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펜터즈

 


''' 역대 그래미 시상식'''[1]
[image]
'''최고의 신인상'''
'''제12회
(1970년)'''

'''제13회
(1971년)'''

'''제14회
(1972년)'''
크로스비, 스틸스 앤 내쉬

'''카펜터즈'''

칼리 사이먼

[image]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 펼치기 · 접기 ]
'''이름'''
'''카펜터즈
THE CARPENTERS
'''
'''분야'''
'''음악'''
'''입성날짜'''
'''1983년 10월 12일'''
'''}}}#ffd700 위치}}}'''
'''}}}#ffd700 6931 Hollywood Blvd.}}}'''

1. 개요
2. 앨범
3. 싱글
3.1. 빌보드 1위
3.2. 빌보드 2위
3.3. 빌보드 3~10위
3.4. 빌보드 11~20위


1. 개요


[image]
왼쪽부터 캐런 카펜터, 리처드 카펜터.
  • 리처드 카펜터: 1946년 10월 15일 (77세)
  • 캐런 카펜터: 1950년 3월 2일 ~ 1983년 2월 4일 (향년 32세)
리처드 카펜터와 캐런 카펜터 남매로 구성된 미국의 팝 그룹. 1970년대를 장악한 세 개의 가족 그룹 중 하나이다.[2] 1969년Ticket To Ride#[3]로 데뷔했다. 리처드가 피아노, 백업 보컬, 작곡, 편곡을 맡았고[4] 보컬과 드럼은 캐런이었다.[5] 캐런이 솔로로 낸 정규 앨범을 내려고... 했으나, 생전에는 발매가 거절당했고, 결국 사후에야 발매되었다.[6]
이지리스닝 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ABBA[7]와 함께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그룹 중 하나. 쉽게 귀에 들어오는[8] 편안하고 서정적인 컨트리 선율이 특징적이다. 서정적이고 호소력이 강한 캐런 카펜터의 보컬이 매력적인 그룹이다. 맑고 청량한 캐런 카펜터의 알토 보이스는 카펜터즈를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캐런 카펜터가 소프라노 음역을 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진정한 매력은 역시 자타공인 매력적인 알토 보이스.
밝고 편안한 노래로 잘 알려진 그룹이지만, 보컬인 캐런 카펜터의 비극적인 죽음으로도 유명하다. 십대 때 비만을 극복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진행하기 시작하며 결국 남은 평생을 거식증으로 고생하게 되었으며 결국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9] 전성기 때에도 살이 찌고 빠지는 게 반복되었고 1970년대 후반 거식증이 심해지며 전체적으로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80년에 결혼을 했다가 1년도 안돼 남편과 사이가 악화되고[10], 증세는 더 심해졌다. 1981년 마지막 공개활동 때의 모습을 보면 매우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리처드 역시 약물중독을 겪었고, 이 때문에 카펜터즈가 약 1년 동안 활동 중지를 선언한 적도 있다. 1983년 캐런의 죽음으로 카펜터즈의 공식적인 활동은 종료된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난 뒤 같은 보컬을 들으면 '''편하지만 그만큼 우울함이 배여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대표곡 중 하나인 Top Of The World의 밝은 가사에 착각하기 쉽지만 이들의 노래 중에서는 우울한 가사의 노래도 한두개가 아니다. 특히 Goodbye To Love의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끝도 한도 없이 우울한 노래.
스탠더드 팝/어덜트 컨템퍼러리 계열에서 이들의 위상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히 수많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뽑아낸 리처드 카펜터의 작곡 실력과 캐런 카펜터의 뛰어난 보컬은 아직까지도 칭송을 받고 있다. 폴 매카트니는 캐런을 "세계 최고의 여성 보컬"이라고 평했으며, 배철수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카펜터스의 음악을 띄울 때마다 그 누구도 캐런 카펜터처럼 편안하게 노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칭송한다.
활동 당시, 차트 장악력은 상당했지만 너무 말랑말랑하고 듣기 편한 음악만을 지향한다고 하여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수많은 록 그룹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소속 레코드사에서 폭 넓은 계층을 공략하기 위해 건전하고 건실한 보수적 젊은이 이미지를 강조했었고, 카펜터스는 인터뷰도 마음대로 못 했다. 이런 이미지 때문에 젊은 층에서는 카펜터즈 노래를 좋아한다고 밝히는 것이 노땅들이 바라는 이상향 같은 이미지로 비춰져서 좋아한다고 밝히길 꺼려했고, 각종 언론과 평론지에서도 이미지와 스탠스 때문에 공격당하기도 했다. 훗날 리처드 카펜터가 음악과는 별개로 회사에서 강요한 이미지 때문에 평가절하됐던 일들, 방송이나 언론에 자기 의견도 소신껏 말하지 못했던 일들이 화나고 힘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90년대 초중반에 접어들며 많은 록밴드들이 "사실 겉으로는 욕했지만, 우리는 카펜터즈의 열성팬이었다."라고 커밍아웃(?)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실제로 1994년에 발표된 트리뷰트 앨범에 크랜베리스소닉 유스 등 여러 유명 록밴드가 참여했다. 소닉 유스는 자타공인 카펜터즈 빠. 1990년 캐런 카펜터의 추모곡으로 Tunic이란 곡을 작곡한 적이 있다. 소닉 유스의 노이즈 / 익스페리멘탈 / 펑크 성향의 음악과 카펜터즈의 음악은 정반대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독특한 경우. Kim Gordon's open letter to Karen Carpenter[11] 이후 트리뷰트 앨범에서는 Superstar를 불렀는데, 정반대 성향의 음악이 묘하게 절충된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작 리처드 카펜터는 이 커버를 싫어했다고 한다.
참고로 Goodbye To Love의 기타 솔로는 수많은 카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Goodbye to love
황당하게도 할로윈 시리즈 1편 한국 비디오 표지는 당당하게 70년대를 풍미했던 카펜터즈의 존 카펜터 가 감독이라고 엉터리로 적어놨다. 증거인 비디오 표지
참고로, 악동뮤지션이 한국의 카펜터즈라고 불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12]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부당한 사례로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카펜터즈의 음악이 록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이유로 꼽히곤 하지만,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사실상 대중음악 명예의 전당과 마찬가지이고 록 뮤지션이 아닌 제임스 브라운, 아레사 프랭클린, 빌리 홀리데이, 로네츠, ABBA 등도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면 카펜터즈가 제외된 것이 석연치 않다.

2. 앨범


연도
제목
1969
Ticket to Ride
1970
Close to You
1971
Carpenters
1972
A Song for You
1973
Now & Then
1975
Horizon
1976
A Kind of Hush
1977
Passage
1978
Christmas Portrait
1981
Made in America
1983
Voice of the Heart
1985
An Old-Fashioned Christmas
1989
Lovelines
2001
As Time Goes By

3. 싱글



3.1. 빌보드 1위


  • (They Long to Be) Close to You[13] (1970)
  • Top of the World[14] (1973)
  • Please Mr. Postman[15] (1974)

3.2. 빌보드 2위


  • We've Only Just Begun[16] (1970)
  • Rainy Days and Mondays[17] (1971)
  • Superstar (1971)
  • Hurting Each Other (1972)
  • Yesterday Once More[18][19](1973)

3.3. 빌보드 3~10위


  • For All We Know (1971)
  • Goodbye to Love[20] (1972)
  • Sing[21] (1973)
  • Only Yesterday (1975)

3.4. 빌보드 11~20위



[1] 그래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상들로 여겨지는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최고의 신인상만이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부문의 상들은 따로 문서 내 수상 목록에 수록해주길.[2] 다른 두 그룹은 비 지스, 잭슨5.[3] 비틀즈의 1965년 곡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었다.[4] 곡을 받아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비틀즈 외에도 버트 바카락, 로저 니콜스 같은 유명 작곡자들이 참여해서 퀄리티는 발군.[5] 캐런은 이전에 드러머로도 활동했기 때문에 방송 영상을 보면 콘서트 등에서 가끔 드럼을 치는 경우가 가끔 있고, TV 쇼에서 솔로 드럼 연주도 한 적이 있다. 드럼 실력이 상당했다고 하며 캐런 본인도 자신을 "노래하는 드러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6] 캐런의 솔로 앨범은 카펜터즈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디스코 + 섹시 컨셉 + 고음으로 요약할 수 있을듯. 이러한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1980년에 제작을 모두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발매가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발매 거절은 본인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됐다고.[7] 물론 ABBA 의 노래들은 이지리스닝이라고 하기에는 좀 파워풀하다고 볼 수 있긴 하지만...[8] 사실 이건 캐런 카펜터가 그만큼 훌륭한 보컬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가수들이 카펜터스의 노래를 부른 것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수가 노래의 감정 표현에 너무 치중하면 할수록 듣기 편한 노래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어있기 때문에 이 부분의 균형을 조절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캐런 카펜터는 그 방면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9] 사실은 거식증 자체가 아니라 거식증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영양실조로 인해 쇠약해진 심장이 견디지 못한 '''심부전'''이 원인이었다.[10] 사실 결혼하기 바로 전날에 사이가 안 좋아졌다. 카렌은 언제나 아이를 가지기 원했는데 약혼자가 정관수술을 한 사실을 숨긴 것에 대해 큰 실망을 하고 파혼을 하려 했으나 카렌의 어머니가 결혼식이 코앞이니 숨기고 나중에 해결하자는 식으로 밀어붙였고 안타깝게도 몇년후 최종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게 될 날 아침에 사망하여 기혼자로 남게 되었다.[11] 사실 카펜터즈를 비롯한 6-70년대 스탠더드 팝/이지 리스닝 뮤지션들은 알게 모르게 8-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세대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당시엔 LP를 사지 않는 이상 라디오에 음악 수용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자연히 라디오에서 자주 틀어주던 AOR 뮤지션들에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들이 음악계에 뛰어들면서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영향을 드러냈다. 이런 경향은 미국에서도 깡촌 출신 뮤지션들로 갈수록 강해지는데, 너바나 같은 경우 대놓고 베이 시티 롤러즈를 언급하기도 했다.[12]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오빠, 빼어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여동생 구도로 본다면 적절한 해석이다. 물론 악동뮤지션 이전에 현이&덕이가 있었고 마찬가지로 오빠는 음악으로 여동생을 서포트하고 여동생이 가수로 더 활발히 활동했다는 점도 비슷하고, 여동생이 먼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여동생도 작사, 작곡했던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했으나 여동생 사후 오빠마저도 젊은 나이에 사망해 현이&덕이 멤버 모두 안타깝게도 고인이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13] 스페이스 카우보이라는 뮤지션이 이 음악을 리메이크 한 적도 있다.[14] 한국에서도 사랑받아 임형주, 박인희, 이성애, 조형기 등이 리메이크하였다.[15] 1961년 여성 그룹 마블레츠(The Marvelettes)의 데뷔곡으로, 마블레츠 원곡 역시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었다. 그 후 1963년 비틀즈도 이 곡을 리메이크하여 With the Beatles 앨범에 수록하기도 하였다.[16] 존 쿠삭 주연의 1408 영화에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본격 악몽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으로서의 역할을 한다.[17] 국내에선 이소라가 리메이크 했다.[18] 해피투게더 프렌즈BGM으로 쓰였으며 딱 들으면 대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노래. '에브리 샬랄랄라 에브리 워우워어~' 이게 이 노래다.[19] 크레용 신짱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의 적 측 조직의 이름이 여기서 따왔다.[20] 전반부를 거의 1분 가량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조곤조곤 노래한다.[21]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 4장의 엔딩곡으로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