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 부바 디오프

 


''' 세네갈의 前 축구선수 '''
'''이름'''
'''파페 "파파" 부바 디오프
Pape "Papa" Bouba Diop'''
'''출생'''
1978년 1월 28일
세네갈 다카르주 다카르
'''사망'''
2020년 11월 29일 (향년 42세)
'''국적'''
[image] 세네갈
'''신체조건'''
195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유스클럽'''
응데페앙 살티 (1994~1995)
ASC 디아라프 (1995~1996)
'''프로클럽'''
ASC 디아라프 (1996~1999)
베베이 (1999~2000)
뇌샤텔 크사막스 FCS (2000~2001)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2001~2002)
RC 랑스 (2002~2004)
풀럼 FC (2004~2007)
포츠머스 FC(2007~2010)
AEK 아테네 (2010~2011)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2011~2012)
버밍엄 시티 FC (2012~2013)
'''국가대표'''
63경기 / 11골(세네갈 / 2000~2009)
1. 개요
2. 국가대표 경력
2.1. 2002 한일월드컵 영상
3. 클럽 경력
4. 사망


1. 개요


세네갈의 전직 축구 선수.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경력이 탄탄한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국내에선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상암 대첩이라 불리는 개막전에서 대회 첫 골을 넣은 선수로 알려져있다.
2020년 11월 29일 42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2. 국가대표 경력


2000년에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9년 동안 대표팀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2002년에 개최된 한일 월드컵 때 그는 국가대표로서 커리어 정점을 맛보게 된다. 치열한 지역예선을 뚫고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감격을 누린 세네갈이었지만 당시 본선 조 편성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세네갈은 디펜딩 챔피언프랑스와 더불어 월드컵 초대 챔피언인 우루과이, 북유럽의 다크호스 덴마크와 함께 A조에 속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월드컵 개막전이자 A조 1차전 상대는 바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였다. 공교롭게도 프랑스는 과거 세네갈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나라이며, 세네갈의 감독인 메추는 프랑스인이었다.
비록 팀의 에이스 지네딘 지단이 경기 닷새 전에 치른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김남일의 파울로 인해 큰 부상을 당해 결장하게 되었다지만 당시 프랑스엔 지단 말고도 스타 플레이어들로 잔뜩 도배되어 있는 명실상부한 우승후보였다. 그렇기에 경기 전 예상은 당연히 프랑스의 압승이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니 세네갈은 탄탄한 수비로 프랑스의 맹공을 막아냈다. 그리고 전반 30분, 엘 하지 디우프가 문전으로 쇄도한 파파 부바 디오프를 보고 패스를 했고 디오프는 프랑스 수비수 에마뉘엘 프티의 방해로 인해 미끄러지면서 슛을 날렸다. 파비앵 바르테즈가 한 번 쳐냈으나 잡지 못하고 흘렸고 흐른 볼을 '''파파 부바 디오프'''가 다시 한 번 왼발로 밀어넣어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후 경기는 계속해서 프랑스의 공세, 세네갈의 수세로 이어졌지만 세네갈은 수문장 토니 실바의 신들린 선방에 힘입어 디오프의 선제골을 끝까지 잘 지켜냈고 결국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1 : 0으로 격침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경기를 세네갈 쇼크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당시 프랑스 리그에서 뛰던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던 파파 부바 디오프에겐 터닝 포인트가 된 경기가 되었다. 뒤이어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 덴마크와의 경기에선 전반 16분에 욘 달 토마손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후반 7분에 살리프 디아오의 동점골로 1 : 1 무승부를 기록했다.[1]
1승 1무를 확보한 세네갈은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해 남미의 우루과이와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르게 되었다. 당시 세네갈은 초반부터 컨디션이 덜 풀린 우루과이를 강하게 몰아붙였고 전반 20분 만에 칼릴루 파디가의 페널티킥 선제골로 앞서갔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도 디오프는 맹활약을 하게 되는데 전반 26분과 38분에 연달아 멀티골을 터뜨리며 우루과이를 상대로 무려 3 : 0으로 크게 앞서가는데 기여했다. 이렇게 전반전을 기분 좋게 3 : 0으로 크게 앞선 채로 끝냈으나 후반전엔 우루과이가 뒤늦게 각성하여 맹추격을 감행했고 결국 후반 시작과 동시에 리차르드 모랄레스에게 만회골을 내준 것을 시작으로 후반 24분엔 디에고 포를란에게 또 1골을 허용했다. 그리고 후반 43분엔 알바로 레코바의 페널티킥 동점골까지 허용하여 3 : 3으로 따라잡히고 말았다. 만약 1골을 더 내주게 되면 세네갈은 승자승 원칙에 밀려 우루과이에 16강 티켓을 넘겨야 한다. 세네갈은 우루과이의 파상공세를 끝까지 막아냈고 결국 1승 2무(승점 5점)로 조 2위를 차지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비록 16강 진출 이후 파파 부바 디오프의 활약상은 좀 저조했지만 오이타 스타디움에서 사상 최악의 죽음의 조로 꼽힌 F조에서 1위를 차지한 스웨덴을 상대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 : 1 역전승을 거두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 8강 신화를 썼던 카메룬에 이어 두 번째로 월드컵 8강을 이룬 아프리카 팀이 되었다. 8강에 진출한 세네갈은 나가이 육상경기장에서 48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한 터키와 맞대결을 하게 되었다. 세네갈은 90분 내내 터키를 상대로 잘 버텼지만 험난한 대진으로 인한 체력 소모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연장 전반 4분에 터키의 미남스타 일한 만시즈에게 골든골을 허용하며 0 : 1로 석패해 4강 진출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2]
이렇게 첫 월드컵 출전에 8강 신화를 쓴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이었지만 이후 번번이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여 더 이상 그를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디오프는 풀럼과 포츠머스 등 주로 잉글랜드 클럽팀으로 이적해 활약을 이어갔다.

2.1. 2002 한일월드컵 영상



'''프랑스 0 - 1 세네갈'''

3. 클럽 경력


[image]
자국 리그에서 뛰다 그라스호퍼로 이적해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2002년 1월 RC 랑스로 이적했다. 한일 월드컵에서 무려 3골을 넣어 대표팀 내 최다 득점자로 올랐고 그 기량을 인정받아 2년 뒤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풀럼 FC포츠머스 FC에서 활약하다 AEK 아테네를 거쳐 다시 잉글랜드 무대에 복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버밍엄 시티에서 뛰다 2013년 은퇴한다.

4. 사망


2013년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엔 한동안 근황이 들리지 않았는데 2020년 11월 29일 사망했다. 사인은 그가 지병으로 앓고 있었던 샤르코-마리-투스 병이었다고 한다. 불과 나흘 전에 축구계의 큰 별이자 아르헨티나가 낳은 불세출의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가 향년 60세로 사망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축구계에 충격이 배가 되었다.
[1] 그러나 살리프 디아오는 득점 이후 반칙으로 퇴장당하여 가린샤 클럽 멤버로 가입하게 되었다.[2] 참고로 만시즈의 골든골이 월드컵 역사상 마지막 골든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