시스템상으로도 난이도가 그다지 높지는 않은 편.
해피 엔딩에서는 시라노가 그를 용서하고 멀리 떠나기 때문에 최후가 그려지지 않았지만, 상술한 대로 파괴신의 힘을 얻어 변한 그리마의 힘도 메디치 등의 멤버로 제압 가능한 정도이기 때문에 이후 제피르 팰컨에 척살당했을 게 뻔하다. 배드 엔딩에서는 시라노를 폭주시켜 제국 전체의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고 파괴신의 힘을 얻은 자신 앞에 시라노는 더 이상 적이 아니라 자부하지만, 결국 그 시라노와의 1:1 대결에서 패배한다. 다만 여기서는 결국 시라노도 체사레의 안배대로 제국령과 비프로스트의 공공의 적으로 몰려 최후를 맞이하기에 시라노(+ 플레이어)에게 상처뿐인 승리를 안겨다 준 셈이다.

5. 이후 작품에서의 묘사


창세기전 4에서 2016년 8월 조합기 전설 아르카나로 추가되었다. 무기는 법장, 속성은 암속성, 전용 군진은 무자비한 선포. 디아블로가 그를 부추킬 때 암흑마법과 그리마의 힘을 교묘하게 이용하라고 말했고, 이루스와 디아블로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므로 암흑마법을 배웠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물론, 작중에서 이에 대해 언급은 없었지만... 그리고, 이에 대해 에스카토스 연구길드의 영자조합 NPC 레오폴드가 평하길 '자신은 주신교 추기경이면서 암흑마법을 사용하고 다른 암흑마법 사용자들을 탄압했으니 정말 모순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창세전쟁 시절의 암흑기사 버전 로벨이 추가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한 가지 밝혀졌는데, 그가 다크 아머의 배신자로 트리시스 군대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느라 숨어지내는 동안 시즈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면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가 역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인물이라서 개입해 살려준 것으로 보이는데, 디아블로와 이루스가 아수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미 오래 전부터 로벨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그가 위기를 면하도록 시즈를 파견했다고 한다.[5]
이후 '로벨은 시즈의 도움을 받아 신변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동일한 내용이 주사위의 잔영 for Kakao에서 다시 한 번 거론되면서, '''그의 존재가 아수라 프로젝트가 유지되기 위한 필요악 중 하나라는 것이 완전히 공인되었다.'''

6. 평가


서풍의 광시곡에서 묘사된 것과 같이 체사레의 행동 원리에는 철저하게 그 자신의 야망이 중심에 있었으며, 국가의 안위나 발전 등에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사분오열되어 제대로 된 군사력 발휘가 힘든 제국의 앞날을 쥔 귄력자임에도, 반란 진압을 하겠답시고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외세를 자국 영토의 절반까지 제시해가며 끌어들이는 미친 짓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이미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 루벤 토벌전부터 등장한 유스타시아를 통해 일찍이 베라모드와 함께 세계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은 것에 이어 데이모스를 봉인한 두 암흑신과 손을 잡은 상태임이 드러났으며, 또한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숨통을 조여오는 정적을 상대한답시고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는 파괴신, 적국의 마장기 같은 힘에도 거리낌없이 손을 빌리며 제국의 앞날에 암운을 드리웠다. 그리고 체사레의 이런 악행은 창세기전 4에서 이스카리웃의 그리마 관련 생체 실험의 지원 및 체사레를 뒤에서 지원하던 유스타시아마저 과거 아르케에서의 퉁 파오를 떠올리며 회의감에 젖는 모습을 통해[6] 더욱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창세기전 위키에서도 부정적인 묘사 일색이다. 그의 이러한 폭주가 결과적으로는 반대 세력의 집결을 불러일으키면서 제국령 통일로 이어지기는 했어도 체사레 보르자 본인 자체는 그런 제국 재통일에 어떤 기여라는 긍정성을 부여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부정적인 행보와는 별개로, 주신교의 불모지였던 제국령에 주신교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해 혼돈의 연속이었던 세력권을 다수 정리해 어떤 형태로든 질서를 정립시켰고 비프로스트의 원군을 통한 제피르 팰컨의 충돌까지 염두해 교묘하게 판을 그리는 동시에[7] 그 자신의 욕망과 아집에 기반했을지언정 추후 통일될 제국에 대한 일종의 비전[8]과 철학도 지니고 있었던 등, 권모술수와 행정적인 부문 및 대국을 다루는 혜안에 있어서는 대단히 뛰어난 인물이었다. 두 암흑신을 상대로 해서도 위축되지 않고 받아낼 건 다 받아냈다는 묘사를 보면[9] 자기 목숨 챙기기에도 바빴던 창세전쟁 시절과 달리 그릇도 커져 어떤 의미로든 걸물이라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주신교를 기반으로 했을지언정 순수하게 제국령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만인에게 존경받을 만한 위인으로 거듭났을 수도 있으나,[10] 그렇게 쌓아올린 모든 것을 게이시르 제국령을 도탄에 빠뜨려가며 자기 야망을 이루는 것에만 동원한 결과 그에 따른 반대 세력의 준동과 집결도 그만큼 강해져 체사레 본인의 숨통을 끊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으니 자업자득.
그럼에도 후속작인 템페스트부터 그에 대한 안타리아 대륙 내에 상당히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는 묘사가 제시된다. '''제국의 무정부상태와 종교적 공백기를 이용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갖은 일을 자행한 쓰레기'''라는 평가부터 '''제국의 재통일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한 위대한 영웅'''이라는 평가까지 아주 다양하다는 것. 이런 상황을 묘사한 클라우제비츠는 그 뒤에 마키아벨리의 다음과 같은 평가를 인용했다.

당시의 제국은 창세전쟁으로 인해 흑태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재를 잃었을 뿐더러 심각한 권력공황 상태를 맞아 십여 개로 분열된 군소영주들에 의한 내란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추기경에 의해 진행된 이른바 '악마재판'은 과정이 어떠했든 간에 제국 세력의 재편을 급속히 진행시켜 세력이나 기반이 약한 영주들을 몰락시키고 자신을 비롯한 몇몇 군주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의 많은 피가 흘러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이후로 수백 년 동안 제국은 군소영주들의 세력다툼의 진흙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의 사후에도 그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되어 제국의 혼란기가 최소화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런 내용과 크리스티나가 체사레의 권력을 물려받아 프레데릭의 군사력과 동반해 제국을 재통일했다는 설정과 창세기전 4에서도 체사레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고 묘사되었기 때문에, 일부 유저들 사이에서는 체사레가 생전에 남긴 제국 통일의 기반이 상당히 컸고 그 때문에 그의 성향과는 별개로 제국령 통일에 대한 기여는 그의 죽음을 통한 단결을 제쳐둬도 결과적인 것 이상을 넘어 상당히 큰 것 아니냐 하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관 내의 엇갈리는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되는 것이, 마키아벨리는 위의 평가와 더불어 '''체사레가 자신이나 자신의 반대 세력을 통한 제국의 통일을 염두하고 과도하게 권력 추구를 하는 등의 모든 일을 벌였다'''는 역사 왜곡 수준의 주장을 벌였기 때문이다.[11]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생전에도 클라우제비츠와 함께 제국령 최고의 현자로 불리면서 뒤에 리슐리외로 개명하여 제국 재상으로까지 등극하는 지대한 입지를 지닌 데다가 그의 저서인 군주론도 안타리아 대륙에 유명세를 탈 정도이니, 그런 그가 공공연하게 이런 주장을 일삼는 자체가 체사레의 평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 자명하다. 애초부터 마키아벨리는 신 제국 재상 리슐리외로 활동하는 시절까지도 '한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 악한 군주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진심이었기 때문에 일반론으로 치환될 만한 평가가 못 된다.
게다가 마키아벨리는 체사레의 죽음 이후 홀로 망티고아 산 정상에 남아 있던 마키아벨리는 클라우제비츠가 자비를 베풀어 살려 보내지 않았다면 제피르 팰컨의 어느 누구에게라도 끔살당할 수밖에 없는 위치[12]였고, 결국 자신이 모시던 체사레가 그랬던 것처럼 리슐리외라는 가명을 쓰고서 철저하게 크리스티나를 비호하는 세력으로 변절하면서 간신히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다. 리슐리외의 권모술수와 정치공작 덕분에 크리스티나는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으나, 망티고아 산의 결전으로 피폐해진 제국군 전력[13]을 비롯해 주사위의 잔영 for Kakao에 나온 알바티니 데 메디치와의 인연 스토리에서 이제 막 성인이 된 15살의 알바티니가 곧바로 친위대장에 임명된 이유 두 가지[14]까지 감안해보면 그런 정계 내에서 자신의 사상에 기반한 중앙집권화 창출을 위해서건 자신의 사상의 정당성 어필을 위해서건 뭐라도 끄집어내 체사레를 좋게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15] 결정적으로 3 당시 리슐리외가 독백으로 "추기경 각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라는 요지의 말을 한 부분은, '''그 시점에서도 아직도 체사레의 진의를 완전히 알지는 못한 자'''로서 비호하는 발언을 했다는 의미이기에 더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16]
이런 마키아벨리의 평가 여부를 별개로 보더라도, 창세기전 위키에서의 체사레 보르자 항목에선 제국령을 통일하겠다는 진심과는 달리 정작 "제국을 위한다"는 의식이 잘못된 곳에 맞춰져 있던 그의 과오를 바로잡은 뒤, '''올바른 제국 통일의 기틀을 닦은 이가 바로 손녀 크리스티나'''라 기술함으로써 체사레가 남긴 기반을 통한 기여의 가능성을 명백히 부정하고 있다. 게다가 마키아벨리가 언급한 체사레의 피의 숙청을 통한 세력 정리 역시, 당시 제국령의 그 정리된 대영주령들 중 선정 통치 구역으로 언급된 사례가 에스테 도데의 리브레빌 지역과 알프레드 프레데릭의 로우엔 지역 단 둘 뿐이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체사레 본인이 집권하고 있던 시절에는 결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았다. 결국 체사레의 세력 정리가 제국 통일에 결과적으로 기여하게 된 건 크리스티나가 집권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다. 그리고 크리스티나 본인도 주사위의 잔영 for Kakao에서의 알바티니 인연 스토리에서 비프로스트 공화파의 지원 요청에 대해 절대 권력에 대항한다는 측면에서 그들에게 더 공감이 간다고 말하는 등, 체사레의 시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보였다.
그러나 체사레 본인이 생전에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혼돈의 연속이었던 제국령에 처음으로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제국령 전체를 호령하던 거물인 동시에 그의 폭주를 저지하기 위한 반대 세력의 집결이 제국령의 통일로 이어지면서 그 자신이 어떤 의미로든 게이시르 제국 통일의 분기점에 해당하는 인물이 된 만큼, 게이시르 제국인들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체사레에 대한 기억이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17] 여기에 그의 죽음을 기점으로 통일된 제국이 번영일가를 달린 것과 마키아벨리의 상술한 프로파간다가 맞물린 결과, 체사레에 대한 재평가의 움직임이 일어나도록 유도한 리슐리외의 전략은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전 4 액트6 '주신교의 멍에' 아르카나 저널에 나온 체사레 소개문을 보면, '제국을 피로 물들인 그의 행적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고 나와 있기 때문. 제국이 재통일되고 주신교의 추악한 진실이 밝혀지며 완전히 교세가 몰락한 뒤에도 체사레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생겼다는 설정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로 인해 파트2 메뉴얼북인 『Part.2 Visual Reference』에 '결과적으로 제국의 통일에 기여했다'고 애매하게 서술되어 있던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설명이 통하게 되었고, 에피소드3 진행 당시 크리스티앙 데 메디치가 아스타니아 난민 출신 강도들과 싸울 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해 '일부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에둘러 표현한 이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설명이 통하게 되었다. 체사레에 대해 논란이 많다는 설정은 템페스트 때부터 있긴 했지만, 이걸 재평가 단계에까지 끌어올리고 4 시점에까지 평가가 엇갈리는 수준까지 이어간 건 전적으로 '살아남아서' 자기 상관을 철저하게 포장했던 리슐리외의 공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생전에는 패악만 불러 일으키며 몰락했지만, 후대에 그 자신의 염원에 걸맞은 형태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영예를 얻는 것만큼은 성공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1] 창세기전 4 위키 서비스 당시 위키에서 제공하던 연표에 심각한 오류가 발견되어 유저들이 이를 정리하던 도중 재계산된 생년. 서풍의 광시곡 기준 연표와 4에서 묘사한 시나리오 두 가지를 전부 계산해 본 결과 공통적으로 라시드 팬드래건과 동갑으로 계산되었다고 한다.[2] 이 시점에서 베라딘은 그리엄과 휘하 기사단을 완전히 버렸고, 낙하산 인사로 그리엄 밑에 들어가 간신히 1인분하는 실력만 지녔던 로벨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살아날 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그리엄과 후일을 도모해보려 했지만 무산되었고 그 때문에 목숨까지 위험해지자 억울함이 극에 달했던 듯.[3] 클라우제비츠가 알프레드 프레데릭 암살의 진범을 알아내어 크리스티나에게 폭로해 그녀의 마음을 돌렸고, 그 크리스티나가 실의에 빠진 로베르토 데 메디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제피르 팰컨과 프레데릭 군이 다시금 힘을 합칠 수 있었다.[4] 로베르토는 그리마를 발동하지 않은 유스타시아나 디아블로에게도 제압당하는 수준이고, 이자벨은 그런 로베르토보다 무력 면에서는 약간 처진다. 크리스 역시 독학으로 갈고 닦은 총술 실력이 뛰어나다곤 해도 결국 체사레의 눈을 피해 운신할 수 있는 폭에 한계가 있었으므로 둘에 비해 특출난 실력이라 보긴 어렵다. 다만 3에서 크리스티앙의 독백에 따르면 알바티니와 자신이 협공해도 작중 시점의 어머니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제피르 팰컨의 부대장으로서 인간 중에서는 뛰어난 실력이지만 신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털리는 수준이라고 봐야 할 듯.[5] 참고로 디아블로와 이루스가 G.S를 흑태자로 각성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했다는 내용까지 액트7 아르카나 퀘스트 '여신의 가호'에서 간접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6] '아르케 시절 우리는 폭군 퉁 파오에 맞서기 위해 용병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그 시절의 우리들이 지금 폭군과 손잡고 일하는 지금의 우리를 보면 뭐라고 할까...' 라며 심란한 감정을 드러내고, 이에 디아블로는 '그 이야기는 다시는 하지 않기로 했을 텐데? 우리는 대의를 위해 악인이 되기로 맹세한 몸이다'라며 과거 이야기를 거론하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7] 사실 흑태자의 힘의 계승자라는 이레귤러인 시라노 번스타인과 전혀 생각도 못한 팬드래건의 개입 외에는 대부분이 체사레의 계산대로 이뤄지는 편이었다.[8] 이는 시라노의 배드 엔딩에서 잘 묘사된다.[9] 창세기전4 고귀한 기사 아르카나 퀘스트에서 디아블로와 이루스에게 자신에게 반기를 들려했던 이단심문관을 처형한 후 '그녀의 목은 효수대에 걸고 몸은 이스카리웃에게 주었죠, 새로운 실험물이 생겼다며 기뻐하며 들고 갔지요' 하고 말하자, 디아블로조차도 악취미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이에 체사레는 '그 악취미인 사람을 뒤에서 지원해주는 건 두 분 아닌가요?' 하고 받아치고, 이에 두 사람이 울컥하는 반응을 보이자, '다음에는 두 분의 고견을 경청하겠습니다'고 말하며 능구렁이처럼 빠져 나간다.[10] 그러나 주신교 자체가 그 시점에선 창세전쟁의 진실의 왜곡과 그 유지를 위한 탄압을 전제로 해야 존재가 가능한 이념이었던 만큼 그가 순수한 의미에서 흠없는 위인으로 남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스스로의 야망 달성이 아닌 순수하게 제국을 위해서 노력했다면 일정 기간 주신교를 기반으로 힘을 다진 뒤 그를 바탕으로 다른 방향의 국가 시스템 전환을 꾀하는 건 그의 능력과 당시 영향력, 기반을 볼 때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배후에 있던 두 암흑신이 그걸 내버려둘리 없다는 건 제쳐두고 말이다.[11] 출처 이는 후속작 메뉴얼이 아닌 템페스트 홈페이지에 기술된 내용이다. 서풍의 광시곡에서 체사레를 대하는 마키아벨리의 태도를 보면 마키아벨리 자신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12]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창세기전 공식 위키의 설명이 '자신의 사상을 통해 역사를 주도한 인물들을 평가하려는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인데, 가치중립적인 사관적 평가가 아니라 주관적 사상이 들어간 프로파간다를 할 것임을 알고서도 보내 준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13] 전투 결과 게이시르의 수중에 남은 거라곤 어느 정도의 제피르 팰컨 출신 병력과 알프레드 프레데릭 사후 로우엔에 남겨진 수비병력 일부, 그리고 전투 중 사로잡힌 일부 제국군 포로들 정도밖에 없었다.[14] 하나는 크리스티나 입장에서 '황제 자리 오른 이후 믿을 놈 하나도 없고 정말 힘들었지만 알바티니는 부모님(로베르토와 이자벨)과 본인의 실력을 봐서 믿을 만하다고 판단해서 뽑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알바티니 입장에서 '부모님이 황제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 판단해서 친위대장에 지원한 것'이다.[15] 체사레의 무차별적인 마녀사냥 때문에 게이시르의 귀족 가문 상당수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정부를 구성할 만큼의 쓸 만한 재원들이 남아 있었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로베르토 데 메디치를 중심으로 한 메디치 가문이 건재한 채로 크리스티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보좌했기 때문에''' 리슐리외 입장에서는 필사적으로 크리스티나를 떠받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16] 아마도 메인 시나리오 라이터였던 최연규 前 이사 입장에선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서의 제국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을 말하고 싶었던 모양으로, 이러한 연출은 마키아벨리-리슐리외를 비뚤어진 사상에 심취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로 묘사하고자 했던 동시에, 알바티니의 행동을 방조한 것까지 합쳐 알바티니가 가진 확신범으로서의 성격도 함께 묘사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17] 현실에서도 특정 인물의 이런 생전의 영향력 때문에 실질적인 업적의 여부와 별개로 추종자가 다수 발생하는 케이스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