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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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대자동차그룹의 중추회사 중 하나. 현대자동차그룹 차량에 들어가는 핵심부품들을 생산하며, 주 생산품목은 자동차의 모듈로 샤시 모듈, 칵핏 모듈, 프런트 엔드 모듈이라고 사업보고서에 나와 있다. 간단하게 동력 계통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고부가가치 부품을 도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1]
수직계열화가 쩔어주는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완성차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 기아의 부품업체에서 기초 부품을 납품 받아 모듈을 제조하여 독점적으로 납품한다는 '''경제적 위치'''[2] 와, 현대자동차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라는 '''정치적 위치'''가 겹쳐, 2011년 이른바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의 주가폭등으로 인하여 코스피 시가총액 4위로 진입했'''었'''다. 2018년 현재는 중국 시장에서의 실적 악화로 시가총액이 2/3로 줄어든 상태.
2016년 기준으로 자동차 부품사 중 세계 4위의 매출을 올렸다. * (IFRS)2019.12 기준 37조6962억(매출)
카오디오 브랜드로 폰터스가 있으며 수출할때는 그냥 현대모비스로 수출하는 듯 하다.
2. 지배구조
2021년 1월 기준
3. 역사
1977년에 "고려정공"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회사이며, 창립 초기에는 컨테이너와 H빔 등을 주로 만들었다.
단순 컨테이너 제작이 저렴한 경쟁제품이 쏟아져 나오자 냉동컨테이너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잠시 연명하다 1980년 경일요트를 합병해 요트 생산을 했고, 1985년 현대차량을 합병해 철도차량[3] 을 생산하고 1989년 항공기 사업까지 사업영역을 넓혔다. 1994년 항공사업부문을 현대기술개발로 분사했다.[4]
이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해제된 1980년대 후반 부터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기술을 조달하여 당시 현대자동차를 꽉 잡고 있던 정세영 회장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중복투자임에도 불구하고 왕회장은 '''완성차''' 사업 분야를 신규 투자하게 해주어, 1991년에 갤로퍼와 싼타모를 현대정공(지금의 현대자동차 울산 5공장)에서 생산하게 하고, 판매ㆍA/S를 현대자동차써비스에서 대행하기도 했다. 참고로 현대자동차써비스는 당시 별개의 법인으로 존재하였으며 정몽구의 것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후 정몽구는 현대산업개발과 현대자동차를 숙부인 정세영과 맞바꾸게 되었고, 2000년 왕자의 난#s-3.1으로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분리해 나오면서 현대정공의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일단 현대정공 변속기 사업부문을 한국DTS(現 현대트랜시스)로 넘겼으며, 1999년에는 정부 주도의 빅딜을 통해서 철도차량제작 부문을 신규법인 한국철도차량으로 넘겼다. 그 뒤 현대자동차ㆍ기아의 부품 생산 부문을 양도받고, 자동차 생산사업부를 1999년 8월 1일자#로 현대자동차에 넘겼다. 2000년 요트생산부문을 현대라이프요트로 분사시켰다.
교통정리가 완료되고, 법인 명칭을 현재의 '''현대모비스'''로 변경하면서 자동차부품업체로 변모한다. 이때 현대자동차에 합병된 부분이 울산 5공장이다. 이런 역사 때문인지 5공장 노조는 다른 울산 1ㆍ2ㆍ3ㆍ4공장 노조들과 사이가 안좋다. 물론 연봉 올려달랄 땐 위 아 더 월드. [5][6]
이후 중공업 사업부문이 기아중공업(現 현대위아)에 양도되었다.
부품업체로의 변모과정에서 舊 기아그룹의 몇몇 부품회사가 흡수되었다. 舊 기아정기는 한국에이비시스템을 합병한 후 카스코로 이름을 바꿨다가[7] 합병되었고, 舊 기아전자는 본텍으로 이름이 바뀐 뒤 현대오토넷에 현대모비스 전장사업부문과 함께 합쳐지고, 다시 현대모비스에 합병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의선은 과거 자신이 3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본텍을 그룹의 지주회사인 모비스에 합병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한 후, 자신이 보유한 본텍의 주식을 액면가의 10배가량에 지멘스에 매각하여 300억을 챙겼다. 이후 현대차는 지멘스와 컨소시엄을 맺고 오토넷을 인수, 합병하였다.
2018년 3월 말에 현대모비스의 ‘투자 및 핵심부품 사업’ 부문과 ‘모듈 및 AS 부품 사업’ 부문을 분할해 모듈 및 AS 부품 사업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기로 했다. 이후, 글로비스 지분을 기아차에 매각하고 그 대가로 받을 돈을 투입해 모비스 주식을 매입해 지주회사 체제를 완성하겠다는 것. 모비스 수익의 80~90퍼센트를 차지하는 알짜배기 사업부를 겨우 20퍼센트의 자산 기준으로 분할해서 오너 지분이 많은 회사에 넘긴다는 점 때문에 많은 주주들이 반발하고 있고, 주가 또한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물산 합병에 등장했던 엘리엇 해지펀드가 중간에 갑툭튀해서는 1조원 가량의 지분을 확보해놓고 합병 반대를 했고. 세계 최대의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2위인 글래스루이스 모두 반대를 해서 합병 명분이 사라진 현대차는 스스로 분할합병안을 철회하는 굴욕을 당했다.
4. 생산했던 차량
4.1. 베이퍼웨어
5. 사업장
• 울산공장
* 염포동 공장 : 울산광역시 북구 염포로 706
* 매암동 공장 :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고래로 8
• 아산공장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토정로 40
• 광주공장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산단중앙로 45
• 이화공장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남양만로 707
• 서산공장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음암로 140
• 안양공장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박달로 337-53
• 김천공장 : 경상북도 김천시 공단로 258-45
• 진천공장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2길 95
• 포승공장 :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포승공단로118번길 16
• 창원공장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성산패총로 87
• 천안공장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2공단2로 105
• 충주공장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기업도시1로 47
• 마북연구소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로 240번길 17-2
• 의왕연구소 : 경기도 의왕시 철도박물관로 37
• 서산주행시험장 : 충첨남도 서산시 부석면 갈마리 727 웰빙단지
6. 역대 임원
-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 정의선 (2019~2020)
- 대표이사 부회장
- 유기철 (1996~1998)
- 박정인 (2002~2005)
- 한규환 (2005~2007)
- 김동진 (2009)
- 정석수 (2009~2011)
- 대표이사 사장
- 정몽구 (1977~1987)
- 유기철 (1987~1994)
- 유철진 (1994~1997)
- 박정인 (1997~2001)
- 한규환 (2002~2005)
- 정석수 (2005~2009)
- 전호석 (2011~2013)
- 정명철 (2014~2016)
- 임영득 (2016~2019)
- 박정국 (2019~2020)
- 조성환 (2021~)
7. 스포츠
2001년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자 현대차그룹의 1사 1팀 정책에 따라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농구단의 운영권을 넘겨받아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1985년 창단된 현대모비스 여자 양궁단을 운영하고 있다. 리커브팀 4명과 컴파운드팀 4명 총 8명의 선수로 구성이 되어있다.
8. 주니어 공학교실
2005년부터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주니어 공학교실'을 운영하며 2012년부터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는 캐치프라이즈를 내건 '노벨 프로젝트'를 광고로 내보내고 있다. 관련 글보기
2012년 광고
2013년 광고
관련 캠페인 광고는 2012 스포츠경향 광고대상에서 최우수상, 2013년에는 한국광고학회 제20회 '올해의 광고상'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9. 노동조합
- 현대모비스 노동조합: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소속.
-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현대모비스위원회: 민주노총 소속.
10. 논란
비정규직이 많은 대표적인 회사이다. 참조 생산 공장도 진천공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장의 경우 비정규직(하청)이 정말 많은 것으로 뉴스에 나왔다. 결국, 2020년 시점에는 불법 파견에 대한 지위 확인소송 등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법원에 판단에 따라서 불법 파견 여부를 판단하고 직접 고용 의무를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참조1 참조2
[1] 엔진, 변속기, 파워트레인 등 동력계통은 완성차 업체인 현대·기아에서 내재화했거나 소위 HMG 부품 3인방인 모비스, 위아, 트랜시스 중 모비스를 제외한 두 회사에서 생산한다.[2] 사실, 이렇게 모듈 사업을 하게 된 것도 처음에는 현대자동차 공장 내부에 셀 생산방식을 도입해서 생산량과 품질을 올리려 했지만, 셀 방식의 특성상 개인의 생산성을 체크하기 용이하여 보다 우수한 이들을 더 대우하기 위한 개인별 인센티브제와 새로운 생산방식에 필요한 보수교육을 도입하면 '''노조의 단결력이 와해될 거라 생각한 현대자동차 노조의 반대'''(...)로 실패하면서 다른 방법으로 생산성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한 결과물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에 주문이 들어오면 함께 연결된 전산망을 통해 현대모비스에 주문이 들어오고 이에 필요한 모듈이 완성차 조립 각 단계에 필요한 순서대로 공급되는 지금은 자사 내 완성차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차 외에도 다른 회사에 모듈을 납품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러한 생산방식이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AS쪽의 폭리는 개선되어야 하지만, 모듈 사업까지는 비난할 수 없는 것.[3]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주도의 빅딜사업 1호로 현대/대우/한진의 철도차량부문을 통합하게 되는데, 이후 대우의 지분을 인수하여 현대로템이 된다.[4] 철도에 이은 빅딜사업 2호. 1996년 현대우주항공으로 변경했다가 현대/삼성/대우의 항공사업을 통합해 현재의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된다.[5] 울산 5공장은 현대차 순혈이 아닌 때문인지 여러 면에서 사내 마찰이 많고 노조도 따로 논다. 심지어 파업을 결의하려 해도 곧바로 파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온건적인 입장인 잔업 거부, 특근거부로 투표를 하고, 파업으로 결론이 났어도 총파업이 아닌 부분파업으로 투표가 가는 편이라 노조 지도부에서도 이들을 달래는데도 힘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이권쟁취라는 목표로는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강성노조에 속하면서도 정작 투쟁방법과 수위에 있어서는 온건한 쪽에 속하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투싼이 처음 나왔을때 5공장에서 생산을 맡았으나 주문이 폭주하여 공급이 달리자 싼타페를 생산하던 2공장에서도 생산하자고 하니 5공장은 자기네 물량 감소한다고 거부. 잘 팔릴때 바짝 팔아야되는데 계속해서 대기기간이 길어지자 결국 기아 스포티지 등으로 고객이 많이 이탈하게 되었다. 이런 양상은 이후에도 5공장에 제네시스, 신형 에쿠스 등의 신모델이 우선배치되면서 계속된다.[6] 5공장에 신모델이 계속 배치되는 이유는 원래 현대자동차는 포니정이라고까지 불리던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키운 회사인데 큰 형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빼앗아서 아들 주고 동생한테는 대신, 아파트 짓던 회사(이 현대산업개발이 원래 정몽구의 것. 보통 오래된 '''현대아파트'''는 현대산업개발에서 지은 것이고 아이파크 브랜드가 HDC현대산업개발의 것이다.)를 줘서 내보낸것인데 비해 현대정공(현대모비스+현대차 울산 5공장)은 자기가 직접 만든 것('''성골''') 이라서 그렇다 '''카더라'''[7] 1999~2005년까지 서한그룹 계열사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