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아이스너

 

'''Michael Eisner'''
<colbgcolor=#00001b> '''본명'''
마이클 다만 아이스너 (Michael Dammann Eisner)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42년 3월 7일, 미국 뉴욕 주 마운트 키스코
'''직업'''
기업인
'''배우자'''
제인 브레켄리지 (1967~)
'''자녀'''
3남
'''서명'''
[image]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image]
'''이름'''
'''마이클 D. 아이스너
MICHAEL D. EISNER
'''
'''분야'''
'''영화'''
'''입성날짜'''
'''2008년 4월 25일'''
'''위치'''
'''6834 Hollywood Blvd.'''
1. 개요
2. 경력
3. 그의 흑역사
4. 기타


1. 개요



미국기업인. 대중들에게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전 CEO이자 회장으로 유명하다. 당시의 별명은 Mr. 디즈니.
소위 디즈니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제2의 디즈니 전성기[1]를 이끌었지만 자기 손으로 그 끝을 내버림으로 인해[2], 기업인으로서의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2. 경력


1942년 뉴욕주 마운트키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데니슨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그는 미국 방송사인 NBCCBS에서 잠깐 근무를 한 후 1966년에 ABC로 이직해 TV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하였고 시청률 최하위 방송국이였던 ABC를 1위 방송국으로 끌어올려 ABC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1976년에는 파라마운트 픽처스로 이직, 사장 겸 CEO로 취임하여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스타트렉 극장판, 토요일 밤의 열기, 그리스 등의 흥행을 성공시켰다.

2.1.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서의 활동


이후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계속 근무하다가 투자자 사울 스테인버그(Saul Steinberg)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를 막아내느라 고군분투하던 로이 디즈니의 요청을 받고 1984년, 당시 빈사 상태에 있었던 월트 디즈니 컴퍼니로 자리를 옮겨 CEO로 취임한 이후 구시대적인 회사의 운영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침과 동시에[3] 터치스톤 픽처스가 제작한 실사 영화들의 성공과 인어공주로 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들의 연이은 흥행으로 디즈니의 최고 전성기인 디즈니 르네상스를 열었다. 이후 1994년에 디즈니 사장이었던 프랭크 웰스가 사망하게 되자 제프리 카첸버그와 경영권을 놓고 싸우게 되었고, 승리하여 회장 자리까지 차지했다.
1993년에는 독립 영화사 미라맥스를 인수, 1996년에는 본인이 이전에 몸담았기도 했던 미국 방송사 ABC와 북미 최대 스포츠 채널인 ESPN을 소유하고 있던 캐피털 시티스를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고 또한 디즈니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부서를 신설해 욕심쟁이 오리아저씨를 비롯한 디즈니 만화동산 작품들의 제작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그의 임기 동안 디즈니의 시가총액20배가 넘게 상승하면서 디즈니는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왕년의 아이콘에서 미국 경제를 상징하는 굴지의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 환골탈태했다. 이같은 성과에 타임지는 그를 '디즈니 왕국을 구해낸 왕자님'이라 표현하였고 디즈니를 리 아이아코카가 지휘한 크라이슬러의 회생 이후 가장 눈부신 부활을 이루어낸 사례 중 하나라고 평했다. 또한 포춘지는 그를 잭 웰치나 로베르토 고이주에타[4]에 버금가는 엘리트 CEO로 추앙하였고 LA 타임즈는 심지어 월트 디즈니가 생전에 상상하였던 것보다 더 광대한 기업으로 디즈니를 변모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그를 최고의 CEO로 만들었던 칼 같은 꼼꼼함과 체계성은 결국 도를 지나쳐 콘텐츠 기업의 핵심 가치인 창의성과 역동성을 저하시켰다. 그의 지휘 아래 디즈니는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적인 조직으로 변모해갔고 여기에 겹쳐 인재 관리의 실패로 드림웍스의 탄생을 방치하고 픽사와의 관계도 그르치고 말았다. 그 결과가 디즈니의 본연이라고 할 수 있던 애니메이션 사업은 날이 갈수록 쇠퇴했다.
자신의 자리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는지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 경영 방식으로 이사회와 잦은 마찰을 일으켰고, 앞서 서술한 원인 등으로 2000년대에 들어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대부분 흥행 측면에서 침체기에 빠지게 되자 2006년에 디즈니에서 퇴사하려 했으나, 이사회의 탄원에 의해 마지막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2005년에 퇴출되었다.
그의 책임은 아니였지만 9.11 테러로 관광 산업이 둔화되며 디즈니의 수익이 크게 떨어진 것도 그를 한계까지 몰아붙히는 요인이 되었다. 거기에 결정타로 창업주 일가인 로이 디즈니[5]와의 갈등이 결정타가 되면서 결국 그는 밥 아이거에게 자리를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아이거마저도 아이스너 밑에서 오랫동안 일했다는 이유로 그 나물의 그 밥일 것이라며 엄청난 견제를 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거 입장에서는 참 못난 선임이었던 셈.[6]
이후 2007년부터 인터넷용 동영상 제작사인 The Tornante Company[7]을 설립해 일하고 있다.

3. 그의 흑역사


그에게 반감을 가진 애니메이터들[8]이 나와서 독립한 회사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인데, 드림웍스가 픽사와 함께 디즈니 르네상스가 막을 내린 2000년 이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몰락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는 것은 유명하다. 하지만 디즈니가 대항마를 인수한 이후로는 점차 밀리는 추세.[9]
세계최고의 놀이공원으로 각광받는 디즈니랜드 역시 후발주자인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디즈니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방송이나 엔터테인먼트사를 인수합병해 몸집 불리기엔 성공한 반면 원래 디즈니의 강점인 애니메이션에서 과거의 영광을 많이 잃어버린 원인에는 아이스너의 책임이 크다. 스티브 잡스와 마찰을 빚으면서 한때 픽사와의 관계를 완전히 틀어지게끔 만들었으며 또한 디즈니에 꿈을 가지고 입사한 직원들이 빠져나가게 된 원인 중 하나.[10]
그리고 마블 엔터테인먼트인수할 기회가 더 일찍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점 등 후대 CEO인 밥 아이거와 비교되는 부분이 많다. 회사 내부의 소스에 의하면 아이스너는 마블이 '디즈니다운 브랜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수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디즈니가 미라맥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던 시절, 피터 잭슨이 미라맥스와 함께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를 만들고 있을 때 비용절감을 이유로 들어 제작비를 충분히 지원해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피터 잭슨은 미라맥스와 결별한 후 뉴 라인 시네마로 가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디즈니 입장에서는 엄청난 대어를 놓친 셈.
ESPN을 노린 컴캐스트가 디즈니를 상대로 660억 달러 규모의 적대적 인수합병시도한 적도 있다.
드림웍스의 히트작 슈렉의 빌런인 파콰드 영주가 아이스너의 얼굴을 베이스로 모델링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제프리 카첸버그가 전반적으로 그에게 쌓인 원한이 많기 때문에(...) 슈렉의 전체적인 스토리 역시 아이스너와 디즈니를 전면적으로 까는 방향으로 제작되었다.[11]

4. 기타


  • 2006년경에 픽사존 라세터에게 개발 지옥(...)에 빠져 있었던 눈의 여왕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 바로 마이클 아이스너였다. 겨울왕국에 픽사 색이 매우 강해진 원인 중 하나.
  • 하마터면 디즈니의 CEO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1984년 당시 회사의 대주주였던 시드 배스가 처음 디즈니의 CEO로 눈여겨 보았던 인물은 20세기 폭스의 전 CEO였던 데니스 스탠필이었다. 이에 추가하여 시드 배스는 조지 루카스에게 침체기에 있던 디즈니의 영화제작 부문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며 영입을 시도했으나 루카스는 이를 거절했는데 대신 그는 시드 배스에게 디즈니를 이끌어갈 적임자로 루카스 본인과 친분이 있기도 했던 마이클 아이스너를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이것이 아이스너가 디즈니의 CEO가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
  • 인터뷰에서 만약 밥 아이거가 자신의 뒤를 잇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CEO 자리를 내려놓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하며[12]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인수 등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경영적 선택들을 탁월하게 해냈다며 그에 대해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아이거의 경영전략이 자신이 ABCESPN을 인수했던 것처럼 그와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 원래는 방송국을 인수하려 했을 때 CBS도 고려 대상에 있었지만 ESPN의 가파른 성장률을 보고나서 캐피털 시티스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13] 이 선택에 대해 훗날 인터뷰에서 '20세기 최고의 인수합병 선택 중 하나'라고 자찬한 바 있다. 나중에 회고하기를, 만약 캐피털 시티스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디즈니가 다른 회사들이 시도한 인수합병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라며 이 거래 덕분에 디즈니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1] 그가 디즈니로 자리를 옮겼을 당시에 뉴욕 타임즈가 회사 전체의 상태를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비유했을 정도로 디즈니는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구원투수로 기용된 아이스너가 CEO로 취임한 이후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디즈니의 '''매출은 20배, 주가는 16배가 넘게 치솟았다.''' 출처 시가총액으로 환산하면 아이스너가 취임한 1984년에는 28억 달러 정도였지만 1987년에 100억 달러를 사상 처음으로 돌파하고 그가 자리에서 물러난 2004년에는 690억 달러로 상승하는 결과를 이루어냈다.[2]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디즈니의 성장 정체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3] 아이스너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디즈니랜드에 대한 TV 광고를 전혀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전 경영진들이 얼마나 안일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4] 코카콜라의 전설적인 CEO.[5] 그를 CEO로 영입한 당사자다.[6] 그래도 아이거는 아이스너를 존경했는지 그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도 않았고 자서전에서는 그의 업적을 두고 '디즈니를 재창업했다'고 표현했다. 애초에 본인이 디즈니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도 결국은 아이스너 덕분이니..[7] 보잭 홀스맨에 투자하기도 했다.[8]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회장 제프리 카첸버그도 포함.[9] 밥 아이거존 라세터 등 신 경영진의 개선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이기도 하다. 상당한 쇄신 끝에 초기 드림웍스가 가지고 있었던 신선함의 지분을 어느 정도 들여올 수 있었기 때문.[10] 다만 전 회장인 제프리 카첸버그 역시 전횡 면에선 악명이 높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토이 스토리 시리즈.[11] 오죽하면 파콰드란 이름도 Fuckwad라는 영어 욕설을 변형한 이름이다.[12] 실제로 아이거의 CEO 취임은 철저하게 아이스너의 영향력 아래 진행되었다고 한다.[13] 사실 그 이전에 RCA를 인수하려고 협상한 적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