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내 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수 십만 명 동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번역1]


'''

'''"…착착 깎어 죽일 놈!… 그 놈을 내가 핀지 히여서 백 년 지녁[1]

을 살리라고 헐 껄! 백 년 지녁을 살리라고 헐 테여… 오냐 그 놈을 삼천 석 꺼리는 직분히여 줄려구 히였더니, 오―냐, 그 놈 삼천 석 꺼리를 톡톡 팔어서 경찰서으다가, 사회주의 허는 놈 잡어 가두는 경찰서다가 주어 버릴 껄! 으응, 죽일 놈!"[번역2]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 소리에 가깝습니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쿵쿵 발을 구르면서 마루로 나가고, 꿇어앉았던 윤주사와 종수도 따라 일어섭니다.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 놀 사회주의 부랑당패에, 참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연해 부르짖는 죽일 놈 소리가 차차로 사랑께로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나 몹시 사나운 그 포효가 뒤에 처져 있는 가권들의 귀에 어쩐지 암담한 여운이 스며들어, 가득히 어둔 얼굴들을 면면상고, 말할 바를 잊고 몸둘 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마치 장수의 죽음을 만난 군졸들처럼…….

- 마지막 장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니라'[2]

중 윤 직원의 대사

채만식장편소설[3]탁류#s-1와 함께 채만식의 2대 장편소설로 언급된다. 해당 링크로 들어가면 소설의 일부분을 볼 수 있다.[4]
1. 줄거리
2. 설명


1. 줄거리


소설의 시작은 구두쇠 윤 직원[5]억지를 부리며 인력거 삯을 깎고, 버스비를 안 내려 하는 에피소드에서 시작한다.
윤 직원의 아버지 윤용규는 도박꾼으로 하루하루 돈이나 잃는 사람이었지만,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돈으로 지주와 고리대로 돈을 긁어모은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가 관리들의 토색질로 괴롭힘당하고 화적떼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을 봐왔던 윤 직원은, '''"이놈의 세상 언제 망하느냐?! 우리만 빼고 어서 망해라!"'''라고 외치면서 아버지보다 더 지독하게 돈을 긁어모아 갑부가 되어 경성부에서 떵떵거리고 산다.
일제강점기에 사는 윤 직원은 "토색질도 없고 화적질도 없는 이 세상이야말로 태평천하"라고 외치면서, 중일전쟁에 대해서도 "이 훌륭한 일본의 통치를 거부하다니 역시 중국놈들은 무지몽매한 놈들" 하는 반응을 보인다.[6]기부나 자선에는 인색해하면서 경찰서 무도관[7]을 짓는데는 돈을 아낌없이 베푼다.
한편으로 윤 직원은 자신의 부족한 명예를 채우기 위해 애를 쓰는데, 자신은 향교에서 돈으로 직원 자리를 사고 족보를 조작한다. 또 두 손자를 각각 군수, 경찰서장 감으로 보고 손자들의 출세를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퍼붓는다.[8]
그러나 '''윤 직원 가문은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 당장 윤 직원 자신도 사이에 '''자기 증손자랑 동갑인 늦둥이'''가 있고[9] 그것도 모자라 소작인의 딸인 증손자 또래의 소녀를 새 첩으로 들인 상태. 아들 윤 주사는 술과 마작에 빠져 하루하루 돈을 시궁창에 갖다 박고 앉아있다. 큰 손자 윤종수는 하라는 군수는 안 하고 부전자전으로 항락에 빠져 살고 심지어는 아버지의 첩 옥화와 불륜을 저지를 뻔 하기까지 한다. 며느리와 손자며느리도 남편이 밖으로 나돌아다녀 하루하루 불만만 쌓이고, 증손자 윤경손도 땡땡이는 일상이요 증조부의 소녀 첩에게 수작질이며, 양반가로 시집을 보낸 딸은 남편이 죽고 소박맞아 한 집에 산다.
그래도 윤 직원은 가부장적인 태도로 집안을 이끌며, 일본으로 유학 간 작은 손자 윤종학이 경찰서장이 되는 날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어느날, 윤종학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 이유가 윤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알자 "이 태평천하에 그게 무슨 짓거리냐"면서 멘붕에 가까운 충격을 받는다.[10]
작중 타임라인은 1937년 9월 말에서 10월 초(양력 기준)의 어느 날부터 그 다음날 오후까지 약 24시간에서 30시간 사이이다.

2. 설명


아마도 중고등학생들이 "반어적 표현"을 잘 사용한 소설을 배울 때 이 소설로 스타트를 끊었을 것이다. 작가인 채만식은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형식의 소설인 〈치숙〉을 쓴 바 있다. 이 소설의 주제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국가와 민족을 살펴보지 않는 일제 당시의 친일파들을 비판하는 것'이 되겠다.
애당초 위에도 나와 있듯이 윤 직원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우리만 빼고 어서 망해라!"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윤 직원에게 일제는 자신의 권력과 안위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나 다름 없으며, 그런 일제에 저항하려는 당시 지식인들이 파던 사회주의[11][12]에 동참한 자신의 둘째 손자는 그야말로 역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소설의 마무리에 "태평천하"라면서 울부짖는 윤 직원의 모습이 이 소설의 주제를 잘 부각했다고 한다. 소설의 제목인 '태평천하'부터가 이러한 반어적 표현. 다만 비판하는 건 좋았는데 그 다음에 채만식이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친일 행위를 하게 되면서 "당신이 할 말이 아냐" 하면서 비판하는 움직임도 많았다. 채만식은 광복이 된 다음에 스스로 사죄하기는 했지만.
비단 왜정 때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만 확보되면 그 시대를 '태평천하'로 판정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요즘도 위 대사에서 명사 몇 개만 바꾸면 딱 들어 맞는다.

[번역1] 화적패가 있더냐? 불한당같은 수령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어봤자 도둑놈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같던 말세는 다 지나가고… 자 봐라, 거리마다 순사요, 고을마다 공명한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냐. 남은 수십만 장병으로 우리 조선 백성들을 보호해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냐? 응? 제 것 지니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태평한 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고 하는 것이야, 태평천하! 그런데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에 유학까지 갔으면 떵떵거리고 편안하게 살 것이지, 어째서 지가 세상을 망쳐놓을 불한당패에 참여를 한단 말이냐, 으응?[1] 무식한 데다 사투리가 섞이니 징역을 이렇게 발음한다.[번역2] 쫙쫙 찢어 죽일 놈! 내가 편지를 보내서 그놈을 백년 징역을 살게 할거야! 백년 징역을 살게 하라고 할 거야… 오냐. 그놈에게 삼천 석 짜리 유산은 따로 떼어다 남겨주려고 했더니, 오―냐, 그 놈 몫의 삼천 석 짜리를 다 팔아서 경찰서에다가, 사회주의 하는 놈 잡아 가두는 경찰서에다 줘버릴거야! 으응, 죽일 놈![2]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胡)이니라."라는 뜻이다. 진시황은 저 '호'가 '오랑캐'인 줄 알고(오랑캐라는 뜻도 있다.) 만리장성을 쌓고 흉노족을 토벌했지만 그 호는 오랑캐가 아니라 자기 아들 '''호해(胡亥)'''였다는 말이다. 실제로도 진나라는 진시황이 죽고 호해가 집권하자 망국의 치세에 접어든다. 본 소설에 나오는 윤 직원 집안의 상황을 한 줄로 요약해 주는 글귀.[3] 1938년 <조광>지에 연재, 중편소설로 보기도 한다.[4] 원래는 전문을 볼 수 있었으나 저작권 문제로 인하여 일부분만 싣는것으로 바뀌었다.[5] 直員: 향교의 직위 중 하나이다. 본명은 윤두섭. 어릴 때는 얼굴이 두꺼비 같다고 해서 윤두꺼비라고 불렸다. 후술할 아버지 윤용규는 얼굴이 말상이라 생전 말대가리라고 불렸다.[6] 작품에 보면 중국이 사회주의로 물들려고 하는 상황이라 일본이 중국 내 사회주의를 없애기 위해 중국으로 출정했다는 윤직원의 시선이 나오는데 정작 이 당시 중국은 장제스가 사회주의자들은 보이는 족족 탄압하던 시기였다.윤직원의 왜곡된 시선을 볼수있는 또다른요소[7] 이것도 한자가 武道館으로 무술(특히 유도)를 훈련하는 곳을 말한다. 일본어로 쓰면 부도칸.[8] 오늘날에서 보면 경찰서장은 몰라도 군수는 뭐냐 싶겠지만 그래도 당시는 일제강점기라 조선인들의 출세가 쉽지 않은 시기였으니 군수 정도만 해도 탑티어급 출세였다. 사실 지금도 군수자리 우습게 볼 게 아니다. 국회의원 코스 중 하나가 지자체장이니까. 그리고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까지 군수를 포함한 모든 지자체장이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이었는데, 경찰서장에도 보통 4급 총경(경무관으로 보하는 경우도 있음.)을, 관선직 군수도 보통 4급을 보했으니 경찰서장과 군수는 동급 공무원이었다.[9] 이 늦둥이 태식도 나이는 15살이나 먹었는데 발육상태가 좋지 않아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다 어리버리해서, 윤 직원의 증손자(자기랑 동갑이지만 손자뻘)에게 맨날 괴롭힘당한다. 작중에서 증손자가 태식을 놀리다가 울리고는 "어유 우리 할어버지"하면서 달래는 장면까지 있다(…)[10] TV 소설 판에서는 아예 "우리 집 망했다"고 통곡까지 한다.[11] 이는 절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게 아니며, 오히려 작중에서 유일하게 둘째 손자만이 참된 인물이라는 걸 부각시키는 장치다.[12] 전후 레드 콤플렉스가 팽배하던 시절에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는 '빨갱이들이나 파는 위험한 사상' 취급을 받았었지만, 그보다도 더 전인 이때 당시엔 "제국주의를 내세워 인민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일제를 타도하자"는 사회주의는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 그야말로 완벽한 이상향이고 한 줄기 빛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반공주의자가 다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아니고, 자유주의,보수주의,민족주의 등 우파 계열 독립운동가들도 많았다. 그들은 사회주의자들을 '자랑스러운 한민족을 부정하고 허황된 이상만 쫓는 괘씸한 놈들'로 보고 반공 노선을 걸었다. 다만 다같이 일제에 맞서 싸우는 입장이니 때로는 단결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게 신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