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판브뢰켈런
1. 소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 클럽에서는 PSV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추앙받으며, 트레블 멤버 중 하나이다. 에드빈 판데르사르가 등장하기 전까지 네덜란드 대표팀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꼽히는 인물로, UEFA 유로 1988 우승 당시 주전 골키퍼이기도 하다."'''우리에게 있어 독일을 이기는 것은 유로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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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브뢰켈런은 고향팀인 FC 위트레흐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1977년부터 팀의 주전 골키퍼로 뛰기 시작했고, 판브뢰켈런은 위트레흐트를 에레디비시 3위로 이끈다. 하지만 1982년 위트레흐트는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고, 판브뢰켈런은 노팅엄 포레스트 FC로 이적한다. 피터 쉴튼의 뒤를 이어 노팅엄 포레스트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한 판브뢰켈런은 4개월을 부상으로 빠진 것을 제외하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판브뢰켈런과 노팅엄 포레스트는 국가대표팀 차출 문제를 두고 사사건건 충돌했고, 1983-84 시즌 리그 3위와 UEFA컵 4강 진출을 이끈 후 판브뢰켈런은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한다.
이때부터 판브뢰켈런은 PSV와 함께 에레디비시를 정복하기 시작한다. 1985-86 시즌에 첫번째 리그 우승을 맛 본 판브뢰켈런은 1987-88 시즌까지 에레디비시 3연패에 성공한다. 특히 1987-88 시즌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에레디비시, 네덜란드컵, 유러피언컵을 제패하며 트레블을 달성한다. PSV는 유러피언컵에서 끈끈한 축구로 FC 지롱댕 드 보르도와 레알 마드리드 CF를 원정 다득점으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는데, SL 벤피카와의 결승전에서는 0:0으로 끝났고, 승부차기 끝에 판브뢰켈런이 마지막 슛을 막아내며 6:5로 승리하였다. 이후 판브뢰켈런은 1994년까지 PSV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다. 이후 1994년 기량이 하락한 판브뢰켈런은 후보 골키퍼로 재계약을 제시한 PSV의 제안을 거부하고 은퇴하였다.
2.2. 국가대표
판브뢰켈런은 1980년에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1970년대에 토탈 풋볼로 세계 축구계를 뒤흔든 네덜란드의 위용은 1980년대 초에 조금 시들었고, UEFA 유로 1980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더니, 1982년 스페인 월드컵과 UEFA 유로 1984,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UEFA 유로 1988에서 네덜란드는 부활하기 시작하는데,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다시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기 시작했고, 마르코 판바스턴 - 루드 굴리트 - 프랑크 레이카르트로 구성된 오렌지 삼총사를 앞세워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특히 판브뢰켈런은 5경기 동안 단 3골만 실점했다. 준결승전에서 로타어 마테우스 - 위르겐 클린스만 - 안드레아스 브레메로 구성된 게르만 삼총사를 앞세운 서독을 2:1로 꺾고, 네덜란드는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의 상대는 이고리 벨라노프와 리나트 다사예프가 이끄는 소련이었고, 판브뢰켈런은 벨라노프의 페널티 킥을 선방하여, 클린시트를 달성하였다. 그리고 루드 굴리트와 마르코 판바스턴의 골로 네덜란드는 UEFA 유로 1988 우승을 차지하였고, 판브뢰켈런은 1987-88 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한 것과 UEFA 유로 1988 우승 달성은 물론, 올스타팀에 선정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서독에게 2:1로 패해 탈락한다. UEFA 유로 1992에서는 4강까지 진출했으나, 돌풍을 일으키던 덴마크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이후 판브뢰켈런은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판브뢰켈런은 선방 능력이 우수했으며, 특히 페널티 킥 선방에 뛰어났다.
4. 선수 은퇴 이후
은퇴한 후, 판브뢰켈런은 재계에 전념했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그는 소매업체 브레콤의 부사장을 지냈다.축구 복귀를 꿈꾸며 판브뢰켈런은 점점 더 팀의 제안을 희망했다. FC 트웬테는 1996년 총감독이 되기 위해 그에게 접근했지만 판브뢰켈런은 거절했다. 1997년에 그는 FC Utrecht의 축구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FC 위트레흐트의 경기 스타일과 주요 타깃을 기술한 '챌린저 플랜'이라는 컨셉트에 착수했다. 2000년 1월 종료일 없이 새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위트레흐트 이사회의 자신감 부족을 감지해 그해 말 떠났다.
판브뢰켈런은 기업가로 복귀해 2000년 기업 강의와 연수 등을 전문으로 하는 HvB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이후 반브루클렌도 다른 두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2001년 10월 반브루클렌은 코치 졸업장 '트레이너 코치 1'을 받아 프로클럽의 감독이나 아마추어 클럽의 감독이 될 수 있었다. 2005년부터는 두 분야의 혁신을 연구하는 네덜란드 재단인 스포츠·테크놀로지 이사로 활동했다. 2010년 7월 반브루클렌이 PSV 에인트호번 이사회에 합류했다. 그의 임명은 'Vereniging PSV'가 이사회 멤버십에서 일부 발언권을 가진 것으로 승인했다.2013년 PSV의 축구 연기에 실망한 반브루클렌은 경영 방향과 클럽 문화의 변화를 일으키기를 희망했다. 그는 그의 주장을 돕기 위해 PSV 선수들과 스폰서였던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연락했다.
판브뢰켈런은 2016년 6월에 네덜란드 FA 기술부장으로 선임됐다.
5. 수상
5.1. 클럽
- PSV 에인트호번
-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우승 6회
- KNVB 베이커 우승 3회
- 요한 크루이프 샬 우승 1회
- 유러피언컵 우승 1회
5.2. 국가대표
5.3. 개인
- 네덜란드 올해의 골키퍼 4회 수상
- UEFA 유로 1988 베스트 일레븐
6. 여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