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파스토레

 


'''AS 로마 No. 27'''
'''이름'''
'''하비에르 파스토레
Javier Pastore'''
'''본명'''
하비에르 마티아스 파스토레
Javier Matias Pastore
'''출생'''
1989년 6월 20일 (34세) /
코르도바
'''국적'''
아르헨티나 [image]이탈리아 [image]
'''신체'''
187cm | 체중 78kg
'''직업'''
축구선수 (공격형 미드필더[1])
'''소속'''
'''선수'''
타예레스 데 코르도바 (2002~2007 / 유스)
타예레스 데 코르도바 (2007~2009)
CA 우라칸 (2008~2009 / 임대)
US 팔레르모 (2009~2011)
'''파리 생제르맹 FC (2011~2018)'''
AS 로마 (2018~ )
'''국가대표'''
29경기 2골 (아르헨티나 / 2010~ )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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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발'''
오른발
'''번호'''
US 팔레르모 - 27번
파리 생제르맹 FC - 27번
AS 로마 - 27번
'''별명'''
엘 플라코(El Flaco)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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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 출신의 미드필더. 포지션은 윙어중앙 미드필더. "엘 플라코"(El Flaco)[2]라는 별명으로도 불려진다. 참고로 여기서 관사 El을 뺀 것이 바로 파스토레와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인 디 마리아의 별명이다.

2. 클럽 경력


2007년 1월 29일에 아르헨티나 2부 리그의 클럽이자 그의 고향에 위치한 클럽인 타예레스 데 코르도바에서 데뷔했으며 그해 5경기를 출장했다. 조금씩 입지를 넓혀나가던 중, 아르헨티나 1부리그로 갓 승격한 CA 우라칸으로 임대된다.
그 당시, 우라칸의 감독으로 재임하던 앙헬 카파 감독이 파스토레의 재능을 알아보고 19살의 선수를 1군으로 기용하며 플레이메이커로써의 재능을 발휘할수 있게 도왔다.
이는 성공적이었으며 아르헨티나 1부 리그의 후기 리그인 '클라우수라'[3][4]에서 7골 3도움으로 팀 내 최다 득점 선수 타이틀과 함께 우라칸의 2위 수성에도 혁혁한 공을 세운다. 또한 아르헨티나 명문 구단 투 톱 중 하나인 리베르 플라테와의 경기에서 25야드 거리에서의 중거리 골을 포함해 두 골을 뽑아내며 60년 만에 우라칸이 리베르 플라테를 4대0으로 탈탈 터는데 진두지휘를 했다.

2.1. US 팔레르모


그 후 맨유, 첼시 FC, FC 포르투 등의 유수의 클럽들 및 세리에 A의 구단인 US 팔레르모의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2009년 7월, 470만 유로(70억 원)[5]에 팔레르모에 입단하며 유럽에 진출.
주전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09/10시즌 개막전 나폴리 전부터 선발 출전했으며 2010년 1월 AS 바리전에서 데뷔 골을 기록했다. 유벤투스전에서 카바니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맹활약하여 2-0 승리를 이끌자 이탈리아 미디어 매체들에서 파스토레의 재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일간지인 <라 리퍼블리카>는 파스토레의 재능을 카카에 견주어 비교하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다.[6] 이 시즌 19골을 득점하며 득점 순위 3위[7]를 기록한 파브리시오 미콜리와 우루과이산 괴물 에딘손 카바니와 함께 팔레르모의 상승세를 이끌며 팀을 5위에 랭크시켜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35경기를 출전하며 3골 5도움을 기록. 또한 세리에 A 올해의 유망주 상도 수상하였다.
10/11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코파 이탈리아, 리그 병행의 벅찬 일정에도 델리오 로시 감독은 유망주[8]들을 전폭적인 기용했고 파스토레도 더욱 그 기량을 만개했다. 팀내 최다 득점인 14골을 포함해 14골 7도움으로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게다가 카타니아와의 시칠리아 더비에서는 개인 첫 해트트릭을 하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에딘손 카바니의 나폴리 이적, 노장 파브리시오 미콜리의 급격한 폼 하락을 극복하지 못하고, 유로파는 조 3위로 광탈, 코파 이탈리아는 준우승까지 했지만, 리그 순위는 막판 DTD를 시전해 8위로 시즌을 찜찜하게 마쳤다.
만년 중하위권팀에서 이 정도 수준의 활약을 펼친 선수는 당연히 빅클럽의 표적이 되기 마련이고, 파스토레 또한 여러 클럽의 관심을 받으며 본인 역시 이적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월드컵 직 후 부터 여기저기 링크가 뜨고 있었다. 인테르, 맨유,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등등...

2.2. 파리 생제르맹 FC


[image]
마우리시오 잠파리니 팔레르모 회장은 몸값 불리기에 열불이 나고 여러 구단에서 찔러보며 말이 많았지만, 7월 30일, 11/12 시즌 시작과 함께 갑부 구단주[9]가 취임한 파리 생제르맹이 무려 약 '''4500만 유로'''(한화 620억 원)의 클럽 레코드를 경신하는 이적료를 지불하고 영입하면서 파스토레 사가는 일단락됐다. 등번호는 여전히 27번. PSG는 당시 갑부 구단주의 취임과 함께 기존 회장을 해임하고 PSG 신임 회장으로 카타르 스포츠계의 유명 인사인 나세르 알 켈라이피[10]를 임명하고 켈라이피의 인맥을 통해 인터 밀란 감독이었던 레오나르두 아라우주를 스포팅 디렉터[11]로 영입하여 레오나르두의 인맥을 바탕으로 세리에 A의 에이스급 선수들을 탈탈 털어갔다.[12], 그동안 나름대로 헐값이거나 아니면 적당히 합당한 가격에 영입을 시도하는 편이었으나 파스토레 이적료로 인하여 이후 PSG는 한국의 해축팬들에겐 흔한 돈지랄(..) 구단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한 편, PSG 측이 클럽 이적료 레코드를 갱신하는 수준[13]의 오버페이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는데, 서드파티 조항으로 인해 파스토레가 타 클럽으로 이적할 시, 팔레르모가 수령할 이적료의 절반 가량을 파스토레의 전 소속 구단인 우라칸과 파스토레 개인 에이전트인 시모니안이 차지하는 계약 구조였으며, 이로인해 잠파리니 회장은 적정 값에 팔아서는 전혀 이득을 볼 수 없는 상황인지라 최대한 이익을 보기 위해 가능한한 최대한 높게 불렀던 것이다.[14] 후에는 잠파리니 회장이 파스토레의 에이전트를 고소했다. 그로 인해 11/12 시즌 도중 파스토레는 재판 때문에 팔레르모를 다녀와야했다.[15]
PSG는 프랑스 점령을 목표로 쏠쏠하게 선수를 끌어모으고 화룡점정으로 화끈하게 잘 나가는 공격형 미드필더 하비에르 파스토레를 질렀으나, 당시 감독이었던 앙투안 콩부아레 감독은 마냥 기뻐하진 못했다. 콩부아레 감독이 애용하던 본 전술은 플랫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하며 사이드 라인에 화력을 집중시킨 채로 선수비 후역습을 노리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콩부아레 감독은 아직 갑부 구단주가 취임하기 전인 10/11 시즌에 그간의 재정 적자를 없애고 마침내 팀 운영을 개혁하는데 성공한 파리 생제르망의 재정 개선에 힘입어 적당한 노장들과 싼 값의 하위 클럽 에이스, 유스에서 재능을 선보인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며 그간 암흑기에 빠져 강등권에서 헤매던 PSG를 순식간에 상위권으로 끌어올려놨다.
그러나 11/12 시즌이 시작하며 갑부 구단주가 취임하고 회장이 바뀌고, 스포팅 디렉터가 바뀌면서 PSG의 노선은 더 이상 '리그 상위권을 목표로 하는 구단'이 아닌 '''유럽 최상위권을 목표로 하는 구단'''으로 노선이 바뀌었고 본격적으로 스타급 선수들을 지르기 시작하면서 콩부아레 감독으로서는 대단히 혼란스럽고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일단 본인의 커리어 동안 그 정도 위치의 선수들을 운용해본 적도 없고 무엇보다도 당장 클럽 레코드를 갱신하며 PSG 팬들의 기대를 한가득 받고 온 파스토레를 어떤 식으로든 활용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파스토레를 트레콰르티스타로 운용하기에 적합하면서도 네네와 같은 기존 에이스 윙어를 공존시키기 위해 자신이 써본 적도 없는 4231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한 중앙 지향적 전술을 써야만 했다.
여튼 콩부아레 감독의 전술적 역량 문제에도 불구하고 11/12 시즌 리그앙 초반부인 3라운드에서 발랑시엔 FC을 상대로 나름대로 괜찮은 데뷔전을 치렀고, 그 후로도 계속 트레콰르티스타로 기용되어 활약하면서 9월 스타드 브레스트전에서는 시즌 첫 골이자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전반기 중간 즈음부터 리그앙 특유의 강력한 피지컬과 압박에 고전했으나 전반기에만 리그 6골을 기록하며 리그 1위 수성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한 편, 결국 콩부아레 감독이 경질되고[16] 새로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부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SG는 유스에서 유네스 벨한다, 레미 카벨라 등의 뛰어난 재능들이 올라오고 올리비에 지루의 각성, 앙리 베디모, 마르코 에스트라다 등의 주전 멤버들의 활약에 힘입은 몽펠리에에게 끝내 1위 자리를 내줘야 했고 본래 PSG의 주전 스트라이커들인 메블뤼트 에르딩, 기욤 오아로의 두 선수는 10/11 시즌에 부진했으면서 11/12 시즌에도 또 부진하여 결국 안첼로티 감독은 득점력 향상을 위해 파스토레에게 제레미 메네즈와 로테이션을 돌리며 공격수 자리에 배치해 제로톱 전술의 축 역할을 맡겼다. 활약은 그런대로 괜찮았고 시즌 막판 리그 3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그 11경기 연속 무패에도 워낙 몽펠리에가 선전하여 끝내 1위 자리는 탈환하지 못했고, 첫 리그 우승 타이틀은 다음 기회로 미뤄지게 된다. 그러나 스트라이커들의 부진과 시즌 막판 부진한 경기력에도 시즌 16골 8도움을 기록하며 본인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12/13시즌을 앞두고 세계적인 스트라이커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영입되어 프리시즌동안 자신의 본래 포지션인 트레콰르티스타로 돌아갔으나, 브라질 특급 유망주인 루카스 모라의 합류, 4231이나 4312를 기반으로 하는 전술들이 리그앙에서 영 신통치 않다고 생각한 안첼로티 감독의 433 운용 시작 등으로 인하여 파스토레는 더 이상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윙어로 뛰게 되었다. 리그 특유의 강한 압박과 같은 피지컬적인 부분은 한층 더 적응했으나, 본래 스피디하게 돌파하며 전개하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윙어로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수준. 그로인해 안첼로티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로 파스토레를 종종 기용해보기도 했으나 대체로 실패로 돌아갔다.
더욱이 리그 전반기에는 스텟이 고작 리그 1골에 그쳐있던 상황. 그에 반해 정작 팀은 즐라탄의 리그 씹어먹는 대활약과 함께 리그 1위에 오른데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조별 예선을 가볍게 씹어버리고 16강에 진출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로 인해 1월 겨울 이적 시장에서 즐라탄, 치아구 시우바가 떠난 이후 줄곧 막장스러운 경기력을 보이던 AC 밀란 이적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에 접어들자 갑자기 팀의 에이스급 활약을 하기 시작했는데, 16강 1차전 발렌시아 원정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8강 2차전 바르셀로나 전에서도 선제 골을 기록하며 대활약했지만 8강에서 원정 다득점에 밀려 탈락했다. 리그에서는 연승 가도를 달리며 1위를 굳게 지켰고, 파스토레도 시즌 막바지에 윙 자리에서도 경기력이 점차 살아나며 첫 리그 우승 타이틀을 얻게 된다.
13/14 시즌 시작과 함께 여름 이적 시장이 불타오르며 토트넘, 아스날, 첼시, 리버풀 등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토트넘은 떠나는 에이스 가레스 베일의 대체자로 낙점하여 문의를 하고, 리버풀은 본래 타겟이었던 헨리크 미키타리안,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영입에 실패하고 부족한 2선 자원에 월드클래스급 미드필더를 세우겠다는 계획에 파스토레를 최우선 영입 대상으로 낙점했다. 그러나 8월 막바지까지 결국 이적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끝내 파리 생제르망에 잔류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위와 같은 팀들의 러브콜은 끊이지 않고 1월 겨울 이적 시장의 주인공 중 하나로 주목되었으나, 정작 자신은 리그 6경기 동안 공격 포인트가 없을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오히려 파리 생제르망AS 모나코가 주춤할때 1위를 수성하자 스텟을 못 쌓음에도 만족스럽다는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부진은 계속 되고, 즐라탄에게 원톱 자리에서 밀리며 윙포워드 자리로 출장하는 에딘손 카바니, 점차 기량이 향상되는 것이 보이는 루카스 모라, 기존 윙어인 에세키엘 라베시와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점차 밀리기 시작했으며 하필 종아리 부상으로 리그에서 4경기 가량 결장하며 더더욱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럼에도 본인은 "모든 선수에게는 각자의 자리가 있다." 라고 하며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정신적 고통 또한 있는 듯, 시즌 중 로랑 블랑 감독에게 특별 휴가를 받았다. 결국 아무런 공격 포인트를 얻지 못하고 13/14 시즌의 전반기를 보냈지만 그의 진가를 높이 산 AS 로마 등의 클럽들이 파스토레 영입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13/14 시즌 후반기, 2014년 1월 4일에 치뤄진 리그컵 4강전 보르도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득점을 뽑아냈고, 약 한 달 뒤 리그 2위 AS 모나코 와의 일전에서도 전반 초반 헤딩 선제골을 뽑아내어 무승부에 일조했다.
특히,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출장하지 못하거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장했을경우 더욱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 애초에 파리 생제르망의 433 포메이션에 즐라탄의 존재로 인하여 현재 PSG에서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가 활약하기에는 대단히 애매한 상황.
그렇게 그냥저냥 시즌을 보내는듯 싶었지만,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 첼시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후 후반 추가 시간에 '''환상적인 팬텀 드리블로 3명을 제치고 추가골에 성공했다!!'''

그냥 2-1로 경기를 마쳤을때 스탬포드 브릿지에서의 2차전이 부담스러울수 있었는데, 결국 파리는 2골의 리드를 갖고 런던 원정을 갈 수 있었다.
한편 리그에서는 1위 질주를 달리며 리그 2연패에 성공했고, 리그 우승을 확정짓자마자 스탯 관리에 들어간 파스토레는 37차전에서 1도움, 시즌 최종전에서 2도움으로 리그 1골 3도움으로 시즌을 마무리 했다.
14/15시즌 시작 직전, 이적시장의 화두로 떠오른 앙헬 디 마리아의 PSG 이적설에 힘입어 파스토레는 지에구가 떠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벤투스와의 이적설이 나돌았으나 티아구 모타와 함께 이적설을 일축했고 파리에서의 네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그리고 개막전에서 2어시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조공을 바쳤다. 그러나 리그 8경기째 공격 포인트가 없는 상황. 그러나 저번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PSG 팬들에게 '''계륵'''이라는 평가를 받던 파스토레는 이번 시즌 PSG에서 거의 에이스 대우를 받고 있다. 일단 당장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부상이고 그 원톱 자리를 대체하는 에딘손 카바니가 예상 외의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 손발 안 맞는 공격진에서 현재 모라와 함께 양 사이드에서 상대 수비 라인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대체가 거의 불가능한 선수가 된 것이다.
비록 본인의 본래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의 트레콰르티스타 롤로 뛰진 못하고 있으나 이제 윙어의 위치와 그 플레이 패턴에 익숙해진 모습이 눈에 띄며, 주 공격 포인트는 포지션 전환으로 인하여 많이 쌓지는 못하고 있으나 이전 시즌들에 비해서 팀 플레이에 대한 기여도가 대단히 높아진 상황이다. 게다가 본인 역시 저번 시즌에 비해 머리도 다시 짧게 자르고 자신감도 많이 상승했는지 플레이 자체도 대단히 시원하면서 판단력과 선택지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당장 양 사이드 윙어의 자리에서 저번 시즌까지만 해도 주전이었던 라베시가 파스토레, 모라에게 밀려버렸다는것 부터가 파스토레의 현재 팀 기여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
당장 저번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좋은 가격이면 파는게 낫다던 PSG 서포터들은 이번 시즌의 파스토레의 플레이를 보고서는 '''NFS'''[17]를 외치고 있다.
15/16시즌에는 지속된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다.
16/17시즌 시작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떠나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뒤를 이어 10번을 달게 되었다.
이제 완전한 유리몸이 되어버린건지 16-17 시즌에도 계속해서 부상을 당하면서 원래 파스토레를 중앙 플레이 메이커로 기용하려던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전술이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부상에서 복귀하고 선발 출장한 리옹전에서는 군계일학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드락슬러가 영입된 현 상황에서는 이탈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PSG의 팬들 역시 실력이야 베라티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보지만 근 2년동안 부상으로 경기를 나오지 못하니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파리는 드락슬러를 영입하기도 하였고 새로운 공격 자원들의 영입도 추가적으로 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이쯤되면 떠나지 않겠냐는 의견이 다반수였다.
그러나 현재는 본인이 충성심을 나타내면서 잔류 쪽으로 기운 상황. 허나, 네이마르가 영입되면서 파스토레의 이탈은 FFP 때문에 불가피해 보인다. 마튀이디 & 디 마리아[18] 등과 함께 정리대상에 놓인 현황. 부상 경력을 감안하더라도 적당한 가격에 파스토레를 구매한다면 현역 최고의 테크니컬한 공미를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의외로 많은 팀들이 노릴 수 있을것으로 여겨졌고, 바로 나잉골란의 이탈이 유력한 AS 로마와 링크되었다. 파스토레 본인도 연봉을 삭감하면서까지[19] 이탈리아 리그 복귀를 바라고 있었기 때매 더욱 더 이적이 유력해졌다.

2.3. AS 로마


그렇게, 현지시각으로 6월 25일 로마 참피노 공항에 도착하면서 AS 로마로 이적이 확실시 되었고, 6월 26일 24.7m의 이적료로 이적이 공식발표되었다.
개막전에서는 기대에 비해 부진했다. 2라운드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 왼쪽 윙어로 출전하여 1분 10초경 윈데르의 크로스를 백힐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넣었다. 전반전 팀의 경기력이 처참하였지만 후반전에 다니엘레 데 로시, 스티븐 은존지와 함께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세리에 A 6라운드 홈경기에서 또 한번 백힐로 골을 기록했다. 로마 이적 후 기록한 두 골을 모두 백힐로 넣었다.
로마 이적 후에도 잔부상에 시달리더니 부상기간 중 치고 올라온 로렌초 펠레그리니, 자니올로에게 주전경쟁에서 뒤쳐졌다. 이후 코파 이탈리아 16강전에 선발 출장하여 1골을 기록하였다.
로마에서의 첫 시즌은 분명 출전할 때마다 1인분 몫은 했지만 명성에 걸맞게 유리몸이 문제였다. 로마에게는 큰 돈인 24m을 투자했고 고연봉자였지만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다.
이 때문에 2020년 초 중국행을 고려하기도 하였으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3. 국가대표 경력


걸출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의 차고 넘치는 2선자원 사정상 많은 기회를 잡지는 못하고 있고 활약도 미미하다.
2009년 12월, 카탈루냐와의 비공식 경기에서 첫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경기를 치렀으며, 클럽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에 발탁되어 월드컵에 나갔지만 막시 로드리게스와 헤트트릭을 밥 먹듯이 하는 우주 굇수에 밀려 꼴랑 42분 출전에 그치며 팀의 8강 탈락을 지켜봐야 했다.
그후 2011년에 다시 자국에서 개최한 코파 아메리카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발탁되어 츨전하였다. 그러나 팀은 또 8강에서 우루과이한테 승부차기 패...
연속 두 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사고를 저질렀던 아르헨티나세르히오 바티스타 감독을 내치고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을 선임, 이후 파스토레는 줄곧 엔트리제외를 면치 못하게 된다.
그러나, 브라질 월드컵 이후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이 물러나고 전 바르샤 감독 헤라르도 마르티노 감독이 선임되며 10월 11일 열린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를 기점으로 다시 대표팀에 승선했다.
그리고 10월 11일 베이징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 후반 65분 세르히오 아게로와 교체되어 중앙 미드필더에서 침투 패스와 드리블을 오랜만에 보여주는 등 자신감있는 플레이를 펼쳤다.
참고로, 국대에서는 디마리아와 함께 팀플레이를 끊어먹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래도 디마리아는 기복왕이라서 잘할 때는 끝내주게 잘하지만 파스토레는 '''그냥 못한다.'''

4. 플레이 스타일


이탈리아의 축구 용어인 '트레콰르티스타'에 부합한 선수. 큰 키에 비해 피지컬이 빈약해 거친 압박에 약하며, 스피드가 뛰어나진 않지만 화려한 드리블링과 킬패스로 팀의 공격 템포를 끌어올릴 수 있어 역습 상황시 지휘자 역할을 한다. 본래 우아한 플레이를 하길 좋아했으나, PSG 입단 후에는 리그에 적응하며 피지컬, 활동량 등이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준수한 골 결정력으로 시즌 10골 이상 득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스트라이커로 기용된 적도 몇 번 있다.
14/15 시즌의 PSG에서의 파스토레는 몸싸움, 활동량 등의 다방면에서 기량이 크게 늘며 본인이 커리어를 시작하고 이름있는 유망주로 명성을 떨친 위치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가 아닌 윙어로서도 기량이 만개하였다. 스피드가 그리 빠른 것은 아니나 뛰어난 개인 기량과 준수한 멘탈, 경기 내적인 센스와 시야, 나쁘지 않은 피지컬 등을 바탕으로 현재 PSG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
최근 1~2년동안은 부상 빈도가 굉장히 잦아졌는데, 이에 대해 '르 파리지앵'에서는 파스토레가 큰 키에 비해 근육량이 적은게 문제지 않냐고 언급을 하였다. 실제로 '유리몸', 혹은 '전설의 포켓몬' 등 부정적 의미의 별명을 가질 정도로 부상 빈도가 잦았던 디아비도 이러한 케이스이다. 이 기사에서 해당 주치의는 어떤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보다 회복도가 빠른데, 파스토레는 오히려 일반 선수들보다 회복도가 낮은 선수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에메리가 온 이후에는 윙어, 중미, 공미, 펄스 나인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발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5. 여담


  • 인기 축구 게임인 풋볼 매니저에서는 가히 사기캐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FM2010부터 나이도 어린데 괴물 능력치를 가지고 있어서 유저들에게 추앙받았던 선수중 하나다. 천재성 20에 패스, 창조성, 개인기 등에 포텐도 높아서 각광을 받았으나,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한 FM2012부터는 성능 여전히 사기인데 이적료도 사기가 돼서(...) 불만이나 자유계약이 뜨지 않는 한 데려오기 힘들어졌다.
  • 피파 온라인 3에서는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평범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데, 13/14시즌은 팀에서의 부진이 적극 반영되어 오버롤 70의 줘도 안쓸 능력치를 가졌지만 오히려 포텐을 터트린 팔레르모 시절의 10/11시즌은 꼴랑 72로 겨우 스탯 2밖에 차이가 나지 않게 나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파리에서의 첫 시즌을 반영한 11/12시즌은 오버롤 74의 플레이 메이커 히든을 단 채 출시되어 파리 생제르망 팀 컬러를 맞추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될지도 모른다. ... 도 11시즌 물량이 풀린 지 한참 되어서 가격이 적당하다. 1카에 백만원 넘게 줄 필요가 없다. 물론 아직도 시세 등락폭이 커서 한두 달 전엔 10만원대였던 1카가 70만원이 되어있기도 하지만...그리고 이젠 이것도 옛날 얘기. 14/15의 활약상을 반영했는지 14T 시즌은 CAM 자리에서 79, 윙어 자리에서 81이라는 빵빵한 오버롤(물론 오버롤이 선수 성능과 꼭 비례하지는 않지만 )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16시즌 파스토레는 69로 11시즌보다 못하다. 11시즌 능력치는 75 [20] 오리지널 팀을 맞출 때에도 필수가 되었다.
  • 넥슨이 아직 10카가 만들어지지 않은 시즌(06wc, 08e, 10u, 10wc, 11, 14t)에 대해 최초 10카를 만드는 유저에게 50만 캐시를 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파스토레가 11시즌 최초 10카 성공이라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06wc은 김진규, 08e는 크리스티안 몰리나로, 10u는 디디에 드록바.
  • 4000만 유로(40M)[21]라는 거대한 이적료를 기록하며 신흥 빅클럽으로 간 스타성있는 트레콰르티스타답지 않게 국내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 전 국가 대표이자 막걸리 해설로 유명한 이상윤 해설위원이 중계 도중 잘 뛰고 있는 파스토레를 "파스퇴르"로 둔갑시켜버리기도 했다.
  • 에릭 칸토나가 2014/15 시즌의 파스토레의 활약을 두고 유럽에서 가장 창조적인 능력을 보유한 선수라고 극찬하기도 하였다.

6. 같이 보기



[1] 윙어, 중앙 미드필더[2] 말라깽이라는 뜻이다. 유망주 시절에는 실제로 키에 비해서 좀 지나치게 마르긴 했다.[3] 아르헨티나 1부 리그는 유럽 리그와는 다르게 8월 부터 12월까지 진행되는 전기 리그 '아페르투라(Apertura)'와 2월 부터 6월까지 진행되는 후기 리그 '클라우수라(Clausura)'가 있으며 이 때문에 한 시즌에 챔피언이 두 팀이 생기기도 한다. [4] 승강제도 특이하게 3년 간의 평균 승률로 최하위 두 팀이 2부리그 상위 두 팀과 바로 교체되며 17위, 18위에 위치한 두 팀은 2부 리그의 3위, 4위 팀과 프로모시온(promocion)이라는 별도의 플레이오프를 거쳐 결정된다. 이로 인해 보카 후니오르스와 함께 아르헨티나 최대 명문 클럽으로 군림했던 리베르 플라테조차도 강등을 면치 못했다.[5] 후에 이 금액의 10배가량 되는 금액에 팔린다.[6] 이 때부터 소위 아르헨티나의 카카라는 별칭이 생김.[7] 득점왕은 우디네세의 가장 안토니오 디 나탈레[8] 파스토레 말고도 에세키엘 무뇨스, 요시프 일리치치, 아르민 바시노비치 등[9]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당시 카타르 왕세자. 현재는 카타르의 국왕이다. 왕세자였을 당시에도 약 100조에 달하는 재산을 굴릴 수 있었다고 알려져있었고 국왕이 된 현재는 1000조에 달하는 국가 재산을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는 축구 사상 제일 돈 많은 구단주가 되었다. '''갑부 구단주의 대명사 만수르조차 이분 밑에선 한수 접어줘야 한다.'''[10] 현재 사람들이 흔히 PSG 구단주로 착각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구단 소유주가 아니라 그냥 회장.[11] 우리 말로 말하면 선수 영입 관련 단장[12] 로마의 제레미 메네즈, 팔레르모의 살바토레 시리구, 유벤투스의 모하메드 시소코. 파스토레 이후에는 AC 밀란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치아구 시우바, 인테르티아구 모타 등등[13] 과거 PSG 역대 최고 이적료 지출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적응 못하고 빌빌대던 니콜라 아넬카를 한화 500억원 가량에 영입한 건이었다.[14] 결국 에이전트 측에 1250만 유로가 돌아가고, 팔레르모는 2250만 유로만 수령하였다.[15] 파스토레 본인에게는 법적 문제가 없고 그냥 증인 역할로 나간 것[16] 성적이 괜찮았음에도 새로운 PSG 운영진들은 콩부아레 감독의 상대적으로 낮은 네임밸류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리그 15라운드였던 마르세유 전에서 3-0으로 대패를 당하자 그 일이 기점이 되어 경질하게 된다.[17] Not for sale. 비매품.[18] 루카스는 네이마르의 합류 때문에 남을 확률이 높다.[19] 연봉을 절반으로 깎아도 로마에서는 고연봉자에 속한다.[20] New Impact 패치로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의 오버롤 산출 시에 적용되는 능력치의 종류가 변경되었다. 예를 들면 LW, RW 오버롤을 계산할 시 패치 전엔 스태미너 수치도 포함해서 평균을 냈지만 패치 이후엔 스태미너 값을 제외하고 스탯을 낸다.[21] 이 정도면 메주트 외질의 이적료의 2배에 해당되는 큰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