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밴드)
1. 개요
오아시스와 더불어 90년대 영국 노동계급을 상징한 '''Common People.''' 자비스 코커의 괴랄하리만큼 격정적인 퍼포먼스가 특징이다.
사람들이 흔히 오아시스와 블러의 치고박는 남북전쟁을 떠올리는 바람에 좀 묻힌듯한 경향이 있지만 엄연히 '''90년대 중반, 위 2밴드와 더불어 영국에서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메인스타덤에 올라서 브릿팝 열풍을 이끈 브릿팝 군단 중 하나인 밴드다.''' 오죽하면 "블러와 오아시스가 치고 받았던 95년 브릿팝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펄프였다."라는 의견이 있을 정도.
비록 브릿팝 열풍을 이끌었던 밴드지만, 데뷔 연도가 1981년도다. 일반 브릿팝 밴드와 달리 상당히 이른 편. 그래서 한창 인기 있었을 때도 자비스는 30대였고(1963년 생) 2010년대 기준으로 다들 50대를 넘어간다.
2. 활동 내역
2.1. 역사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 이후 홀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암울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던 안경잡이 소년 자비스 코커는 1978년 학교 장기자랑에서 우연히 노래를 하게 되고 이것이 좋은 반응을 얻자 "음악을 하면 또래 애들에게 환호성을 들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 결과 17살 소년 코커는 1980년 7월 학교의 친구들과 함께 아라비커스 펄프(Arabicus Pulp)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한다. 자비스 코커가 경제학 시간에 들었던 용어라는데, 밴드 멤버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해서 밴드 이름은 얼마 있지 않아 지금의 이름인 펄프로 바뀌었다. 이처럼 스쿨 밴드 정도로 시작한 밴드였지만 1981년 10월, 존 필 세션으로 유명한 영국의 프로듀서 존 필에게 보낸 데모가 호평을 받자 이들은 전업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우며 곡 작업에 매진하여 마침내 1983년 데뷔 앨범 <It>을 발매한다. 그러나 데뷔 앨범은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코커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대학 진학 등의 이유로 밴드를 탈퇴했다. 반면, 자비스 코커는 본격적인 프로 활동을 목적으로 새 멤버들을 영입하고 밴드 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하필이면 '''펄프가 프로 데뷔를 시작한 80년대 중반은 더 스미스가 센세이션한 열풍을 이끌고 있던 시기였다.''' 결국 펄프는 말 그대로 철저하게 묻혔다. 싱글 <Little Girl>과 <Dogs Are Everywhere>가 발매되었으나 별 반응을 얻지 못하자 2집 앨범 Freaks의 녹음은 1986년 6월에 소속 레코드사인 Fire 레코드의 압박으로 일주일만에 급히 진행되었고 이 마저도 회사의 무관심으로 1987년이 되어서야 발매가 이루어졌으니... 이 때문에 펄프는 브릿팝 열풍을 이끌었던 소위 브릿팝 4대천왕[3] 중에서 유일하게 더 스미스를 싫어하는 밴드이다. 자비스 코커왈 더 스미스가 씬을 독차지하여 다른 밴드들이 주목 받을 기회를 없애버렸다고. 이 와중에 짝사랑하고 있는 여자[4] 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하자 코커는 '나는 스파이더맨이다!'라고 외치며 9미터 높이의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다행히 구사일생하여 2달 동안 휠체어 신세를 지낸 것으로 끝났다 한다.) 코커는 다리 부상을 치료한 후 계속된 무명생활에 지쳐서 Sheffield Hallam University에서 예비과정(Foundation course)을 수강하기 시작했고 1987년 Freaks가 발매된 직후, 처음으로 펄프를 공식 해산하고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학교(영국 예술학교 중에서는 알아주는 대학교다.)에 입학해서 순수미술(Fine Art)과 영화 연출을 배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대학에서 영화를 배우는 와중에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자비스 코커는 마침내 1989년 기존의 펄프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러셀 시니어와 키보디스트 칸디다 도일에게 다시 연락하고 학교에서 알게된 베이시스트 스티브 맥키와 세션 드러머로 활동 중이던 닉 뱅크스를 끌여들여 밴드를 재결성, 에시드 하우스 성향의 3집 앨범 Sapertations를 녹음하였다. 하지만 Fire 레코드사와의 불화 때문에 앨범의 발매가 또다시 연기되자 코커는 밴드를 다시 해체하고 1991년 대학을 졸업한 후, 영화인으로서의 삶을 꿈꾸며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5] 이 시기 코커가 생각한 영화의 아이디어들은 이후 노래 가사로 다듬어져서 His 'n' Hers 앨범 수록곡들의 가사가 된다.
1992년 6월 19일 Sapertations 앨범이 드디어 발매되었고 앨범이 전작들보다 잘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코커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펄프를 재결성했다. 밴드는 Sapertations 세션 당시 녹음한 곡들 중 <My Legendary Girlfriend>, <Countdown> 등 2곡을 재녹음하여 싱글로 발매했고 같은 해, Fire 레코드사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신생 레코드 회사인 Gift사와 계약을 채결했다. 1993년, Gift 레코드사가 Islands 레코드사에 인수되면서 펄프는 비로소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된다. 새로 작업한 싱글 <Babies>, <Razzamatazz>가 연속해서 히트를 치며 처음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펄프는 1994년 마침내 번쩍번쩍하는 신디사이저의 복고풍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자비스 코커의 신랄하고도 색욕마인스러운 가사[6] 가 담긴 앨범 His 'n' Hers를 발표하여 당시 불어닥친 브릿팝 열풍의 기수 중 하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명도가 생긴 후로는 거칠 게 없는지 코커는 항상 맨발로 라이브에 나왔다. 이전 시기(데뷔 직후 부터 1992년 시절까지)에 녹음한 곡들의 모음집도 <Countdown 1992-1983>이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1995년 펄프는 Different Class로 연타를 날리게 되는데, 이 앨범은 사운드 면에서도 깔끔하게 다듬어졌고 작곡 면에서도 비약적인 상승을 이뤄서 명반이라 불리는 앨범이다. 'Common People,[7][8] Mis - Shapes, Disco 2000, Sorted For E's & Wizz 등의 히트 싱글들도 이때 나왔다. 1995년 글라스톤버리에서의 퍼포먼스가 유명한데, 당시 메인 스테이지에 서기로 했던 스톤 로지즈가 존 스콰이어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인해 공연을 취소하면서 땜빵으로 서게 되었지만 정말 멋진 공연을 펼쳐 보임으로써 이후 해당 페스티벌의 다큐멘터리에도 삽입된다. 글래스톤베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이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당 영상을 보면 자비스가 몹시 괴악한 춤을 선보이는데 이게 또 몹시 섹시(...)하다.
Different Class 시절 아주 유명한 일화가 또 있다. 바로 마이클 잭슨과 이중창 사태(...). 마이클 잭슨이 1995년 브릿 어워드에서 어린이들과 노래 부르고 퍼포먼스 하던 중 보컬 자비스 코커와 기타리스트 러셀 시니어가 무대에 올라가 난동 친 사건. 그 때 자비스 코커는 자신의 맨엉덩이를 들어보였고, 3명의 아이를 폭행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자비스 코커는 '마이클 잭슨이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서'라고 했다. 이 사건에 대한 발언들이 재미있는데, 블러의 데이먼 알반은 '경솔하다'라고 비판을 했지만, 스웨이드의 브렛 앤더슨은 "자비스의 행동은 잘한 짓이다. 그 사건 뒤 내 주변에 "내가 했으면 좋았을 걸"라고 말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라는 발언을 했으며,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 그에게 유일한 잘못이 있다면 그의 특기인 발차기로 마이클 잭슨의 면상을 후려차지 않은 것"이라고 두둔했고 리암 갤러거는 "평소 그답지 않은 쿨한 행동이었다. 이제 그 녀석은 스타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자비스 코커에게 기사작위를 주어야 한다"는 뭔가 섬나라의 기상이 엿보이는 평가도 있었다. [9] 이 밖에도 Sorted For E's & Wizz라는 싱글 뒤에는 코카인이나 엑스터시 같은 마약을 보관할 수 있는 종이접기 방법을 그려넣어서 싱글이 회수되는 사건도 있었다. 곡의 제목과 곡 내용 자체도 당시 영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마약에 취한 채로 레이브 파티에 참석하는 젊은이를 묘사한 곡이다.
브릿팝 열풍이 한층 꺾인 1998년 펄프는 This is Hardcore 앨범을 발표하면서 음악적으로는 카바레나 1950년대 스탠더드 팝, 재즈 영향이 상당히 강해지고 대외적으로도 유머가 줄고 진지한 면모를 보이는 급격한 방향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2001년 펄프는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스콧 워커를 고용하여 60년대 말 유행했던 사운드의 영향을 받은 We Love Life 앨범을 발매했는데 비록 앨범 자체는 웰 메이드 앨범이었지만[10]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하는 바람에 소속사인 Islands 사에서 펄프와 제계약을 거부했다(...). 결국, 펄프는 2002년 Islands 레코드사 시절 발매한 싱글들을 모은 앨범인 <Hits>를 발표하고 영국 Auto Festival 공연에서 고별공연을 한 다음 그대로 해산하였다.
2.2. 펄프 해체 후
펄프 해체 후, 자비스 코커는 펄프 멤버였던 스티브 맥키,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와 필 셀어웨이와 함께 해리 포터와 불의 잔 영화판에 크리스마스 무도회에 등장하는 마법 세계 최고의 인기 밴드인 'The Weird Sisters (운명의 세 여신)'의 멤버로 등장하였다. 삽입곡도 자비스가 직접 썼다. 원래는 프란츠 퍼디난드가 나오기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이후 자비스 코커는 유명 라디오 음악방송 <Jarvis Cocker's Sunday Service>의 호스트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솔로활동을 하였다. 음악적인 평가는 좋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별로 없었다. 1집 발표 직후 자바스 코커는 당시 프랑스인 의상 디자이너와 결혼하여 아들을 하나 낳았다.
2009년에는 두 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2집에는 프로듀서로 너바나와 픽시즈 프로듀서로 유명한 스티븐 알비니가 참여했다. 참고로 프랑스 와이프하고는 솔로 2집 발매 시기에 이혼했다. 공식적으로는 우호적으로 헤어졌다고 발표했지만 후에 프랑스 와이프의 말에 따르면 자비스는 자신과 의사소통을 위한 기초적인 프랑스어조차 배우지 않아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고 하며 자비스는 자신의 패션쇼에 한번도 오지 않았을 정도로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2017년 3월 자비스 코커의 솔로 3집 Room 29이 발매되었다.
2017년 12월 Jarvis Cocker's Sunday Service가 종영되었다. 자비스는 마지막 방송에서 "It’s not goodbye, it’s just farewell. We wanted to say farewell properly and so we’re going to do a run of five extra-special shows throughout December, starting this Sunday. Let’s keep warm together."라는 말을 남겼다.
2018년 자비스의 새 밴드 JARV IS가 결성되었다.
2020년 7월 17일 JARV IS의 데뷔 앨범 Beyond the Pale가 발매되었다.
2.3. 일시적인 재결합
2011년 재결합을 발표했으며 스페인 프리마베라, 영국 아일 오브 와이트, 와이어레스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섭외 스케줄이 잡혔다.
Pulp - Disco 2000 (Isle of Wight Festival 2011)
이런 공연을 해놓고 10년만에 공연하는 거라 민망해서 방송 촬영을 원하지 않았다니 참 아까울 노릇이다.
2013년, 자비스 코커가 솔로 활동을 한 인디 레이블 러프 트레이드[11] 에서 싱글 After You를 발매 후 다시 해체상태이다. 해당 곡은 We Love Life 당시 만들어진 곡이라고. Record Store Day에 나온 Soulwax의 리믹스 버전을 GTA 5의 Soulwax FM에서 들을 수 있다.#
3. Discography
여기선 정규 앨범만 다룬다.
1983 - It
1987 - Freaks
1992 - Separations
1994 - His 'n' Hers
1995 - Different Class
1998 - This Is Hardcore
2001 - We Love Life
4. 기타
자비스 코커가 펄프 곡 작업의 메인을 차지하고 있으나 음반수익 개런티는 대인배스럽게 5명의 멤버들이 모두 20%씩을 차지하고 있다.
펄프는 무명 시절이 길었던만큼 멤버들이 음악 활동외에 부업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베이시스트 스티브 맥키와 기타리스트 마크 웨버는 영화학도 였고[12] 키보디스트 칸디다 도일은 장난감 가게를 경영했으며 코커가 처음 밴드를 결성했을 때 부터 Different Class 시절까지 함께한 기타리스트 러셀 시니어는 밴드에 가입하기 전에는 음악잡지의 기자였다가 현재는 녹음실을 차려서 운영중이다.
2014년 12월에 Pulp: a Film about Life, Death & Supermarkets 란 제목으로, 밴드의 마지막 공연, 팬들 등의 이야기를 담은 밴드/팬에게 헌정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다. 위는 그 예고편 ( )
[1] 2011년에서 2013년까지 일시적 재결합을 하긴 했다.[2] 1997년 탈퇴[3] 스웨이드, 블러, 오아시스, 펄프[4] 데보라 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여자에게 바치는 곡이 바로 그 유명한 Disco 2000. 다만 데보라의 집안은 가사의 내용처럼 널빤지 벽이 있을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5] 그러나 이 때 코커는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를 전혀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6] 블러보다 천박하고 가시 돋혔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사에 여타 영국 음악인들이 쓰는 시적인 축약은 거의 보기 힘들고 보통 노동자들의 단순한 말투가 주를 이룬다. 자비스가 영화과 출신이여서 그런지 단막극적인 느낌도 많이 난다.[7] NME에서는 이 곡을 브릿팝 명곡 순위에서 1위에 랭크시켰고, 피치포크 미디어 에서 뽑은 90년대 명곡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명곡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라디오헤드 빠로 유명한 피치포크가 Paranoid Android보다 높게 랭크시켰다![8] 이 곡은 코커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학교(영국 예술학교 중에서는 알아주는 대학교다.)에서 영화 공부할 때 만났던 조각 전공 여학생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코커 본인 말로는 그녀와는 별일 없었고 단지 그녀의 "런던 동쪽 끝(영국의 대표적인 노동자 거주 지역. 이들의 삶을 그린 동명의 드라마까지 존재한다.)에서 살고 싶다"는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워낙 이 곡이 유명해졌던지라 언론에서 곡에 나오는 여성에 대하여 조사에 나섰는데 유력한 후보로는 2015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가 잘린 (...) 그리스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부인이자 설치미술가인 다나에 스트라토우를 지목하고 있다. 다나에는 가사처럼 그리스에서 온 부잣집 딸이였고 코커가 학교를 다니던 1988년 같은 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나에는 자비스만이 정확한 인물을 알고 있을 거라고 말하며 부정. 자비스는 가사의 그녀는 다니에가 아니었다고 확인 사살하면서 가사 자체가 그저 자신의 상상력에서 나온 산물이라며 언론의 관심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했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게 가사 내용이 신랄하기 그지없어서 실제 모티브가 된 인물이 누구인지 인정해버리면 그 사람을 먹칠하는 꼴이 되버리기 때문이다.[9] 참고로 사건 일주일 후 자비스 코커의 아우디 승용차는 유리창이 박살난 채 발견되었고 자비스 코커는 한동안 거의 매일 전화로 살해협박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10]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인 Sunrise는 피치포크 선정 2000년대 명곡 순위 중 192위에 놓여 있다.[11] 인디이기는 하지만 인디라고 하기엔 규모가 큰 곳이다. 더 스미스, 리버틴즈가 이 곳 출신이며 블러의 그레이엄 콕슨도 이 곳 산하의 레이블에서 음반을 낸 적이 있다.[12] 둘은 자비스 코커와 영화 대학 시절부터 친구사이였다고 한다. 마크 웨버는 펄프 해산 후 감독한 영화로 독립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