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다하르 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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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을 저지른 가해자 로버트 베일스 미 육군 하사(Staff Sgt. Robert Bales)의 사진으로, 위는 아프가니스탄 파병 당시의 모습, 아래는 사건 이후 수감 중 면도 등을 하지 않아 꾀죄죄하고 수척해진 모습.
Kandahar massacre, Panjwai massacre
1. 개요
2012년 3월 11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주의 판지와이 구에서 미 육군 부사관 1명이 저지른 학살 사건. 2010년의 킬 팀에 이어 미군이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최악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킬 팀이 그룹으로 학살을 저지른데다 정신질환자들이라는 점에서 선처의 여지가 있었던 반면,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는) 한 명의 멀쩡한 군인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저지른 총기난사 사건으로 선처의 여지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흑역사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미 육군 제2보병사단 제3보병연대 소속의 로버트 베일스 하사[1] 는 2012년 3월 11일 새벽 3시 경에 M203 유탄발사기를 장착한 M4 카빈 소총과 M9 권총에 야간투시경까지 착용한 중무장 상태로 부대를 빠져나왔고, 전투복 위에 아프가니스탄 전통 의상을 걸쳐 위장하는 치밀함까지 보이면서 부대에서 약 1.6km 가량 떨어진 발란디와 알코자이 마을의 농가 세 곳을 급습했다.
주민들은 한밤 중에 자고 있다가 중무장한 미군과 맞닥뜨리자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끌려나와 살상당했다. 베일스 하사는 총과 유탄을 갈겨대며 16명이나 죽인뒤 농가에 사살한 시체를 몰아넣고 불을 지르는 등 증거 인멸까지 시도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아비규환 와중에 도망쳐 목숨을 건진 주민들이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당국에 이 사실을 알렸고, 베일스 하사도 부대로 복귀하면서 입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의상을 벗고 무기를 내려놓은 채 자수했다. 그러다보니 발광할 줄 알고 중무장하고 맞이한 미군들도 놀라워했다.
이후 미 육군 당국은 즉시 베일스 하사를 구속, 쿠웨이트를 거쳐 캔자스의 영창에 수감했고 바로 군사재판에 착수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당장 미국 정부와 미군에 강하게 항의했고,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도 특별 성명을 발표하고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전화로 책임자에 대한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아프가니스탄 의회도 베일스 하사를 아프가니스탄에서 공개 재판으로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시민들도 반미 시위를 벌이고 아무 상관없는 미군에게 돌을 던지는 등 민심도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미군의 주적인 탈레반도 미군에 보복 테러를 감행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테러를 감행해 애꿎은 아프가니스탄군 인사들만 죽어나갔다.[2] 물론 탈레반의 테러는 어차피 명분이 없고 악행을 정당화하려는 핑계에 불과해서 알아주지 않지만 대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문제다.
아직 정식 재판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베일스 하사의 변호사는 베일스 하사가 정신 이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하며 가능한한 형량을 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베일스 하사의 전우들이나 과거 상관들은 베일스가 복무 기간 중 전혀 정신적으로 문제가 될 일을 저지르지 않았고, 오히려 여러 공로 훈장과 메달을 받는 등 유능한 직업 군인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미 군검찰은 베일스 하사가 술이나 스테로이드를 남용했을 경우의 부작용이나 PTSD 후유증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PTSD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유는 현재로써 사유가 없음으로 판정되었다. 그리고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PTSD의 정도가 인생을 폐인으로 만들거나 할 정도로 지나치게 심하지 않으면 양형에 고려되는 일은 없다.
2. 판결
2012년 12월,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고 사상 초유의 대량살인범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판사 역시 사형을 판결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13년 6월 베일스 하사 사법거래로 본인이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사형은 불가능해졌고 대신 같은 해 8월 23일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남은 생애를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내부에서는 킬 팀과 달리 정신적인 문제도 별로 없어 보이는 데다 한두 명도 아니고 16명이나 되는 사람을, 그것도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인 묻지마 대량 살인범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는 게 말이 되냐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미국인을 미국 법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라며 무시했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이로서 아프가니스탄 내 미국의 인식은 박살났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많았다.
열불터진 카르자이 정부조차도 미군에게 이제 돈이나 내놓으라며 늬들 지시 안 따른다고 대들 정도였다... 카르자이 정부가 이럴만한 것도 미군이 물러나면 중국군이 오거나 중국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3. 영향
이로 인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에 대한 인식은 더더욱 나락에 빠졌고 2012년 4월 카불 동시 테러에 오히려 미군들은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의 욕설과 돌팔매질에 시달려야 했다. 이 학살로 말미암아 미군 측이 민간인 사살은 엄벌하겠다고 했기에 이 당시 미군들은 돌을 던지고 침뱉은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에게 경고사격을 했을 뿐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와서야 사람들이 물러나 이 사건으로 아프가니스탄 내 민심이 미군을 혐오하는 것이 드러났고 이후로도 미군들에게 돌팔매질은 기본이고 협조도 끊어버렸다.
결국 미군은 베트남 전쟁에 이어 굴욕적인 패배를 맛봐야 했다. 이후 미군은 다시 아프가니스탄에서 2017년 부분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사실상 아프가니스탄 상당수에서 철군 상태이다. 미국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스스로 무덤을 다시 팠으며 이 사건이 이를 입증했다고 비아냥거리는 논평을 썼다. 프리드먼은 이 전쟁 승리자는 결국 탈레반이고 미국이 탈레반에게 굽신거릴 것(정확히는 이제 미국이 적극적으로 승리자인 탈레반과 협정을 맺고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지배를 인정해야할 판국이라고)이라고 미국을 까기도 했다.
2020년 2월 29일 미국은 결국 탈레반과 휴정협정을 맺고 미군 철수를 공표함으로 사실상 패전이 확정되었다.
4. 그 외
사건을 저지른 동기는 본인이 끝내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었다. 킬 팀의 모방범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들이 아프간인들을 재미삼아 죽인 게 명백한 반면, 베일스 하사는 살해 수법부터 달랐으므로 모방범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신 이상이나 약물 중독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는데 미국 정부는 결국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어쨌건 2021년 1월 현재도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으로 미 본토의 군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1] 커티스 르메이 장군의 고향으로 유명한 오하이오주 출신이다. 베일스는 입대전에 대학 중퇴하고 금융사기를 저질렀다가 발각되어 백만 달러가 넘는 손해보상을 명령받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육군으로 도피한 경우이다. 현재 미군 특히 육군의 인적 자원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보여주는 사례. 2001년 11월 28세의 나이로 입대해 사건 당시 10년 넘게 육군에서 복무했고, 저격수 교육까지 통과했던, 서류상으로는 나름대로 훌륭한 인적 자원이었다. 병력 부족하다고 아무나 받았다가 대량살인을 저지르도록 훈련을 시킨 꼴이라 더 황당한 상황이다. 물론 경제위기 이후 지원자가 늘면서 인적자원을 가려 받기는 했지만 이미 입대한 병력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앞으로도 이런 일은 잊을만 하면 벌어질 것이다. 특히 미군은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증의 정신질환자가 아닌 이상 왠만하면 받아준다.[2] 왜냐면 미군에게 테러를 했다가는 당하는 보복이 엄청나다보니 만만한 아프가니스탄군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