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스 브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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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05년부터 2006년까지 VfB 슈투트가르트 수석코치를 맡았다.'''"브레메와 같은 완벽한 선수에게는 내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
게르만 삼총사의 일원으로, 레프트백으로 활약한 선수이다. 독일 축구사에는 유난히 유능한 풀백들이 많았는데, 브레메는 그 중에서도 상위권의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다. 자국에서는 브라이트너, 슈넬링어, 브리겔과 함께 역대 최고로 꼽히며, 축구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수준급의 레프트백이다. 특히 양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킥이 그를 돋보이게 만들었는데, 한 쪽 발만 잘 다뤄도 축구 선수로서의 능력은 의심을 받지 않는 데에 반해 브레메는 양발을 완벽하게 다루었고, 그 양발로 프리킥, 페널티 킥, 크로스를 '''모두''' 잘 찼다.[3] 이쯤되면 대괴수. 더욱 놀라운 것은 아무리 양발잡인 선수더라도 페널티 킥 만큼은 자신의 주발로 차게 되는데 브레메는 아예 페널티 킥까지 양발로 찼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월드컵에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 승부차기에서는 왼발로 골을 넣었고, 다음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오른발로 페널티 킥 결승골을 뽑아냈다. 추가로 4강전에서는 잉글랜드의 레전드 골키퍼 피터 쉴턴을 상대로 오른쪽 아크에서 왼발 프리킥 골을 성공시켰고, 승부차기에서는 오른발 킥을 보여주었다. 결과는 당연히 성공. 이에 관해 본인의 말에 의하면 오른발은 정확도가 더 높고, 왼발은 파워가 더 세기 때문이란다.[4]
2. 선수 경력
2.1.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HSV 바름베크울렌호르스트라는 아마추어 클럽에서 데뷔했다. 얼마 안가 프로팀에서도 제의가 왔고 1980년 2부리그 소속의 자르브뤼켄으로 이적한다. 프로 무대에서 브레메의 진가는 전국민들에게 알려졌고, 1년만에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한다. 당시 카이저슬라우테른은 중상위권의 팀이었고, 5시즌간 몸을 담았지만 아무런 우승컵도 따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전처럼 브레메의 활약만큼은 아주 빛났다.
2.2. FC 바이에른 뮌헨
1986년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이시기 뮌헨은 로타어 마테우스를 중심으로 국가대표팀 주전이 아닌 B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하는 팀이었다. 뮌헨에서 2시즌을 뛰며 리그 우승을 맛본 브레메는 이탈리아의 명문 인터 밀란으로 이적한다.
2.3.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인테르 시절에는 지역 라이벌인 AC 밀란의 '''오렌지 삼총사'''에 대한 대응으로 로타어 마테우스, 위르겐 클린스만과 함께 '''게르만 삼총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며, 스쿠데토를 차지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한 1991년 UEFA 컵 결승전에서 AS 로마를 꺾으며 첫 유럽대항전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1992년을 끝으로 게르만 삼총사는 뿔뿔이 흩어졌고, 브레메는 스페인의 레알 사라고사에 입단해 1시즌간 활약한다. 레알 사라고라에서 코파 델 레이 결승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하나 아쉽게 레알 마드리드에게 2-0으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친다. 또한 브레메는 사실상 벤치에서 시즌을 전부 보냈다.
2.4.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이후 1993년 친정팀인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팀은 어려웠고 1995-96 시즌 2부리그로 강등당한다.[5] 카이저슬라우테른은 오토 레하겔을 선임하며 절치부심했고, 브레메는 베테랑으로 팀의 중심을 잡았다.
그 시즌 카이저슬라우테른은 승격했고 1997-98시즌, 카이저슬라우테른은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 중 하나인 '''승격 첫 해 우승'''을 달성한다. 비록 브레메는 30대 중반의 노장으로 주전 선수는 아니었지만 2부 리그에서 올라오는 과정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에서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시즌이 끝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2.5.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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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메의 첫 메이저 대회는 유로 1984였다. 그러나 서독은 8강에서 광탈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서독은 전력이 약화했다. 조별예선서도 스코틀랜드를 이기지만 우루과이에게 비기고 덴마크에게 패배하며 1승 1무 1패 조 2위로 겨우 올라간다. 16강에서는 최약체 모로코를 로타어 마테우스의 결승골로 1-0 승리했고 8강에서는 멕시코에게 승부차기로 꾸역 승리, 하지만 4강에서는 미셸 플라티니의 프랑스를 브레메의 프리킥 골에 힘입어 2:0으로 꺾고 결승에 오른다.
결승전의 상대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였다. 호세 루이스 브라운과 호르헤 발다노에게 골을 허용하여, 2-0으로 밀리고 있었으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와 루디 푈러의 동점골로 2:2로 따라잡았는데 이 2골은 모두 브레메의 코너킥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마라도나의 패스를 받은 호르헤 부루차가에게 결승골을 허용하여 결국 준우승에 그쳤다.
UEFA 유로 1988에서는 4강에서 오렌지 삼총사가 이끄는 네덜란드에게 패해 탈락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서독은 4년 전과 달리 강력해졌는데, 투톱에 루디 푈러와 위르겐 클린스만, 수비에는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위르겐 콜러, 브레메 본인 그리고 중원에는 주장 로타어 마테우스가 있었다. 서독은 유고슬라비아, 콜롬비아, 아랍 에미리트와 한 조가 되어 2승 1무로 16강에 오른다. 16강에서는 오렌지 삼총사의 네덜란드를 상대로 브레메는 환상적인 바나나 킥 골로 네덜란드를 2-1로 꺾는데 공헌하며, 지난 대회의 복수를 제대로 했다. 8강에서는 마테우스의 결승골로 체코슬로바키아를 1-0 승리한다. 4강에서는 잉글랜드와 접전을 펼치며 브레메의 프리킥골에도 1-1로 승부가 나지 않았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서독이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전은 다시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였다. 4년 전 월드컵 결승전과 같이 서독의 수비진들과 브레메는 마라도나를 마크했고 이번에는 그를 꽁꽁 묶었다.
후반 40분, 브레메는 당시 8강, 4강을 모두 승부차기로 이기고 올라온 세르히오 고이코체아[6] 골키퍼를 상대로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팀의 1대0승리,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7] 브레메는 활약을 인정받아 발롱도르 3위와 대회 올스타팀까지 석권한다.
유로 1992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결장한 로타어 마테우스를 대신하여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해 맹활약을 했으나 독일은 덴마크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독일은 부진했고 결국 8강에서 불가리아에게 패해 탈락했다. 이후 브레메는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여담이지만 게르만 삼총사 중 유일하게 FIFA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지 못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축구 역사상 가장 킥을 잘 사용했던 사이드백. 거기다 브레메는 양발잡이이다.[8] 물론 본업인 레프트백답게 수준급의 1대1 대인마크 능력, 스피드, 슬라이딩 태클 실력을 보유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브레메하면 패스, 크로스, 슛팅이 누구보다 빛났던 선수. 측면에서 올려주는 정교한 크로스는 실로 대단했다. 또 역습시 직접 드리블로 오버랩하는 대게 사이드백들과 달리 브레메는 본인의 최대장기인 롱패스를 이용해 침투하는 아군선수에게 패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팀이 중요한 순간마다 영웅처럼 나타나 파워풀한 중거리슛, 우아한 감아차기로 득점하기 까지.... 또 클럽과 국대에서 모두 프리킥, 코너킥 심지어는 페널티 킥까지 브레메가 도맡아 찼다.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에에서 마테우스와 브레메의 합류만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선보이며 스쿠데토를 따냈을 정도이니... 거기다 그 해 세리에 올해의 선수상은 마테우스가 아닌 브레메의 몫이었다. 또한 오토 레하겔의 기적적인 분데스리가 우승에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경기 안팎으로도 분명히 그의 존재는 힘이 되었을것이다. 월드컵에서도 그의 중거리포가 안 풀릴때마다 해결해주기도 했다. 이 정도면 베켄바워가 감독일 때 직접 언급하며 극찬했던 선수라는것에 정말로 반박불가이다.
4. 감독 경력
감독으로서는 크게 빛을 못 본 편으로, 카이저슬라우테른과 운타하힝의 감독을 역임했지만 썩 인상깊은 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5. 이야깃거리
FIFA 시리즈와 피파 온라인 2에서 전설의 선수로 등장했다.
또 다른 모바일 축구게임에서도 레전드 등급으로 등장했다.
피파온라인 3에서도 등장하는데 양발이 제대로 구현되었으며 속가도 괴수급인데다 슈팅도 수준급이다. 왼발 풀백 중에서는 최상의 성능을 보여준다. 그러나 피파 온라인 4에서는 왼발 약발4로 양발 구현이 안 되어 있다.LH시즌에서 드디어 양발로 구현이 되어 나왔다.
[1] 레프트백, 라이트백, 레프트윙[2] 측면 미드필더[3] 1980년대 서독 대표팀에서 로타어 마테우스와 더불어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킥을 담당했다. 이것만 되어도 킥력은 보증수표.[4] 오른발이 더 정확하다면 선천적으로는 오른발잡이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물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짓수의 경우를 보자면 반드시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 덧붙여서 오른발잡이라면 오른다리의 근육이 왼쪽다리에 비해서 짧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왼쪽다리의 힘이 더 센 것.[5] 최종전 이기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레버쿠젠과의 단두대매치에서 1-1로 비겨 강등이 확정되자 브레메는 눈물을 흘렸고 독일 국가대표 동료였던 루디 푈러가 위로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6] 참고로 고이코체아는 승부차기에서만 내지 3번 이상을 막아냈고 당시 자국 아르헨티나에서 뛰던 199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였다.[7] 본래 키커는 로타어 마테우스였으나 마테우스가 축구화를 갈아신은 지 10분도 채 안되었기 때문에 움직임이 상당히 어설펐다. 그래서 브레메가 차게 된 것.[8] 본인말로는 오른발은 정교한 킥, 왼발은 파워풀한 슛팅에 능했다고 하나 두 발 모두 역대급이다.
분류
- 1960년 출생
- 독일의 축구선수
- 독일의 축구감독
- 수비수
- 미드필더
- HSV 바름베크울렌호르스트/은퇴, 이적
- 1. FC 자르브뤼켄/은퇴, 이적
- FC 바이에른 뮌헨/은퇴, 이적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
- 레알 사라고사/은퇴, 이적
- 독일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
- 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84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88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92 참가 선수
-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역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