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달 토마손
1. 개요
덴마크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6년부터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고 있다.'''"그는 최고의 공격수이자 궁극의 팀 플레이어였다."'''
- 모르텐 올센. 前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수시절에는 덴마크 대표팀의 상징같은 존재로서 미카엘 라우드루프에 버금가는 덴마크의 간판 골잡이였다.
2. 플레이 스타일
넓은 활동 반경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주는 플레이에 능할 뿐 아니라, 파트너와 호흡을 통해 나온 공간을 침투하는 능력이 무척 뛰어났다. 연계플레이도 좋았으며 득점력도 뛰어났다.
3. 클럽 경력
14년간 A매치 112경기에 나서 52골을 잡아낸 선수라는 명성에 걸맞게 등장부터 화려했다. 1985년 당시 덴마크 3부 리그에 속했던 쾨게BK라는 작은 클럽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면서 축구에 입문한 그는, 16세가 되던 1992년 A팀으로 승격해 프로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솜털이 가시지 않은 어린 선수였지만, 토마손은 놀라울만치 탁월한 득점력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두 시즌 동안 '''48경기에서 28골'''을 터뜨리며 '''2년 만에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괴력'''을 뽐내 자국 내에서 뜨거운 시선을 모은다. 무한한 잠재성을 품고 있는 선수라고 가치를 인정받으며 네덜란드 중하위권 팀인 SC 헤이렌베인으로 이적, 성장세에 가속도를 붙인다. 1년 여의 적응기를 거친 후 95-96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골 사냥을 시작하더니, 95=96시즌 14골, 96-97시즌 18골을 몰아치며 '''불과 19세의 나이로 1997년 네덜란드 리그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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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렌벤 소속 당시의 토마손.
그가 특급 신예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로, 당시 A대표팀의 주포 '''브리안 라우드루프'''의 대를 이을 적자로 거론되기 시작한다. 덴마크 U-19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통산 37경기에 나서 27골''' 을 폭발시키며 자신의 가치를 완벽하게 증명한 그는 1997년 3월에 열린 크로아티아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데 이어 3개월 뒤에는 케니 달글리시 감독의 부름을 받아 잉글랜드의 강호 뉴캐슬 유나이티드[3] 의 유니폼을 입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야말로 고속 성장이었기에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출전도 당연히 가시화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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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그는 예상치 못한 시련을 맛보게 된다. 잉글랜드 축구를 처음 경험하는 여느 선수들이 그렇듯, 토마손 또한 거친 무대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게 된다. 간판 골잡이 앨런 시어러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리라 기대했던 달글리시 감독의 기대와는 달리, 토마손은 23경기 3골이라는 참혹한 성적을 뒤로한 채로 한 시즌 만에 뉴케슬에서 쫓겨나 버린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그는 브리안 라우드루프, 미클로스 몰나르 등 쟁쟁한 선배들에 눌려 A매치 데뷔 후 열린 네 차례 월드컵 예선전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당연히 프랑스 월드컵에도 나설 수 없었다.
축구종가에서 쓴 맛을 본 그는 1998년 네덜란드 명문 페예노르트로 자리를 옮겨 재기를 노린다. 헤렌벤 시절 한 차례 평정했던 무대였던 만큼 금세 제 기량을 되찾기 시작했고, 자연히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입지를 다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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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손의 페예노르트 시절.
첫 시즌 동안 주 포지션이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토마손에 헌신에 힘입어, 페예노르트는 98-99시즌 '''에레디비지에-더치 슈퍼 컵 더블'''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어진 몇 해 동안은 리그 우승과 인연이 없었지만, 토마손은 페예노르트 시기 네덜란드에서 독보적 스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2000-2001시즌 한 차례 득점왕을 차지한 것을 포함해 네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맹위를 떨쳤고, 01-02시즌 팀의 UEFA컵[4] 우승을 주도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도르트문트와의 결승전에서 3-1로 달아나는 골을 터뜨리며 MOM에 선정된 것은 덤.[5] 이는 그의 첫 국제 대회 우승 트로피였으며, 우승 이후 토마손은 팀에게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부상하게 된다.
여기에 2002년 월드컵에서 펼친 맹활약을 인정받아(국가대표 경력 항목을 참조할 것), 그는 시즌 종료 후 FA로 세리에 A의 명문이자 당시 유럽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AC 밀란으로 이적하는 길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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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밀란에서 주전으로 발돋움하지는 못했다. 안드리 셰브첸코, 필리포 인자기 등 쟁쟁한 공격수들에 가려 주로 슈퍼 서브 역을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마손은 전성기에 올랐음을 증명하듯 나서는 경기마다 기량을 과시하며 박수를 받았고, 두 시즌 동안 76경기에 나와 22골이나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선발로 나설 수 없는 그의 좁은 입지에 답답함을 느끼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토마손은 그의 영입을 위해 밀란에 750만 유로를 지불한 VfB 슈투트가르트로 적을 옮기고, 생애 최초로 독일 무대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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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그의 리즈 시절이었다.''' 물론 넘사벽급인 국가대표 경력 항목도 함께 열람하길 바란다.
분데스리가에서 그의 활약은 평범했고, 2007년 스페인의 비야레알로 이적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일련의 실망스러운 시즌을 거친 후, 토마손은 그가 가장 두드러지는 활약을 펼쳤던 전소속팀 페예노르트로 돌아가 그동안의 활약상과 명성에는 걸맞지 않은 비교적 쓸쓸한 말년을 마무리하게 된다.
4.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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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공격의 에이스'''
'''2000년대 유럽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
4.1. UEFA 유로 2000
1998년 페예노르트로 이적한 뒤 유망주 시절의 위용을 되찾은 토마손은 자연히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입지를 다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A대표로서 명성을 얻은 계기는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공동 개최한 유로 2000 지역예선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하며 찬사를 받았던 덴마크는 지역예선에서 예상과 달리 고전하는데, 급기야 초반 5경기에서 1승 2무 2패를 기록하며 탈락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1999년 6월 9일 안필드에서 열린 웨일즈와의 원정 경기마저 놓칠 경우 본선 진출이 사실상 어려워질 수 있는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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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그가 덴마크를 구해냈다.''' 0-0으로 팽팽히 맞서던 후반 39분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린 것이다.
이후 그는 고삐가 풀린 듯 마음껏 박차고 날아올랐다. 곧이어 안방에서 벌어진 스위스와의 홈경기에서 1-1로 맞서던 후반 36분 '''또다시''' 결승골을 터뜨려 2-1 승리를 안기더니 , 이탈리아와의 원정 경기에서도 2-2 동점 상황이던 후반 18분 역전골을 터뜨리며 3연승을 주도했다. 덕분에 덴마크는 막판 2연승을 달리며 거세게 추격해 온 스위스를 따돌리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스라엘과 상대했던 플레이오프에서도 그는 거침없었다. 텔아비브에서 열린 원정 1차전에서 2골을 잡아내며 5-0 대승을 연출했으며, 안방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도 1골을 추가하며 3-0 완승에 공헌했다. 거센 풍랑에 휘청였던 덴마크는 종횡무진 상대 수비진을 휩쓴 그의 활약에 힘입어 유로 2000 본선에 깃발을 꽂을 수 있었다. 10여 년간 '대니시 다이너마이트(덴마크 대표팀의 애칭)'의 핵심으로 맹활약했던 미카엘-브리안 라우드루프 형제의 은퇴 이후 마땅한 스타가 없어 고민이 컸던 덴마크는 차세대 주자의 급부상에 힘입어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본선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당시 세계 챔피언이었던 프랑스, 공동 개최국이자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던 네덜란드,동유럽의 선두주자 체코와 묶인 죽음의 조에서 덴마크는 '''한 골도 넣지 못하고''' 3전 전패의 수모를 당한다. 토마손 역시 전 경기에 나서 안간힘을 썼지만 실력차를 절감한 채 물러나야 했다.
아쉬움을 삼킨 덴마크는 대회 이후 모르텐 올센 감독의 주도로 세대교체를 통해 전력을 재편했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욘 달 토마손이 있었고, 덴마크는 라우드루프 형제의 시대로 대변되는 1990년대에 버금가는 전력을 자랑하게 된다.
4.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페예노르트에서 화려하게 UEFA컵 우승을 차지하고 돌아온 그의 눈부신 활약은 A대표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덴마크는 2002년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3조에서 체코, 불가리아 등 동유럽의 강호들과 한조에 속하게 되었는데, 베테랑 골잡이 에베 산과 함께 투톱을 형성한 토마손은 8경기에 나서 4골을 뽑아내며 덴마크의 무패 본선 진출(6승 4무)에 일조했다. 특히 체코와의 선두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있어 결정적 역을 맡았다. 2년 전 유로 본선에서 0-2 완패라는 쓰라림을 안긴 호적수와의 대결이었는데, 토마손이 코펜하겐에서 열린 홈경기에서 1-1로 맞서던 후반 39분 결승골을 뽑아내 덴마크가 지역예선 판세를 잡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파죽지세는 본선에서도 이어졌다. 일찌감치 경남 남해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리고 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한 덴마크의 첫 번째 상대는 남미의 전통강호 우루과이였다.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가 한 조에 자리하고 있었던 만큼, 우루과이를 꺾어야만 조 2위로 16강 진출을 노리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골을 터뜨려야 할 공격수들의 활약이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선봉을 맡은 토마손은 기대에 부합하듯, 상대 골문에 맹폭을 가하며 우루과이 진영 좌측면을 파고든 에스퍼 그론캬르의 땅볼 크로스를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이어받아 깔끔한 마무리로 선제골을 득점했다. 하지만 덴마크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우루과이의 다리오 로드리게스의 환상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아쉬운 동점골을 내주게 된다. 우루과이는 후반 2분만에 전세를 뒤집어놓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경기는 우루과이 쪽으로 기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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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38분. 토마손이 또다시 그론캬르의 크로스를 넘겨받아 결승골을 터뜨렸다. 덴마크의 2-1 승리. 토마손이 덴마크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경기에서도 득점포는 멈출 줄 몰랐다. 대회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1-0으로 격침해 충격을 안겼던 아프리카의 복병 세네갈과의 조별 라운드 2차전(1-1 무)에서 전반 16분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뽑아내더니, 후반 35분 디아오[6] 의 동점골로 비겼지만 갑작스런 부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프랑스를 상대한 3차전[7] 에서도 전반 11분 롬메달이 선제골로 앞서가더니 후반 13분단짝 그론캬르의 총알같은 크로스를 받아 쐐기골을 작렬시키며 2-0 완승을 책임졌다.
3경기 연속골을 뽑아낸 그의 맹활약에 힘입어 덴마크는 2승 1무라는 호성적을 거두며 조 1위로 당당히 16강에 진출했다. 비록 잉글랜드에 0-3으로 무기력하게 무릎 꿇어야 했지만, 토마손을 앞세워 강력한 공격축구를 펼친 전 세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총 4골을 성공시킨 그 역시 브론즈 슈를 수상하는 등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4.3. UEFA 유로 2004
유로 2004에 참전한 토마손은 조별리그 2차전 불가리아를 상대로 선제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고, 조별리그 3차전 스웨덴을 상대로 2골을 터트리며 2:2 무승부를 만든 뒤 팀을 8강에 올려놓는다.
허나 8강에서 민난 체코를 상대로 3:0 완패를 당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4.4.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노쇠했다는 게 분명히 드러난 대회였다. 대회 당시 토마손의 나이는 34세로 이미 은퇴가 코앞인 노장이었기 때문에 전성기 시절의 날카로움을 잃은지 오래였다.
반드시 이겨야 16강에 올라가는 운명의 3차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토마손은 숱한 찬스들을 얻고도 폭풍 염발이 작렬해 족족 날려먹으면서 덴마크 팬들에게 열심히 까였다. 후반 36분에 하세베 마코토의 반칙으로 얻은 페널티킥마저도 가와시마 에이지의 선방에 막혔는데, 다행히 세컨드볼을 우겨넣어 득점에 성공했지만 득점 과정에서 착지를 잘못하는 바람에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다(...) 덴마크는 이미 전반에만 혼다 케이스케와 엔도 야스히토의 프리킥 두 방을 얻어맞고 밀리고 있었는데 추가골은 커녕 역습으로 한골을 더 내주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였다. 토마손의 스탯은 3경기 1골.
교체로 그 유명한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들어왔지만 이 때는 어린 신예일 뿐이었다. 물론 다행히도 수많은 유럽 빅클럽들이 에릭센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유심있게 지켜봤지만 2010년 기준 한국나이로 겨우 19살이었다. 손흥민, 네이마르, 살라 등과 같은 해에 태어난 선수인데 이들 모두 2010년 즈음 국가대표 대항전에 나선 선수는 아무도 없다.
5. 평가
월드컵 개인 통산 5득점에 빛나기도 하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한 선수였지만 월드컵 16강이나 유로 8강과 같은 메이저대회 토너먼트에만 진출하면 득점을 못한게 아쉬웠던[8] 선수였다.
[1] 스트라이커, 세컨드 스트라이커[2]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3] 15-16시즌 챔피언십 강등의 수모를 겪는 등 무기력해진 최근의 모습과는 달리, 당시 뉴캐슬은 95-96, 96-97 두 시즌 연속으로 리그 2위에 오르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홈에서 '''FC 바르셀로나'''를 3-2로 격침시키는 등 꽤 강력한 모습을 보였던 팀이었다.[4] UEFA 유로파 리그의 전신.[5] 경기는 3-2로 이겼다.[6] 그이후 거친반칙으로 퇴장했다.[7] 앙리는 우루과이와 경기서 퇴장당해 나올수 없었다.[8] 득점만 못한게 아니라 조국이 영패로 탈락했던데다가 또 마지막으로 출전한 월드컵은 16강에 진출하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