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 통크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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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nky Tonk Man '''
1. 프로필
2. 개요
3. 커리어
3.1. WWF
3.1.1. 1986- 1987년
3.1.2. 1988년
3.1.3. 1989- 1991년
3.2. WCW
3.3. WWF/WWE
4. 피니쉬 무브
5. 여담
6. 둘러보기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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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Roy Wayne Farris
'''출생일'''
1953년 1월 25일 (71세)
'''출생지'''
미국 테네시 주 볼리바르
'''신장'''
185cm
'''체중'''
112kg
'''주요 타이틀'''
'''WWF 인터컨티넨털 챔피언'''
XJAM 헤비급 챔피언
'''피니시 무브'''
엘 카봉[1]
셰이크, 래틀 앤 롤
'''테마곡'''
Cool Cocky Bad


2. 개요


미국프로레슬러. 前 WWF, WCW 소속,

3. 커리어


로이 웨인 패리스는 올드 스쿨 레슬러로 유명한 Welch 4형제 가운데 Herb Welch에게 레슬링을 배웠고, 1977년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데뷔했다. 이후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며 싱글, 태그 벨트를 획득했다.
그러다 1986년 다시 활동무대를 멤피스로 옮겼는데, 멤피스가 낳은 불세출의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를 패러디한 '홍키 통크 웨인'으로 등장했다. 이 깨는 캐릭터를 흥미롭게 본 빈스 맥마흔은 그를 영입한다.

3.1. WWF



3.1.1. 1986-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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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링 네임 홍키 통크 맨, '''짝퉁 엘비스 프레슬리''' 기믹으로 데뷔한다. 누가 봐도 120% 짭인 주제에 진짜 자기가 황제라도 되는양 스타의식 쩌는(...) 언행을 일삼았고, 더구나 멀쩡히 잘 싸우다가도 힘이 달린다 싶으면 냅다 '''기타샷'''을 날리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대동하고 나온 매니저가 '''공포의 주둥이''' 지미 하트(...). 홍키 통크 맨은 단숨에 포풍어그로를 끌며 인기악역(?)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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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샷을 자주 사용해서 홍키 통크 맨이라는 링네임 이외에도 '''통기타 맨'''이라는 이명까지 얻었다. 참고로 이 사진에서 기타샷을 맞는 사람은 홍키 통크 맨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레전드 레슬러 브루투스 비프케익이다. 우연인진 모르나 이 둘은 2019년 WWE 명예의 전당에 함께 입성했다.
제이크 스네이크 로버츠와 대립하는 등 차츰 하이 미들카더급으로 위상을 끌어올렸고, 마침내 1987년 6월 드래곤 리키 스팀보트를 꺾고 인터컨티넨털 챔피언 벨트를 획득한다. 같은 해 12월 31일 레슬링 챌린지에서 로버츠와 다시 만났고 매니저의 메가폰 샷으로 DQ패하며 벨트를 지켰으나 매니저 지미 하트는 데미안 (뱀)의 희생 제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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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대립한 상대가 마초맨 랜디 새비지였는데, 이는 1980년대 WWF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한 분기점이 된다. 간략히 설명한다면 홍키 통크 맨이 마초맨에게 밟히자 매니저 지미 하트하트 파운데이션을 데려와 마초맨을 밟았고, 이번엔 마초맨의 매니저 미스 엘리자베스헐크 호건을 데려와 이들을 물리쳤다. 이 해프닝이 훗날 마초맨과 밀리언 달러맨 테드 디비아시의 헤비급 챔피언 매치로 이어지고, 호건과 마초맨이 태그팀 메가 파워즈를 결성하고,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엘리자베스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 각본이 탄생한다.
이렇게 마초맨이 헤비급 챔프 레벨로 치고올라가는 동안, 홍키 통크 맨은 여전히 인터컨티넨털 레벨에서 놀았는데(...) 핵소 짐 더간, 브루투스 바버 비프케익 등과 대립을 가졌다. 특히 당시 브루투스 비프케익이 내세운 이발사 캐릭터와 맞물려 '네놈 머리를 밀어버리겠다' '감히 이 몸의 머리에 손을 대다니!' 하며 투닥댔는데, 그만 시나리오가 이상하게 꼬여버린다.

3.1.2. 1988년


도중인 1988년 7월 18일 레슬링 챌린지에서는 브렛 하트를 상대로 챔피언십을 가졌는데 카운트 아웃으로 벨트를 지켰다.
결국 꼬인 시나리오 때문에 WWF 섬머슬램(1988)에서 상대하기로 예정된 비프케익이 시합에 결장하고 '정체불명 도전자'로 바뀐다. 먼저 입장한 홍키 통크 맨은 잔뜩 허세를 부리며 '언놈인지 빨랑 기어나와!' 하고 호기롭게 외쳤는데...이후 과정은 레슬링팬이라면 다들 아시는 얼티밋 워리어의 30초 끔살.
이처럼 허무하게 WWF 인터컨티넨털 벨트를 빼앗기기 전까지 무려 '''454일'''동안 타이틀을 보유했다. 이는 WWE로 바뀐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즉 홍키 통크 맨은 '''WWF, WWE 역사상 최장수 인터컨티넨털 챔피언'''이다.[2]
다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WWF 인터컨티넨털 챔피언으로 장기집권하면서 더 높은 위치로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 이건 좀 골치아픈 문제인 것이, 원래 메인매치가 극도로 드물고 챔피언 벨트의 숫자도 적었던 당시에는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의 가치는 굉장히 높았다. 애초에 홍키통크맨 이전의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들을 보면 팻 패터슨, 페드로 모랄레스, 돈 무라코, 티토 산타나, 그렉 발렌타인, 마초맨 랜디 새비지, 드래곤 리키 스팀보트이다. 그리고 켄 파테라와 그렉 더 해머 발렌타인 정도를 제외하면 저 사람들은 준 메인이벤터였다. 홍키통크맨 이후를 봐도 얼티밋 워리어와 릭 루드 등이 이어갔다. 단적으로 헐크 호건과 얼티밋 워리어의 역사적 대전 시기만 봐도 타이틀은 '챔피언 VS 챔피언'이었다. 즉 홍키 통크 맨이 WWF 인터콘티넨탈 벨트를 오래 쥐고 있으면서 벨트의 가치를 오히려 일정 정도 이상 하락시켰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마초맨과 얼티밋 워리어 둘을 메인 이벤터로 성장하기 위한 경험치 노릇밖에 하지 못했고, 특히 워리어에게 스쿼시 매치나 다름없는 패배를 당하면서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3]

3.1.3. 1989-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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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발렌타인(오른쪽) 지미 하트(가운데)
결국 더 이상 푸쉬를 받지 못하고 1989년 그렉 발렌타인과 악역 태그팀 리듬 & 블루스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절 WWF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태그팀 디비전이 막강했다. 타이틀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팀이 레전드급하트 파운데이션, 데몰리션, 내스티 보이즈, 리전 오브 둠...하물며 이들의 등쌀에 밀려 락커즈, 스트라이크 포스, 파워스 오브 페인,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킬러 비즈 같은 쟁쟁한 팀들이 분루를 삼켜야했다. 한마디로 충공깽.
도중인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0)에서 브렛 하트와 재대결을 가지기도 했으나 지미 하트와 충돌하면서 롤업으로 패배했다. 리듬&블루스는 개그삘이 충만한 태그팀 부쉬웨커스와 대립을 갖다가(...) 1991년 1월 홍키 통크 맨이 WWF를 떠나게 되자 '두 선수간 다툼과 분열'이라는 시나리오로 팀을 해체했다.

3.2. WCW


몇년간 인디단체에서 활동하다 1994년 WCW에 출연한다. 여기서 대립을 가진 상대는 짝퉁 리틀 리차드(...) 쟈니 배드(Johnny B. Badd)[4]였다. 에릭 비숍이 얼마 안 가 홍키 통크 맨을 해고하면서 WCW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3.3. WWF/WWE


1997년 홍키 통크 맨은 WWF에 복귀했다. 이때 라커빌리 기믹으로 활동하는 빌리 건의 매니저 노릇을 했다. WWF 로얄럼블(1998)에 선수로 참가했고, 역시 WWF 로얄럼블(2001)에도 참가했다. 아마 애티튜드 이후로 WWF/WWE를 접한 국내의 젊은 레슬링팬들은 이 무렵 홍키 통크 맨을 기억할 듯. 뭘 해볼 틈도 없이 케인에게 기타샷을 얻어맞고 탈락하며 빅재미 큰웃음을 준...지못미 최장수 인터컨티넨털 챔피언.
이후 인디단체를 전전하다가 2008년 다시 WWE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인터컨티넨털 챔피언 산티노 마렐라가 홍키 통크 맨의 타이블 보유 기록을 깨겠다며 나대자 시합을 벌였다. 물론 산티노에게 기타샷을 먹여주는 것을 잊지 않아 시청자들에게 또 한번 큰웃음을 안겨줬다.
2019년 2월, 그 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WWE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3.4. WWA


2003년 3월, 자이언트 커간과 함께 WWA 'Never Die' 투어에 참가하였으며, 2003년 3월 1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이왕표와 대결했다. 홍키 통크 맨이 기타샷을 날려서 승리했지만 반칙패가 되었으며, 재경기를 벌여서 '''당연히''' 이왕표의 승리가 되었다.
iTV 중계에서 백스테이지에서 천창욱 해설위원에게 스윙넥 브레이커를 날리고, 목욕탕에 처박는 장면이 나왔다. 천창욱 해설위원이 다음 카페에 이것은 사실 연출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고 글을 올렸다.(……)

이번 투어 인터뷰 부터 뭔가 모를 외국 선수들의 안좋은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실제로 영어를 저보다 잘하시는 김동연씨가 홍키 통크 맨을 인터뷰할 때 옆에서 대기하다가 스윙 넥브레이커를 맞았었고(연출 아님) 이번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홍키 통크 맨이 있는 상황에서 화가나서 다가가서 내일 이왕표 선수에게 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홍키 통크 맨은 저를 잡아서 물고문 하듯이 물속에 처박았고 김동연씨는 자이언트 커간에게 초크슬램을 수영장 바닥에 닿을 정도로 심하게 2번이나 내동댕이 쳐져야했습니다.


4. 피니쉬 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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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쉬 기술은 Shake, Rattle and Roll. 많은 선수가 사용하는 스윙잉 넥브레이커다. 단지 기술을 넣기 전에 독특한 율동을 넣는(...) 것이 포인트.[5]

5. 여담


  • 홍키 통크 맨은 각본이 아닌, 실제로 상당수 레슬러들과 불화를 겪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이면...헐크 호건, 릭 플레어, 브렛 하트, 케빈 내시, 로디 파이퍼, 테드 디비아시, 에릭 비숍 등 레슬링계의 초대형 거물들과 사이가 나쁘다는 것. 아마 사촌형 인맥이 아니었으면 진작 이 바닥에서 매장당했을지도(...).[6] 특히 이들중 목회자가 된 테드 디비아시랑도 사이가 나쁠 정도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7]
  • 카더라통신에 따르자면, TNA와 계약할 뻔 했으나 위에서 말한 인간관계가 발목을 잡아 결렬되었다고 한다.
  • 오락실 게임 WWF 슈퍼스타즈에 등장한다. 성능은 꽤 구린 편. 그래도 핵소 짐 더간보다는 좀 나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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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모습. 확연히 늙었다.
  • 매 영은 홍키 통크 맨의 숙모님이다.
  •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초창기 WWE(당시에는 WWF)의 멤버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났고 2014년 4월에는 얼티밋 워리어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이젠 테드 디비아시헐크 호건제이크 로버츠, 홍키 통크 맨 이 정도만 살아있다.[8]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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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기타샷이다.[2] 총 보유기록까지 따지면 619일을 보유한 페드로 모랄레스가 가장 오래됐다.[3] 사실 정말로 위상에 타격이나 입었는 지조차 의문이다. 실제로 보면 홍키 통크 맨이 엄청난 인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력파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그냥 거기까지가 홍키 통크 맨의 한계였다고 밖에.[4] WWF 시절의 링네임 마크 메로로 더 유명하다.[5] 우리가 오락실용 게임 '슈퍼스타즈'에서 보던 홍키 통크 맨의 넥브레이커는 실제로는 래비싱 릭 루드의 피니시인 루드 웨이크닝과 더 유사하다.[6] 그런데 그 사촌형하고도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차마 사촌을 버릴 순 없어 편들어준거라 봐야할듯... 마치 아무리 자식이 범죄자라도 부모가 그 자식을 버리지 못하는거랑 비슷하다 보면 될 듯 [7] 아이러니한건 이들중 호건과 브렛도 서로 사이가 안좋다는 점이며, 케빈 내시의 경우도 인성이 좋지않아 사이 나쁜 선수들이 많다.[8] 그런데 원래 WWE의 원류는 CWC라는 단체로 거슬러 올라가면 1950년대 이전부터고 WWWF도 1960년대 시작된 단체다. 이후 WWF로 개명한 것도 사실 1979년이니 엄밀히 말하면 여기서 말하는 초창기란 단체의 초창기가 아니라 WWF가 한국에 알려진 초창기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WWF(현 WWE)가 알려진 건 아무리 빨리 잡아도 1987년 레슬매니아가 시작된 해부터고 실질적으로는 1989 ~ 1990, 본격적으로는 레슬매니아 6부터다. 당연히 한국인들에게는 진짜 WWF 초창기 선수인 브루노 삼마르티노, 밥 백런드, 아이언 쉬크, 빌리 그레이엄 같은 선수들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고 1987년도 이후, 실제로는 1989 ~ 1990년 정도부터인 헐크 호건, 앙드레 더 자이언트, 얼티밋 워리어, 마초맨 랜디 새비지, 언더테이커, 밀리언 달러맨 테드 디비아시, 빅 보스 맨, 그리고 홍키 통크 맨 등이 초창기 선수로 알려져 있다.