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아웃!!(아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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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에 아케이드로 나온 닌텐도의 복싱 게임. 최초의 펀치 아웃!! 게임이자 펀치 아웃! 시리즈의 시작.
후속작으로는 1년 후인 1985년에 나온 슈퍼 펀치 아웃!! 아케이드가 있다. 차이점이라면 적들이 전부 교체되었고 덕(duck) 기능이 추가 되었다.
이후 아케이드로 나오지 않는 대신에 가정용 콘솔로 나오게 되는데, 패미컴으로 나온 펀치 아웃!!이 그것.
모니터가 위, 아래 2개로 구성되어 있어 아래 화면에는 본 게임이 나오고 게임 위 화면에는 캐릭터의 정보, 시간, 라운드, 점수가 나와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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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2개의 화면을 사용하는 게임인데, 이는 동키콩(게임)의 성공 이후 대량으로 모니터를 사들였지만 모니터가 쌓여 처리를 해야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시기에 원근법을 이용한 게임을 만드려고 했었다. 처음엔 원근법을 이용하고 모니터도 처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레이싱 게임이였으나 막상 구상을 해 보니 모니터는 1개만 필요하고 원근법을 이용한 레이싱 게임은 흔하다고 생각했는지 어차피 똑같이 모니터가 1개만 필요하다면 원근법을 이용한 복싱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위쪽 모니터에는 정보를 넣어 플레이어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로 한다.
디자인은 미야모토 시게루가, 총 감독 및 캐릭터 이름은 타케다 겐요[3][4] 가 맡았다. 타케다는 글러브를 손에 끼우고 조작 하는 것을 생각하였으나 기술적 한계 등으로 조이스틱과 버튼로 조작하기 쉬운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캐릭터의 디자인 및 픽셀은 미야모토가 그때당시 유명했던 애니메이터와의 상의로 완성했다고 한다.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때라서 일일히 손으로 그려 옮겨야 할 뿐만 아니라 줌 인/아웃을 이용해야 했고 굉장히 큰 그림을 그려야 했으며 1.5초간 포즈가 다른 그림을 그려야해서 [5]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 화면이 플레이어의 등짝을 보이다 보니 와이어 프레임으로 해서 적을 보이게 하는 방식을 만들었다.
타케다가 북미 시장을 바라보고 개발을 했었기 때문에 캐릭터가 양키센스가 난다. 실제로 첫 게임은 개발자들도, 일본인도 아닌 뉴올리언스에서 해비 복싱 챔피언에게 대중들 앞에 서서 시연을 시켰다고 한다. 북미를 타겟으로 한 이유는 시장의 잠재성도 있고니와 복싱 자체가 북미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발 또한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NoA)에서 같이 참여도 했었는데, 그 전 까지는 NoA는 홍보 및 퍼블리싱만 했었다고 한다.[6] 이메일도 없었던 시대라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게임은 큰 히트를 쳤는데, 그 때 상황을 설명하자젼 동전이 너무 넘쳐 기계가 고장난 줄 알았다는 곳이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대중적인 인기와 점주들의 호평에 힘을 실어 후속기기인 슈퍼 펀치 아웃!!을 만들게 된다.
슈퍼 펀치 아웃!! 이후, 미야모토 시게루는 펀치 아웃!!(Wii)가 나올 때 까지 펀치 아웃!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
'''콘도 코지가 처음으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1985년에 이 하드웨어로 같은 닌텐도에서 팔씨름을 모티브로 한 "Arm Wrestling"이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물론 일본을 제외한 해외에서만 발매.
1. 개요
1984년에 아케이드로 나온 닌텐도의 복싱 게임. 최초의 펀치 아웃!! 게임이자 펀치 아웃! 시리즈의 시작.
후속작으로는 1년 후인 1985년에 나온 슈퍼 펀치 아웃!! 아케이드가 있다. 차이점이라면 적들이 전부 교체되었고 덕(duck) 기능이 추가 되었다.
이후 아케이드로 나오지 않는 대신에 가정용 콘솔로 나오게 되는데, 패미컴으로 나온 펀치 아웃!!이 그것.
모니터가 위, 아래 2개로 구성되어 있어 아래 화면에는 본 게임이 나오고 게임 위 화면에는 캐릭터의 정보, 시간, 라운드, 점수가 나와있다. [1]
2. 상대할 수 있는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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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래스 죠(Glass Joe)
- 피스톤 허리케인(Piston Hurricane)
- 발드 불(Bald bull)
- 키드 퀵(Kid Quick)
미국 뉴욕 브룩클린 출신.
이 버전을 제외하면 아무런 등장이 없는 적. 키드 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굉장히 늙어보인다(...). Wii에서 재 등장할 뻔 했으나 결국 신참에게 자리를 빼앗겼다.[2]안습
[image]이 버전을 제외하면 아무런 등장이 없는 적. 키드 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굉장히 늙어보인다(...). Wii에서 재 등장할 뻔 했으나 결국 신참에게 자리를 빼앗겼다.[2]안습
- 피자 파스타(Pizza Pasta)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
키드 퀵과 마찬가지로 여기 외 출현 소식이 없는 분. 채력 흡수기를 가지고 있어 상대하기 껄끄럽다. 이 흡수 기술은 슈퍼패미컴 버전의 아란 라이언이 가져가게 된다.
[image]키드 퀵과 마찬가지로 여기 외 출현 소식이 없는 분. 채력 흡수기를 가지고 있어 상대하기 껄끄럽다. 이 흡수 기술은 슈퍼패미컴 버전의 아란 라이언이 가져가게 된다.
- Mr. 샌드맨(Mr.Sandman)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원조 최종보스. 포스는 예나 지금이나 강력하다. 후속작에는 계속 랭크가 떨어져 나오나 Wii에서는 다시 최종보스로 돌아온다. 아쉽게 드림랜드 익스프레스가 없다.
원조 최종보스. 포스는 예나 지금이나 강력하다. 후속작에는 계속 랭크가 떨어져 나오나 Wii에서는 다시 최종보스로 돌아온다. 아쉽게 드림랜드 익스프레스가 없다.
3. 역사
특이하게 2개의 화면을 사용하는 게임인데, 이는 동키콩(게임)의 성공 이후 대량으로 모니터를 사들였지만 모니터가 쌓여 처리를 해야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시기에 원근법을 이용한 게임을 만드려고 했었다. 처음엔 원근법을 이용하고 모니터도 처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레이싱 게임이였으나 막상 구상을 해 보니 모니터는 1개만 필요하고 원근법을 이용한 레이싱 게임은 흔하다고 생각했는지 어차피 똑같이 모니터가 1개만 필요하다면 원근법을 이용한 복싱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위쪽 모니터에는 정보를 넣어 플레이어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로 한다.
디자인은 미야모토 시게루가, 총 감독 및 캐릭터 이름은 타케다 겐요[3][4] 가 맡았다. 타케다는 글러브를 손에 끼우고 조작 하는 것을 생각하였으나 기술적 한계 등으로 조이스틱과 버튼로 조작하기 쉬운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캐릭터의 디자인 및 픽셀은 미야모토가 그때당시 유명했던 애니메이터와의 상의로 완성했다고 한다.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때라서 일일히 손으로 그려 옮겨야 할 뿐만 아니라 줌 인/아웃을 이용해야 했고 굉장히 큰 그림을 그려야 했으며 1.5초간 포즈가 다른 그림을 그려야해서 [5]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 화면이 플레이어의 등짝을 보이다 보니 와이어 프레임으로 해서 적을 보이게 하는 방식을 만들었다.
타케다가 북미 시장을 바라보고 개발을 했었기 때문에 캐릭터가 양키센스가 난다. 실제로 첫 게임은 개발자들도, 일본인도 아닌 뉴올리언스에서 해비 복싱 챔피언에게 대중들 앞에 서서 시연을 시켰다고 한다. 북미를 타겟으로 한 이유는 시장의 잠재성도 있고니와 복싱 자체가 북미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발 또한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NoA)에서 같이 참여도 했었는데, 그 전 까지는 NoA는 홍보 및 퍼블리싱만 했었다고 한다.[6] 이메일도 없었던 시대라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게임은 큰 히트를 쳤는데, 그 때 상황을 설명하자젼 동전이 너무 넘쳐 기계가 고장난 줄 알았다는 곳이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대중적인 인기와 점주들의 호평에 힘을 실어 후속기기인 슈퍼 펀치 아웃!!을 만들게 된다.
슈퍼 펀치 아웃!! 이후, 미야모토 시게루는 펀치 아웃!!(Wii)가 나올 때 까지 펀치 아웃!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
'''콘도 코지가 처음으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1985년에 이 하드웨어로 같은 닌텐도에서 팔씨름을 모티브로 한 "Arm Wrestling"이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물론 일본을 제외한 해외에서만 발매.
[1] 게임 플래이 화면은 나중에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4에서 오마쥬된다. 오리지날 오마쥬 [2] 디스코 키드의 출생지 및 기록이 키드 퀵과 같은 데다가 데이터를 뜯어보니 파일 이름이 키드 퀵으로 되어있었다.[3] 펀치-아웃!!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오늘날 까지 쭉 시리즈 감독및 개발을 담당했다. 즉, 펀치아웃의 아버지라 봐도 된다! ....만 검색에는 물론 엔하위키에도 없다.[4] 1971년 부터 닌텐도에 다녔으며 주 담당은 콘솔이다. 아주 가끔 게임도 개발하는데, 대표작이 이 게임.[5] 무엇보다 디자이너는 미야모토 시게루 1명 뿐이였다고 한다[6] 차고로 게임을 할 때 심판의 목소리는 NoA의 한 직원이 더빙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