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89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2. 1차 지명
3. 2차 지명
4. 드래프트 평가
5. 이모저모


1. 개요


1989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198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1차 지명은 1988년 11월 6일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3명을 뽑았다. 한국 야구 역사상 1차 지명자가 3명이었던 마지막 해이다. 연고지가 겹치는 LG와 OB는 11월 4일에 1차 지명을 확정지었다.
※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

1차 지명자
OB 베어스
이진 (배명고-성균관대, 투수)
김동현(배재고-동국대, 투수)
김보선(충암고-한양대, 투수)
MBC 청룡
'''김기범'''(충암고-건국대-한국화장품, 투수)
최훈재(중앙고-단국대, 외야수)
나웅(선린상고-한양대 내야수)
롯데 자이언츠
김청수(마산상고-동아대, 투수)
서호진(동래고-경성대, 투수)
김선일(경남고-동아대, 포수)
빙그레 이글스
진정필(북일고-고려대, 투수)
황대연(대전고-고려대, 내야수)
'''강석천'''(대전고-인하대, 내야수)
삼성 라이온즈
하용석(경북고-한양대, 포수)
강영수(대구상고-한양대-한국화장품, 내야수)
최해명(포철공고-연세대-세일통상-무소속, 내야수)
태평양 돌핀스
허정욱(제물포고-고려대, 투수)
김형주(제물포고-단국대, 투수)※
윤형석(동산고-인하대, 투수)※
해태 타이거즈
이광우(군산상고-원광대, 투수)
'''이강철'''(광주일고-동국대, 투수)
장호익(군산상고-연세대-농협, 포수)

3. 2차 지명


이 해에도 꼴찌와 꼴찌 바로 앞의 팀에게 2차 우선 지명권을 2장 줬다. 이 제도는 다음 해 꼴찌에게만 해당되다가 그 다음 해에 폐지된다.
※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
라운드
태평양
MBC
OB
삼성
롯데
빙그레
해태
1
박준태
(광주일고-동국대,
외야수)
한명수
(보성고-동국대,
투수)
구동우
(북일고-동아대,
투수)
박용준
(광주일고,
투수)
김인호
(진흥고-성균관대,
내야수)
김락기
(동래고-동아대,
투수)
윤재호
(동대문상고-동국대,
내야수)
정명진
(마산상고-경성대-상무,
투수)
김덕근
(경북고-연세대-농협,
투수)
2
'''정명원'''
(군산상고-원광대,
투수)
박성훈
(부산고-경성대,
내야수)
'''이명수'''
(휘문고-고려대,
내야수)
이종옥
(경주고-건국대,
내야수)
'''이종운'''
(경남고-동아대,
외야수)
이종호
(북일고-동아대,
내야수)
김태완
(북일고-동아대,
내야수)
3
이상대
(포철공고-성균관대,
외야수)
이승범
(동대문상고-농협,
내야수)
김진규
(북일고-농협,
투수)
김대열
(동대문상고-동국대,
포수)

윤동배
(경남고-동아대,
투수)
박선일
(선린상고-경희대,
포수)
문승훈
(영흥고-계명대,
내야수)
4
김영범
(대광고-농협,
내야수)

최준호
(마산고-연세대,
투수)
곽연수
(보성고-동국대,
외야수)
나광남[1]
(진흥고-단국대,
외야수)
김상우
(동래고-경성대,
외야수)
성군철
(인천전문대,
내야수)
패스
5
김진한
(보성고-인하대 중퇴-농협,
포수)
패스
하득인
(충암고-원광대,
내야수)

김선진
(광주일고-연세대,
내야수)
패스
손경호
(대구고-계명대,
내야수)
패스
6
김진휘
(부산고-중앙대,
외야수)

패스
안종호
(신일고-성균관대,
투수)

패스
패스
김성재
(대구상고-영남대,
내야수)

패스

4. 드래프트 평가


  • 태평양 돌핀스 : 최악의 1차 지명, 인천소방서장을 뽑은 2차 지명. 인천야구 역사상 최약체 시기답게 뽑힌 1차 지명자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제물포고 출신 1호 프로 선수인 허정욱을 제외한 1차 지명자는 모두 지명 포기 당했다. 허정욱은 그나마 한 두 해 태평양에서 잘 써먹었다가 은퇴해서 훗날 SK 와이번스에서 스카우터가 됐다. 정작 이 해의 가장 중요한 드래프티는 2차 1라운드 우선 지명자들이 아닌, 2라운드에서야 뽑힌 정명원이었다. 정명원의 활약이야 인천 야구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인천의 수호신급이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 박준태는 태평양에서는 야구 천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며, LG로 트레이드된 이후에야 만개하게 되는데, 그나마도 체력문제로 봄에만 반짝하는 유형의 선수가 된다.
  • MBC 청룡 : 다이스가 안 따라줘도 상대가 던지면 이긴다. 동전 던지기에서 패배한 몇 안 되는 해. 그러나 OB가 말도 안 되는 드래프트 전략으로 김기범을 버리고 이진을 선택하자 바로 김기범을 선택한다. 뭐 OB의 예상대로 리그 최고의 에이스는 되지 못 했지만, 아무래도 이진보다야... 게다가 최고의 백업, 대타였던 최훈재까지 픽하면서 MBC 청룡-LG 트윈스의 전성기를 이끈 드래프트로 평가받는다. 다만 2차 지명 선수들이 아무도 큰 활약을 보이지 못 한 것이 아쉬운 드래프트였다.
  • OB 베어스 : 하지만 2차 지명은 다르다!. 동전던지기를 이겼다! 그런데 이 해 투수 최대어였던 김기범을 거르고 미래 가능성을 본다는 이유로 좌완 이진을 픽한다.[2] 결과는 희대의 망픽. 첫 해에는 스윙맨으로 그럭저럭 활약했으나 이후에는 폭망했다. 게다가 김기범이라는 희대의 오나쌩을 라이벌 구단에게 안겨줬으니 매우 큰 마이너스 효과였다. 그나마 사이드암 투수였던 김동현이 선발에서 2, 3년 활약한 정도인게 최고의 실적이었다. 하지만 2차 지명은 그래도 MBC보다 더 나았는데, 구동우는 OB 투수진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이명수는 안경현 이전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2루수로 꼽힌다. 곽연수도 백업으로 괜찮았던 편.
  • 삼성 라이온즈 : 1988올림픽만 끝나길 기다렸지만. 1988 서울 올림픽으로 아마추어로 남아 있도록 요구받았던 강영수와 최해명을 입단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강영수는 낮은 타율로 인해 저평가를 받다가 OB로 이적한 뒤, 극강의 공갈포로 이름을 날렸고, 최해명도 기대만큼은 성장하지 못한 채 대타 요원으로 커리어를 마쳤다. 2차 1라운더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삼성의 연습생으로 있던 좌완 박용준이었는데, 해태의 양해를 받아 지명하였다. 박용준 또한 김성근 감독 때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혹사당하다가 1993년 이후 부상으로 하락세를 겪다가 1995년에 은퇴했다. 그래도 고졸신인 연고지명에서 1990년대 중반의 암흑기에서 맹활약한 김상엽을 뽑은 것이 유일한 낙이라 할 수 있겠다.
  • 롯데 자이언츠 : V2의 기반을 마련하다. 1차 지명에서 롯데는 원하는 선수를 깔끔하게 뽑았다는 평이었다. 김청수와 서호진은 좋은 투수였는데, 특히 김청수는 이후 4년간 윤학길에 이은 2선발급의 활약을 보인다.(그러나 1991년 말 병역비리 사건 때 어머니와 누나가 입건된 일로 인해 기량이 하락하면서 그저 그런 선수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김선일도 준주전급 포수로 수비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김인호는 롯데에서는 터지지 않았지만, 태평양 → 현대에서는 내외야를 넘나들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 1996년 플레이오프 자진 헤드샷(...)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 해 가장 빛나는 별은 2차 2라운더 이종운이었다. 남두오성으로 이름을 날리며 롯데 V2의 선봉장이 되었다. 그 외에도 3라운더 윤동배도 투수진에서 궂은 역할을 하며 활약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상동 야구장의 소장이다.
  • 빙그레 이글스 : 다이너마이트 타선에 불을 붙이다. 1차 지명자인 강석천, 황대연의 가세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은 더 강하게 타들어갔고, 진정필도 한화 투수진에서 가장 빛나는 별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빙그레의 첫 전성기를 이끌었다. 2차 지명도 괜찮았던 편이라, 한 해 반짝이긴 했지만 신인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김락기, 한국시리즈에서 김영덕 감독의 작전을 무시하면서 탈락의 원흉으로 지목당한 이종호도 나름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포수 박선일은 팀을 옮기고야 빛을 발한 선수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다. 6픽 김성재는 계약금을 이유로 입단하지 않았고, 이듬해 1990년 LG 트윈스의 2차 4순위 지명을 다시 받아 입단했지만 시즌 중 성적 부진으로 방출당했다. 이후 1993년부터 2015년까지 모교인 영남대 야구부 타격코치를 맡아 아마야구계에서 좀더 이름을 알렸고, 2015년 말 경운중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
  • 해태 타이거즈 : 되는 집은 뭘 해도 된다. 이 해 호남출신의 훌륭한 선수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스카우트 팀에서도 행복한 비명을 지른 해였다.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3인방인 이광우와 이강철, 그리고 1988년 지명한 조계현까지 한꺼번에 입단하게 되어 계약금 문제로 배부른 걱정을 할 정도였다. 다만 이강철은 한희민을 잇는 언더핸드 계보이자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사이드암 투수 중 하나라는 평을 듣게 되지만, 이광우는 이강철보다 더 높았던 기대치와는 달리 해태에서는 3년간 부진한 모습만 보였고, 박노준을 상대로 OB에 트레이드된 후 제법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게 된다. 장호익은 포수 경쟁에서 밀려 1군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 드래프트에서 뽑힌 호남권 선수만 해도 박준태, 김선진, 정명원, 김인호 등이 있는데, 이 선수들의 활약상에 비하면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 드래프트라 할 수 있다. 다만 2차 1지명이었던 윤재호는 유격수로 좋은 활약을 보인다. 3지명으로 들어온 문승훈은 나중에 심판이 된다.

5. 이모저모


  • 해태 타이거즈의 3라운더 문승훈과 삼성 라이온즈의 4라운더 나광남은 훗날 심판으로 매우 큰 명성(...)을 얻게 된다.
  • 태평양 돌핀스의 4라운더 김영범은 김상수의 아버지로, 태평양에는 입단하지 않았고 그대로 농협에 남았다.
  • 삼성 라이온즈의 5라운더 김선진은 삼성에서 지명을 포기했고, 다음 해 LG에서 지명되어 활약하였으며, 지금도 타격코치로 큰 명성(...)을 얻고 있다.
  • OB 베어스의 5라운더 하득인은 지명을 포기하고 실업팀에 입단했다가 1994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한다.
  • 롯데 자이언츠의 3라운더 윤동배는 윤형배의 형이다.
[1] 현 KBO 심판[2] 김기범은 혹사 당해서 어깨에 부상이 있을 것이고, 이진은 어깨가 쌩쌩하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