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패싱/박근혜 정부

 


1. 개요
2. 미국, 일본의 패싱
3. 대실패로 돌아간 친중 정책
5. 관련 문서


1. 개요


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던 코리아 패싱 현상을 기술하는 문서로 내용이 길어져 별도 문서로 분리되었다.

2. 미국, 일본의 패싱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어 가는 움직임은 박근혜 정부 시기 이전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이미 미국통 외교 인사들은 계속 과거사에 매몰되어 미래를 보지 못하는 한국에 대한 피로감이 팽배하다는 워싱턴의 차가운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런 경고음을 새겨듣는 대신 집권 초기부터 아예 일본과의 대화를 차단하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으로서는 북핵 위기 해결,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중인 중국의 견제를 위해서 한미일 삼각 동맹이 절실했지만 한국은 일본과의 기초적인 군사 공조조차 꺼리는 상황이었다.
급기야는 2014년들어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기자회견의 좌석 배치부터도 노골적이어서 오바마 대통령이 중간에 앉고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의 좌석을 양 옆에 배치하였다. 그런 미국의 성의에 더해 아베 총리가 한국말로 박 대통령에게 인사를 건네는 등 제스처를 취했지만 박 대통령은 대답은커녕 아예 아베 총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윽고 워싱턴에서 웬디 셔먼 국무부 차관의 문제 발언이 나오게 된다. 셔먼 차관은 "민족주의를 이용해 대중의 값싼 찬사(cheap applause)를 받는" 지도자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고 "과거사가 미래를 가로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일본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으로 대하는 대신 적대시하는 한국민의 반일 정서를 에둘러 비판했다. '한국이 반일 감정을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 미국 국무부 차관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1]
급기야 한국과 미국 일본의 삼각 협력보다는 미국과 일본 호주의 삼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미국 싱크탱크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은 한일 관계로 인해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긴장이 역사적으로 긴밀한 안보협력을 만들어내는 것을 막아왔으며, 지정학적 논리에 기반해 한미일 삼각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실질적인 정책으로 진전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우익들이 예전부터 골치아픈 한국을 떨궈내고 미일호주 동맹으로 재편하자고 주장해왔음을 고려한다면 실제 일본 측의 주장이 상당히 먹혀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런 주장을 하는 싱크탱크는 일본 우익계 자금의 입김이 강해서 미국 정계에서 일본 입장을 대변하는 등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
그 후에도 박 대통령은 반일 기조를 이어가며 중국과 손을 잡으며 끊임없이 일본을 압박했고 심지어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천안문 망루에 오르기도 했다. 만인이 주지하듯이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에 민병대로 눈속임한 정규군을 투입해 김일성을 원조한 전례가 있어서 대한민국의 중국 전승절 참여 자체가 어마어마한 논쟁 대상이 되는 것은 자명했던 데다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국제사회에서 별 볼일 없는 막장 국가 내지는 후진국만이 참석한 본 전승절에서 대한민국은 유일한 자유진영 측 참석국이었다. 다만 당시 전승절 참석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대결구도를 탈피하는 주도적 외교라는 점에서 야당과 문재인 당시 당 대표로부터 높이 평가받았으며 오히려 참석을 적극적으로 권유한 바 있는 등 초당적인 지지를 받은 외교 접근이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국은 역사적, 정서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서 신뢰할 수 없다', '중국은 한국을 가장 약한 고리로 보고 있다'는 일본의 언플이 또다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한국 언론에는 잘 보도되지 않았으나 열병식과 동시에 미국에서는 미일 군사훈련이 진행되었다. 일각에서는 혹시 독도를 겨냥한 훈련이 아니냐며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었는데[2] 미일 합동군사훈련의 의미에 대한 분석 참고. 당시 한국은 북중러 진영에 속해서 미일 서방진영과 대립하고 있던 상황 이었는데, 일본의 집단자위권에 여야할것 없이 반대를 표명하며 군국주의 부활이라고 북중과 함께 반발하던 한국과는 달리, 미국을 포함한 서방진영은 중국과 대결하기엔 현 일본이 너무 약하다며 오히려 일본의 무장을 촉구하던 상황이었다. # 또 러시아의 경우에도 선선히 집단자위권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 실제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서는 2013년 5월 18 일자 일본 특집호에서 일본의 부상을 대단히 우호적으로 다루었다. 동 잡지에서 ‘자위대를 다른 모든 나라들처럼 상비군으로 전환 시킨 애국적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A patriotic Japan that had converted its “self- defence forces” into a standing army just like any other country’s would add to the security of North-East Asia).’ 라고 보도한 것이다.
그 가운데 사드 배치 논란, AIIB 논란도 화를 키웠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미국의 입장에 순순히 따라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 중국의 러브콜은 축복(by 윤병세 장관)"이라는 눈치 없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등 전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 미국 측 당국자가 "미국은 한국을 위해 피를 흘렸고 중국은 한국을 침략한 국가"라며 타이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한중관계가 좋아질수록 한미관계마저도 보이지 않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은 이 기회를 틈타 미국과의 신밀월관계를 구축했다. 2016년 봄,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해 일본인 원폭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하고 동년 12월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진주만을 찾아 진주만 공습으로 인한 전몰자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으로서[3] 양국은 종전 70년 만에 과거사 갈등의 소지가 있는 부분마저 완전히 해결하였다.
이는 당시 상황을 모르고 하는 잘못된 해석으로 오바마 정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4] 남북미 대화를 제시했었으나 극반북 노선을 밟던 이명박 정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그 노선은 박근혜 정부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대북 직접 공격 밖에 남은 수단이 없었는데, 이는 한국 입장에서도 미국 입장에서도 전혀 의미가 없었기에 이루어 질 수 없었고 결국 오바마 정부로서 남은 방법은 북한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밖에 없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미국은 한중 관계가 자국의 다른 동맹국들이 중국과 맺는 관계처럼 경제적이고 비정치적이기를 원해왔다. 그러나 한중 수교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서 북의 핵개발에 대한 대처를 두고 한미간에 불협화음이 커지게 되었다.[5] 특히 중국이 G2로 성장하면서 동북아시아에서 중-러-북 vs 미-일-한의 신냉전 가능성이 국제적으로 대두되자, 한국 정치권에선 미중신냉전에 한국이 빨려 들어가면 단기적으로 북의 핵개발과 한국경제,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대두되었다. 이런 판단으로 한미군사동맹은 확고하게 유지하지만, 미국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강화는 회피하고 대신 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줄타기론이 진영을 막론하고 등장하였다.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균형자론을 처음 들고 나왔을때[6]는 보수 진영에서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정작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한반도비핵화를 위해선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면서 한중관계에 많은 신경을 기울렸고[7], 박근혜 정부에선 밀월이란 평가가 등장할 정도로 중국과 밀착하면서 오히려 미국의 반발을 불러 오게 된다. 특히 위안부를 포함한 과거사 문제를 가지고 반일정서를 한중 양국이 공유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하자 미국 정치권에서 대놓고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과 반일 연대로 정치적 동맹을 맺고 일본을 때리는 움직임을 보인 이상 미국은 더이상 위안부 문제 등을 기존처럼 순수한 인권의 문제로 보지 않고 동아시아 동맹 구도를 어지럽히는 방해 요소로 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당시 중국은 한일 관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싶으면 한번씩 출처가 의심스러운 정체불명의 위안부 미공개 자료라며 터트렸고 그때마다 한일관계는 다시 냉각되곤 했었는데,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중국이 한국의 반일감정을 이용해서 장난질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미일이 흔들리면 곧 미국이 타격을 받는다는 의미이며 중국이 미국을 타격 입히기 위해 약한 고리인 한일 관계를 흔든다고 미국은 판단했을 텐데, 한국이 자꾸 정신 못차리고 중국에게 반일 감정으로 이용 당하고 있다고 봐서 한국의 민족주의에 다소 감정섞인 발언을 내뱉기도 했었으며, 심지어 싱크탱크에서는 한일 관계 때문에 한미일 동맹은 실패했다면서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까지 나왔던 것이다.
위안부 합의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미국 측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용기와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위안부 합의 타결은 한미일의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한 대목을 보자. 한일 위안부 문제를 단순 인권 문제나 역사 문제로 보지 않고 한미일 동맹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겨레위안부 합의로 ‘역사 진실’ 덮고 한·미·일 ‘동맹’ 급가속이라는 기사를 보도하며 불편한 시각을 내비쳤으며, 오마이뉴스미국이 청와대에 "일본이 주장하는 선에서 빨리 끝내라!"고 압박하여 박근혜 정부가 저항하다 결국 미국에 굴복했다는 식의 기사를 썼다. 처음에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합의에 자신이 있었던 데에는 미국이 한국 편이라는 자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일본 편으로 바뀌게 된 계기를 한중 연대의 유일한 핵심 고리인 역사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4년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은 미국과 일본에서 한국을 떼어낼 기회를 감지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으며 역사문제를 한미일 동맹을 흔드는 공격수단으로 파악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안보 부보좌관은 한일 협상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정부에 대해 상당히 압박을 가했다고 밝혔으며,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합의된 데 대해 미국의 이해와 협력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실제 미디어오늘은 미국의 검은 속내란 기사에서 미국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물밑 압박했다며 2차 대전 전후 처리부터 철저히 한국을 이용한 미국이라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또한 미국은 한일 군사정보협정이 체결되자 용감한 결단을 환영한다고 밝혔는데,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은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적절한 정보 공유를 통해 대북 억지 태세를 향상시킬 것이라고 만족을 표했다. 보다시피 한일 군사정보협정도 미국에서 강하게 압박해 왔었는데, 한국에선 친일반민족행위자 정부가 몰래 나라 팔아먹으려고 수작 부린다는 식의 선동이 기승을 부렸기에 국민 여론도 무시할 수 없는 정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었다.
결국 보수에서도 오바마가 호감을 받는 것과 별개로 한국의 외교에 있어서는 부담감을 크게 안겨주는등 최악의 미국 대통령이였다고 평가하며 오히려 오바마와 크게 대립하며 막말 논란에 휩쌓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게는 더 나은 대통령이라고 평가하였다.

3. 대실패로 돌아간 친중 정책


박근혜 정부는 초기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적극적인 친중 정책을 구사하였다. 초기에는 큰 틀에서 보자면 그 이유는 반일 연대,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함으로써 대북제재의 큰 구멍을 막아보자는 데에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북한 붕괴 후 한국의 흡수통일이 되었을 때 중국이 가지게 되는 큰 전략적 부담을 덜기 위함이었다. 중국의 현행 Two Koreas Policy, 북한을 자신의 순망치한으로 여기는 대한반도 정책을 뒤흔들어보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 흡수 통일을 목표로 최대의 압박 정책을 시행함과 동시에 물밑에서 여러 대북 공작을 진행하였고 친중 정책도 궤를 같이한 측면이 있다. 중국의 제재 동참 촉구를 위해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까지 폐쇄하였다.
2014년 국정원의 송년 건배사가 "조국 통일을 위해 다같이 죽자"였다는 보도가 흘러나온 것은 박근혜 정부 내부의 고무된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박근혜정부는 한-중을 전략적 파트너 관계로 격상시킴과 동시에 위안화 주거래국을 맡아줬고, AIIB 참여, THAAD에 대한 3no, (최대 예우를 갖춘) 중공군 유해 반환, 전승절 참석 등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최상의 대우를 해줬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자 동아시아의 주요국인 한국의 친중정책으로 중국이 얻은 전략적 이익은 분명히 한중무역으로 쌍방이 가져가는 호혜적 이득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끝내 북한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았고 민생을 핑계로 교역과 지원을 유지하는 등 제재에 극단적으로 소극적이었으며 지속적으로 기업들을 통한 비공식적 대북지원을 지속하였다. 한 국가를 상대로 한 것 중에 역대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제재 결의안이 UN에서 통과되었지만 북중 무역은 여전히 활발했고 화물열차들이 끊임없이 압록강을 넘었다.
박근혜정부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북한을 빠르게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 무리한 친중정책을 감행했다. 그러나 북중관계의 특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Wishful thinking(희망사항)'''에만 젖어있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실패가 예견되었던 것이다. 전통적 동맹관계를 불안하게 하면서까지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2016년 12월 19일,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이자 전 국가정보원 북한담당기획관과의 인터뷰가 동아일보를 통해 나왔는데... 그 내용이 박근혜 정권의 집단적 희망사고의 일면을 보여준다. # 다만 구해우는 과거 NL주사파 출신으로 이후 뉴라이트로 전향[8]하면서 노골적인 반북,반중 정서를 내비추던 인물이며 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나온 인터뷰라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략)―보수 정권임에도 왜 중국 쪽에 기울었나.

"정윤회나 정호성은 모두 세계 질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정서적으로는 반미(反美)였던 것 같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박정희 시해사건 당시 미국의 사주를 받았다는 말이 있었으니. '''그리고 박 대통령을 통일국가의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했다. 중국이 도와주면 가능하지 않을까 ‘wishful thinking’(희망에 근거한 생각)을 한 거다."'''

이런 문제외 바로 경제 문제로 외교를 모두 올인하자는 단순도식 시각도 한몫을 했다. 실제 일본 언론들은 박근혜 정부의 친중행보를 '경제적 이유'로 보도해왔으며, 열병식에 참석했을 때도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커져서라고 보도했다. 알다시피 한국은 중국과의 무역 비중이 상당한 나라다. 당시 중국 경제는 고공 성장의 끝물인 상태였는데, 최대한 중국에 붙어서 이익 뽑아먹고 버리자는 계산이 착각속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에서 한미 관계는 약간의 후퇴를 용납할 여유가 있지만 한중 관계는 그런 마진이 없으니 사드를 포기하자는 칼럼이 논란이 되기도 했었는데, 즉 보수언론들이 대책없이 미국 버리고 중국에 붙자며 친중을 외쳤던 게 아니고 한미관계에 나름 기반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 기반이 소진되지 않는 범위 내라고 계산한 수준에서 계산적으로 친중정책에 대한 옹호를 했음을 알 수 있다.당시 칼럼을 썼던 김영희 대기자는 안보는 군사 외 경제-외교 안보도 존재한다면서 토털안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경제안보도 무시하지 말자는 것이다. 사드가 들어오면 군사안보는 플러스라고 인정했으나, 경제적인 보복 등을 생각한다면 중국과의 경제의존도 문제가 피해를 더 키울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렇듯 당시 보수들의 박근혜 행정부의 친중정책에 옹호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에서 경제적인 이유도 적지 않았다.[9]
특히 당시 박근혜 행정부는 한미관계는 마진이 있어서 미국과 좀 소원해져도 몇년은 버틸 여력이 있다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즉 상황판에 현실성이 결여된 형태의 여력판단을 하고 있었다. 실제 박근혜 행정부가 한미관계에서 나름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건 전작권 문제에서의 무기한 연기정도가 대미외교 마무리 끝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데다가 방미때마다 지엽적인 것을 갖고 엄청난 일을 했다고 스스로 자축했기 때문이다. 정작 박근혜 행정부는 미국의 중국경도론을 해소했다고 자랑하며 떠들어 댔지만 정작 미국내 행정부에 제안을 하는 전문가들헛소리치부하는 형국이었다. 이런 사례들을 감안해보면 마진이라는 소위 나름 성과기반이 있었다는 착각속에 친중정책이 일방적이고 막무가내식으로 이루어진 이유도 해당이 된다. 그 때문에 결국 중국이 아예 대놓고 2016년 9월 5일에 열렸던 한중정상회담에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표현까지 들어야했다. 한마디로 앞서 이야기한대로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기원은 중국에게서 나오는데 건방지게 사드문제와 같은 사항으로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느냐의 매우 오만하고 무례한 표현을 들은 것이다. 이것만 봐도 친중정책의 원인이라는 근본적 문제는 현실을 전혀 보지 않았다는 것 핵심적 이유가 된다.
게다가 경제적 이유만으로 친중을 해야한다는 논리 자체는 한마디로 근시안적인 사항이자 단순도식의 허울뿐인 슬로건이다. 우파성향이 박근혜 행정부의 친중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에서의 경제적 이유는 엄연히 나름의 외교를 통하여 경제적 다변화를 추구하여 중국 경제의존도를 최대한 낮추는 형태가 동시에 진행되어야하는 문제이다. 그런 입장적 생각과 달리 박근혜 행정부 자체가 그것에 대해서 전혀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위안화 자율거래문제나 한중FTA는 그 절정의 핵심이기도 했다. 게다가 대외적 이미지로는 AIIB가입문제까지도 그런 형태였으니 한국의 경제종속화를 자초하면서 벌어진 형태의 실리란 존재하지도 않고 균형도 나올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중국이 한국과 정치-안보적 협력국이면 모를까 한국 혼자서만 짝사랑하고 있을뿐 중국은 미국처럼 한국에게 분명한 안보협력등의 국가보존이나 생존이라는 존립문제에서 협력하는 입장이 아니라 ''''적대적인 입장''''이라는 점을 감안해봐도 경제적 이유로 균형이라는 허울좋은 슬로건을 내세우며 할 수 있는 일방적인 친중정책의 행위였다. 게다가 국내적으로는 전임 행정부인 이명박 행정부와 무조건 달리 가겠다는 근거없는 유치한 보복적 성격으로 치루어진 형태까지 더해졌으니 더 무의미한 일이기도 했다.
즉 경제라는 돈 문제는 유기적이라서 경제라는 문제 하나만으로 친중이라는 일방적 정책으로 해결될 사항이 아님으로 정치에서 그것이 영향은 줄 수 있어도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자기 존립을 스스로 훼손하면서의 경제적 이유만으로 일방적인 행위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국제사회에서 신뢰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다. 애초에 국가간의 동맹 자체가 신뢰를 기반으로 구축된 것이기에 양국간의 신뢰가 깨어지면 동맹도 자연스레 와해되게 돼있다. 즉,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좇으며 여기저기 붙는 것은 당장에는 이익을 얻은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결국 작은 것을 탐내다 큰 것을 잃는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는 것. 조선이 당장의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여러 강대국들에게 다 달라붙었으나 결국 어느 국가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조선이 멸망했을 때 어느 나라도 관심없었단 걸 명심하자.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가쓰라 다로 외상이 '조선은 동아시아를 어지럽힌다'는 논리를 미국에 전개해서 그 유명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성사시켰고 그 길로 구미열강들은 미개한 조선을 일본이 대신 지배하라고 일본에게 던져줬다. 조선을 영세중립국으로 만들자는 일부 주장 은 씨알도 안먹히고 묻혔다. 결국 행동하는 대로 돌려받게 돼있다. 구한말까지 안가더라도 노무현 행정부 시기의 동북아균형자론이라는 좌파적 입장의 고립주의적 반미-반서방주의를 지향한 결과가 무엇이었는가는 집권 5년 내내 나온 외교적 입지 추락과 실패뿐이었다.
명분 없는 국익을 추구할 경우 후폭풍이 일어날 수 있다. 그 후폭풍이 안되려면 관련국 전원이 쉬쉬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유일하게 성립되어있는 케이스가 바로 2차대전 종결이후 자유 폴란드 정부에 대한 유럽과 미국 그리고 심지어 소련조차도 암묵적으로 쉬쉬한 결과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그나마도 냉전해체로 잘 통합되어서 쉬쉬한게 묻혀진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거의 희박에 가까울 정도로 드문 형태일뿐 국익우선이라는 이름하에 명분과 같은 신뢰문제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4.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국정공백 사태의 가운데 한국은 새롭게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맺지 못했다. 그에 비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모두 조속히 방한했지만 정작 그 원인인 북핵 대응에서 한국은 논의 과정부터 노골적으로 제외되고 있다. 이것이 코리아 패싱이라는 조어가 나오게 된 기본 배경이다.
더 나아가서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핵 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한국은 그나마 거의 없던 대북 영향력을 상실했고, 한미일 삼각 동맹은 이미 그 빛이 바램으로서 외교적인 측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는 인식도 있다.
미 국무장관, 부통령 모두 "2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유지된 북핵기조(제네바 프레임워크)는 이 행정부에서 끝났다"며 대북 정책이 급변할 것이라고 공식화해 놓은 상황이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한국이 배제된다면 다음 20년 동안 한국은 자국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문제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제네바 프레임워크는 기본적으로 북-미 간의 대화의 결과물이지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게 대화의 조건으로 '한국과의 대화를 먼저 속개할 것'을 내세우는 등 한국을 당사국으로 우선시해 준 덕분에 한국은 당당히 현안들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영변 원자력 연구소 폭격 위기의 해소 또한 미국이 한국민의 안전을 고려해서 평화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과연 이번에도 돈독한 한미관계에 기반해 그러한 배려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다만 펜스 부통령이 방한해서 한미관계를 "린치핀"[10]이라고 다시 한번 규정하고, 사드 배치가 신속히 이뤄지는 등 한미관계 자체는 여전히 건전하다는 것이 명확한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어떠한 차기 정권과도 협력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였다.

5. 관련 문서


[1] 셔먼 차관은 힐러리 쪽에서 차기 국무장관으로 내정됐던 인사이고 당장 힐러리 로댐 클린턴부터가 국무장관 출신이기에 어찌보면 비전통적인 인사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렉스 틸러슨의 지명은 한국으로서 다행이었던 상황이다.[2] 미국은 독도를 한국을 제어할 지렛대로 삼는 측면이 있다. 과거 '혈맹'시절 같았으면 일본이 독도 도발할 때 한국이 강력하게 항의하면 미국이 일본을 강하게 찍어눌렀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과 대립각을 세울 때는 일본 우익들의 독도 도발을 방관하거나 용인해주는 듯한 포지션을 취하며, 오히려 독도라고 표기돼 있던 곳을 중립지역 표기로 바꾸는 등, 당시 독도를 이용해 한국을 압박하기도 했었다.[3] 양측은 서로에게 사과를 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물론 자국이 사과하면 안 된다는 강력한 여론이 양국에서 나오기도 했다.[4] 정확하게 말하면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내어 중국을 고립시키는 게 목표였다.[5] 전 버전에서 기술한 전작권 반환의 경우 오히려 미국이 전작권 반환을 원하고 있다.[6] 당시엔 참여정부의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해서 중국쪽에서도 그게 되겠냐면서 회의적이었다고 한다.[7] 이것은 한국경제의 중국의존도가 워낙에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8]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경력도 있다.[9] 보통 보수언론 조중동으로 묶이지만, 이념에 근거한 전통보수 조선-동아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시장보수 중앙일보는 북한과 중국을 바라보는 논조가 미묘하게 다르다. 범삼성계열인 중앙일보는 철저하게 재벌의 이익, 경제문제를 중심에 놓고 본다.[10] linchpin. 수레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