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1. 소개
前 OB 베어스, 현대 유니콘스 소속의 내야수이자 前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의 타격코치, 휘문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별다른 일화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같은 팀 출신 선수의 폭로로 동료선수를 팬 일화가 밝혀져 까이고 있다.
2. 선수 경력
OB 베어스의 대표적인 2루수였으며,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1등 공신이 되었다. 1995년에는 .290 9홈런 32타점으로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 때문에 수비범위는 넓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수비를 했으며, 전성기 때는 OPS .800 내외의 준수한 타격을 하는 공격형 2루수였다.
이후에도 꾸준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고액 연봉자들을 정리해야 했던 OB는 노쇠화의 기미가 보인다는 핑계로 1997년 시즌 후 그를 방출했다.[2]
박명환야구TV에서 정수근이 술회한 바에 따르면 1997년 해태와 더블헤더 경기에서 당시 고졸 2년차 외야수 정수근의 중계 송구가 낮다는 이유[3] 로 경기 도중 화장실로 정수근을 불러서 일방적으로 스파이크를 신은채 구타를 했다고 한다. 열받은 정수근은 그 이후 평소와 다른 타격폼으로 경기도 설렁설렁 했다고 한다. 묘하게도 앞의 상황과 같이 송구 중계를 해야했는데 땅볼로 이명수에게 던졌다고 한다. 그리고 1-0으로 이기고 있는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정회열의 타구를 펜스앞에서 잡았으나 외야 펜스로 넘겨버리며 아웃으로 끝나야할 게임을 끝내기 홈런으로 만들어줬다고 한다.
이 때 타선 재정비 작업에 열중했던 현대가 그를 영입했다.[4][5] 1998년에 현대로 이적한 그는 생애 첫 3할+10홈런을 기록하면서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 전준호-이명수의 완벽한 테이블 세터 활약을 했다. 다만 골든글러브의 경우 아쉽게도 롯데 박정태에게 내주었다. 이후 2001년 은퇴할 때까지 주로 1루수나 지명타자, 내야 백업으로 뛰며[6] 현대의 2회 우승을 이끌었다. 2000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는 6차전 실책 등으로 흔들리는 박종호를 대신해 2루수로 선발 출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1 시즌 종료 뒤 은퇴하였다.
덤으로 OB 베어스는 당시 LG 트윈스의 '야생마' 이상훈에게 특히 약한 면모를 보였는데, 당시 팀 내에서 유일하게 이상훈에게 강했던 타자가 이명수였다. 당시 3,4번 타자였던 김형석과 김상호는 이상훈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였으니...
3. 지도자 경력
3.1.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시절
은퇴 후 현대 유니콘스 2군 타격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2007년에 1군 타격코치를 맡아서 팀 타율 1위를 기록하였다.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하고, 이장석이 인수해서 히어로즈로 창단하는 와중에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팀을 떠나 2008년은 무적 상태로 보냈다.[7][8]
2009년 시즌을 앞두고 김시진 감독이 히어로즈로 컴백하자 이광근, 김성갑 등 흩어졌던 현대 시절 코칭스태프들이 복귀할 때 이명수도 함께하면서 히어로즈 코칭스태프로 영입되었다. 보직은 1군 타격코치. 이 때까지만 해도 지도자로써 평가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히어로즈의 1군 타격코치를 맡아서 2009 시즌 팀 홈런-도루수가 150 - 150을 넘어서 '''명수매직'''이란 별명이 붙었다.[9] 하지만 2010시즌 이후 타선이 부진하여 2군 코치로 내려갔다. 그리고 온 게...
2011년 시즌은 2군 타격코치를 맡았다.
3.2. 두산 베어스 시절
2012 시즌을 앞두고 김진욱 신임 감독의 부름을 받고 두산 베어스의 1군 타격코치로 영입되면서 15년 만에 친정 팀으로 컴백하게 되었다.
그러나 강력한 타선을 자랑하던 두산의 팀 타격 지표가 바닥을 치면서 욕을 많이 먹었다.[10] 결국 시즌 후 해임되면서 1시즌 만에 다시 친정팀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2013년부터 송재박과 장원진이 두산 1군 타격코치를 맡은 뒤 타격지표가 예전과 비슷하게 회복되자, 타격코치로써의 이명수에 대한 평가는 더욱 나빠지고 말았다.
3.3. KIA 타이거즈 시절
2013 시즌에 앞서 KIA 타이거즈의 3군 타격코치로 부임하였다. 이후 8월 17일에 김용달과 교대하여 1군 타격코치로 승격되었고 3군으로 내려간 김평호 코치 대신에 주루코치도 겸한다. 하지만 팬들은 큰 기대를 안하는 상황.
팬들의 예상대로 김용달에 비해서 타선은 나아진 바가 전혀 없었지만 선동열이 모든 욕을 대신 져 준 덕에 아오안인 상태. 하지만 시즌 끝난 뒤에도 자리를 보전할 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코치진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걸 보면 1군 타격코치를 놓고 김용달과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2014년에도 계속해서 KIA 타이거즈의 1군 타격코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팬들에게 온갖 욕을 다 얻어먹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그 김기아 타선에서 그나마 꾸준하다고 내세울 만한 눈야구가 사라졌다는 게 컸다. KIA의 팀 타격 성적이 워낙 굴곡이 심하긴 했지만, 적어도 눈야구를 기반으로 볼넷을 얻어내는 능력은 괜찮았었고, 덕분에 출루율이 어느 정도 나와줬었다.[11] 그러나 2014년 시즌의 1/4가 지난 5월 14일 기준으로 KIA의 팀볼넷은 9개구단중 압도적인 꼴찌로 떨어져버렸고, 당연히 팀 출루율도 밑바닥을 깔게 되었다. 자꾸 타자들이 초구, 2구를 건드리고 죽는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상대 선발은 잘 던지든 못 던지든 별 일 없으면 6-7이닝을 먹고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2014년 5월 13일에는 NC 다이노스의 선발 태드 웨버에게 16타석 연속 퍼펙트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2014년 5월 2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KIA 타이거즈의 대타로 출전해 역전적시타를 때린 이종환선수가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코치가 노리고 있으라는 공이 안들어오자 자신이 생각한 공을 때렸다고 인터뷰해 무능함이 더 드러나고있다
무능한 인물인지라 타이거즈 팬들은 시즌 종료 후 선동열 감독, 김용달 2군 총괄코치, 한대화, 백인호, 김정수코치와 같은 무능력자들과 같이 아예 팀에서 잘리길 바라고 있다. 그나마 잘한 게 있다면, 김무관도 고치지 못한 이대형을 개조시켰다는 점.
2014 시즌 후 김기태 감독 부임과 함께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 팀을 떠나게 되었다.
3.4. 휘문고등학교 감독 시절
2016년 중간에 모교인 휘문고등학교의 감독을 맡으며 팀을 봉황대기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정후, 안준, 최준서[12] , 전형근등 프로야구계 후배들의 아들을 팀원으로 두고 있었다. 2018년에 김영직에게 감독직을 넘겨주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1] 강영수에게 물려받았으며 이후 김동주가 물려받았다.[2] 이명수가 팀을 떠난 이후 OB는 외국인 타자 에드가 캐세레스를 주전 2루수로 내세웠고 첫 시즌에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듬해 부진하며 시즌 종료 후 방출된다. 이후에는 안경현이 주전 2루수를 차지, 골든 글러브만 세 차례나 수상하는 등 당시 최고의 2루수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3] 송구 중계 시, 가슴팍으로 정확하게 공을 던지지 않으면 공을 잡아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낮게 송구하면 잡느라 허리 삐긋했다고 화를 냈다고..[4] 이 시절 현대는 김동기, 윤덕규가 은퇴한 상태에서 물방망이로 악명높던 2 ,3루수인 염경엽, 손차훈, 하득인, 김인호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외야는 전준호, 김광림의 영입으로 이미 1997 시즌에 정리된 상황이었고 이제 2,3루수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인데, 때마침 2할 8푼 이상 쳐주던 이명수가 자유계약 공시되자 현대가 영입했다. 하득인은 1997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으며, 염경엽과 김인호는 내외야 대수비 요원으로 살아남았다.[5] 이 당시 현대 구단이 2루수 보강을 위해 이명수를 데려오려고 OB에게 현금을 주는 조건으로 이명수를 방출시켰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김인식 OB 감독도 이러한 팀 운영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적도 있다.[6] 본격적으로 1루수로 전업한 건, 김경기가 하락세를 타던 1999 시즌 이후다. 당시만 해도 이숭용은 1루수보단 외야수로 출장하는 비중이 높았고, 이 무렵 LG에서 트레이드되어 들어온 박종호가 2루를 보다 보니 이렇게 됐다.[7] 야구단 경영에 무지했던 이장석 이하 신규 경영진은 상당수 인력들을 정리해고하고 잔류 인력중 베테랑 선수들과 코칭스탭, 프런트의 연봉을 무지막지하게 후려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이때 자의반 타의반으로 김시진 감독, 이광근, 김성갑, 이명수, 염경엽 등 과거 태평양 시절부터 팀을 지켜왔던 상당수 코치들과 프런트가 팀을 떠나게 되었다.[8] 이미 2006년 말 김재박 감독이 LG로 옮기는 과정에서 상당수 코치들과 스카우터, 프런트를 빼간 상황에서 오직 김시진 감독과의 의리와 유니콘스에 대한 애정으로 잔류했던 인력들마저 떠나자 히어로즈는 신인 지명, 선수육성, 재활, 전력분석 등 과거 왕조 시절의 모든 노하우를 상실하고 빈껍데기로 전락해 버렸다.[9] 특히 이 해 강정호, 황재균, 이택근 등이 타격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10] 김현수는 예전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이 해 두산 타자들 중에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윤석민밖에 없었을 정도로 물타선으로 식어버렸다.[11] 2013년의 초구 좋아하는 김용달 코치 하에서도 KIA의 팀 볼넷은 1위였다.[12] 최태원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